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민주당의 대선자금 공개가 기대이하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도 공개하라는 여론의 압력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내심 긴장감속에 민주당 대선자금 공개 내역을 주목해온 한나라당은 "이 정도면 우리는 공개 안해도 된다"고 쾌재를 부르며 공개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도리어 민주당 공개내역의 의문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정치공세를 강화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과연 한나라당은 대선자금과 관련, 떳떳한가.
***중앙당 후원회 하루에만 1백18억 모아**
현실적으로 한나라당이 지난해 대선에서 거둔 수입액 규모를 정확히 확인할 장치는 없다. 중앙선관위 회계보고에는 각 당에서 보고한 지출내역만 기록돼 있을 뿐 수입내역에 대한 보고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행법의 맹점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의 대선자금 규모를 어림 짐작할 수 있는 파편적 근거들은 있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한나라당이 지난해 중앙당 후원회를 통해 모금했다고 신고한 총 수입액은 2백84억원이며 총 지출액은 1백89억원이다. 그 중 수입내역은 전년도 쓰고 남은 이월금액이 29억원, 후원금 35억원, 모집금품이 2백10억원으로 분류돼 있다. 지난해 순수하게 모은 수입은 2백45억원이었던 셈이다.
특히 한나라당 '후원금'은 같은 해 민주당이 신고한 후원금액인 1백45억원과 비교해 현격히 적어 눈길을 끈다. 이는 정치자금법상 후원금은 후원인이 후원회를 통해 기부한 자금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선관위 신고때 한나라당이 대부분의 수입을 ‘모집금품’ 항목으로 분류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는 민주당의 모집금품액이 9억여원에 그친 점과 비교하면 이해가 간다.
그러나 이런 앞뒤 정황을 고려한다 할지라도, 과연 지난해 한나라당 중앙당 후원회로 들어온 후원금 및 모집금품이 도합 2백45억원에 그쳤는지는 석연치 않다.
한 예로 한나라당은 지난해 10월29일 열린 중앙당 후원회에서만 하루에 1백18억7천5백만원의 거대수입을 올렸다. 이날 후원회에는 경제 5단체장을 비롯해 7천여명이 모여 대성황을 이뤘다. 당시 김영일 사무총장 등은 대단히 이례적으로 모금액수를 공개하며 "대세는 이회창쪽으로 기울었다"고 단언했다. 이날의 성공적인 모금액수를 공개함으로써 ‘이회창 대세론’을 굳히려는 전략의 일환이었다.
또 이에 앞서 지난해 9월11일에는 LG그룹 산하 LG-칼텍스가스가 한나라당에 2억원의 정치후원금을 공식기탁하겠다는 공시를 내는 등, 지난해 재계는 노골적으로 '친이회창적 기류'를 보였었다.
각설하고 후원회 하룻에만 1백18억을 모은 한나라당의 당시 기세로 봤을 때, 과연 지난해 중앙당 후원회를 통한 총 수입액이 선관위에 신고한 대로 2백45억에 그쳤는지는 의문이다.
***최소 4백억~5백억, 최대 1천억원대 추정**
또다른 근거도 있다.
한겨레신문의 22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각 정당의 중앙당, 시도지부, 지구당 회계보고서를 종합한 결과 한나라당은 총 1천6백72억원의 수입을 거둬 이 가운데 1천4백90억원을 지출했다. 이처럼 1천억원대에 달하는 정치자금 규모는 대선비용의 실체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겨레신문은 그 중 ‘정치활동비’로 분류된 7백95억원은 대부분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를 치르는 데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했으며, 특히 6.13 지방선거 이후인 지난해 7~12월까지의 정치활동비 규모는 4백79억원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한겨레신문은 이 같은 근거에 따라 여야의 대선자금은 최대 1천억원대 이상, 최소 4백억~5백억원대로 추정했다.
***선관위에 보고한 지출내역 진위도 논란**
한나라당이 대선 비용으로 중앙선관위에 공식 신고한 2백24억원의 지출액에 대해서도 그간 의구심이 끊이지 않았다.
이는 지난해 12월 대선유권자연대에 제출했던 금액(11월27일~12월17일 사용분) 2백53억원보다도 오히려 30억원이 줄어든 액수이다. 또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해 11월27일부터 12월19일 선거 당일까지 지출한 액수일뿐이어서, 실제 대선자금의 전모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지난해 12월 4백여단체로 구성된 대선유권자연대는 선거자금 실사 결과 “한나라당의 선거자금 공개는 매우 불충분하고 신뢰성을 검증하기 어렵다”는 ‘낙제점’을 매기기도 했다. 당시 대선유권자연대는 한나라당의 결격사유로 증빙자료가 미비한 점, 2주간 사용한 후보유세비용 총액이 1천6백만원으로 민노당보다도 5백만원 적은 점, 가지급금이 전혀 기재되지 않은 점, 당직자와 선거사무원 등의 식대가 원천 누락된 점 등을 의문점으로 지적했었다.
이같은 정황으로 미뤄볼 때 민주당이 공개한 대선자금 규모도 믿을 수 없지만, 한나라당이 그보다 못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추정이 대세를 이룬다. 시민단체들이 민주당의 추가공개와 더불어 한나라당의 동반공개를 요구하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그러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선관위 보고용 선거자금마저 논란을 빚은 마당에 한나라당이 여론의 요구대로 대선자금의 수입과 지출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할지에 대해선 회의적 반응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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