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백두의 봄, ‘천상(天上)화원’ 트래킹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백두의 봄, ‘천상(天上)화원’ 트래킹

[기행] 만병초 금매화 하늘매발톱 두메양귀비…‘야생화 천국’

해발 1700~2400m. 백두산 고원지대는 지금 그야말로 '천상(天上)화원'이다. 6~8월, 석달밖에 안되는 짧은 녹색 계절에 백두산은 1800여종의 야생화를 피워낸다. 지난 7월 초, 백두산 북파(北坡:백두산의 북쪽 고개) '야생화 트래킹'을 다녀왔다. 당초 서파에서 시작해 북파로 이르는 중국쪽 종주 일정이었으나, 예기치 않은 기상 악화와 도로유실로 험준한 서파 코스는 못내 접어야 했다. 서파의 백미라는 '금강화원'을 눈에 담지 못한 아쉬움은 크지만, 북파 고산지대에서 만난 야생화 군락도 장관이었다.

***'하늘연못'에 오르다**

연길 시내에 위치한 호텔에서 새벽밥을 먹고 버스로 5시간 가량을 달리면 '백두산 아래 첫 마을'이라는 이도백하(二道白河)에 이른다. 마을 이름의 유래인 듯, 이곳에선 백두산 서파와 북파로 가는 길이 갈라진다. 북파쪽은 관광 시설이 비교적 잘 정비돼 도로며 숙박시설이 괜찮은 편이다. 반면 일행이 첫 행선지로 잡은 서파는 산세가 험준한 탓인지 관광객들에게는 불편함이 이만저만 아니란다. 한국서 출발하기 전부터 며칠 전의 큰 비로 서파쪽 도로가 일부 유실됐다는 말도 있었고 당일도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터였다. 다행히 이도백하에서 점심식사를 하던 일행에게 "도로가 모두 복구됐다"는 낭보가 날아들었다.

서파로 가는 비포장 '임업도로'는 버스 한대로 꽉 찰만큼 좁고 울퉁불퉁했지만, 미끈하게 뻗어오른 자작나무 원시림은 여행 가이드북에는 없는 또 다른 볼거리였다. 하지만 임업도로를 따라 1시간을 달렸을까, 버스는 아직도 먼 길을 남겨두고 멈춰서야 했다. "복구됐다"는 관리당국의 말이 실제 현장과는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도로복구 현장 인부들은 말 그대로 '만만디'였다. 3~4시간은 더 가야 하는데 인부는 고작 7~8명에 불과하고 복구 장비도 삽과 곡괭이가 고작이다.

사진1 <백두산 산문>

인부들과 한참 실랑이를 벌이다 일행은 어쩔 수 없이 길을 되짚어 북파로 향했다. 백두산 산문을 지나 북파 기슭 해발 1600m 고지에 있는 숙소에 짐을 풀었을 때는 벌써 오후 4시. 일행은 후다닥 옷만 갈아입고 천지(天池) 구경에 나섰다. 버스로 15~20분이면 천지를 굽어볼 수 있는 곳까지 이르는 도로가 나있지만, 일행은 맞은편 산행로를 걸어올라 천지 물에 손이라도 한번 담가보기로 했다. 시간도 늦었거니와 빗방울까지 굵어졌고, 백두산이라는 이름의 위압감에 지레 등산화 끈을 바짝 조였다. 하지만 단단한 콘크리트 계단을 따라 높이 68m 장백폭포의 장엄한 물줄기를 감상하며 1시간가량을 오르다 보면 어느새 드넓은 초원이 탁 트여있다. 햇살만 비쳐주면 더없는 별천지일 그 초원을 휘감아 도니 드디어 천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2 <장백폭포1> 사진3 <장백폭포 오르는 길>

검푸른 물빛. 바다 같다. 꽉 차인 안개 때문인지, 끝도 깊이도 가늠할 수 없다. 하늘과 맞닿은 '하늘 연못'이 눈높이와 일치하는 순간, 비바람에 홀딱 젖은 일행의 표정에도 화색이 돈다. 그래서 더욱 날씨가 얄밉기만 하다. 동행한 조선족 가이드가 위로 겸 농담 한마디를 던진다. "천지가 왜 천지인지 아십니까. 천지를 보러왔다 못보고 간 사람이 천지라서 천지입니다." 하기야 실제로 다섯 번을 와야 맑은 날 한번을 볼까 말까라고 한다. 그리 쉽게 자태를 드러내서야 영험에 대한 소문이 만리에 퍼졌을까 싶기도 하다.

사진4 <천지>

오른 길을 되돌아 내려오니 벌써 어둠이 짙다. 비바람 속 강행군에 눅눅해진 몸을 온천욕으로 풀어내고 중국맛과 한국맛이 묘하게 뒤섞인 조선족식 저녁 식단으로 하루 일정을 마쳤다.

***용문봉에서 만난 만병초 군락**

새벽 5시30분 모닝콜. 커튼을 제쳐보니 햇살이 밝아 좋은 예감이 든다. 채 마르지도 않은 등산화를 신고 숙소를 빠져나왔다. 어제는 눈여겨보지 않았던 숙소 주변 녹음이 햇살에 눈부시다. 산 정상 쪽도 화창해 보인다. 본격적인 야생화 트래킹은 천지를 내려볼 수 있는 용문봉까지 올라 능선을 따라 녹명봉으로 이동, 완만한 꽃길을 에둘러 내려오는 코스로 잡았다. 10시간 코스란다.

아침 점심 도시락 2개를 배낭에 챙겨들고 줄지어 산길로 접어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풀에 가려있던 소천지(小天池)가 잔잔한 물결을 일렁이며 일행을 맞았다. 진한 물빛에 좀 더 머물고 싶지만 갈 길이 멀다. 소천지 바로 뒤에는 산 아래와는 달리 키도 비교적 크지 않고 양 옆으로 가지가 심하게 휘어진 고산지대 자작나무 숲길이 또 다른 정취를 물씬 풍긴다.

사진5 <소천지>

다소 가파른 숲길을 걷다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힐 쯤 주변을 둘러보니 나무들은 어느새 키를 한참 낮췄다. 대신 한 눈에 담기는 아담한 녹색 평원이 나타났다. 주변엔 분홍색 털복주머니꽃 군락이 시선을 붙잡고, 뒤돌아보면 걸어온 숲길 너머로 시원하게 뻗은 산맥이 내다보이는 곳, 새벽길을 나선 산행자에겐 더 없는 아침식탁이다.

사진6 <털복주머니꽃>

천상으로 가는 정원에서 도시락 요기를 한 일행은 걸음을 재촉했다. 한참을 비교적 가파른 산길을 따라 올랐다. 좁은 숲길이 있는가 하면, 바위 계곡이 나오기도 했다. 길마다 보랏빛 하늘매발톱, 연노랑 두메양귀비, 하얀 담자리꽃나무 군락이 봐달라는 듯 바람에 이리저리 몸을 흔든다.

그렇게 오르며 쉬며 3시간쯤 산행을 하다보면 어느새 수목한계선 위에 있다. 나무들은 키를 낮추다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고 풀과 꽃으로만 가득한 녹색 언덕이 새파랗게 펼쳐져 있다. 물가를 따라 남아있는 잔설, 군데군데 박혀있는 희멀건 바위가 도드라져 보이기도 한다.

사진7<용문봉오르는길> 사진8 <하늘매발톱> 사진9 <두메양귀비> 사진10 <담자리꽃나무>

장백폭포와는 달리 결코 위압적이지 않은 옥주폭포 주변에서 드디어 백두산의 대표적 야생화인 만병초 군락을 처음 만났다. 멀리서 보면 꽃은 애기 주먹만한 목화송이 같기도 하고 가까이 보면 백합 같기도 하다. 가이드는 "군락이 마치 수만명의 병사와 같다고 해 이름이 만병초(萬兵草)"라고 설명했다. 말 그대로 7월초 백두산 고산평원은 만병초가 점령한 듯 했다. 이상한 건 처음 만난 만병초는 줄기가 길죽하더니 오를수록 짧아져 용문봉 정상 부근에선 센 바람을 견디려는 듯 땅에 바짝 붙어있다.

사진11 <만병초> 사진12 <만병초군락>

용문봉 정상에선 가파른 언덕 아래로 천지를 굽어볼 수 있다. 정상이라 바람이 세다. 바람은 천지 표면에 맴도는 안개를 이리저리 몰고 다니다 아주 잠깐씩만 천지의 전모를 드러내줬다. "봤어?" "아니 못봤어. 아~" 눈을 잠시 돌려 이를 놓진 사람들의 장탄식이 이해된다.

사진13 <용문봉에서 본 천지>

***지천의 꽃길 따라 하산**

정상은 기후가 조변석개다. 어느새 습해진 안개가 얼굴에 물기로 와 닿는다. 용문봉에서 능선을 따라 녹명봉으로 이동하는 사이 몇 번이나 흐리고 개이기를 반복했다.

녹명봉부터는 하산길이다. 하지만 같은 산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올라온 길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곳곳에 펼쳐졌다. 내림길로 접어들자마자 경사부터 완만하다. 게다가 들춰보니 20cm는 족히 돼 보이는 이끼가 마치 양탄자처럼 푹신해 한번 미끄러져 넘어져보고도 싶어진다. 이따금씩 물길 주변의 잔설을 밟고 지나기도 했다.

오른 길과 같은 건 여전히 만병초 군락이 지천이라는 것. 하지만 만병초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곳곳에서 각종 야생화 군락이 저마다의 영토를 조금씩 넓혀가고 있었다. 특히 진노랑색 금매화 군락은 일행의 눈길을 오랫동안 사로잡았다. 하늘매발톱 군락도 올라온 길에서보다 훨씬 큰 무리로 피어있었다.

사진14 <금매화> 사진15<하늘매발톱 군락>

무리짓지 않아도 두메자운, 비로용담, 가솔송, 좀참꽃, 범꼬리 등 저마다 살가운 이름의 야생화들이 풀섶 곳곳에 숨어있었다.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 한분은 꽃마다 한송이씩을 꺾어들고 소녀마냥 화사한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사진16 <가솔송> 사진17 <두메자운> 사진18 <비로용담> 사진19 <좀참꽃> 사진20<범꼬리>

경사는 내려올수록 완만해졌다. 평평한 푸른 초원은 줄지어 내려오던 일행에게 두서넛이 나란히 얘기를 나누며 걷기에 충분할 정도로 넉넉한 길을 열어줬다. 수목이 다시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는 곳까지 일행은 느긋느긋 산책하듯 걸어 내려왔다. 금매화가 은하수처럼 띠를 지어 이어진 평원에서 일행은 때 지난 점심식사도 했다. 3~4시간은 될법한 하산길은 그렇게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마침 숙소 가까운 자작나무 숲길에 이르렀을 즈음, 하늘은 일행을 위해 참았던 빗방울을 그때서야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사진21 <하산길1> 사진22<하산길2> 사진23<자작나무숲>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