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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후보가 主流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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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후보가 主流라고?

유시민의 시사카페 <16>

대통령후보 지지도 격차가 크게 줄었다. 연일 김대중 대통령을 공격해 재미를 본 한나라당과 이회창 캠프에는 아연 활기가 돈다. 속절없이 가라앉는 지지율 때문에 민주당과 노무현 캠프는 비상이 걸린 모습이다.

모든 게임이 다 엎치락뒤치락 해야 구경하는 재미가 있는 법. 이대로 가면 12월 대선이 투표함을 다 열어 보아야 결과를 알 수 있는 흥미진진한 게임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지지율 변화 그 자체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문제가 있다. 두 후보의 정책과 지지층이 일치하지 않는 현상이다. 후보의 이미지와 지지층도 어긋난다. 이런 흐름은 모든 여론조사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노무현 후보는 '서민후보'를 자처하는 '아웃사이더' 출신이다. 경제성장과 아울러 분배의 정의를 강조한다. 노동자와 빈곤층을 위한 복지 지출을 옹호한다. 서민들이 좋아할 만하다.

반면 이회창 후보는 '주류(主流)'를 자처하는 '기득권층' 출신이다. 분배의 정의보다는 경제성장을 강조한다. 복지정책에 소극적이며 친기업적 정책을 표방한다. 서민들에게는 별로다.

그런데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서민층에서 이회창 후보가 오히려 앞서 있다. 도대체 누가 '주류'인지가 헷갈리는 상황이다. 유권자의 특성을 학력, 소득, 나이, 지역으로 구분해 보면 두 후보의 지지기반 차이는 매우 뚜렷하다.

대학 재학 이상의 학력, 월 소득 2백만 원 이상 유권자 집단에서는 노무현의 인기가 압도적이다. 반면 학력이 낮고 소득이 낮은 유권자 집단에서는 이회창의 인기가 압도적이다. 유권자들은 나이가 많을수록 이회창을 지지하고 젊을수록 노무현을 지지한다. 호남에서는 노무현 지지가 높고 영남에서는 이회창이 여전히 크게 앞서간다. 전체적으로 보면 도시에서는 노무현이 강하고 농어촌에서는 이회창이 강하다.

이른바 '서민층'에서 이회창이 노무현을 앞서는 이유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서민후보'를 자처하는 노무현이, 사실은 서민들의 피부에 직접 와 닿기 어려운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것이 핵심적인 이유다.

'동서화합'과 '국민통합'은 서민생활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노사화합' 역시 이루어지면 좋지만 유권자 개인에게 무슨 이익을 주는 건 아니다. '남북 화해협력'도 국가재정이 들어가는 일일 뿐 서민들에게 눈에 보이는 혜택을 주지 못한다. '원칙과 신뢰를 세우는 것' 역시 다르지 않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 바쁜 서민들이 이런 거시적이고 추상적인 국가과제를 자기 문제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면 서민들이 이회창을 더 많이 지지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한마디로 노무현이 아직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금년 2월까지만 해도 이회창은 맞대결을 가정한 여론조사에서 거의 모든 계층에서 노무현을 눌렀고 지지도 격차는 20%를 상회했다. 3월 중순 판도가 뒤집어진 것은 정치 자체에 환멸을 느껴 지지후보가 없다고 대답했던 젊은 고학력 유권자들이 노무현의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노무현이 내세운 '국민통합'이라는 추상적 가치와 서민적ㆍ개혁적 이미지가 붐을 일으킨 것이다. 하지만 이회창을 지지했던 저학력, 저소득, 노령층의 서민들은 그렇지 않았다.

후보 확정 직후 두 사람은 대조적인 행보를 보였다. 노무현은 개혁적 유권자에게 욕을 먹어가면서 김영삼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이회창은 환경미화원 옷을 입고 거리 청소를 하는가 하면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에 가서 배추를 날랐다.

서민후보를 표방하는 노무현은 민주세력의 통합과 정책구도 정계개편이라는, 서민이 이해하기 어려운 추상적 과제를 붙들고 늘어진 반면, 귀족 이미지의 이회창은 삶의 현장을 찾아다니며 서민층의 정서적 공감을 유도한 것이다.

정치는 맞춤옷이 아니라 기성복 골라잡기다. 노무현과 이회창이라는, 아직은 서로 다른 매장에 진열된 두 브랜드는, 6월 지방선거와 8월 국회의원 재보선이 끝난 다음에야 같은 매장에 내걸릴 것이다. 후보와 지지층의 불일치를 해소하는 데 충분히 긴 시간이다. 그러나 저학력 저소득 고령 유권자를 지지기반으로 하는 정치인을 '주류'의 대표로 인정할 수는 없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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