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와중에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가 시리아 공습에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북한과 이란을 연일 거론하고 있다. "극악무도한 화학무기"를 사용해 민간인을 학살한 시리아 정권의 책임을 묻지 않으면, 또 다른 대량살상무기 보유국인 북한과 이란에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논리이다.
▲ 3일(현지시간) 미국 상원 외교위에 참석해 시리아 공습을 주장하고 있는 존 케리(왼쪽) 국무장관과 척 헤이글 국방장관 ⓒAP=연합뉴스 |
이는 미국이 최대 위협국가로 분류하고 있는 북한과 이란을 끌어들여 주저하는 공화당과 미국 여론을 움직여보겠다는 심사이다. 필자는 앞선 글을 통해 이러한 접근이 소탐대실의 결과를 야기할 것이라고 이미 주장한 바 있다. (☞ 바로가기 : 美 시리아 공습, 북한과 이란 대량 살상 무기 막는다?)
그런데 우려되는 움직임이 박근혜 정부로부터도 나오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한국 정부 인사들이 "시리아 사태를 방관할 경우 북한으로 하여금 생화학무기로 남한을 공격해도 괜찮을 것이라는 오판을 야기할 수 있다"며 시리아에 대한 군사 공격의 필요성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김관진 국방장관도 "2500톤의 화학무기를 가진 북한이 (자신도) 사용할 수 있다는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이(시리아) 문제는 구체적인 제재가 있어야 한다는 데 (미국과) 의견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대단히 무책임하고도 위험천만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한반도 정세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한미 양국이 시리아 공습의 빌미를 북한에서 찾으려고 할수록 북한의 대미, 대남 불신은 증폭되기 마련이다. 이는 어렵게 첫 시동을 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대화 분위기에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북한으로 하여금 이런 생각을 갖게 만들 것이라는 점이다. '한미 양국은 핵문제 다음에는 미사일을 제기하고 이들 문제 해결에 진전이 있으면 화학무기를 들고 나오고 그다음에는 생물무기를 들고 나올 거야!' 이러한 북한의 연쇄적인 불신은 "핵 억제력"에 대한 강한 집착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기우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19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미국은 관계 개선의 또 하나의 조건으로 미사일 문제 해결을 내걸었었다. 핵과 미사일 문제 해결에 진전이 있자,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면서 핵심적인 근거를 생화학무기로 제시했었다. 한미 양국이 느닷없는 '북한의 화학무기 위협론'을 제기하는 것이 최대 당면 과제이자 사활적인 문제인 핵문제 해결을 더더욱 어렵게 할 것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한국의 파병 가능성이다. 물론 지금 당장 가능성은 없다. 그러나 미국의 시리아 공습이 강행될 경우, 시리아 사태는 직간접적으로 중동 전체로 번질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전선이 확대될수록 돈도 쓰지 않으려 하고 지상군 투입은 더더욱 주저하고 있는 미국은 만만한 나라들에게 손을 내밀 것이다. 돈을 내든지 군대를 보내든지, 아니면 둘 다 해달라고 말이다.
그런데 영국과 독일 등 대다수 미국의 동맹국들은 이미 등을 돌린 상황이다. 이러한 와중에 박근혜 정부가 북한의 위협을 이유로 미국의 시리아 공습을 지지하고 나섰다. 미국은 이를 근거로 시리아 사태가 악화되면 한국의 개입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개념 없는 맞장구치기가 위험천만한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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