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미국 주간지 뉴요커(The New Yorker) 최신호(1월 27일자)에 실린 ‘핵실험: 미국 행정부가 파키스탄과 북한의 핵 프로그램에 대해 알고 있는 것(The Cold Test: What the Administration knew about Pakistan and the North Korean nuclear program)'의 전문이다.
탐사보도 전문기자인 세이무어 허쉬 기자가 작성한 이 기사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 재개가 이미 지난해 6월 CIA 보고서에서 지적됐으나 “정치적인 이유”로 비밀에 부쳐졌다고 보도했다.
정치적인 이유로 뉴요커가 꼽은 것은 첫째, 또다른 위기를 만들어 이라크 공격에 차질을 빚어서는 안 되었던 당시의 상황과 둘째, 북한의 핵 개발에 도움을 준 것은 미국 대 테러 전쟁의 중요한 협조자인 파키스탄이었다는 사실을 묻어두려는 미국의 계산이었다.
뉴요커는 또 파키스탄의 경제가 어려워져 북한에 치러야 할 미사일 대금 대신 우라늄 농축 기술을 전해주었다는 CIA 보고서 내용을 소개, 미국은 이에 대한 파키스탄 무샤라프 대통령의 부인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고 전했다.
<사진: 북한 핵시설>
***“북한, 2001년 우라늄 농축 시작 상당량 확보"**
지난 6월의 CIA 보고서에 따르면 파키스탄은 지난 97년부터 북한으로부터 수입한 미사일대금 대신 우라늄농축 기술을 전수하기 시작했으며 우라늄농축에 필요한 원심분리기 모델은 물론 우라늄핵폭탄을 제조하는 방법까지 전수했다. 이에 따라 북한은 2001년부터 우라늄 농축을 시작해 이미 상당량을 확보했으며 파키스탄의 도움을 받아 일련의 핵폭발 모의실험(cold test)까지 했다.
허쉬 기자는 특히 미 정보 관리의 말을 빌어 "몇천개의 원심분리기만 있으면 북한은 1년 안에 2-3개의 핵탄두를 만들기에 충분한 핵분열 물질을 확보할 수 있으며 일부는 외부에 팔 수도 있다”고 전했다.
한편 지난 해 10월 켈리 특사 방북때 미국은 북한이 핵개발 재개를 시인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허쉬 기자는 밝혔다. 또 미국 정보기관은 그 이후 북한의 제네바합의 파기나 핵비확산조약 탈퇴를 예상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또 10월 평양회담에서 북한측은 미국이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고 양국관계의 정상화를 약속한다면 우라늄농축을 포기하겠다고 제의했으나 당시 켈리 특사에게 협상권한이 없었기 때문에 이에 대응할 수 없었다고 이 기사는 전했다.
뉴요커는 그러나 북한이 현재 핵탄두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미 행정부 내 이견이 많다고 보도했다.
허쉬 기자는 특히 미국이 지난해 9월 신국가안보전략을 통해 핵위협에 대한 선제핵공격 정책을 천명해 놓고도 북핵 사태에 대해 애써 위기가 아니라며 진지한 대응을 피하고 있다면서 이는 스스로의 정책을 파산시킨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한편, 기사 말미에서 허쉬 기자는 현직 미 정보관리의 말을 빌어 부시행정부가 공개적으로 북핵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천명하고 있으나 내심으로는 김정일에 대한 적개심을 불태우고 있다면서 "“부시와 체니는 쟁반에 담긴 김정일의 머리를 원한다. 협상에 관한 모든 말들에 현혹되지 마라. 협상이 있기는 하겠지만 그들(부시와 체니)은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다. 이라크문제를 해결해 놓고 나서 이 자(김정일)를 요리할 것이다. 그들에게 김정일은 히틀러 같은 인물이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같은 발언과 함께, 정치적인 이유로 핵문제와 관련된 중대한 정보를 묻어두고 공개 후에도 오락가락하는 북한의 대북정책을 비판한 이 기사의 내용에 대해 미국 관리들은 즉각 부인했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이 기사에 대해 “나는 (이 기사의 저자인) 허쉬 기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부시 대통령은 북한 사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기를 원한다고 행정부 초기부터 명백히 해왔다”고 말했다.
***핵실험/THE NEW YORKER, 27일자**
***미국 행정부가 파키스탄과 북한의 핵 계획에 대해 알고 있는 것**
북핵위기가 대두되기 4개월전인 지난해 6월,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북한의 핵 야망에 대한 포괄적인 분석자료를 부시 대통령과 핵심 참모들에게 제출했다. ‘국가정보평가서’로 알려진 그 서류는 일급 비밀문서로 분류되었고 정부 내에서의 배포는 엄격히 제한되었다. 중앙정보국 보고서에는 북한이 무기 제조단계의 우라늄 생산수단을 비밀리에 확보해 국제법과 한국, 미국과의 조약을 위반해왔다는 사실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 문서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민감한 내용은 파키스탄에 관한 것이었다. 1997년부터 파키스탄은 복잡한 (무기제조)기술, 탄두 설계에 관한 정보, 무기 실험 자료 등을 북한 정부와 교환해왔다고 CIA는 밝혔다. 미 부시 행정부의 대 테러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동맹국중 하나인 파키스탄이 북한의 (핵)폭탄제조를 돕고 있었던 것이다.
북한은 1985년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서명해 대부분의 핵 시설들을 국제 사찰체제에 개방했다. 1990년대 초, 미 정보기관들과 국제 사찰기관들은 북한이 과거에 밝혔던 것보다 더 많은 폐연료를 재처리하고 있고, 1-2개의 핵무기를 만들기에 충분한 플루토늄을 분리했을 수도 있다고 확신했다. 이에 따른 외교적 위기상황은 북한 지도자 김정일이 핵무기 계획을 포기하는 대신 경제 원조를 받고 전력생산을 할 수 있는 경수로 2기를 지어주기로 클린턴 행정부와 협정을 맺음으로써 해결되었다.
그러나 3년도 못 돼 북한은 핵분열 물질을 얻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북한의 과학자들은 폐연료를 사용하는 대신 천연 우라늄에서 무기 제조 단계의 우라늄을 만드는 시도를 했다. 이때 파키스탄의 기술이 도입되었다. 미국 정보기관의 한 관리는 CIA 보고서를 언급하며 “파키스탄의 기술임이 분명하다. 기술이 숨겨지지도 않았고 모호하지도 않았으며 너무도 명백했다”고 말했다. 1990년대 초에 있었던 북한의 플루토늄 계획을 언급하며 그는 “이전에는 은밀했다”고 말했으나, 지금은 “공개적이다. 우리는 북한이 더 많이 더 빨리 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고 말했다.
북한은 경제적으로 고립되어 있다. 북한의 주 수출소득원은 무기판매이고 가장 잘 팔리는 생산품은 미사일이다. 북한의 고객 중 하나는 파키스탄이었는데, 파키스탄은 이미 자체 핵무기를 가지고 있으나 핵탄두를 보다 효과적으로 운반할 수 있는 미사일을 경쟁국인 인도보다 먼저 확보할 필요가 있다. CIA 보고서에 따르면, 파키스탄은 1997년부터 북한에 핵무기 제조 비법을 전해주는 것으로 미사일 시스템에 대한 대가의 일부를 대신 치르기 시작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파키스탄은 초고속 원심분리기 모델을 북한에 보냈다. 그리고 2001년 북한 과학자들은 우라늄 농축을 시작해 상당량을 확보했다. 파키스탄은 우라늄 핵폭탄을 만들고 실험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자료도 북한에 주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파키스탄이 제대로 된 원심분리기를 만드는 데에는 10년간의 실험과 상당한 투자가 있었다. 파키스탄의 도움으로 북한은 개발 과정을 수년 단축했다고 정보기관 관리가 말했다. 북한에서 현재 얼마나 많은 원심분리가가 작동되는지와 이 시설들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지하동굴에 있는 것 같다) 파키스탄 원심분리기는 높이가 대략 6피트(약 180센티미터)인 좁은 원통으로 화물수송기에 수백개단위로 실을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그는 “파키스탄은 북한에 설계도만 주면 된다. 공학적으로 대단히 복잡하다”고 덧붙였다. 몇천개의 원심분리기만 있으면 “북한은 1년 안에 2-3개의 핵탄두를 만들기에 충분한 핵분열 물질을 확보할 수 있으며 일부는 외부에 팔 수도 있다”고 그는 말했다.
파키스탄의 전직 고위 관리는 북한과 파키스탄 정부의 접촉이 1997년 갑자기 늘었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파키스탄의 경제는 무너졌고, 북한이 공급하는 미사일 값을 지불할 “돈은 더 이상 없었”고, 그래서 파키스탄 정부는 “(핵무기에 대한) 노하우와 상세한 기술”을 제공하는 것으로 미사일에 대한 대가를 대신 치르기 시작했다. 파키스탄은 북한이 천연우라늄을 사용해 핵폭발 모의실험을 하는 일련의 핵실험(“cold tests")를 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 실험은 핵폭탄이 제대로 폭발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필요하다. 파키스탄은 또 레이더망 아래에서 어떻게 (포착되지 않고) 비행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북한에 제공했다. 그 파키스탄 관리에 의하면 그것은 말하자면, 미국 위성과 한미 정보기관들의 핵 탐지를 피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CIA 보고서에 의하면, 북한이 1994년 위기 때 실제로 핵탄두를 만들기 시작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알려지지 않았다. 보고서를 읽어 본 CIA, 국방부, 국무부, 에너지부는 북한이 만들 수 있는 핵탄두의 수에 관해 일치되지 않고 상반된 평가를 내 놓는다. 그리고 북한 체제가 과연 핵탄두를 실제로 만들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일치된 의견을 갖지 않다.
북한과 파키스탄의 접촉에 관해 간헐적인 보고가 수년간 있어 왔고, 대부분 미사일 판매에 관한 것이었다. 핵에 관한 양국관계는 그다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미국 정보기관들은 파키스탄 무기 연구소장이자 파키스탄 핵폭탄의 아버지로 알려진 칸(A. Q. Khan)이 지난 십년간 북한을 최소한 13회 방문한 것을 추적했다. 지난해 10월, 북한의 우라늄 프로그램 소식이 나온 후 (영국의 일간) 더 타임스는 파키스탄이 북한에 원심분리기를 공급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파키스탄의 지도자 무샤라프는 그 기사가 “사실무근”이라고 공격했고 “핵과 관련해 북한과 협조 같은 건 없다”고 덧붙였다. 백악관은 무샤라프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듯 했다. 11월, 국무장관 콜린 파월은 파키스탄이 현재 북한과 어떤 핵거래도 하지 않았다는 무샤라프의 말을 확신한다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파월은 “우리가 믿는 파키스탄과 북한과의 어떤 접촉도 부절적하고 부적당하고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무샤라프에게 분명히 말했다”며 “무샤라프 대통령도 사안의 심각성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 후, 파키스탄은 북한에 관한 언론 보도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부시 행정부는 대 테러 전쟁에서 차지하는 파키스탄의 역할 때문에, 파키스탄에 대한 적절한 선택지를 거의 갖고 있지 않다. 9·11 테러 발발 2주가 못돼 부시는 핵 활동을 이유로 파키스탄에 가해졌던 제재를 풀었다. 미국 군축 전문가들의 말에 따르면, (핵활동 때문에 가해진) 재제는 파키스탄 원자력위원회의 일부 과학자들과 과격 이슬람 집단간의 긴밀한 관계라는 어려운 문제를 다루는 데 늘 실패해왔다. 한 정보기관 관리는 “파키스탄의 핵 프로그램 팀에는 알 카에다에 대한 동조자가 대단히 많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미국 핵 비확산 전문가 한 사람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는 파키스탄이다. 우리가 다음 주 (핵무기에 의해) 소멸된다면 파키스탄이 알 카에다에 준 고농축우라늄에 의해서일 것”이라고 말했다.
파키스탄의 상대적 빈곤은 위험을 가중시킬 수 있다. 1월 초, 무샤라프 정부에 반대해 망명한 파키스탄인들의 인터넷 신문은 지난 6년간 9명의 핵 과학자들이 더 좋은 대우를 받기 위해 파키스탄을 떠났고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고 보도했다.
미국 정보기관 관리는 파키스탄의 행동을 국제적인 군축 노력에서 “최악의 악몽”이라고 불렀다. 제3세계 국가가 핵확산의 매개가 되고 있다. 그는 “핵확산에 대한 서구의 통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 이전 거부와 외교에 기반한 것이었다”며 “우리의 걱정은 첫째, 제3세계 국가가 핵무기를 자체적으로 개발하는 것이고 둘째, 그 기술을 다른 나라에 제공하는 것이다. 이것은 심각하다. 세계를 바꿀 수 있다” 파키스탄의 핵 프로그램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막기 위해 파키스탄의 군사·정보 기관들이 미국과 가깝게 일했던 1980년대에 크게 번창했다. 그 관리는 “파키스탄에 의한 우라늄 농축기술의 이전은 파키스탄의 핵 프로그램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을 때 그러지 못했던 미국의 실패에서 직접 비롯된 것이다. 우리는 통제력을 잃었다”고 말했다.
CIA 보고서는 미 행정부가 이라크전을 준비하는 데 집중하던 지난 여름과 초가을까지 공표되지 않았다. 행정부 내에서 군축 업무를 담당하는 많은 관리들은 그 보고서를 알지 못했다. 한 관리는 “그 보고서는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졌다”며 “정보가 알려지면 살해까지 당할 수 있는 정보원을 보호하기 위해 (기밀문서가) 비밀에 부쳐진다. 그러나 정치적 이유 때문에 민감한 정보를 통제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고 말했다.
미국의 한 핵 비확산 전문가는 행정부가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것에 실망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상황이 엄청난 군사적·정치적 위기라는 사실을 미국인들에게 알려주는 것은 중요하다”며 “이는 북아시아 안보의 핵심이고 일본과 한국의 미래, 그리고 핵 비확산이라는 보다 광범위한 문제의 미래에까지 관련된 문제다”고 말했다.
한반도 사태와 밀접하게 연관된 일본의 외교관은 부시 행정부가 위기를 드러내놓고 다루는 것을 미룬 것에 대해 옹호했다. 보고서를 언급하면서 그는 “정보기관의 평가가 정확하다면 거기에 함축된 의미를 생각해야 한다. 정보 공개가 늘 긴급한 것은 아니다”며 “대화를 하기 위해 당신은 적절한 시간과 조건을 찾아야 한다. 그 점에서 우리가 보기에 부시 대통령은 적절했다”고 덧붙였다(이 문제에 대해 백악관과 CIA는 논평에 응하지 않았다)
북한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경멸은 잘 알려진 것이고, 백악관이 CIA 리포트를 공표하지 않은 실수를 저지르게 했거나 더 복잡해게 하는 데에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1월 연두교서에서 부시는 북한을 이라크, 이란과 함께 “악의 축”이라고 불렀다. 밥 우드워드는 9·11 테러에 대한 미 행정부의 대응에 관한 자신의 저서 “전쟁중인 부시(Bush at War)"에서 지난 8월 텍사스 목장에서 있었던 부시와의 인터뷰를 회상했다. “‘나는 김정일을 혐오한다’ 손을 내저으며 부시는 말했다. ‘나는 그 자식한테 구역질이 난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인민들을 굶기고 있기 때문이다’” 우드워드는 부시가 김정일에 대해 “나는 그가 전복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할 때 매우 감정적이 되었다고 썼다.
부시 행정부는 CIA 보고서를 받기 전부터도 북한에 대해 주목했었다. 작년 1월 국무부 군비통제 담당 차관 존 볼튼은 북한이 비밀 핵무기 프로그램을 갖고 있고 비확산조약을 어겼다고 말했다. 2월, 세명의 의원은 북한이 “우라늄 농축을 위한” 비밀 처리시설을 가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는 이유를 들며 부시 대통령에게 북한에 2기의 원자로를 건설해 주기로 한 약속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5월, 볼튼은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감시에 협조하지 않고 있다고 다시 비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월 5일, 대통령 안보담당 보좌관 콘돌리자 라이스(아마 그녀는 CIA 보고서를 수주전에 받았을 것이다)는 의회에 보낸 서한을 통해 부시 행정부는 북한에 중유와 (약속한 2개의 전력 생산 원자로를 위한) 핵 기술을 계속 공급하겠다고 분명히 말했다.
미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분노와 자족감이 뒤섞여 변덕스러웠던 것은 여러 면에서 이라크에 꾸준히 초점을 맞춰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백악관은 적의 대량살상무기가 사용되기 전에 이를 색출해 파괴하는 것을 군에 위임하는 국토방위전략서를 내 놓았다. 그 문건에서 군사력은 “대량살상무기로 무장한 적들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억지정책은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고 주장했다. 논리적으로 보면 그 새로운 전략은 핵무기 프로그램에서 이라크보다 앞선 북한에 우선 적용되어야 했다. 그러나 미 행정부의 목표는 여론을 이라크 공격으로 모는 것이었다. 미국 정보기관의 한 관리는 “부시 독트린은‘상호확증파괴(MAD)'라는 핵전쟁의 교리가 불량국가들에게 먹히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협상이 통하지 않을 경우 선제공격해야 한다는 것이 부시 독트린의 핵심이다. 그리고 부시 주변 인물들은 북한이 이미 그들의 핵 프로그램을 재개했고 이라크보다 더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들은 누구에게도 이를 밝히지 않았다. 자신들의 독트린이 요구하는 바를 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들은 그들 자신의 정책은 파산시키고 말았다”고 말했다.
이라크의 군사력은 걸프전의 패배와 수년간의 무기사찰로 손상되었으나, 북한은 인구의 40%가 무장해 있는 세계에서 가장 군사화한 나라 중 하나이다. 북한의 대포는 특히 무시무시하다. 서울이 사정거리 안에 드는 곳에 1만개가 넘는 대포가 배치되어 있는데, 시간당 50만 개의 포탄을 쏘아올릴 수 있는 2만5천개의 로켓 발사대도 같이 있다. 전면전이 발발하면 1백만명 이상의 군인·민간인 희생자가 나올 것이며 10만명 이상의 미군도 죽을 것이라고 미 국방부는 평가했다. 클린턴 행정부의 한 관리는 주한미군 사령과 개리 럭 장군이 “상원의원님, 나는 당신을 위해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안 됩니다”고 간단히 무시해버린 90년대 중반의 의회 브리핑을 떠올렸다.
<사진: 제임스 켈리>
지난해 10월 초,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 제임스 켈리는 북한의 우라늄 농축 계획에 대한 미국의 증거를 제시하기 위해 많은 수행원을 이끌고 방북했다. 미 관리들이 부시 대통령의 강한 의중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의제가 채택된 것은 불가피했다. 한 한국 전문가는 “당시 북한에 최우통첩을 하느냐 협상하느냐에 대해 엄청난 논쟁이 있었다”며 “그들은 지금도 똑같은 논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켈리는 미국이 (북한의) 불법 우라늄 프로그램에 대해 알고 있다고 말할 권한만을 위임받았다. 게다가 켈리에게 주어진 세심한 주의사항들로 말미암아 그에게는 협상의 여지가 없었다. 사전에 작성된 그의 메시지는 직설적이었다. 북한이 미국과 협상을 원한다면 우선 핵 프로그램을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미국의 한 전문가는 “이것이 관료제의 슬픈 현실”이라며 “켈리가 가지고 있었던 각본은 국가안보위원회(NSC)에서 강경론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나는 대통령이 위기상황을 원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CIA 보고서는 핵 개발 증거를 내보이더라도 북한이 1994년 제네바합의를 공개적으로 파기하거나 핵비확산조약을 위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 정보기관 관리는 “그것은 완전히 틀린 예상”이라며 “나는 이 보고서를 작성한 사람들보다 북한을 더 잘 아는 사람이 CIA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 일본 외교관은 “북한 사람들은 경악했다”며 “그들은 미국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밤을 꼬박 새운 회의 후, 북한 외교부 제1 부부장 강석주는 핵무기를 개발할 권리가 북한에 있다는 것을 주장했다. 이같은 그의 발언은 (북한이 핵개발을 재개했다는) 미국측의 주장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는 북한이 실제로 핵무기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이 일본 외교관에 따르면 강석주는 또 “북한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며 미국을 비난했다. 이어 강석주는 1994년 협정의 의무사항을 지키지 못한 미국의 잘못을 열거했고,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지 않고 관계를 정상화하겠다고 약속한다면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을 폐기하겠다고 제안했다. 훈련받은 각본에만 얽매인 켈리는 북한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그의 말을 반복할 수 있을 뿐이었다. 막다른 골목만 계속되었다.
그러나 CIA 보고서를 비밀에 부쳤던 것과 마찬가지로 미 행정부는 평양의 시인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었다. 북한의 시인 사실은 이라크에 대한 군사적 대응을 승인한 의회 표결이 있은 5일 뒤인 10월 16일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에 인용된 행정부 관리들의 말에 따르면, 북한의 시인 사실(이것은 이라크 공격에 대한 논쟁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이 언론에 유출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야 행정부는 그 사실을 대중들에게 밝혔다. 10월 20일 방영된 CBS “Face the Nation"에서 콘돌리자 라이스는 이라크 공격 표결 이후까지 의도적으로 발표를 보류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라이스는 “우리가 놀란 것은 핵 프로그램이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 그것을 시인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전직 북한 정보 전문가는 필자에게 "그렇다면 우리는 북한이 부인하길 바랐단 말인가?"라고 반문하면서“나는 도대체 (부시행정부의) 대 북한 정책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보기관과 부시 행정부의 관계를 언급하며 그는 “우리는 (행정부)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없었다. 우리가 (그들의) 관심을 끌었다 하더라도 그들은 결코 현명한 접근을 하지 않았다. 행정부는 너무나도 심각하게, 위험스러울 정도로 이데올로기적이다”고 말했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 정부뿐만 아니라 핵확산에 대처하려는 클린턴의 초기 노력까지도 경멸했다. 핵확산 문제는 미국이 무시하면 할수록 악화될 뿐인데도 말이다. 이 전직 정보 관리는 “북한과의 대결에서 우리는 아무런 계획도, 접촉도, 협상거리도 없었다. 외교적 접촉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그래야 개입할 수 있고 문제를 푸는 데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북한문제가 엉망진창이 될 때까지 내버려 두었다”고 말했다.
10월에 있었던 북한과의 대결을 언급하면서 그는 “켈리의 방북과 뒤이은 미국의 성명은 평양의 (강온파간) 세력균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북한 사람들은 이미 미국을 심하게 의심했다. 그들은 켈리의 메시지를 ‘너희(북한)가 이 문제(핵개발)를 풀어라, 그리고 나서 우리(미국)에게로 와라’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매우 화가 났다. 게다가 그들이 이라크 다음 공격 목표가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되어,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재빠르게 행동해야 한다고 믿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 결과 10월에도, 6월의 CIA 보고서를 비밀에 부쳤던 것과 마찬가지로, 행정부는 북핵 사태가 위기라는 사실을을 부인하는 것 외에는 달리 취할 방도가 없었다. 켈리 방문에 관한 보고서가 처음 나왔을 때, 부시 대통령은 “괴롭고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소식”임을 알았다고 백악관 대변인은 말했다. 콘돌리자 라이스는 북한과 이라크는 다른 경우라고 반복해 강조했다. ABC 나이트라인에서 라이스는 “사담 후세인은 그 나름대로의 범주에 속한 사람이다”고 말했다. 한 군축담당 관리는 “백악관은 제2의 위기를 다루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후 몇 달간, 미국의 대북정책은 공개적으로는 (북한에게)“협박”당하지 않을 것이며 심지어 북한 지도부와 만나지도 않을 것이라는 강경 발언을 하면서, 물밑으로는 북한과의 간접 대화를 열기 위해 제3의 통로를 통해 비공식적인 노력을 번갈아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한편 북한은 부시 행정부와의 직접대화를 계속 주장하면서, 국제 사찰관들을 추방했고, 핵확산금지조약을 탈퇴했으며, 핵연료 재처리를 다시 시작하겠다고 위협했다.
1994년 김정일과의 대화에 관여했던 클린턴 행정부 시절의 한 관료는 북한의 행동에 매우 실망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경수로 두개를 주었고 그들은 이것(핵)을 집어치워야 한다는 것이 거래사항이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문가를 꾸미고 있었고, 그것은 거래 위반이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관리는 부시 행정부가 “김정일과 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CIA 보고서는 1994년 협정의 파괴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속임수의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네바협정은 지난 8년간 북한 핵탄두 개발(어떤 평가에 의하면 지금은 백개 정도가 되었을)을 저지해온 점에 있어서 성공이었다고 서술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주 그의 많은 보좌관들이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있는 것에 굴복했고,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포기한다는 약속을 하면 미국의 지원 재개를 고려하겠다는 데에 동의했다. 그러나 백악관은 여전히 김정일 정부와의 직접 협상을 거부하고 있다.
1994년 대북 협상을 담당했고 현재는 조지타운대 국제대학원 원장인 로버트 갈루치는 지난해 6월 한 연설에서, 북한에 대한 부시의 최초 접근법은 미사일방어체제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한“상징(a poster child)"으로 만드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우리가 미사일방어체제를 계획하고 만들어 대항하려고 하는 최첨단의(cutting edge) 위협이었다”며 “(부시 행정부에게는) 북한은 협상으로 다뤄서는 안된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말했다.
갈루치는 “그러나 9·11 테러가 일어났다. 그 사건은 국가미사일방어체제(NMD)가 미국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뜻했다. 왜냐하면 위협은 미사일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수백가지 다른 방법으로 오기 때문이다”며 “그래서 우리는 다시 원위치했다. 대량살상무기로 우리를 위협하는 북한과 불량국가들이 (NMD로) 억지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억지될 수 없거나 방어될 수 없는 자들에게 무기제조능력을 이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최근에 열린 백악관 회의에 참석했던 한 정보 관리는 조속한 분쟁해결을 강조하는 매일매일의 행정부 성명을 믿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들은 공개적으로는 타협을 하겠다고 말하면서도 사적으로는 뜨거운 적개심을 불태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부시와 체니는 쟁반에 담긴 김정일의 머리를 원한다. 협상에 관한 모든 말들에 현혹되지 마라. 협상이 있기는 하겠지만 그들(부시와 체니)은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다. 이라크문제를 해결해 놓고 나서 이 자(김정일)를 요리할 것이다. 그들에게 김정일은 히틀러 같은 인물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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