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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교육을 꿈꾸는 사람들

<인터뷰> '以友교육공동체' 정광필 공동대표

노무현 당선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지난 12월 22일 낮,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동원동의 한 야산 앞 공터에서는 조촐한 식이 열리고 있었다. 새로운 교육모델의 창출이라는 원대한 꿈의 씨앗을 뿌리는 첫삽뜨기(기공식) 행사였다.

교육을 바꾸지 않고는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다는 생각으로 모인 '이우(以友)교육공동체' 사람들 87명은 이날 동네 주민들과 함께 오는 9월 개교할 이우학교의 첫 삽을 떴다.

이날 모임은 지난 97년부터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하여 형성된 이우교육공동체가 현실 속에 뿌리내리기를 시작하는 첫 행사였다. 참석자들은 천지신명께 이우학교와 이우교육공동체의 성공을 기원한 뒤 광교산 끝자락, 야산으로 올라 학교터를 둘러보았다.

지금은 잡목숲에 불과하지만 올 9월부터는 미래를 이끌어갈 새로운 인간형을 배출해낼 터전이 될 것을 꿈꾸면서···

이우교육공동체의 공동대표 중 한 명인 정광필씨를 지난달 27일 만나 이우학교의 이념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보았다. 편집자

정광필 공동대표는 시종'일반화'를 강조했다. 대안학교에서 시도된 실험과 성과가 일선 교육현장과 교육정책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당국이 대안학교의 성과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뿐 아니라, 대안학교 스스로도 제도권 교육에 일반화시킬 수 있는 전형을 만들어야 한다고 정 대표는 덧붙였다.

이우(以友)학교가 우리나라 최초의 '도시형·통학형' 대안학교를 표방한 것도 '일반화'의 연장선에서다. 정 대표는 "기존의 11개 대안학교가 이룬 성과는 매우 크다"면서도 "시골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는 기존 대안학교 모델을 일반 학교에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이어 "정부의 정책 개혁과 전교조가 시도하는 교육의 내적 변화라는 두 축에 실제 모델 개발이라는 한 축이 더 보태져야 하는데, 그 한 축을 이우학교가 보여주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사진 1>

***'21세기에 더불어 사는 삶'이란?**

'이념적으로' 이우학교는 '21세기에 더불어 사는 삶'을 추구한다.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가 지어준 '以友'라는 이름의 의미는 "좁게는 친구와 진정한 우정을 나누고, 넓게는 천지만물을 벗 삼는다는 뜻"이라고 정 대표는 설명한다.

정 대표는 "그것은 옛날로 돌아가는 목가적 삶이 아니라 도시라는 현실에서의 공동체적 삶"이라며 "공동체적 삶 역시도 일반화를 위한 것이다"고 말했다. 이우학교가 학교 외에도 생활협동조합이나 신용협동조합을 계획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공동체적 삶'에 대한 시도다. 교육을 매개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나가겠다는 것이다.

그는 또 "요즘 누구나 말하는 '창의력과 상상력이 조화된 인간형'에 우리도 동의한다"며 "그것은 21세기에 더불어 산다는 측면에서 그렇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러나 기존의 주입식 교육으로는 그런 인간형을 만들기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특이한 수업방식과 교과과정…"대학진학은 목표가 아니라 결과일 뿐"**

이우학교는 중·고등학교 6년 과정의 대안학교라는 점 외에도 '자기주도형', '분기 집중식' 학습이라는 특이한 수업방식과 교과과정을 시도할 예정이다.

자기주도형 학습이란 '가르치는 사람이 더 배운다'는 생각으로 교사들이 강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 스스로가 공부하고 준비해 와서 세미나 형식의 수업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교사는 단지 보조 역할을 할 뿐이다.

분기 집중식 학습은 특정 과목을 분기별로 집중함으로써 학습 성취도를 향상시킨다는 것. 이를 위해 이우학교는 한 학년을 두 학기가 아닌 네 분기로 나눈다. 예를 들어 1분기에 과학을 주로 배운다면, 2분기에는 수학을 집중적으로 공부한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한 학기에 십여개의 과목을 동시에 가르치는 일반 학교의 수업진행은 "짜맞추기식"에 불과하고 오히려 학습능력 향상에 방해가 된다고 비판했다.

정 대표는 "학습의 효율성에 있어서도 우리 방식이 훨씬 나을 것이다"면서도 "그러나 이우학교가 입시명문이 되는 것은 결단코 사양한다. 대학은 결과적으로 가면 되는 것이지 그것이 목표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학생선발 과정에 학부모 면접을 포함시키는 이우학교의 특이한 선발 전형은 "대학진학은 학습의 결과일 뿐"이라는 방침에서 나온 것이다. 정 대표는 "입시를 위해 이우학교에 아이를 입학시키려는 부모들을 절대 사양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학생 선발에도 필답고사는 없다. 대신 사회성 감수성 지적능력 의지력 체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몇가지 프로그램 통해 그 성취도에 따라 학생을 선발할 계획이다.

<사진 2>

***97년부터 준비, 각계각층의 인사 망라**

도시형 대안학교에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논의를 시작한 것은 지난 97년의 일이다. 그들은 작년 12월에 이우교육공동체를 창립했고 일년 후인 지난 22일 성남 분당에서 기공식을 갖게 되었다.

교육공동체에는 교육부 장관이었던 이명현 서울대 철학과 교수, 전 청소년보호위원장 강지원 변호사 등 일반인들에게 낯익은 얼굴을 비롯, 사회 각 분야에서 다양한 활약을 하는 87명의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의 한 가지 공통점은 우리 사회의 변화에 있어 교육의 변화를 중요한 고리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우학교의 교사들은 94년부터 정 대표와 함께 일을 같이했던 사람들과 최근 새로 선발한 교사 16명으로로 구성되었다. 교사도 논술에서 심층면접에서 그룹토론까지 다면적인 평가를 통해 선발했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현직교사 출신으로, 기존 제도권 교육의 틀에서 교육개혁에 대한 자신의 뜻을 펼치는 데 한계를 느낀 사람들이라고 정 대표는 말했다.

97년 첫 모임부터 이우공동체 형성에 주요한 역할을 해왔던 정광필 대표는 '교육자'로서는 좀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다. 서울대 철학과 출신의 그는 5년간의 선반공 생활 등 십여년간의 노동운동을 거쳐 한때 진보정당에 몸담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정치는 생리에 맞지 않는다고 느껴 눈길을 돌린 것이 교육이었다. 장기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교육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94년부터 분당지역에서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철학교실'도 운영하면서 그는 그동안의 노동운동, 정치활동도 모두 그 자체가 교육사업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이론이 아닌 체험으로 교육을 배운 셈이었다. 이우학교에서 시도될 새로운 교육방법의 씨앗도 가깝게는 '찰학교실'의 경험에서 더 멀리는 그동안의 삶에서 깨친 것이라고 한다. 정 대표는 이우학교가 개교하면 철학, 오지탐험, 독도법, 축구 등의 과목을 가르칠 교사이기도 하다.

다음은 정광필 공동대표와의 인터뷰 주요 내용.

***도시형·통학형 대안학교**

프레시안: 이우학교가 다른 대안학교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정광필: 현재 정규학교로 인정된 대안학교는 11개인데 모두 시골에 있고 기숙사형이다. 이런 조건은 대안학교의 성과를 기존 학교에 일반화시켜 적용하기 어려웠다. 이우학교는 도시형 대안학교이고 통학형 학교이다.

프레시안: 내용에 있어 다른 점은 무엇인가.
정광필: 조심스러운 얘기지만, 기존의 대안학교는 안정성이 다소 떨어졌다. 이우학교는 5-6년 이상 준비하면서 교과내용까지 새로운 것을 준비했다. 또 고1을 받아서 고3때 내보내면 시간이 너무 짧아서 아이들의 변화시키기가 어렵다. 이미 중학교를 거치면 아이들이 '굳어진다'고나 할까. 그래서 이우학교는 중·고등학교 6년 과정이다.

<사진 3>

프레시안: 이우학교가 추구하는 점이랄까.
정광필: 우리는 '21세기에 더불어 사는 삶'을 추구한다. 그것은 옛날로 돌아가는 목가적 삶이 아니라 21세기의 구체적인 조건 속에서 더불어 사는 삶을 어떻게 실현하느냐, 도시에서의 공동체적인 삶은 어떻게 실현하느냐를 고민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학교뿐만 아니라 생활협동조합이나 신협 같은 공동체 생활도 시도할 생각이다. 95%의 사람들이 도시에 모여 사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바꿔보고자 하는 생각이다. 교육은 하나의 고리다.

프레시안: 어떤 성과를 바라는가.
정광필: 성남-분당-수지 권역에서 우리의 성과가 일반화되어 안양, 부천, 인천, 서울, 원주, 청주로 확산된다면 기존의 학교와 영향을 실질적으로 주고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의 교육정책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되면서 우리의 성과가 우리나라 교육 전반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큰 그림을 그렸다. 교육정책에서의 개혁과 전교조식 내부 개혁, 그리고 새로운 모델 시도(이우학교)라는 세 축의 변화가 필요하다.

***자기주도형·분기집중식·블록단위 수업시간**

프레시안: 교과과정이 구체적으로 일반학교와 어떤 점이 다른가.
정광필: 과거의 국내외 대안학교 사례의 성과를 이어 받아 거기에 우리의 현실에 맞는 대안학교를 고민한 것이다. 따라서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 다만 구체적으로 교육과정에 있어 차이는, 우선 수업의 형식을 '블록'단위로 했다. 블록단위는 한 과목을 한번에 90-100분 혹은 그 이상 수업 한다는 것이다. 또 한 학기를 두 개의 분기로 나눠 1분기에는 과학, 2분기에는 사회를 집중하는 식으로'주기집중식' 수업을 한다. 소수의 과목에 집중해야 무엇인가를 깨우쳐 한 단계 올라갈 수 있다고 본다. 여러 과목을 동시에 하는 것은 실속도 없고 짜맞추기이다.

프레시안: 수업에서의 특징은 무엇인가.
정광필: '자기주도형 학습'이 핵심이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강의를 하지 않을 생각이다. 수업진행은 세미나 식으로 학생들이 한다. 아이들이 전혀 할 수 없는 부분은 인터넷에 강의안을 미리 다 올려놓을 것이다. 미리 필요한 것을 공부해 오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학생들이 직접 배우고 가르치게 된다. 학생이 가르치게 되면 가르치는 본인이 더 공부가 된다. '창의력과 상상력을 갖춘 21세기형 인간'은 그렇게 길러져야 한다.

프레시안: 교사들은 어떤 분들인가.
정광필: 16명중 일부는 처음부터 같이 일했던 분들이고, 일부는 새로 전형절차를 통해 뽑았다. 서류전형 후, 논술-토론-심층면접-시범강의의 프로그램을 거쳐 뽑았다. 경쟁률 10대 1이 넘는 과목도 있었다. 제도권 학교에서 자기 뜻을 펼치지 못한 선생님들이 많이 왔고 앞으로의 잠재력이 있는 분들을 중심으로 뽑았다.

***학생선발에 학부모 면접까지 포함**

프레시안: 내년 가을 개교하면 어떻게 신입생을 받나.
정광필: 우선 9월 중간개교라서 중1, 고1을 전학형식으로 받을 생각이다. 학생선발에 필답고사는 없고, 사회성 감수성 지적능력 의지력 체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1단계 서류전형 후, 학생개별 심층면접과 학부모면접, 몇 가지 프로그램을 통한 성취도를 평가할 것이다. 학부모 면접을 굳이 넣는 이유는 우리가 입시명문으로 되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구체적인 선발 일정은.
정광필: 내년에는 첫 선발이라서 7월에 하고, 다음해부터는 매년 11월에 한다.

프레시안: 그래도 대학은 갈 수 있어야 하지 않은가.
정광필: 결과적으로 대학에 가면 되는 것이지, 그것이 목표는 아니다. 좋은 대학 갈 욕심에 오는 학생은 철저히 배제시킬 생각이다. 본말이 전도되는 것을 결단코 원치 않는다.

프레시안: 일반학교와 수업료는 어떤 차이가 있나.
정광필: 이우교육공동체 재단지원금을 받아 수업료는 일반 학교의 1.5배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학원에 다닐 필요가 없고, 아이들 역시 학원을 거부할 것이므로 사교육비가 전혀 들지 않을 것이다. 정원의 5%는 학교장 추천으로, 이우학교의 교육이념에 적합하다고 생각되면서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로 우선 선발할 계획이다.

<사진 4>

프레시안: 이우학교 설립 과정을 설명해 달라.
정광필: 97년 처음 7-8명이 모여 학교를 세워보자고 했다. 작년 12월에 창립한 이우교육공동체 회원은 현재 87명인데, 공동설립자 모임이다. 처음부터 아무런 대가 없이 2천만원 이상의 출연을 했다.

프레시안: 이우교육공동체 회원이나 같이 활동하는 분들은 어떤 분들인가.
정광필: 특성을 규정할 수 없이 다양하다. 예를 들면 강지원 변호사, 이경재 한국리더십센터 소장, 인간교육실현 성남분당 학부모 연대 회장인 김미숙씨, 교육개발원의 이종태 박사 등이 있다. '특성화교육'을 처음으로 개념화한 이명현 전 교육부장관은 공동체의 고문으로 내용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고 계시다.

프레시안: 교육부와의 교류는 어떠한가.
정광필: 이상주 교육부총리도 우리에게 비상한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서도 정책적으로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프레시안: 이우학교가 잘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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