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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분명한 입장을 밝혀라"

李ㆍ盧, SOFA 문제 수위 조절에 진땀

여중생 장갑차 사망사고와 관련, 가해 미군 2명에 대한 무죄 평결을 계기로 확산되고 있는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 문제가 대선정국의 민감한 이슈로 떠올랐다.

김근태 송영길 이창복 등 민주당 의원 22명, 원희룡 서상섭 등 한나라당 의원 3명, 자민련 정진석 의원, 개혁국민정당 김원웅 의원 27명은 2일 '불평등한 SOFA 개정 결의안'을 발표하고 이를 국회에 제출, 내년 초 임시국회에서 채택하도록 하겠다고 밝혀 정치권 차원의 직접 행동을 시사했다.

이들은 결의안을 통해 ▲부시 미국 대통령의 직접사과 ▲SOFA 규정의 불평등 조항 개정 ▲미군 훈련시 안전조치 강화 ▲정부 내 미군범죄 조사 특별전담기구 설치 등을 촉구했다.

이처럼 여중생 사망 사건과 SOFA 문제가 정치권 현안으로 떠오르면서 대선후보들의 입장이 적잖이 난감해졌다.

한나라당 이회창,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SOFA 개정의 필요성에는 원론적인 공감을 표하면서도 대선을 코앞에 두고 보수층의 반응을 의식, 직접적인 행동에는 섣불리 나서지 못하고 있다. 대신 각 당은 의원들을 중심으로 SOFA 개정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여론 동향에 대응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들을 중심으로 대선 후보들의 보다 구체적인 입장 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어, 여중생 사망사건과 SOFA에 대한 발언 수위가 대선 후보들의 대미관을 가늠하는 잣대로 급부상할 전망이다.

특히 각 당은 3일부터 시작되는 대선후보 합동 TV토론에서 여중생 사망사건과 SOFA 개정 문제가 거론될 것에 대비, 대응논리 마련에 부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결과가 주목된다.

***李, SOFA 따로 한미관계 따로**

SOFA 개정에 대해 일반의 예상보다 발빠른 대응을 보인 쪽은 한나라당이다. 한나라당은 2일 불평등한 SOFA 개정과 여중생 사망사고와 관련, 가해 미군들에 대한 한국 법정에서의 재심을 촉구하기 위해 3일부터 서명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한나라당 SOFA 개정특위 이부영 위원장은 "SOFA는 개정된 지 2년이 채 안됐으나 국익과 국민보호 차원에서 개선해야 할 부분은 반드시 다시 개정돼야 한다"면서 "미군법정에서 무죄평결을 받은 두 미군도 한국 법정에서 재판이 다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서명운동은 내일(3일) 당사에서 이회창 후보가 서명하는 것을 시작으로 우선 당원들을 대상으로 하되, 선거법 저촉 여부를 따져서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확대할지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또 현재 미군 뿐만 아니라 미군가족, 군무원, 용역원들까지 포함돼 있는 SOFA 치외법권 대상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한국측 재판관할권도 넓히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 SOFA 개정안을 마련키로 했다.

한나라당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2일 시민사회연대위원회(위원장 이부영) 명의로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살인사건 범국민대책위원회에 참여, 앞으로 범대위와 행동을 같이 해나가기로 했다. 한나라당은 3일 이와 관련한 기자회견도 가질 계획이다.

한편 이회창 후보는 여중생 사망사건을 계기로 "SOFA는 개정돼야 한다"는 입장을 표하면서도 "한국 외교의 기본은 여전히 긴밀한 한미 동맹관계인 만큼 한반도에서의 미국의 역할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아울러 강조했다.

특히 이 후보는 여중생 사건과 관련, "우리 국익과 국민이익을 우선해 해결해 나가되 이를 반미감정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최근 고조된 반미감정에 강한 우려를 표하고 '여중생 사망사건'과 '한미관계'를 구분지어 접근하는 태도를 보였다.

한나라당의 이같은 움직임은 개혁적 이미지의 이부영 의원 등을 앞세워 일반시민의 무죄평결 항의운동에 적극 동참하는 모습을 보이되, 이 후보는 보수 지지세력을 의식해 중도적 노선을 견지한다는 이원적 전략에 따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盧, 색깔공세 의식해 신중한 태도 견지**

민주당도 당 차원에서는 SOFA 개정에 대한 미국측과 한국 법무부의 적극적인 개정 노력을 강하게 촉구하고 나섰다.

이낙연 대변인은 1일 여중생 사망사건 미군 무죄평결에 대한 항의집회 확산과 관련,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사과했으나 재발방지책을 밝히지 않은 것은 아쉽다"며 "미 정부가 재발방지책을 제시하는 등 성의있는 자세를 보여야 하며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개정에도 성의있게 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대변인은 또 "이 문제에 대해 한국정부가 취한 태도도 유감스러우며 특히 SOFA 개정과 관련한 법무장관의 소극적 자세는 크게 잘못됐다"며 "법무장관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해명하고 SOFA 개정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를 국민앞에 밝히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동안 "미국에 굽실굽실하지 않겠다"며 대미 자존심을 강조해 온 노 후보는 이번 여중생 사건을 통해 고조된 한미간의 불평등한 관계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언급을 삼가는 분위기다. 노 후보가 직접 이 문제를 거론하고 나설 경우 보수세력에게 색깔공세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노무현 후보는 SOFA 개정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도 한미동맹관계에 기반한 남북화해 협력정책 추진 및 북한 도발 불용, 전쟁억지력 강화 등을 강조, 자신의 안보관에 대한 보수층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지난 주말 촛불 추모제를 계기로 이번 사안이 빠르게 범국민적 현안으로 급부상하고 있으며 이에 비례해 보수진영 내에서는 각 후보들이 '분명한 노선'을 밝혀야 한다는 반작용도 증폭되면서, 이회창-노무현 후보를 향해 이 문제에 대해 보다 분명한 입장을 밝히라는 압력도 거세질 전망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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