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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자본축적과 지구정치경제의 향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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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자본축적과 지구정치경제의 향방

홍기빈의 '현미경과 망원경' <6> Ⅱ. 보데의 법칙? ② 세계 석유 자본

***II. 보데의 법칙? : 무기-석유 연합의 “차등적” 이윤율과 중동의 분쟁**

***② 세계 석유 자본**

***3. OPEC, 석유 자본 핵심, 미국**

(1, 2절은 <5>번 연재기사에 있습니다. 편집자주.)

여기서 잠깐 통상적 관념에 대해 재고해볼 것이 있다. 석유 자본 핵심과 이익이 상충되는 집단은 소액의 로열티에 만족치 않고 민족주의와 반 서구 정서에 기대어 호시탐탐 유전 국유화를 노리는 산유국가들이다. 70년대 이전의 안정된 소위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에서는 석유 자본 핵심이 그들을 안정적으로 제압할 수 있는 호시절이었다. 하지만 70년대 이후 제 3세계의 대두를 등에 업은 OPEC의 단결로 칠공주도 선진국가들도 모조리 패배자가 되고 말았다. 결국 OPEC 는 서방 헤게모니에 대한 제 3세계 저항의 거의 유일한 성공적 예이다…는 것이 국제 정치학 교과서에 보통 나오는 이야기이다. 과연 그럴까? 석유 자본 핵심의 비지니스에 진정한 방해 세력은 산유국가들인가? 필자의 견해이지만 이는 서구 학계가 만들어낸 전형적인 신화(myth)의 한 종류라고 보아야 한다.

다음 기사에서 좀 더 다루겠으나, 석유 시장의 수요는 가격 탄력성이 지극히 낮기 때문에, 유가 인상이야말로 이윤 확대의 최고 수단이 된다. 따라서 산유국도 석유 기업도 유가를 올리는 데에 이익을 같이하는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1960년대 이전에 칠공주가 과연 그렇게 마음대로 가격을 인상시킬 능력이 있었는가이다. 미시 경제학 교과서의 상식으로 보면, 과점 기업들이 담합과 협조만 잘 만들어내면 얼마든지 높게 가격을 매길 수 있을 듯 하다. 하지만 현실 세계의 기업들은 항상 주어진 제도적 권력적 맥락 속에서 움직인다는 자명한 현실을 상기해 본다면, 그것이 오히려 불가능했던 것이 60년대 이전의 체제였다고 볼 수 있다.

좀 더 큰 틀에서 놓고 보면, 이 영미 세력 아래의 칠공주라는 국제 카르텔은 20세기에 걸쳐 영국과 미국이 주도해온 국제적인 세력 균형 체제의 일부분으로 이해해야 한다. 즉 석유는 산업 문명에서 너무나 핵심적인 자원이기 때문에 만약 이것의 세계적 배분이 파행적으로 이루어질 경우 심각한 국제 분쟁이 벌어지게 된다. 따라서 영미 국가의 입장에서 보면이 칠공주가 허생이 추석날 과일 시장 독점하듯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매기는 것을 허용할 수도 없는 일이다. 당장 칠공주를 거느린 영미 제국주의는 석유를 독점하여 전세계를 착취하는 범죄집단으로 몰릴 것이며, “생존 공간(Lebensraum)”의 논리를 내세운 독일이나 일본은 인도네시아나 아프리카 북부의 유전 지역을 점령하려 들 수도 있다. 더우기 2차 대전 이후의 미국 패권은 냉전의 위협 속에서 전세계 자본주의 진영의 경제 부흥을 주요한 정책 목표로 삼고 있었다. 여기에서 칠공주가 터무니없는 유가 인상을 하도록 내버려 둔다는 것은 더욱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스탠다드 오일의 라커펠러(록펠러)의 경우에서도 볼 수 있지만, 이 칠공주의 기업들이 정말로 “순수한” 경제 조직으로서의 기업이었던 것도 아니다. 이들은 영국과 미국의 세계 경략에 긴밀히 연결되어 그것과 영락을 공유하는 불가분의 부분들이다. 이들의 이익을 영미 국가의 폭력이 보장해주기도 하지만, 이들도 영미의 국제 정책에 협조하지 않은 채 따로 놀 수도 없는 일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칠공주의 유가 책정이 너무 낮다는 오히려 60년대 초부터 산유국 정부 쪽에서 터져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닛잔/비클러 이론이 OPEC–석유 자본 핵심–미국 정부가 동일한 이익 공동체일 가능성을 주시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일 것이다. 1972년에서 82년 사이에 원유가격은 18배로 인상되었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가격 인상이 과연 60년대 이전 석유 산업의 제도적 권력적 환경 – 세계 경제 부흥을 내건 미국의 패권 아래에서 유가 인상을 원하는 산유국을 무시하고 작동하는 칠공주 체제 - 에서 가능했을까? 이제 아랍-이스라엘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들불처럼 일어나는 아랍 민족주의 세력이 대두하고 있다.

정치적 경제적 목표가 뚜렷한 이들 무지막지한 세력이 원래의 “평화적” 석유 체제를 막무가내로 뒤집어 엎는 상황인 것처럼 보일 때에만 그러한 유가 인상이 어쨌든 현실에서 납득될 수 있는 것이다. 즉, 이렇게 보면 OPEC 라는 새로운 제도적 권력적 환경은 극적인 유가 인상에 아주 적합한 체제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외양상 칠공주가 모든 권한을 산유국에게 뺏기는 듯 보이는데도 그들의 자본 축적이 활발해지는 현상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한 권한 이양은 그 양자 모두가 원하는 가격 상승이 합리화되는 새로운 제도적 환경을 창출해내는 과정일 뿐이니까.

여기에서 산유국도 석유 자본 핵심의 계속적 활동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게 극적인 가격 인상을 현실화시키려면 석유 산업의 현황과 모든 것에 대한 철저한 지식이 필요한데, 이것을 쥐고 있는 것은 칠공주 뿐이다. 따라서 이들의 협조가 없이는 산유국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 이 둘은 적극적인 공생관계에 있는 것으로 닛잔과 비클러는 보고 있다. 1969년 사우디의 석유상이었던 샤이크 야마니(Sheik Yamani)의 다음의 말도 이해가 간다. “우리는 석유 대기업들이 힘을 잃고 생산자 소비자 사이의 완충 작용의 역할을 포기하는 일이 없기를 원한다. 우리는 현재 체제가 가능하면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며, 전체 석유 산업의 기초를 흔들만한 이익 충돌은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할 것이다”.

물론 이 모든 주장들은 아직 추측일 뿐이다. 만약 정말로 산유국가들과 석유 자본 핵심의 이익이 상충되는 것이라면, 산유국들의 석유 수출량과 석유 자본 핵심의 이윤 추이는 반비례해야 할 것이다. 반대로 방금 우리가 본 추측이 옳아서 산유국들과 석유 자본 핵심이 이익 공동체라고 한다면, 석유 수출량의 증감과 석유 기업들의 이윤 추이는 정비례할 것이다. 이러한 전제에서 닛잔과 비클러는 다음의 그림을 제시한다.

[그림 1] -> 엑셀 그래프 Fig 12(아래 영문은 그래프의 출처이니 그래프와 설명글 바로 밑에 붙여 주십시요)

Jonathan Nitzan and Shimshon Bicher, The Global Political Economy of Israel, (London: Pluto, 2002) 227p.에서 전재

[그림 1]에서 보여진 두 계열의 증감 추이는 놀랄 만큼 긴밀한 양의 상관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즉, 산유국들의 비지니스와 석유 자본 핵심의 비지니스는 운명 공동체에 가깝다는 것을 강하게 암시하는 것이다. 닛잔과 비클러는 여기에 간단한 회귀 분석을 적용하여(단순 OLS) 본다. 그 결과 수출액이 1달러 오르 내릴때마다 석유 자본 핵심의 이윤은 6.7센트 씩 함께 오르내리는 관계를 도출한다. 쉽게 말하자면, 석유 자본 핵심 기업들의 이윤은 최소한 그 3분의 2가 산유국들의 수출액에 의해 결정된다는 말이 된다.

칠공주는 살아있다. 살아남은 정도가 아니라, OPEC라는 새로운 환경은 바로 이들의 이익이 더욱 확실하게 보장되는 체제인 듯 하다. 그 속에서 OPEC 와 석유 자본 핵심은 이익을 함께하는 집단인 것도 분명해 보인다.

***4. 미국 정부와 군수–석유 자본 동맹의 형성**

미국 정부가 이러한 OPEC 체제로의 전환과 석유 위기를 조장했다는 의혹은 이미 1973년 7월 7일자 이코노미스트지의 기사 “가짜 석유 위기(The Phony Oil Crisis)”에서 이미 제기된 바 있다. 특히 일본의 급속한 경제 성장에 제동을 걸기 위해 국내 석유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미국이 석유 위기를 조장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의혹 즉 미국이 일본과 유럽의 경제력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이 새로운 OPEC–석유 자본 핵심 체제를 용인했다는 주장은 그 이후에도 끊임없이 제기되었으며, 오델(P. Odell) 같은 이는 이를 일본과 유럽의 성장을 잠식하고 미국의 중동 패권과 석유 기업들의 이윤을 올리는 미국–OPEC–석유 자본 핵심의 “비신성 동맹(unholy alliance)”이라고 불렀다.

미국 내에는 이러한 중동 산유국들이 수입을 올리는 것을 크게 반기는 여러 집단들이 있음이 분명하다. 산유국들의 횡포로 유가가 오른다. 여기에서 석유 자본은 이윤을 올린다. 산유국들은 자신들의 금고에 갑자기 넘쳐나게 된 달러(보통 석유 달러(petrodollar)라고 부른다)를 어떻게 관리할 지 모르다가, 주로 미국에 자리잡은 각종 금융 기관에 예치한다. 그러면 이 미국 은행들은 이를 통해 여타 지역의 금융 기관보다 훨씬 더 큰 우위를 갖게 된다(물론 이들이 그 돈을 성공적으로 관리했던 것 만은 아니다. 이들이 그 돈을 대부했던 제 3세계 국가들이 파산하면서 80년대의 외채 위기로 이어졌다.). 또 큰돈을 만지게 된 이들이 발주하는 각종 사업의 잇권은 벡텔(Bechtel)같은 미국의 엔지니어링 회사 건설 회사에 떨어지게 된다.

한편, 이스라엘의 도전을 구실 삼아 이 산유국의 지배 계급은 상당한 양의 돈을 무기 구입에 쓰게 된다. 저번 기사에서 보았듯, 미국의 군수 자본 핵심은 이러한 지역을 목마르게 찾고 있던 지경이었다. 이렇게 석유 달러로 사간 무기로 중동에서는 또 다시 더 큰 규모의 총질이 벌어지게 된다. 그러면 이 중동의 위기를 구실로 하여 또 다시 산유국들의 횡포가 벌어지고 석유값은 또 다시 불안정해지고 인상된다. 그리하여 새로운 악순환의 고리가 시작된다.

즉, OPEC 국가들과 함께 미국의 석유 자본 핵심, 무기 자본 핵심을 중심으로 하고 거기에 건설업, 금융업, 대체 에너지 산업(아이러니컬하지만 석유값이 오를 때마다 함께 주가가 뛰는 것도 이들이다) 등등의 집단이 중동에서의 군사 분쟁과 그를 통한 유가 인상에 대해 이익을 공유하는 집단으로 볼 수 있으며, 이들이 70년대 이후로 미국의 중동 외교 정책에 대해 적극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무기 달러–석유 달러 동맹(Weapondollar-Petrodollar Coalition)”을 형성하게 되었다는 것이 닛잔/비클러 이론의 관점이다.

그럴듯한 추리이다. 또 산유국들과 석유 자본 핵심이 유가의 등락을 놓고 이익을 같이 하는 것도 그렇다 하자. 하지만 그러한 유가의 등락이 또 다른 한 축인 무기 자본의 이익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여전히 추측 이상이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그러한 동맹이 실제로 있어서 미국의 외교 정책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너무나 지나친 추측이 아닐까? 게다가 그 함축하는 바가 얼마나 섬뜩한 것인가. 미국의 외교 정책이 결국 석유값을 올리고 무기를 더 많이 팔고 각종 공사 수주를 더 많이 따내기 위한 자들에 의해 좌우되어 중동의 무고한 인명을 계속 희생시키고 세계 경제의 불황을 가져오는 원흉이라는 주장이 아닌가. 다시 말하지만 CIA의 총탄에 응징당해도 싸다 할 것이다.

동맹의 두 축 양쪽의 결합 관계를 살피기 위하여, 중동에서의 군사 분쟁과 석유 자본 핵심의 차등적 이윤의 추이를 살펴보도록 하자. 정말 그 두 가지 사이에는 닛잔/비클러 이론의 가정을 정당화할만한 긴밀한 상관 관계가 있는 것일까? 다음 기사에서 보도록 하자.

***필자 소개**

필자 홍기빈은 현재 캐나다 요크대학교 정치학과 박사과정에서 국제정치경제학을 공부하는 소장학자로, 외국에 체류중이면서도 국내외를 넘나드는 다양한 이슈에 관한 통찰력 있는 글을 여러 온/오프라인 매체에 보내며 많은 반향을 얻고 있다. 프레시안 연재글의 제목 '현미경과 망원경'은 정치와 경제, 국제와 국내의 이분법을 넘나드는 글을 쓰고자 하는 그의 의지의 표현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외교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저서로는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책세상)와 논문「칼 폴라니의 정치경제학-19세기 금본위제를 중심으로」등이 있으며 역서로 <전 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 外>(책세상) <자본론을 넘어서>(백의), <지구적 축적과 변형의 이론>(근간, 삼인출판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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