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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이기'가 문제냐, '의사결정 과정'이 문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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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집단 이기'가 문제냐, '의사결정 과정'이 문제냐

<기자의 눈> 연신원과 사스격리병원 분쟁의 이면

연합신학대학원(연신원) 자리 신학센터 건물 신축을 둘러싸고 3개월째 교내 갈등을 겪어 온 연세대학교가 최근 학교측이 건물 공사 재개 결정을 내리자 이에 반대하는 교수들이 28일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사진1>연신원

***연신원 재건축 결정에 반발, 일부 교수 단식농성 돌입**

‘연신원 지키기 및 에코캠퍼를 위한 모임’(이하 에코캠퍼스)의 김용민 교수(독문학)는 기자회견을 열고 “2백여명의 교수들이 연신원 공간을 지키자고 호소해 왔으나 학교 본부측이 성의있는 대화에 나서지 않은 채 신축계획을 강행했다”며 “우리의 뜻을 알리고 연신원 문제 해결을 위해 무기한 단식 농성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당초 연신원 자리에는 신학선교센터가 들어설 예정이었다. 그러나 일부 교수들이 '역사적 가치'와 '환경적 가치'를 이유로 신학선교센터 신축을 반대해 왔다. 그러나 학교 본부와 반대하는 교수들 사이의 의견차가 좁혀지지 않자, 지난 1월 새벽 연신원을 철거하고 공사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에코캠퍼스 교수들은 이를 ‘기습철거’라고 규정하고 비민주적인 학교측의 태도를 규탄하며 연신원 터에서 3개월간 40여명의 교수들이 천막농성을 해왔으나 학교측은 더 이상 공기를 늦출 수 없다고 판단하고 지난 25일 공사 재개를 선언했다.

***신과대, “환경보다 인간이 우선”**

기자회견이 열릴 예정이었던 28일 오후에도 연신원 천막농성장에서는 에코캠퍼스 교수, 학생들과 신학대학원 학생들간의 일대 설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신학대학생들은 학교측의 공사재개 결정이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천막이 철거되지 않아 공사를 할 수 없으니, 일단 공사재개를 위해 천막을 철수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두 세력간에 몸 싸움은 없었지만 서로 상당히 감정이 상해 있음을 쉽게 직감할 수 있었다. 에코캠퍼스 교수들과 학생들은 학교측의 비민주적인 의사결정에 상당히 분노하고 있었고, 신학대학원생들은 에코캠퍼스를 일부 문과대학교 교수들의 ‘님비즘(NIMBYSM)’으로 규정하고 무모한 실력행사를 철회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신학대학원생들은 “환경보다 인간이 우선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의 받을 강의실도 부족하고 겨울이면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는 곳에서 공부해야 하는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고자 십수년 전부터 추진해온 신학선교센터 건축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옆에 위치해 있는 문과대학 교수들이 이런 신학대학의 비참한 현실을 외면한 채, 자신들의 환경 논리만이 가장 가치있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교의 비민주적 의사결정 행태에 경종을 울리겠다”**

에코캠퍼스 교수들도 신학대학의 이런 난감한 처지에 대해선 공감하고 있다. 이에 신학대학의 사정을 이해하고 여러 가지 대안을 제출했었다.

그러나 이들이 단식농성 등의 극단적 ‘행동’에 나서도록 만든 것은 학교측의 비민주적 사업추진 과정이었다. 단식농성에 들어간 김용민 교수는 “지난 1월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새벽 기습철거를 자행한 후, 이번에 다시 논의는커녕 한마디 통보 없이 공사재개 결정을 내렸다”며 “학교의 비민주적 의사결정 행태에 경종을 울리겠다”며 분노했다.

게다가 에코캠퍼스와 신학대학간 감정싸움도 ‘합리적 해결’의 걸림돌이 돼왔다. 신학대학생들은 지난 7일 연신원 터에 공사용 담장을 설치해 천막농성장을 외부와 완전히 ‘격리’시켜 버렸다. 이에 격분한 에코캠퍼스 교수들은 “이는 대화를 하자는 자세가 아니다”라며 반발했고, 대화를 통한 해결은 더욱 멀어져갔다.

이제 연신원 문제는 환경과 개발사이의 문제를 떠나 ‘비민주적 의사결정’과 ‘집단이기주의’를 둘러싼 싸움의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인간을 위한 환경을 지키자"는 주장과 "인간을 위한 건물을 짓자"는 주장은 모두 옳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서로 틀렸다’며 대립하고 있다.

<사진2> 담장

***연신원, 사스격리병원 닮은꼴**

연신원 사태와 비슷한 광경이 최근 또하나 목격되고 있다.

최근 서울 동부시립병원의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격리병원 지정을 둘러싸고 지역주민들의 반발로 철회된 바가 있고, 서대문구 S병원도 격리병원 지정 사실이 알려지자 현재 지역주민들이 이에 적극 반발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지역 주민들의 반발을 두고 ‘집단이기주의’라 비난하고 있다. 사스의 확산을 막고 환자 발생시 치료를 위해 격리병원은 필수적인 시설인데, 지역주민들의 반발로 사스에 대한 적극적 대처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격리병원을 ‘저지’시킨 지역주민을 집단이기주의로만 몰아세우기란 어려울 것 같다.

서울 동부시립병원 인근에 사는 주부 강모(35)씨는 “격리병원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이해하지만, 격리병원이 반드시 주택밀집지역이고 초등학교 담장 근처여야 하는지는 의문”이라며 “자식을 둔 부모의 입장에서 솔직히 걱정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중국 베이징의 상당수 병원들이 사스 오염으로 인해 강제폐쇄된 상황에서 이러한 우려는 단지 기우라고만 볼 수 없다.

정부의 사스 격리병원 지정이 과연 합리적인 판단이었고, 그 과정이 민주적이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사태의 본질적 문제는 어떤 병원은 되고 어떤 병원은 안된다는 것이 아니라, 사스 격리병원 지정에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절차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전형적 탁상행정의 결과다.

수도권에는 일반병원 외에도 주거밀집지역과 떨어진 군병원들이 여러 곳에 있다. 정부는 사스 격리병원 지정에 일반병원이 힘든 상황에서 중국에서처럼 이같은 군병원들을 격리병원으로 우선 검토했어야 마땅했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현재 군병원에 있는 환자들을 민간병원으로 옮긴 뒤 군병원을 격리병원으로 지정한다면, 지역주민과의 불필요한 갈등을 초래하는 일이 없었으리라는 지적이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연신원을 둘러싼 학내 갈등과 사스 격리병원 갈등은 우리 사회, 특히 이른바 사회지도층의 사고방식이 여전히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도층의 사고방식부터 혁신돼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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