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노조파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가운데 토니 블레어 영국 노동당 정부의 집권 전후에 걸쳐 영국의 정치, 경제 및 학계에서 벌어진 ‘자본주의 진로 논쟁’을 다각도로 조명한 <참여자본주의>(개빈 켈리 外 지음, 미래M&B)가 출간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현재 우리가 직면한 노사갈등의 해법을 찾는 데 적잖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기 때문이다.
***'주주자본주의'의 극복 개념으로서의 '참여자본주의'**
<사진: 표지>
참여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란 용어는 우리에게 대단히 생소하다. 하지만 그 내용을 알아보면 결코 생소한 개념이 아니다.
참여자본주의란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기존의 미국식 주주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노조, 시민조직, 지역사회 등 모든 '이해당사자(stakeholder)'의 자율적인 참여와 합의를 중시한다.
주주자본주의란 기업경영에서 주주를 최우선시하며, '주주가치 극대화'를 최고의 경영목표로 설정한 개념이다. 기업의 참된 주인은 한줌도 안되는 주식을 갖고서 기업을 쥐락펴락하는 재벌총수도 아니고, 경영진도 아니고 종업원이나 노조도 아닌 '전체 주주'라는 주장이다.
참여자본주의의 주장은 그러나 다르다. 기업의 주인을 주주뿐 아니라 노조, 시민조직, 지역사회까지도 포함시키는 광의의 개념으로 해석하며, 이들 이해당사자들의 능동적 참여가 있을 때에만 비로소 기업의 발전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참여자본주의 주창자들은 자본주의의 일반성에 역사적ㆍ사회적 맥락에 따른 특수성을 가미하기 위해 수식어를 달았던 기존의 많은 ‘자본주의들’과는 달리, 참여자본주의는 ‘패러다임’ 자체를 달리하는 자본주의를 뜻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을 번역소개한 장현준 포항공대 인문사회학부 초빙교수는 "여기서 말하는 '변화된 패러다임'이란 기업의 지배구조에서 이해당사자를 고려한다는 '온정주의적 차원'이 아니라 '구성원의 수평적이고 능동적인 참여를 중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장 교수는 과거 ‘이해당사자(이해관계자) 자본주의’라고 번역됐던 이 용어를 ‘참여자본주의’라고 고쳐 부르고 있다.
이같은 ‘참여(stakeholding)’는 비단 기업의 지배구조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경제의 거의 모든 분야를 분석 대상으로 삼아 참여자본주의가 적용된 국가와 사회, 기업과 경제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노조가 기업경영에 참여하는 독일식 공동결정제도는 이 논의의 일부로 포함될 뿐이다.
그렇다고 ‘참여’가 모든 국민이 모든 의사결정에 일일이 참여하는 것을 뜻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대리인(대표자)을 강조하고 그들에 대한 감시를 제도적으로 정착시키는 것을 중시한다. 이는 경제와 정치에 있어 민주주의 본연의 모습을 갖자는 것으로 귀결될 수도 있고 과거 ‘국민의 정부’에서 말했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과도 유사한 대목이다.
장 교수는 ‘참여’라는 개념은 사회적 포용을 뜻한다며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강조하면서도 승자의 영광과 함께 패자나 약자도 포용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시킨다는 취지”라고 설명한다. 또 참여의 과정을 통해 '사회적 신뢰'라는 값진‘사회적 자본’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고 강조한다.
***한국에서 과연 수용가능할까**
유럽에서 최근 벌어진 자본주의 논쟁을 꼽으라면 흔히들 블레어 영국 총리 류(類)의 ‘제3의 길’ 논쟁과 독일 슈뢰더 총리의 ‘신좌파’ 논쟁을 꼽는다. 이 논쟁들은 신자유주의적 ‘글로벌 경제’에 대응하려는 유럽 좌파들의 고뇌의 산물이었다. 참여민주주의는 좌파들의 그같은 논쟁 속에서 조용히 싹터 이제는 좌우를 넘나드는 관심사가 돼버렸다.
이른바 ‘참여정부’ 하에서 벌어지는 정치.사회적 차원에서의 ‘참여’ 시도조차 이토록 혼란스러운 우리의 상황에서, 생소하기 짝이없는 ‘경제에서의 참여’를 논한다는 것은 탁상공론처럼 비칠 수도 있다.
한 예로 이정우 청와대 정책수석이 최근 일정한 '자기희생'을 전제로 한 노사정간 사회적 합의와 노조의 경영참여 등을 골자로 하는 네덜란드식 노사문화를 도입하겠다고 밝히자 벌써부터 재계는 반대여론으로 떠들썩하다.
그러나 그 혼란이 더하면 더할수록, 더 깊은 혼란을 막고 혼란을 근원적으로 해소하고 싶을수록 '참여'라는 막연하기 짝이 없는 말의 개념과 정신을 분명히 확립하는 작업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또한 논의를 시작하기도 전에 "우리나라에선 안돼"라는 식으로 재단하는 일이 있어서도 안된다.
영국의 치열한 논쟁을 정리한 이 책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함의(含意)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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