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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원 특사, 돈 좀 쓰십시오

유시민의 시사카페 <9>

독일 분단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은 1989년 11월 9일에 무너졌다고들 한다. 하지만 이 담벼락을 실제로 철거하는 데는 여러 해가 걸렸다. 그날 무너진 것은 사실 베를린장벽이 아니다. 독일민주공화국(동독) 주민들에 대한 독일연방공화국(서독) 방문 규제였을 뿐이다. 이 규제의 종식과 더불어 동독 체제도 종말을 고했다.

보수를 자처하는 몇몇 정치인들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북한 체제의 붕괴를 지연시킴으로써 민족 통일을 저해했다고 비난한다. 그들은 독일식 흡수통일이야말로 가장 비용이 적게 들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통일이라고 믿는다. 에너지와 식량을 지원하고 금강산 관광대가를 현금으로 지급하는 등의 대북 지원을 '퍼주기'라고 비난하는 것도 다 이런 생각 때문이다.

그들이 원하는 일이 실제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해 보자. 예컨대 이런 시나리오다.

독재와 굶주림을 견디다 못한 인민들이 봉기를 일으켜 김정일 정권이 통제력을 상실한다. 정권의 붕괴는 행정조직의 마비를 불러와 그나마 유지되고 있던 식량배급 시스템이 무너진다. 평안도와 함경도 북부 지역 인민들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몰려간다. 평양 이남 지역 인민들은 밥과 자유를 찾아 걸어서 또는 배를 타고 '따뜻한 남쪽나라'로 향한다. 다음에 일어날 사태는 둘 가운데 하나다.

첫째 남행길을 가로막은 군 병력과 인민들이 유혈충돌을 벌이는 경우.
비무장지대 북측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만약 군사적으로 개입한다면 무력충돌이 벌어져 전쟁이 터질 것이다.

둘째는 북한군이 인민들의 남행을 방치하는 경우다.
이것은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벌어진 것과 같은 상황을 의미한다. 휴전선에 배치된 우리 군은 어떻게 해야 할까?

적어도 법률적으로는 북한 인민들의 남하를 막을 수 없다. 우리 헌법은 한반도와 부속도서를 모두 대한민국의 영토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 헌법이 휴전선 이북에 효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은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인 북한 정권이 '국가를 참칭'하면서 그곳을 무력으로 점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체제가 무너진다면 당연히 대한민국 헌법이 적용되어야 한다. 북한 인민들도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한 바 '거주 이전의 자유'와 '신체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 정부와 군대는 군말 없이 그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북한체제 붕괴와 흡수통일을 원하는 자칭 보수 정치인들에게 물어보자. 서울특별시는 노숙자가 1천명만 거리를 배회해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취약한 도시다. 당신이 서울시장이라면 예컨대 10만명의 탈북 동포들을 어떻게 먹이고 입히고 재울 생각인가. 당신이 노동부장관이라면 이미 20만명을 넘어선 외국인 노동자에다 또 수십만명의 탈북 주민들이 밀려들 때 필연적으로 발생할 노동시장의 대혼란을 어떻게 수습할 작정인가. 당신이 교육부장관이라면 그들이 데리고 온 아이들을 도대체 어디에서 교육할 계획인가.

북한의 일당독재체제를 비난하는 것만큼 쉬운 일은 달리 없다. 입으로 북한의 인권문제를 걱정하는 데는 한푼도 비용이 들지 않는다. 그런 것이 애국이라면 애국하지 못할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북한 체제 붕괴와 흡수통일이 몰고 올 수많은 실제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눈을 감은 채 모든 종류의 대북지원을 김정일 정권을 돕는 '퍼주기 정책'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자칭 애국자가 할 짓이 아니다.

북한의 기본질서는 중앙통제식 계획경제와 일당독재정치다. 소련에서 동독까지 사회주의 국가들이 모두 똑같이 하다 망한 후로는 대외교역이 거의 끊어진 폐쇄형 국민경제를 유지하고 있다. 한마디로 해서 자기 발로 일어설 수 없는 사회다. 내버려두면 무너지고 도와주면 변화할 수밖에 없는 그런 체제다.

임동원 특사가 며칠 후면 평양에 간다. 임 특사는 부시의 '악의 축' 발언 이후 한반도에 드리운 위기의 그림자를 걷어내야 한다.

돈을 좀 넉넉하게 쓰면 잘 될 것이다.

F-15K라는 구닥다리 비행기를 '차세대 전투기'라는 멋진 이름을 붙여 사주면서까지 부시의 비위를 달랬는데, 북측의 신뢰를 얻는 비용이 설마 그보다 많기야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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