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즈네프의 기계적인 목소리를 듣기 싫어 라디오를 꺼버렸던 것처럼, 열정에 찬 부시 대통령의 모습을 비추는 TV를 꺼버리면서, 우리는 과거의 영상으로 돌아간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한다."
흐루시초프 구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손녀딸이자 망명 학자인 니나 흐루시체바는 미국으로 망명한 구소련인들이 부시 치하의 미국에서 최근 느끼고 있는 환멸을 이렇게 전했다. 망명객들은 지금의 미국을 '브레즈네프의 땅'으로 여기며 "그런 곳으로 오기 위해 소련을 떠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며 개탄한다고 한다.
<사진: 브레즈네프, 부시 붙여서>
***"부시 머릿 속에 테이프가 돌아가나"**
소련을 탈출한 망명객들의 개탄은 부시 미국 대통령이 펼치고 있는 '선동정치' 때문이다. 흐루시체바는 미국의 진보적 시사주간지 네이션(The Nation) 최신호(19일자)에 기고한 '브레즈네프, 부시 그리고 바그다드(Brezhnev, Bush and Baghdad)'라는 글을 통해 부시의 선동정치가 1965년부터 18년간 소련을 지배했던 브레즈네프의 정치행태와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브레즈네프는 60년대 초 개혁정치를 펼치던 흐루시초프를 무혈 쿠데타로 몰아낸 장본인으로 그의 치하에서 소련은 장기적인 침체 상태에 빠져들어갔다.
뉴욕의 세계정책연구소(World Policy Institute) 연구원인 흐루시체바는 부시 대통령과 브레즈네프의 유사점으로 확장주의적 외교정책과 여론 무시, 선동적 수사, 국민들에 대한 속임수 등을 꼽았다. 그는 "모든 정치 선동은 진실을 말해도 거짓이다"는 소설가 조지 오웰의 말을 인용, 부시가 주장했던 '이라크의 해방'이라는 순수한 동기마저 이제는 믿을 수 없게 돼버렸다고 말했다.
흐루시체바는 또 '악' '자비' '국가 안보' 등을 반복해 말하는 부시와 '제국주의' '사회주의' '세계 평등'을 기계적으로 반복했던 브레즈네프를 비교하며 "부시 대통령의 머릿 속에는 몇 개의 키워드를 반복해 틀어주는 테이프가 들어 있는 듯하다"고 비난했다.
흐루시체바는 끝으로 그같이 반복적인 정치선동이 아무런 민주적 논쟁도 없이 상명하달되는 것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 미국내에서의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이 회복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꿈의 땅, 자유를 위한 최후의 전선"이라 여겼던 미국으로 가기 위해 목숨을 걸고 소련을 탈출했던 망명객들이 "앞으로 가망이 없을 것 같다"고 여기게 된 부시 체제는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비단 망명객들만의 의문이 아니다.
다음은 니나 흐루시체바 논평의 주요 내용.
***브레즈네프, 부시 그리고 바그다드/The Nation 5일자**
표현의 자유를 찾아 브레즈네프 치하의 소련을 떠나왔던 많은 러시아인들은 미국에서 지금 충격에 쌓여 있다. 레닌그라드를 탈출한 지식인으로, 뉴욕에서 유명 러시아식당을 경영하는 로만 카플란은 "미국은 꿈의 땅이었고 자유를 위한 최후의 전선이었다"며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브레즈네프의 땅에 오기 위해 소련을 떠나온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1991년,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망명한 나 역시도 스스로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공산주의 붕괴를 도왔던 미국을 반기며 러시아에 남아있던 사람들도 당황하긴 마찬가지다. 소련 붕괴 10년 후, 그들은 미국이 비난했던 구소련 정부와 유사한 전략을 쓰고 있는 백악관의 모습만을 보고 있다. 확장주의적 외교정책과 여론 무시, 선동적 수사, 속임수.
<사진: 크레믈린 궁>
브레즈네프의 기계적인 목소리를 듣기 싫어 라디오를 꺼버렸던 것처럼, 열정에 찬 부시 대통령의 모습을 비추는 TV를 꺼버리면서, 우리는 과거의 영상으로 돌아간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한다. 단호하게 보이는 부시 대통령의 머릿속에는 몇 개의 키워드를 반복해 틀어주는 눈에 보이지 않는 테이프가 들어있는 듯 하다. 악(惡), 자비, 테러리즘, 국가안보, 자유, 민주주의의 증진. 소련을 연구한 사람들은 크레믈린궁의 지도자들도 몇개의 단어와 캐치프레이즈만을 반복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브레즈네프 역시 자동으로 리플레이되는 카셋트를 틀어놓은 것만 같았다. 제국주의, 사회주의, 세계 평등, 평화와 안보...
악마같은 독재자들에 대한 부시의 말들이 얼마나 진실인가에 상관없이, 반복적이고 기계적이고 '브레즈네프스런' 속성은 그 말들의 신빙성을 잃게 한다. 이라크에서 전쟁을 시작해야 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거짓된 근거를 토대로 한 것이고, 일관성이 결여된 것이었을 때 특히 그랬다.
조지 오웰은 옳았다. "모든 정치 선동은 진실을 말해도 거짓이다." 뉴스피크(newspeak,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나오는 조어로 정부 관리들이 여론과 국민들의 사고를 조작하기 위해 일부러 애매하게 쓰는 언어 표현법-역자 주)는 크레믈린궁의 트레이드마크였고, 오늘날 백악관의 모습을 설명하는 데에도 적절하다. 전쟁에 대한 백악관의 단호한 메시지는 사회주의의 우월성에 대한 브레즈네프의 주장과 유사하다. 둘다 논쟁 없이 상명하달된다.
<사진: 백악관>
미국은 이라크의 해방이라는 숭고한 동기를 실제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그다지 숭고하지 않은 석유, 돈, 권력이라는 동기도 있었다) 그러나 사회주의 형제국(브레즈네프 시대의 소련)이 가졌던 애초의 발상도 역시 훌륭했었다. 전체주의적 처방법을 채택하기 전까지. "평화와 자유"라는 "귀중한 동기"를 맹목적으로 믿으라는 부시의 요구에는 매우 "소비에트적인" 요소가 있다.
물론 나는 차이를 알고 있다. 미국에서는 소련 사람들처럼 죽임을 당하거나 수용소로 보내지지 않고도 반대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 가망이 없을 것 같다는 감정이 이는 것은 30년전 브레주네프 체제에서나 오늘날 부시 체제에서 마찬가지다.
취임때부터 이 정권은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하고 다른 나라의 자유를 위해 폭탄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독재자의 문법을 채택했다. 피터대제(Peter the Great)와 스탈린(Stalin the Terrible)도 수백만명을 죽이면서 러시아를 서구화하고 산업화하려했다.
공산주의 종식에 대한 흥분이 가신 후, 나라의 장래에 관한 토론에 대중들을 참여시키지 못한 정치지도자들 때문에 러시아의 민주주의는 험로에 빠졌다. 2003년에도 러시아는 체첸과의 '200년 전쟁'을 벌이고 있고 자유와 언론은 관리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통령이 있다. 더 심각한 것은 러시아의 대중들이 여전히 지배당하는 것을 편하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러시아는 "미국식 해방"을 오랫동안 준비해왔다.
민주주의적 제도를 시행할 지도자와 경험이 없는 이라크 민주화의 길이 얼마나 험난할지를 상상해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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