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불명예 퇴출’이냐, ‘명예 퇴진’이냐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불명예 퇴출’이냐, ‘명예 퇴진’이냐

<기자의 눈> 노정객 JPㆍ이한동에게 보내는 고언

'구악(舊惡)'의 상징 장세동씨가 한국 정치의 '구태'를 꾸짖으며 대선판에 뛰어든 것을 보니 정치권이 어수선하기는 한 모양이다. 그도 그런 것이 '철새'니 '이합집산'이니 하는 정략적 담합정치가 여전히 정치면을 도배하는 게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세동씨가 우려할 정도로 군사정권의 터널을 벗어난 이후 한국 정치가 뒷걸음질만 쳐온 것은 아니다. 집권기의 권력 비리로 누더기가 됐을 망정, 양김 집권기는 군사정치의 종식과 사회민주화의 토대를 마련했다.

2002년 대선의 화두중 하나가 '3김 정치의 극복'이 된 것도 역설적으로 이런 토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겠다. 역사적 소명을 다한 '3김 정치'를 넘어 이제 새롭고 발전적 정치를 경험하고 싶다는 국민적 열망이 '노풍'또는 '정풍'을 일으킨 동력이었다.

그러나 이 시대흐름을 못 읽는 이들도 있는 듯 싶다. 3김 시대의 한 주역이던 김종필 자민련총재(JP)와 3김 시대의 영원한 조연이었던 이한동 전 총리가 그런 대표적 예다.

JP는"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한동 전 총리는 1%도 안 되는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오십여배 지지율이 높은 정몽준 후보에게 '경선 운운'하고 있다.

지금 이 말을 접하는 국민들은 쓰디쓴 실소를 금치 못하고 있다.

***"노추를 보이지 말고 명예롭게 은퇴해야…"**

40년 정치인생에 겪지 않은 풍상이 있을까마는 JP의 요즘 심경은 자신이 살아온 어느 때보다도 불편하리라는 짐작이다. 자민련 의원들마저 '쿠데타' 수준의 노골적인 반기를 들고 나섰기 때문이다. 대선 정국에서 대선후보조차 내지 못한 쇠락한 당의 총재가 짊어져야 할 비참한 말로다.

단적인 예로 21일 소속의원 11명이 참석해 열린 자민련 의원총회는 일견 '단결의지'를 천명한 자리인 듯 했으나, 사실은 JP의 무너진 위상이 확인된 자리였다. JP가 추진하던 4자 연대가 이날 회의에서 초토화됐기 때문이다. 회의후 일부 의원들에게서는 "이제는 JP가 더이상 노추를 보이지 말고 명예롭게 정계를 은퇴해야 한다"는 주장이 공공연히 흘러나오기까지 했다.

이들의 이해관계는 간명하다. 한나라당이건 정몽준 신당이건 각자 새 둥지를 찾아야 할 처지인데, 김 총재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푸념이다. 더욱이 내심 한나라당행을 희망하는 다수 의원들에게 김 총재의 퇴진은 절실하다.

이회창 총재는 며칠 전 "JP도 괜찮다"고 말했다. 정몽준 후보 중심으로 급박하게 진행되던 4자연대를 깨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 총재의 속내는 그렇지 않아 보인다. 얼마 전 한나라당과 자민련간의 이른바 '한-자 동맹'이 거론됐을 때 한나라당은 자민련과의 결합을 거부했다. "이미지가 나빠진다"는 이유에서였다. JP의 효용가치에 대한 노골적 반감이었다.

세력 불리기가 급한 '4자연대''반창연대'를 외치는 세력들 역시 자민련 현역 의원들의 개별 투항을 원하지, 구태정치의 표본으로 여겨지는 김 총재와 지분협상을 할 의지는 거의 없어 보인다. 이들 역시 내심 JP의 퇴진을 희망하는 분위기다.

재계 등 주류집단이 바라보는 시선도 싸늘해 보인다. 모 재벌그룹의 구조조정책임자는 "요즘 JP쪽으로 돈이 전혀 모이질 않아 자민련이 여간 고생스럽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돈이 모이지 않는다는 의미를 JP가 알아야 할 텐데 아직도 마지막 욕심을 버리지 못한 듯 보여 안쓰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1% 지지율의 대선후보?**

'4자 연대'를 기웃거리는 이한동 전 총리도 위태롭기는 JP와 크게 다르지 않다.

97년 대선 당시 신한국당 경선에서 패배한 이후 이한동 전 총리의 대권 야망은 사실상 물건너갔다. 그후 심심치 않게 흘려온 '중부권 대망론'도 현실가능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이한동 전 총리는 현 정권 출범후 기막힌 변신을 거듭해 자민련 총재를 거쳐 DJP공조 붕괴 후에도 총리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으나, DJ정부가 레임덕에 걸려 아무런 주목도 못 받던 터에 퇴임후 돌연 대권 도전을 선언하고 나선 데는 의혹의 시각이 적지 않았다. 대선후보로 몸값을 극대화해 특정세력과 지분협상에 돌입, 차기 총리나 당권을 노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특히 최근 4자연대 협상과정에 1%에도 못미치는 지지율을 앞세워 용감하게(?) 백지상태에서 후보 경선을 다시하자는 최근 주장도 명분을 내건 지분협상 카드로밖에 읽히지 않고 있다.

이같은 세간의 의혹이 사실이더라도 현 상황은 이 전 총리의 계산대로 움직이지는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4자연대 방향타를 쥐고 있는 정몽준 신당 입장에서 이 전 총리는 사실상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구시대 정치를 대표하는 이 전 총리에게 총리나 당권이 돌아갈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

***'명예 퇴진'이냐 '불명예 퇴출'이냐**

현실정치 논리에서건 역사적 의미에서건 2002년 대선은 김 총재와 이 전 총리에게 '퇴진'을 강요하는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특정 세력에게 정치적 연명을 구걸할 경우 이들 원로 정객들은 현실정치로부터 '퇴출'운명을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지난 97년 DJP 공조를 일궈내며 JP는 "목수가 집을 짓는 것은 자기가 살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는 명언을 남겼었다. JP의 말은 DJ 집권으로 현실화됐고, 그 안에서 이한동 전 총리는 집안 살림을 맡아왔다. 3김 시대의 마지막 장도 이들은 화려하게 장식했던 셈이다.

이제 3김의 빈 자리에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이 역사적 필연임은 누구보다 이들이 잘 알 것이라 믿는다.

남은 것은 이들이 자신의 숙명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이다.

특정 세력을 위한 집이 아니라 새로운 정치를 위해 보다 너른 마당을 남기고 떠나는 노련한 '목수'의 명예로운 뒷모습을 보여줄 때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