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3시. 한나라당 대표경선 대구.경북 합동연설회장은 한나라당의 근거답게 비교적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다. 연설회장 부근에서 만난 당원.선거인단들은 자신의 지지 후보를 주저없이 밝혔고 경선 판세를 나름대로 분석했으며 후보간 합종연횡이 일어날 경우 표심의 동향까지 전망해줬다.
대구실내체육관을 3층까지 거의 메운 유권자들은 연신 부채질을 해대면서도 여유있는 표정이었다. 지지 후보의 연설이 끝나면 자리를 떠 동원된 청중임을 감지케 했던 다른 지역과는 달리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도 대구 연설회장의 다른 모습이었다. 연설회장을 찾은 한 당원은 "대구 빼면 한나라당의 근거가 없어지지 않느냐. 우리 지분이 제일 크다"며 당당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강재섭 후보 인기 '압도'**
이날 연설에 나선 후보들은 해당 지역과의 각별한 인연을 강조하고 노무현 정부의 실책을 비판하고 총선 승리와 재집권을 강조하는 등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할 뿐 특별한 쟁점을 제기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강재섭 후보의 지지세가 강한 것을 의식했는지 '타 후보 때리기'로 반사 이익을 얻으려는 전략은 자제하면서 '강한 야당'이 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첫 번째 연설에 나선 김형오 후보는 '젊은 세대의 표를 끌어모을 수 있는 후보'는 자신뿐이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김 후보는 "DJ 때리기, 노무현 때리기를 통한 반사이익을 받던 때는 지났다"며 구태정치를 벗을 때만이 한나라당을 살릴 수 있다고 역설했다.
경북 봉화 출신임을 강조한 이재오 후보는 "인권탄압, 정경유착"의 오명을 가진 한나라당의 과거를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한나라당도 이제는 '인물과 분위기를 제발 바꿔라'는 목소리를 들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후보는 자신이 도덕적인 후보임을 강조하면서 다른 후보들에 대해 돈선거 의혹도 제기했다.
***최병렬, "강재섭은 차세대 지도자. 내가 돕겠다"**
서청원 후보는 지지기반이 비교적 취약하고 자신에 대한 대선 책임론이 팽배한 지역임을 고려해 방어에 주력하면서도, 최근 여론조사에서 자신을 앞선 것으로 조사된 최병렬 후보를 향해선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서 후보는 "이회창 후보에게 표를 모아준 대구.경북 당원에게 사과한다"면서도 "이회창은 안된다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음해했던 후보가 있다"며 최근 '이회창 전총재를 삼고초려해서라도 모셔오겠다'는 발언을 한 최병렬 후보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그런 사람이 합종연횡으로 당을 장악하려는 음모가 있다"며 "그런 사람에게 당을 맡길 수 없어 재신임을 받으러 나왔다"고 말했다.
대구.경북지역을 '선산을 지키는 소나무 같은 존재'라고 추켜세운 최병렬 후보는 노무현 정권에 대한 비판과 한나라당 개혁 방안을 강조하는 등 비교적 정책 중심의 연설에 무게를 두는 '여유'를 보였다.
최 후보는 한나라당이 변해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는 예의 '국정주도세력론'을 펴면서 당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일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강재섭 후보의 지지도가 압도적인 정서를 의식, 그를 '차세대 지도자'라고 추켜 세운 뒤 자신이 대표가 돼 "후원하고 도와주는 바람막이가 되겠다"고도 말했다.
***강재섭, "현정부 실책이 한나라당 지지도로 모이지 않고 있다"**
우레와 같은 박수속에 등장한 강재섭 후보는 정부 비판과 '제2창당론'에 무게를 뒀다.
강 후보는 "우리나라는 토론공화국이 아니라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시위공화국"이라면서도 그같은 정부의 실책이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로 모아지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나라당이 뒷북이나 치는 수구세력이란 이미지로는 총선도 어렵다"며 젊은 자신이 대표가 돼 당명도 바꾸는 '제2창당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덕룡 후보는 '수도권 민심을 잡기 위한 대구.경북의 양보'를 강조했다.
김 후보는 "강재섭 위원은 대구.경북의 희망"이라면서도 "어느 정도 안정된 이 지역의 지지도보다는 하루가 다르게 표변하는 수도권 민심을 잡기 위해 강의원이 양보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민이 지지하는 당 대표를 뽑으라는 목소리가 높다"며 국민 지지도 1위 후보라는 장점을 최대한 부각시키려 애썼다.
***"강재섭 후보 인기는 높으나 당선 가능성은 '글쎄...'"**
이날 연설회에서 가장 큰 박수와 함성을 받은 후보는 역시 이 지역 출신인 강재섭 후보였다. 연설회장 안팎에서 만난 대구.경북 당원들은 강 후보가 적게는 50%에서 많게는 80%까지 지지를 받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대구 서구에서 왔다는 한 당원은 "이 지역 출신이라는 것이 어쩔 수 없이 큰 고려사항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도 "후보간 연대가 이뤄질 경우 당선 가능성이 있는 후보쪽으로 표가 갈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내다봤다.
경북 고령에서 올라온 유권자 김모씨(50)는 강재섭 후보의 우위를 점치면서 "전국 지지도에서는 어려울 것 같지만 이 지역에서는 강 후보를 끝까지 지지하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그는 일부 선거인단은 경북 봉화 출신의 이재오 후보에게도 호감을 보이고 있다고도 전해줬다.
대구.경북 지역 한나라당 당원들은 노무현 정부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말을 아끼는 눈치였다. 한 여성 당원은 "대통령을 나무에 올려놓고 너무 흔드는 것 같아 안쓰럽기도 하지만 사회가 혼란해진 책임은 물어야 되지 않냐"고 말했다. 대표 후보들의 연설을 듣던 선거인단들도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신랄한 비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유난히 큰 박수를 보내 이곳의 정서를 짐작케 했다.
대표 경선과 함께 치러지는 한나라당 운영위원 선거열기가 유난히 높은 것도 대구 연설회의 특징이었다.
대표 선거에는 선거법상 단체 선전전이 금지된 까닭도 있겠지만 운영위원에 출마한 후보를 지지하는 형형색색의 현수막과 선전물들, 후보 이름을 연호하는 지구당원들로 연설회장 밖은 떠들썩했다. 대표 후보 선거캠프에서 나온 한 관계자는 "전국을 돌아봤는데 운영위원 선거가 이렇게 치열한 지역은 없었다"며 "대구.경북은 지지도가 워낙 탄탄하니까 운영위원만 돼도 힘이 있어서 그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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