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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의 경제학자' 정운영 선생 24일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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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의 경제학자' 정운영 선생 24일 타계

병상에서 '마지막 칼럼' 구술 집필 '투혼'

진보 경제학계의 '큰 별'이던 정운영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24일 오전 타계했다. 향년 62세. 신부전을 앓아 온 고인은 지난 8월 초부터 삼성서울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 왔다.

***열흘에 걸쳐 구술로 마지막 칼럼 집필**

근대 경제학과 마르크스 경제학을 두루 섭렵한 고인은 활발한 언론활동을 해 온 대표적인 진보 경제학자이자 경제 평론가로 손꼽힌다.

최근에는 <중앙일보>에 연재해 온 '정운영 칼럼'을 병상에서 집필하는 투혼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마지막 칼럼이 된 '영웅본색'(9월7일자)은 자료 수집에 부인의 도움을 얻어 열흘에 걸쳐 한 문장 한 문장을 구술로 풀어냈다.

고인은 서울대 상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1981년 벨기에 루뱅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서울대와 고려대 강사, 한신대 교수를 거쳐 99년부터 경기대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해 왔다.

한국일보 기자(72년)와 중앙일보 기자(73년)를 거쳐 한겨레신문 논설위원(88~99년)으로 창간에 참여했으며, 중앙일보 논설위원(2000~현재)으로 활동하는 등 언론계와도 인연이 깊다. MBC <정운영의 100분토론>, EBS <정운영의 책으로 읽는 세상> 등의 프로그램 진행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저서는 <세계 자본주의론>(편저), <한국 자본주의론>(편저), <국가독점자본주의론>(편저)를 비롯해 평론집인 <광대의 경제학>, <저 낮은 경제학을 위하여>, <경제학을 위한 변명>, <시지프스의 언어>, <피사의 전망대> 등이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영안실 5호(전화 3410-6905).

다음은 중앙일보에 게재된 고인의 마지막 칼럼 전문.

***영웅본색**

송나라를 개국한 황제 조광윤은 힘이 무서웠던 모양으로 주먹 한 대에 신하의 이 한 대가 부러지곤 했다. 신하는 말없이 이를 주워 품에 넣었고 조광윤은 적이 그 행위가 눈에 거슬렸는지 캐물었다.

"너 감히 나에게 앙심을 품으려느냐?"

"아니올시다. 사관에게 갖다 보이려고 그럽니다."

'임금이 힘자랑에 신하의 이를 부러뜨렸다는 기록이 후세에 남을까 봐 황제는 제발 사관에게 알리지 말라고 급히 사정했고, 결국 임금이 사관에게 사정했다는 일화를 남기고 말았다. 이처럼 사관의 존재는 역사에 오명을 남기지 않으려는 의식을 가진 임금들을 어느 정도 통제하는 역할을 했다'. 조선 시대에 반짝한 잠시의 풍조대로 "임금 위에 하늘이 있소이다"라던 풍조가 바로 이것을 가리키는지 모르겠다. 정치의 세계에서는 이름에 대한 의식과 가문에 대한 자부가 유달리 높았었다. 때로는 그것이 사람을 망치기도 하고 때로는 그것이 적극적인 도움을 주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한창 때(!) 스탈린은 무려 25개나 되는 별명을 가졌었다. 이 이름들은 항상-혹은 대부분- 은행의 금고털이 등 정치 사업에 활용되었다.

이것은 조선 양반님네가 자신의 영특함을 과시하고, 가문의 위세를 나타내기 위해 자(字)가 어떠니 호(號)가 어떠니 하고 활용했던 별호와는 다른 의미의 이름이다. 물론 유형지나 암흑가에서 자신과 상대를 감춰 주기 위해 사용했던 서너 개의 별명과도 다른 이름이다. 그러나 이 암흑가의 별명과 정치적 의미의 별명은 그 경계가 아주 고만고만해서 분류에서 애를 먹는다. 즉 유맹(流氓)이라고 불리는 이들 제삼세계의 지도자가-사실은 쿠데타 보스가- 이 계급에서 나오기도 한다. 이들은 그래도 이데올로기의 사면을 제법 받았다. 공산주의와의 투쟁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의 내용이 어떠하든 일단 그것은 소련에 돌을 던지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환갑을 넘지 못한 트로츠키의 생애에서 레프 브론슈타인이라는 이름으로 보낸 1900년대는 그에게 가장 감동적인 시기였다. 결혼과 함께 시베리아로 추방되었으며, 런던으로 탈출해서는 레닌 등 러시아의 일류 혁명가들과 합류하고 투쟁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그만 멍청하고 황당한 일이 벌어졌었다. 친구들이 만들어준 가짜 여권으로 막 국경을 넘으려는데 여권 내용이 온통 맹탕 아닌가? 서너 발짝 앞에 간수는 다가오고 여권은 이름조차 없는 가짜이고, 그야말로 진퇴양난에 빠졌다. 그때 번개처럼 그의 머리를 훑고 지나간 이름이 있으니, 그것이 곧 감옥에서 그를 가장 괴롭힌 트로츠키였다. 그래서 여권 성명란에 얼른 트로츠키라는 이름을 써 넣었다. 선후 관계는 요상하게 끝이 났지만 여권 하나는-그리고 그 소유자는- 무사하게 국경을 통과할 수 있었다.

우리는 삼국지(三國志)가 우리의 문학인지 '남'의 문학인지 분간할 능력이 없다. 그럼에도 삼국지를 우리 문학에 넣으려는 것은 어떤 도덕적.윤리적 합의가-삼국지 정서가- 오랫동안 존재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중에 특별히 떼어 놓고 싶지 않은 대목이 그들이 보여주는 정치의 정직성이다. 그것은 정치인은 '정직해야'할 뿐만 아니라 '더 정직해야' 한다는 상식적 주장을 되풀이하려는 것일는지 모른다. 예를 들어 어떤 교육자와 어떤 성직자가 비슷한 내용의 잘못을 범했다고 할 때 그 죄의 실질적 무게는 성직자 편이 훨씬 더 무겁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의 대우는 오히려 거꾸로 간다. 바로 이 제도와 관행을 고쳐야 한다.

여기 눈을 감은 채 더 높은 보수를 받고, 여기 눈을 감은 채 더 헐거운 정직성의 기준을 요구하는 데서 나는 286이니 386이니 하는 인위적 패거리가 만들어내는 실패의 교훈을 느낀다. 첨단 과학 발전의 세계화 시대에 정치적 정직성이니 정책의 공평성이니 하는 덕목들이 말짱 힘 빠진 주장임을 잘 안다. 그렇다고 거기 무슨 마땅한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럴수록 이 시대에 더욱 절박한 제목이 정치적 정직성이라고 믿는다. 영웅을 본뜬 '영웅본색' 따위로 한순간이나마 위로를 찾는 것이 현대인의 삶이라면, 그것은 너무 삭막하지만 또한 피할 수 없는 대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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