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흥수 서울지법 부장판사는 이미 사법개혁을 여러 차례 주창해 언론에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리고 지난 15일에는 법원내부 통신망을 통해 ‘법의 지배 확립을 위한 사법부 독립과 법원민주화를 생각하는 법관들의 (사이버) 공동회의’(이하 공동회의)를 발족시켜 매스컴의 초점이 된 뉴스메이커이다.
공동회의는 지법 부장판사급 7명을 포함한 33명의 판사가 발기인 및 운영위원으로 참여하고 있고, 법관 인사제도를 혁신하여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자는 기치를 내걸어 법원내외의 폭넓은 지지와 기대를 받고 있다.
공동회의는 법관의 신분보장과 민주적 인사시스템을 위한 법관법의 제정, 대통령의 사면권 견제 방안 등을 주제로 상정하고, 오는 11월말까지를 제1차 토의기간으로 정해 내부 토론을 진행키로 했다.
(공동회의는 구체적인 토의주제 등은 결론이 날 때까지 보도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사법개혁 문제는 법관 이외에도 시민단체나 학자들이 많은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일부는 보도하기로 했다.)
프레시안은 문 판사를 직접 만나보기로 했다. 프레시안은 이미 지난 17일자 1면 기사로 공동회의의 주장과 문판사의 평소 사법개혁에 대한 소신에 대해 보도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 판사를 직접 만나기로 한 것은 사법개혁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시대적 과제이기 때문에 사법개혁에 대한 생생한 목소리를 전달하자는 점과 더불어 독자들에게 문 판사의 개인적 면모에 대해 소개하자는 의도였다.
(보통 부장판사는 '부장'이라는 명칭을 붙여주는 것이 관례이다. 그러나 문흥수 부장판사에 대해서는 그냥 '판사'라는 명칭을 쓰기로 했다. 문 판사는 평생 법관으로 공직에 봉사하고자하며, 또 그것이 현재 사법부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이라는 소신을 갖고 있다. 따라서 '판사'라는 호칭이 그의 소신에 걸맞는 예우라는 생각 때문이다)
***사법개혁을 위한 법관 공동회의 발족의 주역**
18일 저녁 6시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법원 나동 1154호 민사합의 28부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부장판사인 그의 사무실은 5평 남짓했고, 소파 탁자 위에는 재판관련 서류가 가득 쌓여 있었다.
서울지방법원과 가정법원, 서울고등법원이 들어선 서초동 법원건물은 그야말로 만원사례다 보니 부장판사라고 해도 제대로 된 방 하나 가질 여유가 없다.
문 판사에 대한 첫 인상은 소탈하면서도 조용한 사람인 것 같았다. 인터뷰에 앞서 그는 자신이 그동안 언론 인터뷰를 기피해 온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사법개혁을 위한 공동회의의 취지와 목표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뉴스의 대상이 되거나 부각되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이것이 이번 인터뷰에서 문 판사의 개인적인 면모를 자세히 소개하려던 의도가 만족스럽지 못하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문 판사는 “자칫하면 걸음마 단계에 있는 공동회의의 취지가 훼손될까 봐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하려고 준비해간 질문지를 꺼냈다. 공동 진행을 위해 시민의 신문 기자에게 질문지를 보여주던 와중에 뜻하지 않게 문 판사가 갑자기 질문지를 집어 들었다.
(같은 시간에 시민의 신문이 인터뷰를 함께 하러 들어왔다. 문 판사는 마침 시민의 신문도 인터뷰를 요청해서 함께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사전양해가 없었던 것이라 다소 당황했지만 공동 진행하기로 했다.)
질문지를 읽어본 문 판사는 대뜸 “내가 대답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질문들이 있다”면서 일문일답보다는 주요한 취지에 대해 설명한 뒤 문답을 나누는 것으로 하자고 제안했다.
외모와는 전혀 다른 의외의 순발력이었다. 동의하기 싫었지만 문 판사의 의견을 존중해서 우선 공동회의의 취지에 대한 설명을 듣기로 했다.
***사법개혁하려면 발탁승진제도부터 바꿔야**
문 판사는 “현재 사법부가 위기를 맞게 되고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법관들이 맡은 바 책무를 다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면서, “이러한 원인은 상당부분 현재의 사법시스템에 있다”고 진단했다.
법관이 책무를 다하지 못하는 사법시스템의 문제점에 대한 설명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발탁승진이라는 사법부의 인사제도 때문입니다. 일정한 직위 이상으로 올라가는 법관의 인원을 제한해서 나머지 법관은 옷을 벗기는 제도가 문제입니다.”
승진하지 못한 법관은 ‘승진탈락자’라는 오명을 쓴 채로 변호사를 개업하게 되고 이들의 자리를 갓 임용된 ‘새파란’ 젊은 법관들이 메우게 되는 현재의 사법부 인사제도가 바로 법관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문 판사는 ‘판사는 50대 이상이 적합하다’는 영국의 한 법학자의 말을 소개했다. 우리나라에는 50대 이상 판사가 10% 미만이란다. 승진이란 미명아래 틈만 나면 옷을 벗기는 통에 우리 나라 법관들의 3분2가 40대 미만인 것이다.
국민들에게 재판은 어쩌면 일생일대가 달린 중대한 사안인데 막상 재판장자리에 ‘새파란’ 젊은 판사가 있는 것을 보면 신뢰가 생기겠느냐는 반문이다.
“게다가 재판을 받는 국민들이 저 법관도 언젠가는 변호사가 될 것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면 신뢰가 전혀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현 제도는 판사 개개인이 재판에 임하는 자세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언젠가는 변호사로 나가게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법관은 필연적으로 선배 변호사의 눈치를 보게 되고 자신의 재판에 소신껏 전념하지 못한다”는 것이 문 판사가 제기하는 주요한 문제점이었다.
결국 국민들의 눈에 ‘언젠가 변호사가 되어 돈을 많이 벌 사람’으로 보이고 실제로 전관예우라는 관행 아래 옷을 벗은 선배 변호사들의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 언젠가는 대법관이 되어 자신의 승진에 영향을 미칠 지도 모르는 거물급 변호사에 대한 중압감, 그리고 후배 법관들에게 그러한 중량감을 의도적으로 과시하는 행태 등이 오늘날 사법부의 위기를 가져왔다는 지론이다.
***법관은 변호사 되겠다는 생각 버려야**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답은 간단했다.
“법관으로서 명예롭게 정년까지 근무할 수 있도록 현재의 발탁승진제도를 바꾸어 일정 근무연한이 된 법관은 자연스럽게 부장판사 등 직책을 맡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고 법관의 명예를 유지할 수 있도록 단일호봉제를 도입해서 승진으로 인한 장벽을 없애고 어느 정도 생활을 보장해 주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했다.
그럼 국민들이 이러한 제도 도입에 찬성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 따른다. ‘혹시 법관의 기득권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라는 오해가 있을 수 있다.
“자기 희생이 필요합니다. 평생 법관으로 국민에게 봉사하고 변호사 개업은 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선언이 필요한 것이죠.”
이러한 자세는 도의적 차원이 아닌 실질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대법원은 그동안 이러한 의견들을 취합, 인사제도를 변화시키기 위해 우선 가장 중요한 단일호봉제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 제도는 현재 행정부가 예산을 이유로 반대해 미루어지고 있다. 경륜있는 법관들이 법관으로 계속 근무하게 하려면 근무연수에 따라 월급을 더 주어야 하니까 더 많은 예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행정부가 예산을 집행할 수 있으려면 단일호봉제가 국민들에게 설득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그러려면 법관 스스로의 자기개혁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 판사는 유혹을 이기려는 법관의 용기와 결단, 그리고 이에 대한 적절한 보장이 어우러져야만 제도개혁이 성공한다고 했다. 그가 해답없이 문제만 제기하는 ‘소영웅주의자’가 아니냐는 일말의 시선에 대해 해명해 주는 대목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약한 존재입니다. 신을 전제로 한 제도는 전제가 잘못됐기 때문에 실패합니다. 약한 인간의 마음을 전제로 한 시스템이 바람직한 결과를 낳는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으로서 유혹에 빠질 수 있는 위험성을 방지해야 된다는 것이지요.”
문득 문 판사의 대답에서 종교적인 냄새가 물씬 풍겼다. 그리고 문 판사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는 것이 생각났다. 문 판사의 말을 듣다보면 (적어도 오해를 하지 않았다면) 그의 가치관에는 판사로서의 명예,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자신의 신앙에 대한 확신, 그리고 최고학부를 나오고 사법고시에 합격하는 등 엘리트로 살아온 사람으로서의 자존심이 결합되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문 판사에게서 이런 점만을 느낀다면 왠지 가까이 하기 어려운 거부감이 들텐데, 그런 점을 희석시켜 주는 것이 있었다. 그는 ‘촌놈’ 출신이었다. 이미 인터뷰 전에 전화통화에서 충청도 말씨를 듣고 눈치챘지만, 인터뷰 중간 중간에 튀어나오는 행동이나 말씨에서 '촌놈'이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문 판사는 그 연배의 판사들이 대부분 소위 일류고를 나온 데 비해 충남 소도시의 잘 알려지지 않은 고교출신이다. 사연이 있을 법했지만 시간관계상 물어보지 못했다.
***법관 80% 이상이 단일호봉제 찬성**
사법개혁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니 요즘 판사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이미 돈이 많은 것을 말해주는 세상, 젊은 갑부가 수없이 탄생하는 세상에서 누구보다 유능하다고 자부하는 젊은 법관들이라면 당연히 변호사 개업에 대한 유혹에 고민하지 않을까.
“대다수 판사들이 법관으로서 명예롭게 일하는 데 동의합니다. 설문조사 결과 단일호봉제로 인사제도를 개선하는 데 80% 이상이 찬성했습니다.”
질문을 던지고서 혹시 법조계의 치부에 대한 여러 가지 지탄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귀를 기울였지만, 역시 기대는 빗나갔다.
“사실 나는 사법개혁을 말하면서도 자칫하면 그것이 대다수의 유능하고 깨끗한 법관들을 매도하는 결과가 될까봐 걱정이 많습니다. 특히 국민들이 왜곡된 판사상을 갖게 될까봐 곤혹스럽습니다.”
문 판사는 자신의 사법개혁 주창은 ‘잘못될 가능성에 대한 방지’라는 차원에서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100명이 잘하는 데 서너명이 잘못하는 것’을 ‘전체가 잘못한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고, 다만 그 서너명이 잘못하는 것과 계속해서 그 잘못된 서너명이 나올 가능성과 위험 때문에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친 김에 한 걸음 더 나갔다.
“정치적 재판에 대해 ‘솜방망이 판결’이라고 비판하셨고, 법관들에게 정치지향성이 있다는 말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또 차기 대권주자라고 하는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 민주당 이인제 최고위원이 다 법관 출신아닙니까.”
문 판사는 입을 다물었다. 재차 묻자 “개인의 심리적 문제를 뭐라고 하겠습니까. 사람의 마음인 것을....”이라고 말했다.
질문이 좀 곤란해질 듯 싶었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그렇게 마음먹었는지, 문 판사가 갑자기 “당초에 30분만 인터뷰하려고 했다. 이제 그만하자”고 했다.
***임관 초부터 법관의 변호사 개업에 문제 느껴**
문 판사는 생각보다는 훨씬 말을 아끼는 사람이었다. 더 이상 채근하지 않고 몇 가지 질문을 생략한 뒤 사법개혁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물었다.
“임관 때부터 인사철마다 선배들의 변호사 개업을 축하하러 몰려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전관예우에 대한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것을 보고 바로잡아야 겠다는 마음이 들었고요.”
옆에 있던 시민의 신문 기자가 “법원 고위층의 외압이 없었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문 판사는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잘 모르겠다”며 입을 다물었다. 대답하면서 얼굴이 붉어졌다. 무슨 일이 있긴 있었나.
시민의 신문 기자가 짓궂게 더 물었다. ‘튄다’는 말을 듣지는 않았나요.”
문 판사는 심각한 얼굴로 “그렇게 보면 안되지요. 국가의 기틀을 바로잡고 법의 지배를 확립한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하는 일입니다.” 씩 웃으면서 대답할 줄 알았지만 의외로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개인적 심정이 궁금해서 살짝 에둘러서 물어 보았다. “이제 공동회의를 발족시켰으니 싫으나 좋으나 사법개혁의 ‘총대’를 매게 된 셈인데, 부담스럽지 않으세요.”
“내가 앞장서는 것을 부각시키는 것은 좋지 않고, 바라지도 않는다. 한 사람이 나서는 것은 중의(衆意)를 모으는데 바람직하지 않고 오히려 방해가 됩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존경하는 인물에 대해 들었다.
***故 김홍섭 판사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
“‘사도(使徒) 법관’으로 유명한 故 김홍섭 판사가 평소에 가장 존경해온 인물이며 평생의 사표(師表)로 삼고 있습니다.” 특히 신앙생활과 법관생활을 함께 한 선배로서 존경하는 것 같았다.
(故 김홍섭 판사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는 것이 문 판사를 아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김홍섭 판사는 가난한 소년시절을 보낸 뒤 링컨의 전기를 읽고 변호사가 되기로 작정, 일본에 건너가 변호사 사무실에게 심부름하면서 독학으로 일본대학에 입학해 조선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귀국해서 故 김병로 전대법원장과 같이 일하면서 김준연 선생의 사위가 되었다.
해방 후에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로 임용돼 일하다가 검사생활에 회의를 느껴 농부가 되었다. 그후 김병로 대법원장의 부름으로 판사직에 복귀했다. 불교를 거쳐 천주교에 귀의, 법관생활을 하면서도 평생 종교인에 가까운 신앙생활을 했다. 대법원 판사, 고등법원장을 거치면서도 청빈한 삶으로 가난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지금까지도 사법부의 사표로 남아 있는 법관이다.)
일어서면서 소파 탁자 위를 봤더니 한문으로 쓰인 격언이 있었다.
‘항상 감사하라. 쉬지 말고 기뻐하라. 범사(凡事)에 감사하라’는 대살로니가전서 5장 16절 18편이었다. 문 판사의 좌우명이라고 한다.
문외한이 보아도 잘 쓴 글씨여서 직접 썼느냐고 물었더니 “서예선생님한테 받았다”고 했다. 서예가 취미란다.
좌우명에 대해서는 “겸손이 중요합니다. 매사에 겸손해야 되는데, 이거 참...” 라고 했다. 인터뷰가 좀 겸연쩍다는 말인가.
그는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프레시안을 통해 자신의 소신과 공동회의의 결과에 대한 글들을 기고하겠다고 말했다. 또 다시 문 판사를 만날 기회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면서 사무실을 나왔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