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경상남도 밀양 765킬로볼트(kv) 송전탑 공사를 2일 재개하겠다고 발표했다. 한전은 1일 오전 서울 강남구에 있는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밀양시 단장·산외·상동·부북면 등 4개면 구간에 대해 2일 공사를 재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2일 공사 재개 발표…반대 주민 "야비한 술책"
조환익 한전 사장은 호소문을 통해 "신고리 3·4호기의 준공에 대비하고 내년 여름 이후 전력수급의 안정을 위하여 2일부터 밀양 송전선로 공사를 재개하고자 한다"며 "올여름과 같은 전력난이 또다시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이제 더 이상 공사를 늦출 수 없는 시점에 봉착했다는 점을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조 사장은 "한전은 정부와 협의하여 실질적이고 파격적인 지원방안을 마련하고 주민들과 대화 노력을 기울여왔다"며 "그 결과 최근 주민 대표, 밀양시, 정부, 한전이 모여 구성한 '밀양 송전탑 갈등 해결을 위한 특별지원협의회'를 중심으로 지원에 대한 상당 부분의 협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조 사장은 "한전은 무엇보다도 주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최대한 충돌을 피하는 방식으로 공사를 진행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반대 주민과의 충분한 대화를 거치지 않고 한전이 일방적으로 공사재개를 발표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 사장의 호소문이 발표되자 반대 주민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조 사장이 언급한 특별지원협의회는 송전탑 찬성 주민 대표와 한전,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 등 21명으로 구성된 기구로, 애초에 반대 주민은 배제된 기구다.
이미 몇몇 공사 현장에는 공사 재개를 앞두고 경찰력이 투입돼 주민과 경찰 간 대치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밀양 경찰서는 1일 오전 6시 30분께 단장면 바드리 마을 공사 현장에 경찰 1개 중대 60여 명을 배치했다.
'밀양 765kv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는 한전의 발표 이후 즉각 보도자료를 내고 "10월 1일 호소문 발표 이후 공사를 재개하겠다는 약속과 달리 주민들이 먼저 현장을 점거할 것을 예상하고 (한전이) 기습적으로 현장을 선점했다"며 "주민들을 대상으로 공권력과 공기업이 이렇게 야비한 술책으로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책위는 "신고리 3호기는 핵심 부품인 '제어케이블' 시험성적서 위조로 현재 성능 테스트 중에 있으며, 불합격할 가능성이 매우 높으므로 부품 교체 결정이 나게 될 경우, 1년 이상 준공이 유예될 것"이라며 "그러므로 밀양 송전탑 사업에 담긴 쟁점들을 속속들이 드러내고 검증하는 공론화 작업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대책위는 △공권력 투입을 통한 공사 강행을 즉각 중단 △대규모 공권력 투입에 이르게 한 정부와 한전 관계자 파면 △밀양의 실상을 파악할 조사단 즉각 파견 △정부와 한전이 밀양 송전탑 쟁점 사항에 대해 텔레비전 토론회에 임하고, 사회적 공론화 기구를 구성할 것을 요구했다.
주민 쓰러져 병원 이송…앞으로 대치 상황 더욱 격화할듯
현재 반대 주민들은 4개면 공사 현장마다 움막과 무덤을 만들어 거세게 저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1일 오전 단장면 바드리 마을 입구에서 경찰과 대치 중이던 단장면 용회마을 주민 고준길(남·70) 씨가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다.
밀양 송전탑 문제는 지난 2001년 당시 정부가 전력 수급 기본 계획에 따라 울산시 울주군의 신고리 핵발전소(5·6호기)에서 경상남도 창녕군 북경남 변전소까지 송전탑 161기를 건설하기로 하면서 시작됐다. 이 중 69기가 경상남도 밀양시(청도면, 부북면, 상동면, 산외면, 단장면)에 집중됐다.
반대 주민들은 한전이 주민과의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송전탑 공사를 결정했다며 송전탑 건설 계획을 철회하라고 요구해왔다. 급기야 지난해 1월 16일에는 밀양시 산외면 주민 이치우(74) 씨가 송전탑 건설에 항의해 분신자살하기도 했다. 이후 주민들의 반대가 이어져 공사가 10여 차례 중단됐다.
최근 가구당 평균 500여만 원의 보상금을 지급하는 보상안에 마을 주민 절반이 합의했다는 한전의 발표와 달리, 주민 대부분이 송전탑 공사에 반대한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대책위는 26일, 실제 거주자 1870명, 외지에 사는 토지 소유자 339명, 토지 상속 대상자 753명 등 2962명이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며 보상금도 거부하겠다는 서명에 이름을 올렸다고 발표했다. 한전은 이 지역 실제 거주자와 외지에 살지만 토지를 소유한 주민은 1614가구 3476명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이처럼 송전탑 공사 반대 여론이 높은 만큼 공사 현장에서 대치 상황은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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