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객과 귀순자들의 정보는 어디까지 믿을 수 있나?
후세인의 철권독재를 피해 망명했던 이라크 반체제 인사들은 미국 정보기관과 언론에 후세인 정권이 갖고 있다던 대량살상무기에 관한 정보를 '퍼줬다.' 미 국방부 산하 특수작전국(Office of Special Plans)을 위시한 정보기관과 언론은 그들의 정보를 기꺼이 믿고 때로는 그들도 당황할 정도의 확대해석까지 감행했다. 그들의 진술은 전쟁 명분 쌓기에 더없이 유용했다.
그러나 그 많다던 대량살상무기는 지금껏 하나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사정이 이러자 오히려 증명되고 있는 것은 망명객들의 진술 자체가 거짓이었고 정보기관과 언론은 거짓말을 열심히 부풀렸다는 사실뿐이다.
***이라크 출신 과학자는 어디에**
뉴욕타임스는 지난 4월21일자에 "전쟁 발발 전날까지 불범 무기 보유, 이라크 과학자 주장"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1면 톱으로 내세웠었다. 이 기사를 쓴 기자는 그동안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보유 가능성을 암시하는 수많은 기사를 써왔던 주디스 밀러였다. 그는 중동 문제에 관한한 뉴욕타임스의 간판이었다.
밀러는 이 기사에서 후세인 정권이 전쟁 전에 화학무기를 파괴했고 무기 기술을 시리아에 전파했으며 알카에다와 협력했다고 주장하는 익명의 이라크 출신 과학자를 찾아냈다고 보도했다. 그같은 '개가'를 이룬 것은 대량살상무기를 탐사하기위해 이라크로 파견된 'MET-알파'부대였고 밀러는 그들과 동행취재를 하고 있었다. 밀러는 이 부대 소속 익명의 정보원을 인용해 과학자의 주장을 전했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그는 이라크 출신 과학자를 만나본 적도 없었으며 그 과학자가 주장했다는 화학무기 제조물질을 뒷받침할 세부적인 근거조차 기사에 싣지 않았다.
밀러는 MET-알파 부대에 대한 취재 제약 때문에 과학자와의 인터뷰를 할 수 없었으며 과학자를 찾아낸 사실에 대해서도 3일 후에야 보도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기사 송고 전에 부대의 심의를 받았으며 그 과정에서 화학무기에 관한 세부사항을 삭제하도록 요구받았다고 말했다. 과학자의 신변을 걱정한 부대의 결정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MET-알파 부대는 과학자가 알려줬다는 대량살상무기 시설을 여전히 찾지 못했다. 이 부대는 현재 미국으로 철수를 준비중이다.
***이메일로 드러난 진실**
이라크 대량살상무기와 관련한 뉴욕타임스의 기사는 그런 식이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정론지도 부풀려지고 왜곡됐을 소지가 농후한 망명객들의 정보에만 의존했던 것이다. 정보를 제공한 망명객이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때가 있었다.
이는 워싱턴포스트가 26일(현지시간) 공개한 뉴욕타임스 기자들간의 이메일 내용을 통해 백일하에 들어났다.
워싱턴포스트의 대표적인 미디어 비평기자 하워드 쿠츠는 뉴욕타임스의 바그다드 사무소장과 밀러 기자의 이메일 다툼을 소개한 기사에서 밀러의 주된 정보원은 기실 아흐메드 찰라비 이라크국민회의(INC) 의장이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사건은 밀러 기자가 뉴욕타임스 바그다드 사무소와 아무런 논의도 하지 않은 채 찰라비에 관한 기사를 일방적으로 쓴 일에 대해 사무소장 존 번스 기자가 이메일을 통해 그를 꾸짖었던 일에서 발단됐다.
번스의 유감 표명에 밀러는 사과했다. 그러면서도 밀러는 "저는 찰라비를 10년간 취재해왔고 그에 관한 우리 신문의 기사를 대부분 써왔습니다"며 "찰라비는 우리 신문에 난 대량살상무기에 관한 특종기사의 정보를 대부분 제공해왔습니다"고 답했다.
정치적 야망을 위해 국방부 매파들과 밀월관계를 맺고 전쟁몰이의 최전선에 섰던 찰라비가 대량살상무기에 관한 뉴욕타임스 기사의 주된 정보원이었다고 스스로 시인한 것이다.
한걸음 더 나가, 밀러는 MET-알파 부대도 무기 은닉에 대한 찰라비의 정보와 서류를 사용했다고 털어놨다. 그 부대에 정보를 제공했다는 과학자가 과연 있었는지조차 헷갈리는 대목이다.
뉴욕타임스 외신부의 부(副) 편집장 격인 앤드류 로젠탈은 직원들간의 사적인 이메일 대화를 폭로한 워싱턴포스트에 유감을 표하면서도 "물론 우리는 찰라비와 접촉했다. 이라크에 살지 않았고 찰라비와 얘기하지 않았다면 당신도 그런 일을 못했을 것"이라고 간접 시인했다. 그는 이어 "밀러가 이라크 과학자를 만나지 않았다고 한 적이 결코 없었다"고 항변했다.
미국의 시사교양주간지 <뉴요커>는 최근 중앙정보국(CIA), 국방정보국(DIA) 등 기존의 미국 정보기관들을 제치고 '정보전쟁'에서 승리, 이라크 전쟁 몰이의 선봉에 섰던 국방부 특수작전국의 실체와 그들의 독특한 정보 분석 철학을 보도한 바 있다. 특수작전국의 정보원 역시 찰라비로 대표되는 망명 이라크인들이었다.(프레시안 5월 16, 17일자 보도)
그들의 정보는 얼마나 믿을만했던가. 그들이 그토록 정보를 쏟아냈던 이라크의 '무시무시한' 생화학무기는 어디에 있는가. 미국은 이제 답해야 한다. 부시 대통령도, 국방부 특수작전국도, 뉴욕타임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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