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를 불과 1년 남짓 남겨 놓고 DJ 정부의 레임덕 현상이 곳곳에서 표출되고 있다. 그에 따라 증폭되고 있는 사회, 정치적 불안은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사정과 함께 가을의 민심을 더욱 스산하게 만들고 있다.
국민의 정부를 만들고 또 지탱해 왔던 DJP 공조체제는 붕괴되었고 여소야대의 정국이 새로이 조성되었다. 국정운용 방식과 차기 대선후보 선정을 둘러싸고 소수 여당은 심각한 내분상태에 빠져 들고 있다. 이 모든 현상에 대한 반사이익을 누리게 된 한나라당과 이회창 총재는 정권탈환을 기정사실화 해 가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현재와 같은 정국이 지속되는 한 말이다.
그러나 JP와 YS가 제휴와 협력을 통해 정계개편을 모색한다는 최근 보도는 한국정치의 주도권이 여전히 DJ, YS, JP 세 사람의 수중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해 준다.
1987년 민주이행 이후 민주-반민주의 대립구도를 순식간에 지역간의 대결구도로 전환시키고, 자신에게 맹종하는 가신들을 중심으로 각자 사당(私黨)을 조직하고, 자신들의 출신지를 영지(領地)로 삼고 그 지역 주민들을 이에 예속시켜서 봉건적, 담합적 3김정치를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3인이 정립시켰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때 이후 한국정치는 이들에 의해 사실상 독점되어 왔고, 이들 간의 담합에 의해 농단되어 왔던 것이다. 이와 같은 3김정치가 초래한 부정적 영향 역시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3김은 자신의 정치적 지배력 강화를 위해 지역간의 대립과 갈등을 의도적으로 부추기고 심화시킴으로써 국민들 사이에 회복하기 힘든 분열을 조장했다. 특히 이들이 번갈아 가며 권력을 장악했던 기간 중에는 노골적인 지역편중 인사를 자행함으로써 지역감정을 더욱 악화시켰다.
***3김정치가 지역주의 및 사당정치 강화**
또 오직 자신에게 맹목적 충성심을 보여 왔던 가신들에게 공직과 이권을 집중적으로 나눠줌으로써 국가체계를 전근대적 사적 체계로 후퇴시키고 국정 운용의 엄청난 낭비와 파행을 초래했으며 국력을 심각하게 손상시켜 왔다. 그 결과 국민들의 물질적, 정신적 삶은 갈수록 황폐화해 갈 수밖에 없었다.
3김에 의해 지속된 사당정치의 폐해 역시 컸다. 자신들의 공천은 곧 당선이라는 지역주의를 볼모로 오직 무비판적 맹종을 맹세하는 가신들로 정치권을 가득 채워버림으로써 한국 정치는 민의와 민심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봉건성을 갈수록 강화시켜 왔다.
그 결과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냉소, 환멸, 증오의 감정은 깊어만 갔다. 민주이행 이후 무려 15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으나 한국의 민주주의는 안정화되기는커녕 오히려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가 확산되는 위험한 조짐마저 보이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3김은 정치적 세대교체 혹은 신진 정치세력의 정치권 진입을 용이하게 하는 일체의 정치개혁을 철두철미하게 불허해 왔다. 만약 이와 같은 제도적 불리함을 딛고 이들에게 도전하려는 만용을 부리는 자들을 이들은 철저하게 응징했다. 15대 총선을 앞두고 3김정치 청산을 기치로 출범한 바 있었던 정치개혁시민연대(정개련)에 가세했던 젊은 정치인들을 표적사살에 의해 정치적으로 제거해 버린 것은 그 대표적 사례이다.
그 결과 정치권은 오직 3김에 맹종하려는 자들로 채워지게 되었으며, 이들이 수혈한 소위 ‘젊은 피’들 역시 충실한 가신이 되어 갔던 것이다. 3김정치의 이와 같은 특징은 그러나 3김에게 상당히 치명적인 약점을 남기게 되었다. 즉 정치력과 대중적 지지도가 높은 실력 있는 후계자를 양성하는 데 3김은 모두 실패하게 된다는 것이다.
3김정치 하에서 정계개편은 이탈리아 식 변형주의(trasformismo)를 의미했다. 즉 지역주의적 사당정치를 통해 정치권을 분할, 장악한 다음, 이들 간의 담합에 의한 조직적 이합집산을 통해서 권력을 번갈아 가며 나눠 먹는 것이 변형주의의 요체이다. 이때 정계개편은 “현상의 변화를 통해서 본질을 온존시키는 수단”이 된다.
***3김정치 하에서 정계개편은 담합에 의한 권력 나눠먹기**
이와 같은 3김정치가 퇴조하려는 기미를 보여 온 것이 작금의 현상이었다면 현상이었다. YS는 집권기간 중의 실정(失政)에 의해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정치적으로 몰락한 듯이 보였다. 또 16대 총선은 JP에게 회복할 수 없는 정치적 타격을 입힌 것처럼 보였다. 따라서 DJ의 임기가 끝이 나면 3김정치는 자연적으로 막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3김정치는 이들의 담합에 의해 그 건재함을 여전히 과시하고 있다. DJ는 YS의 공개적이며 지속적인 험담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재기불능의 치명타를 가하는 것을 회피하고 있다. 그는 또한 의원 꿔주기라는 전대미문의 방법을 동원해서 JP의 정치적 입지를 유지시켜 주었다.
그러나, DJ 정부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극도로 악화되자 JP는 DJ와 결별하고 다시 YS와 제휴해서 자신들의 후견을 받는 새로운 권력 창출을 모색하려 하고 있다. “현상의 변화를 통한 본질의 온존”이라는 변형주의적 정계개편의 또 다른 전형을 보여 주려는 것이다. 만약 이들 둘의 힘만으로 본질의 온존이 힘들 경우 3김이 모두 힘을 합쳐 이를 유지하려 할 것이다.
지역주의적 사당정치와 변형주의적 정계개편을 골간으로 하는 3김정치, 민의를 철두철미하게 외면하고 국민들 사이에 증오와 불신을 확산시키며 민주정치에 대한 회의와 좌절감을 키워만 가는 이 3김정치는 왜 청산되지 못하고 있는가? 우리는 과연 3김에게만 그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현재 가장 강력한 차기 대권 후보인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경우를 보자. 그는 YS 집권기에 치렀던 15대 총선 직전에 본격적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당시 3김청산을 기치로 정개련을 조직했던 세력들은 이회창의 리더십을 그토록 갈구했지만, 그는 이 여망을 저버리고 YS와 손을 잡음으로써 3김정치와 타협을 했다.
후계자 양성 실패라는 3김정치의 근본적 취약점에 편승해서 그는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었으나 DJP의 연대, 그리고 비가신 출신에 대한 YS의 불신이라는 장벽 앞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3김정치와 타협해서 정치에 입문했으며, 또 이미 3김정치의 위력 앞에 정치적 좌절을 경험했던 이회창 총재가 스스로 3김정치 청산의 기치를 내걸 리는 만무하다.
YS, JP와의 타협을 통한 비호남 연대 결성을 통한 정권획득이 그가 가장 바라는 정치적 구상일 것이다. 설혹 이와 같은 방식으로 그가 집권하고 또 정치 전면에서 3김을 퇴진시킬 수 있다고 할 지라도 신 지역주의에 입각한 3김식 정치행태는 온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3김정치 타도를 위한 참된 정계개편 갈망**
한국정치의 세대교체를 책임져야 할 젊은 정치세력들의 행태를 보자. 이들이 3김정치의 틀 속에서 정치적 입지를 모색해야 했던 것은 현실 정치의 한계 탓으로 이해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명백히 건설적이고 진보적이며 또 민주주의를 위한 모반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지역주의와 사당정치를 청산하고 빈사상태에 빠진 한국 민주주의를 소생시키기 위한 진정한 정계개편을 주도해 가야 할 이들은 여전히 3김정치의 퇴영적 그늘 속에서 정치적 지분을 경쟁적으로 챙기려는 비겁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들은 무엇 때문에 정치를 하려 하는지를 스스로에게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국민들은 한국의 정치판이 이처럼 썩은 냄새나는 시궁창으로 변해 버린 것이 3김에 의한 지역주의, 사당정치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 알만큼 안다. 그리고 지난 10여 년 간 투표를 통해 3김정치의 공고화에 결정적인 기여를 해 왔다는 것도 국민들은 잘 안다.
YS 집권 말기에 수많은 영남 사람들이 YS를 찍은 손가락을 자르고 싶다고 했고, 현재 DJ에 대한 많은 호남 사람들의 심경 역시 비슷할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들은 바야흐로 3김에 대한 정치적 예속상태를 벗어나려는 결의를 확고히 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문제는 대안일 것이다.
3김정치에 대한 대안이 제시되지 못하는 한 국민들은 그 예속상태에서 결코 벗어 날 수 없다. 3김정치 온존을 위한 담합적 정계개편이 또 다시 모색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3김정치 타도를 위한 참된 정계개편을 절실히 갈망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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