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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악행에 미국도 책임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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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악행에 미국도 책임있어"

"미, 제네바합의 거의 안 지켜"-호주 학자 지적

다음은 호주의 저명한 아시아학자인 개번 매코맥의 북핵 사태에 관한 칼럼 '북한의 악행에 미국도 책임있어(US shares blame for North Korea's bad behaviour)'의 전문이다.

매코맥은 이 글에서 북한이 제네바합의를 위반한 것은 "미국측에 의해 이미 이 합의가 사실상 사문화됐기 때문"이라며 미국은 제네바합의에 명기된 "경수로 건설시한을 지키지 못했고, 양국간 관계정상화도 진척시키지 않았으며, 핵 불사용 보장도 지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매코맥은 특히 북한은 지난 1950년 이후 50여년간 지구상 어떤 나라보다도 미국의 핵공격 위협에 시달려 온 유일한 나라라면서 "반세기 동안의 몰살위협에 직면한 북한이 노이로제와 불안증세를 보이지 않는다면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획기적인 경제개혁, 남한과의 철도ㆍ도로 개방 조치, 남한과의 협상에 의한 경제 협력망의 증가, 과거 범죄(일본인 납치)에 대한 일본에의 사죄. 이 모든 것들은 북한 정부의 변화의지를 말해" 주고 있으며 "그들은 추위로부터 나오길 원한다"면서 미국에 대해 북한과의 협상에 응하라고 촉구했다.

호주국립대학 연구교수(아시아역사)인 매코맥은 일본 및 한반도문제에 정통한 아시아통으로 그의 저서 중 <일본, 허울뿐인 풍요>는 국내에도 번역, 소개됐다. 매코맥의 이 칼럼은 호주 멜버른의 일간지 <디 에이지(The Age)> 8일자에 실려 있다. 다음은 칼럼 전문.

***'북한의 악행에 미국도 책임있어'/The Age, 8일자**

지난 달, 미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는 미국이 두개의 전쟁(이라크와 북한을 의미)을 벌일 용의가 있으며 하나의 전쟁에서 결정적 승리를 거두고 다른 전쟁도 신속하게 이길 수 있다고 선언했다. (북)핵 문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하는 절차는 그 전조였고, (경제)제재, 강제사찰 그리고 '이라크식 시나리오'가 모습을 드러냈다.

새해 첫날 조지 부시 대통령이 상황을 진화하려고 했으나 교착은 계속됐다. 북한의 정치적 고립과 경제적 위기가 깊어지는 동안 북한의 핵 의도는 여전히 미스테리에 쌓여 있다.

지난 1994년 위기는 전쟁 촉발 직전까지 갔었다.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의 중재와 제네바기본합의로 알려진 북미간 후속 협정으로 위기는 해소되었다.

2천 메가와트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경수로를 2003년까지 건설해 주고 완공때까지 매년 50만 톤의 중유를 제공하겠다는 미국의 제안에 화답해 북한은 흑연 원자로 계획을 동결시켰다.

양국간의 완벽한 정치ㆍ경제적 관계 정상화와 미국이 북한에 핵을 사용하거나 핵위협을 가하지 않겠다는 보장도 합의문에 포함됐다.

9년이 지났다. (그러나) 경수로는 없고, 부지에 커다란 구멍만 있으며, 2010년이 되기까지는 전력 생산이 될 것 같지 않다. 또한 정치ㆍ경제적 관계 정상화는 전혀 진척되지 않았고, 부시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불렀으며, ('대북 핵 불사용'에 관한) 공식 보장 대신 선제공격을 이야기하고, 선제공격에 핵무기를 포함시킬 의사까지 내비쳤다.

평양측이 제네바합의를 위반했다면 이는 미국측에 의해 이미 이 합의가 사실상 사문화됐기 때문이다. 미국은 경수로 건설 시한을 지키지 못했고, 양국간 관계정상화를 진척시키지 않았으며, 핵 불사용 보장도 지키지 않았다.

(북한의) 최초의 (제네바합의) 위반은 우라늄 농축을 위한 원심분리기 기술을, 아마도 1990년대 후반 파키스탄으로부터 구입해 왔다는 사실일 것이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그 기술의 보유를 시인했다(그 기술의 사용까지 시인한 것은 아니다). 흑연원자로를 재가동하는 방향으로 나아간 12월의 조치는 더더욱 분명히 반발적인 행동이었다. 그러나 이 두가지 핵 기술이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지난 2000년 페리보고서가 나온 이후 북미관계에 짧은 밀월기간이 있었다. 비밀 핵무기 개발 장소로 의심되었던 금창리는 조사를 받은 후 '깨끗한' 곳으로 밝혀졌다. 최고위 인사가 상호 방문했고 관계정상화가 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평양방문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무산됐다. 부시가 취임하자 시계는 거꾸로 돌려졌다. 제네바 기본합의는 클린턴의 실수이며 무효화하고 폐기되어야할 것으로 되었다.

우라늄을 농축하겠다는 북한의 위협과 플루토늄 생산 원자로를 재가동하겠다는 움직임은 무고한 이웃나라에 대한 엄청난 위협이 아니라 미국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내겠다는 필사적인 책략임이 분명하다.

핵 시대에 북한의 진짜 독특한 점은 어느 나라보다도 오랫동안 핵위협의 그림자 아래에서 살아왔다는 것이다. “30개에서 50개의 원자탄”을 투하하겠다는 맥아더의 계획이 억눌려졌던 한국전쟁에서부터 미국이 핵폭탄ㆍ핵지뢰ㆍ핵미사일을 한국으로 들여오고 그 후 핵 폭격 연습을 지속하던 냉전기간 내내 (북한은 핵 공격의 악몽에 시달려 왔다).

반세기 동안의 몰살위협에 직면한 북한이 노이로제와 불안증세를 보이지 않는다면 놀라운 일이리라.

북한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은 남한 사람들이다. 2002년 말 한국에서 엄청난 군중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은 반북(反北)이 아닌 반미 때문이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거의 60%의 한국인들이 더 이상 북한이 안보위협이 아니라고 믿으며 과반수가 넘는 사람들은 또한 북한이 통일 노력에서 성실하게 임한다고 믿고 있다.

남한이 거부하면 북한에 대한 전쟁은 절대 불가능하다. 1994년에도 남한이 미국의 (전쟁) 목적을 위해 단 한명의 군인도 파견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클린턴은 충격을 받았다. 1997년부터 대통령이었던 김대중은 광범위한 경제적ㆍ사회적 문제에서 평양을 포용하는 “햇볕” 정책에 공을 들였다. 2002년 2월 부시와 만난 자리에서 김대중은 한반도에 대한 어떤 전쟁도 십년이 넘게 걸린 베트남전보다 더 많은 미군 전사자를 비롯해 천문학적인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는 1994년 미 국방부의 평가를 부시에게 일깨워줬다. 지난달 초 서울에서 미 국무부 부장관 아미티지는 한국 정부가 전쟁에 대한 어떤 대화보다 미래의 주한미군을 통제하기 위해 SOFA 개정을 약속받는 것에 더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고 당황했다.

새 대통령 노무현이 취임하면 이 '반항'은 더 심해질 것이다.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그의 의지(readiness)는 대결 상황이 될 경우, 남한이 북한의 안전보장을 위해 북한 정부와 함께 싸울수도 있음을 뜻한다.

북한은 괴팍하거나 무지막지하거나 '악한' 것으로 묘사되기 쉽다. 그러나 모든 국가들과 다를 바 없이, 북한은 역사의 산물이고, 1930년대 항일 게릴라부대를 중심으로 건설되었고, 그들의 국가건설은 신화가 되었으며, 지구상 최고의 강대국에 의한 절멸의 위협에서 반세기를 생존해 오고 있다. 오늘날 획기적인 경제개혁, 남한과의 철도ㆍ도로 개방 조치, 남한과의 협상에 의한 경제 협력망의 증가, 과거 범죄(일본인 납치)에 대한 일본에의 사죄. 이 모든 것들은 북한 정부의 변화의지를 말해준다. 그것은 북한이 더 이상 획일적 사회가 아니며, 힘을 가진 세력들이 비밀주의ㆍ대중동원ㆍ사령관에 대한 절대적 충성ㆍ군대 우선과 같은 게릴라 모델을 버리고 페레스트로이카를 추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들은 추위로부터 나오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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