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북한의 이러한 정책은 우리에게 있어서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또 한 번의 기회가 되고 있다. (참고로, 우리사회에서는 '대화 공세'나 '평화 공세'라는 말은 주로 공산당이나 공산 국가들과 연결시켜 '겉으로는 대화나 평화를 내세우지만 속으로는 정반대의 것을 추구한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지만, 북한이나 총련의 매체는 그것을 그러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지 않고 '적극적'인 대화정책, 평화정책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북한의 대화 및 평화 공세는 남한에 대해서는 개성공단 정상화, 이산가족 상봉, 그리고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한 노력에서 보듯이, 적극적으로 양보할 것은 양보하는 등 예전과 확연히 다른 자세를 보이고 있다. 북한은 이 모든 것은 "흔들리지 않는 김정은시대의 새로운 혁신적 리더십", 즉 "민족의 화해와 통일, 평화번영을 내다 본 전략적 리더십"의 발현, 산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으로서야 그것이 '김정은 시대'를 열기 위한, 자신의 이익을 보다 효과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겠지만, 북한의 그러한 변화는 박근혜정부 인사들로 하여금 박근혜정부가 내세운 '원칙'과 '상식', 그리고 '국제적 규범'이 북한에 먹혀들어감으로써 '신뢰 프로세스' 정책이 성공하고 있다고 공언할 수 있게 했다.
▲ 지난 6월 16일 북한은 국방위원회 대변인 중대담화에서 북미 당국 간 고위급 회담을 전격 제안했다. ⓒ조선중앙TV=연합뉴스 |
한편, 미국에 대해서는 6월 16일 국방위 대변인의 '중대담화'를 통해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긴장완화,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 '핵 없는 세계' 건설 문제 등 양측이 원하는 여러 문제를 다루기 위한 북미 고위급회담을 제안했다.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를 다시 천명하면서, 그것은 '김일성, 김정일의 유훈'이며 '반드시 실현시켜야 할 정책적 과제'라고 했다. 북한은 또한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하여 자신이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는지, 또 자신의 핵 보유의 이유와 성격, 핵 보유 기간에 대해 명확히 했다.
구체적으로, 북한은 '미국의 핵위협을 완전히 종식'시키는 것이 목표이며, 이 과정에서 핵 보유는 일종의 '자위적'이며 동시에 '전략적'인 선택이기 때문에, 남한을 포함한 한반도 전역에서 핵무기와 핵무기 프로그램이 완전히 사라지고 미국 등 외부로부터 오는 핵 위협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면, 핵 보유를 포기할 수 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6.16 대미 제의는 두 가지 면에서 우리의 주목을 끈다. 첫째, 북한이 북핵문제와 관련하여 자신의 핵심적인 목표와 이해, 입장을 이번처럼 명확히 밝힌 것은 최근에 없던 일이고, 둘째, 지난 3~4월 한반도에서 전쟁위기가 최근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고조되었을 때, 북한은 3월 31일 당 중앙위 전원회의를 소집하여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의 병진노선'을 내세우면서 이제 '핵 억지력'을 획득했으니 군사안보에 추가적인 힘을 쏟지 않고 경제건설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면서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을 명확히 했었던 것인데, 6.16 제의를 통해 그러한 입장으로부터 변화를 보인 것이다.
지난 7월 초순에 제네바에서 있었던 북미 1.5트랙 접촉에서 미국 측은 북한의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의 병진정책'의 의미, 6.16 대미 제의의 의미를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미국 측 참가자인 조엘 위트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입을 열었는데, 6.16 제의는 병진정책으로부터의 변화이며, "북한은 진지하게 핵 포기 협상을 할 용의가 있다는 입장"을 피력했음을 밝혔다. 그는 "북·미 양국 당국자들이 앉아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북한은 가장 최근인 8월 29일 <로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의 보도를 통해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 담화를 발표했는데, 김정은의 대남·대미정책 방향을 천명하고 있다. 대변인 담화는 "최근 조선반도에서는 우리의 주동적인 조치에 따라 지속되어 온 긴장과 대결국면이 완화되고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는 방향에서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가 마련되어 가고 있다"면서 "우리는 조선반도의 진정한 평화와 긴장완화를 위해 지금 이 시각도 최대한의 인내성을 발휘하면서 여러 가지 건설적이고 과감한 평화적 조치들을 구상하고 실천해 나가기 위한 문제들을 심중(深重)히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담화는 또한 "이제는 냉전 시대의 유물인 적대관념과 동족대결정책에 영원한 종지부를 찍을 때가 되었다"고 공언하고, "지금이야말로 대화상대를 겨냥한 시대착오적인 행동이 아니라 대화분위기와 평화적 환경마련에 유익한 정책적 결단만이 허용될 때"라면서 "미국과 남조선당국은 대세의 흐름을 똑바로 보고 심사숙고하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위의 8월 29일 국방위 정책국 대변인 담화에 대한 8월 31일 자 <조선신보>의 해설기사를 보면, "지금 조선이 열어제끼려고 하는 전환의 국면은 몇 해 전에 중단된 다자회담을 다시 개최하는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면서 "영도자의 뜻을 구현한 대화제안, 평화공세의 조준은 조선반도와 동북아시아지역의 오랜 역사적 현안들을 거침없이 해결해 나가는 데 맞추어져 있다"고 했다. 이 해설기사는 지난 3~4월의 북미 핵미사일 위기와 힘겨루기의 결말이 "먼저 한 걸음을 양보한 미국의 부전패"로 인한 북한의 "통쾌한 승리"였다면서, 이 덕분에 북한은 "미래를 내다본 대내외정책의 수립과 추진에서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상대방의 대결자세가 변하지 않았는데도 이처럼 자신의 승부수를 먼저 내비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라고 고백하고, "조선은 세기와 세기를 이어 지속되어온 대결전에 '영원한 종지부'를 찍으려하고 있다"고 했다.
북한은 지난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 60주년을 맞아 "경제문화 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을 초미의 과제로 내세우고 있는 우리에게 있어서 평화적 환경은 더 없이 귀중"하다는 것을 고백했다. 북한은 '평화적 환경' 조성과 관련하여 7~8월 들어 <로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조선반도의 평화체제 수립은 미룰 수 없는 절박한 과제", "평화적 환경은 민족의 번영을 위한 선결조건", "평화적 환경보장은 자주적인 새 세계 건설의 근본 담보", "자주, 평화, 친선은 조선의 일관된 대외정책 이념", "평화는 시종일관한 대외정책적 이념", "평화실현을 위한 시종일관한 노력" 등의 제목으로 평화를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북한은 이제는 "교전국들이 더는 구태를 반복하지 말고 낡은 적대관념에서 대담하게 벗어나 공존평화의 미래설계에 착수해야 한다"면서, "조선은 오랜 현안을 단숨에 해결해 나갈 준비가 되어 있"으니, 한미 양국도 "상응한 정책적 결단"을 취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8월 29일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담화와 그것의 해설보도는 실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북한의 대담한 결단을 예고하고 있다. 이 해설기사는 북한이 내어 놓을 대범하고 통 큰 타협안의 주된 목적은 북한의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향상, 즉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을 위한 '평화적 환경' 조성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북한의 행동계획과 타협안은 '6자회담 재개를 넘어선' 것으로서 한반도와 동북아의 "오랜 역사적 현안들", 즉 '한반도 문제'의 포괄적인 해결을 위한 것이 될 것임을 공언하고 있다. 결국 김정은이 자신의 시대를 열기 위해 북한경제의 회복과 발전 문제 외에 민족화해와 통일문제, 6.25전쟁의 종전과 한반도 평화정착문제, 북·미 관계 정상화 문제, 북핵문제, 로켓·미사일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나섰다는 뜻이다.
<조선신보>의 해설기사에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또 하나의 것은 8월 29일 국방위 대변인 담화에 등장한 "건설적이며 과감한 평화적 조치"는 "유관국들의 입장조율과 의견수렴의 과정을 깊이 통찰한 데 기초하여 마련되었을 것"이며, "미국과 남조선당국이 더 이상 시비할 수 없는 대범한 행동계획, 통이 큰 문제 타결안이 구상되었을 수 있다"고 한 점이다.
필자는 최근 북·중 양국이 면밀한 공조를 통해 동아시아와 한반도 정치에서 주도적으로 밀고 나오는 '대화와 평화의 정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해하고 있다. '자신의 시대'를 개막하려는 시진핑(習近平)이 미국과의 관계를 상호대결보다는 상호협력을 강조하는 '신형 대국관계'로 정립하고, 바로 이 맥락 속에서 '한반도 비핵화' 이슈를 붙잡아 이를 중심으로 '자신의 시대'를 열려는 김정은으로 하여금 한미 양국에 대해 대화와 협상, 북핵포기, 평화정착의 방향으로 나가도록 유도하고 압력을 가하는 '길들이기'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시진핑으로서는 그렇게 함으로써 북한과 남한과의 관계에서 중국의 국익을 더 잘 효과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필자는 그동안 '한반도 브리핑'의 칼럼들을 통해, 우리가 북·미 사이에서 북핵관련 주요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제대로 된 협상을 하여 새로운 차원의 '포괄적 일괄타결' 합의를 이뤄내고 이를 충실히 이행한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북핵문제 해결은 아직도 가능하다고 믿으며(☞ 백학순, 「북핵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 '한반도 브리핑', 2012년 6월 20일), 북핵문제에서 그동안 제대로 된 협상과 이행이 없었으니, '협상 한 번 제대로 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그때 가서 포기해도 늦지 않으며, 아직도 북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피력해 왔다(☞ 백학순, 「아직 '북한 비핵화'를 포기할 때가 아니다」, '한반도 브리핑', 2013년 2월 20일). 필자의 이러한 입장은 전혀 변화하지 않았다.
위에서 자세히 살펴본 바와 같이, 북한이 대화와 협상, 평화정착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대답은 어렵지 않다. 무엇보다도 60년 동안 우리를 전쟁위협 속에서 살도록 한 '한반도 문제'를 이제는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북한의 대화정책과 평화정책을 적극 수용해야 한다. 물론 북한으로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우리가 이뤄내려는 대북정책의 가치와 목표들, 즉 민족화해, 평화정착, 통일을 진척시키고 달성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상호 윈윈하는 입장에서 북한의 대화정책과 평화정책 적극 수용해야 하는 것이다. 한미 양국은 그동안 북한에 대해 보여준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자세를 떨쳐버리고 "다시 한 번 찾아온 '한반도 문제' 해결의 기회"를 적극 살려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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