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급 학교의 입학식이 열리는 3월3일, 경남 함양 지리산 자락에서 국내 최초의 대안대학으로 문을 여는 '녹색대학'에서도 '샘'과 '물'이 만난다. 생명의 근원인 물처럼 학생은 녹색대학의 근원이 되고, 샘은 물이 잘 솟아오르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는 뜻에서 녹색대학에선 교수님을 '샘'으로, 학생을 '물'이라 부른다.
녹색 문화학, 생태건축학, 풍수풍류학, 녹색살림학, 생명농업학을 공부할 학부생 38명, 녹색교육학과, 자연의학과 생태건축학과를 전공할 대학원생 1백3명이 녹색대학의 '물'이다. 학부생들은 앞으로 4년동안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직접 농사를 짓고 옷을 만들어 입는 등 의식주 모든 것을 손수 해결하게 된다.
'물'과 함께 생활하면서 생태적 교육을 담당하게 될 '샘'에는 서울대 장회익 교수(총장, 과학), 풍수연구가 최창조씨(대학원장, 풍수), 허병섭 목사(신학), 이정우 철학 아카데미 원장(철학) 환경운동가 장원씨(환경) 등 10여명이 참여한다. 김지하, 박노해 시인 등 30여명의 초빙 '샘'도 모셨다.
대학 캠퍼스는 폐교한 중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했다. 당분간 학생들은 조립식 컨테이너에서 생활하며 기숙사를 직접 지을 계획이다. 최고급 시설을 자랑하는 2백여 제도권 대학과는 비교가 안된다. 그러나 지난해 입소문을 타고 녹색대학에 문을 두드린 학생 수는 정원을 훌쩍 넘어섰다.
이들이 좋은 시설과 졸업장이 보장된 제도권 교육을 마다하고 아직은 우리에게 낯선 대안학교를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녹색 대학은 내가 가진 생명의식을 실천할 수 있는 곳"**
"흙을 만지면서 생명을 접해보고 싶었어요. 그런 내 생각과 비슷한 생명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게 정말 눈물겨웠죠. 여건은 조금 어렵지만 우린 '자기 삶은 자기가 만드는 것'이라는 꿈을 가지고 긍정하고 있습니다."
이봉준씨는 다니던 대학교(산업대 환경공학과)를 도중에 그만두고 녹색대학에 입학하는 신입생이다. 얼핏보면 어렵게 입학한 제도권 대학을 도중하차하고 교육부 인가도 나지 않은 시골학교를 택한 유별난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녹색대학 신입생 중엔 그와 마찬가지로 대학교를 다니다 새로 입학하는 학생이 전체의 절반을 차지한다.
평소 '귀농'을 꿈꿔올 정도로 생태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지난해 여름 우연찮게 인터넷을 통해 녹색대학을 접하고 "완전히 반했다"고 한다. 지난해 10월부터 4개월간은 아예 녹색대학 현장에 내려가 눌러 살았을 정도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서 제가 가진 생명의식을 실천 할 수 있는 곳. 녹색대학은 그런 곳이죠. 선생님들을 보면서 진정한 스승을 만났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녹색대학 현장에서 함께 일하며 지내는 동안 그는 "생태적인 삶이란 크고 거창한 게 아니라,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데 있다는 걸 배웠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실천을 위해 공부한 것이 아닌" 제도권 학교의 졸업장은 의미를 가질 리 없었다.
"군대 제대하고 복학해서 가장 놀란 것은 먼저 졸업한 동기들 대부분이 전공인 환경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었어요. 그럼 학교에서 배운 건 뭐가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나도 사회라는 틀에 맞춰서 흘러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녹색대학에 입학하기까지 마음고생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친구들은 그렇다 쳐도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는 여전히 마음에 걸린다.
"부모님들은 마치 내가 '휴거'를 믿는 것처럼 여겼어요. '녹색대학 그거 종교집단 아니냐, 네가 종교에 빠진 것 아니냐'면서…. 왜 다니던 대학 그만두고 형체도 없는 곳을 쫓아다니냐고 야단도 많이 맞았어요."
처음엔 자신의 선택을 이해해 주지 않는 부모님께 대들기도 했지만, 차츰 방법을 바꿨다. '화해의 편지'를 부모님께 보내기도 했고, 환경문제와 관련된 책을 아버지께 선물하기도 했다. 최근엔 무공해 뽕잎차를 대접해 드리면서 부모님의 마음도 한층 누그러졌다고 한다. 이젠 "등록금은 있느냐고 물어볼 정도"라며 "아직 녹색대학에 대해선 인정을 못받았지만 내가 하는 일 만큼은 인정받은 것 같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그가 녹색살림학과를 전공으로 택한 것도 부모님을 포함해 주변 사람들에게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요즘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감사하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줄 것인가가 고민"이라고 한다.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나만 잘살면 무엇 합니까. 그건 아무생각 없이 오염된 도시에서 사는 사람보다 더욱 이기적인 짓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사람들의 먹거리에 관심을 두고 공부해 볼 계획입니다. 그건 사람들에게 생명의식을 심어주는 것이죠. 육식문화가 얼마나 비생명적, 비생태적인지도 알려주고 싶고, 발효식품만 가지고도 충분히 잘 살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사람다운 교육을 받는 건 부모자식간의 정보다 중요"**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녹색대학에 입학하는 이종두 군은 제도권 대학에 진학하는 친구들이 부럽지 않다.
"기존 대학은 동아리 활동 말고는 전부 개인주의적인 생활이라고 들었어요. 녹색대학은 기숙사도 직접 짓고, 모두 모여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제일 맘에 들어요."
평소에도 시 쓰기를 좋아한다는 이군은 녹색문화학과를 전공하고 환경운동가나 환경과 관련된 문학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녹색대학은 모든 생명을 존중하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충실한 사람으로 가르치시는 것 같아요. 배우고 실천하는 것을 상상하면 벌써부터 행복해져요."
기존에 대학을 다니던 학생들과는 달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입학하는 학생들의 경우엔 부모님의 적극적 지원이 필수적이다. 이군의 어머니 최미숙씨는 처음 이군이 녹색대학에 가겠다고 했을 때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대학총회', '예비 대학' 등을 직접 다녀본 지금은 이군의 가장 적극적인 후원자가 됐다.
"멀리 보낸다는 것이 걱정스러웠어요. 농사일 같은 건 손에도 안 잡아본 애가 거기 가서 농사도 짓고 해야한다는 것도 걱정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걱정 안해요. 사람이 사람다운 교육을 받는 다는 건 부모자식간의 정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훌륭한 선생님들, 좋은 친구들을 직접 보니까 그 분들에게 맡겨놓는 게 안 좋겠나 싶어요."
최씨는 아직 교육부 인가가 나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사회의 부속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자기 스스로 행복해 질 수 있는 길을 찾는 과정이 아닌가 싶어요. 그런 중에 인가도 받게 되고 대책도 나오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이제 최씨는 주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녹색대학 후원회인 '녹지사(녹색대학을 지탱하는 사람들)' 가입을 권유하고 다닐 정도다. 그러나 녹색대학을 보는 사람들의 편견이 아직도 높다는 걸 번번히 실감한다.
"사람들에게 녹색대학 얘기를 하고 녹지사에 가입하라고 하면 무슨 자선단체처럼 생각하고 멈칫하는 것 같아요. 장애인 보육시설 같은데서 내부 비리가 많고 원장이 돈을 빼돌리고 하는 얘기들을 들어서 그런가봅니다. 하지만 녹색대학은 차원이 달라요. 누구 한 사람이 운영하는 곳이 아니라 여러사람이 공동으로 교류하면서 투명하게 운영됩니다."
건축업에 종사하다보니 평소 환경문제에 대해선 관심 밖이었다던 이군의 아버지 이영수씨도 환경운동가가 되겠다는 이군에게 전폭적인 믿음을 보낸다.
"아직은 녹색대학의 시설이나 규모가 작은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을 대해보니까 종두가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게 됐습니다. 그냥 졸업장 따러 대학에 가서 같은 또래끼리 어울려 다니다보면 흐트러질텐데, 나이많은 친구, 동료들이 이끌어주고 훌륭한 선생님들이 계신 것에 믿음이 생깁니다."
철부지로 알았던 아들의 홀로서기를 보는 부모님의 마음도 이군만큼이나 들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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