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22일 전격 발표한 군복무기간 단축안을 둘러싸고, 현실적 대안이냐 아니면 선심성 공약이냐를 둘러싸고 정치권의 논란이 뜨겁다.
당초 군복무기간 단축을 가장 먼저 들고 나온 곳은 민주노동당이었으나 그동안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하다가, 한나라당이 이를 들고 나오면서 여야간 핵심쟁점으로 급부상하는 추세다.
군복무기간 단축은 젊은층 공략이 시급한 한나라당 대선전략의 일환으로 등장한 만큼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시각이 대체적이나, 워낙 젊은층의 관심이 높은 사안인 만큼 당 내분으로 여념이 없는 민주당으로서는 허를 찔린 셈이다. 더욱이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 등도 군복무 단축안에 대한 구체적 입장 표명을 요구받고 있어 대응이 시급해졌다.
***한나라당, "대학생 위해 군복무기간 2개월 단축하겠다"**
한나라당은 지난 22일 지원병제 확대, 군복무기간 2개월 단축, 경찰인력 확충 등을 골자로 하는 군ㆍ경찰분야 대통령 선거 공약을 발표했다.
이상배 정책위의장이 명분으로 내세운 것은 '대학생 민원론'이다. 그는 "병역기간이 2년이면 4학기만 휴학하면 되는데 2년2개월이어서 5학기를 휴학할 수밖에 없어 그간 대학생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며 "남북한간 군사적 신뢰구축이 확고히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재의 남북관계를 고려, 군전력의 손상없이 군복무기간을 차기 대통령 임기내 2개월 이상 단축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정책위는 구체적 방안으로 ▲고위험, 고기술 복무영역에 대한 지원병제 적극 도입 ▲공익근무요원과 전경, 산업기능요원을 단계적으로 군으로 환원하는 등 병역특례제도 정비 ▲근무지역ㆍ형태에 따라 복무기간을 조정하는 탄력복무제 도입 ▲대학의 학기와 재학생 입영시기 상호 연동 등의 공약을 제시했다.
정책위는 "우리 군은 현재의 병력집약형 전력구조를 개선, 소수 정예와 첨단장비 중심의 기술집약형 과학기술군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면서 "국방예산에서 차지하는 인건비 비중을 줄이고 전력 투자비를 대폭 확대, 국방전력을 증강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당혹감 속에 "특정정당이 선심쓰듯 결정할 사항 아니다" 반격**
이에 대해 민주당 임채정 정책위의장은 당일 바로 "군 복무기간 단축문제는 관계부처는 물론 국민적 컨센서스를 모아 심사숙고해 결정할 문제이지 특정 정당이 선심쓰듯 결정할 사항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임 의장은 "소속 의원 3분의 1이 군대를 가지 않았고, 이회창 대통령 후보 두 아들이 모두 군대를 가지 않아 `병역면제당'으로 불리는 한나라당의 즉흥적인 발상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장전형 부대변인은 "안보상업주의자 한나라당이 웬 선심정책이냐"면서 "우리 당은 한반도 주변의 안보상황 변화 등을 면밀히 검토한 뒤 신중한 접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이처럼 한나라당의 군복무기간 단축을 '선심공약'으로 일축하면서도, 내심 적잖이 고심하는 분위기다. 요즘 젊은층들 사이에 군복무 기피 또는 군복무기간 단축 기류가 만만치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군복무기간 단축은 남북평화구축 확대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있는 민주당이 마땅히 먼저 내걸었어야 하는 공약이나, 군부 등 보수층의 분위기를 고려하다가 엉뚱하게 보수성향의 한나라당에게 '기습'을 당한 데 대한 곤혹감도 읽히고 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한나라당이 군복무기간 문제를 입영 대상자 전체가 아닌 '대학생'이라는 특정계층의 문제로 접근하는 등 노골적 선심공약이란 점에서는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으나 젊은층에게 군복무 단축이란 상당히 귀 솔깃한 프로포즈인 만큼 무조건 'NO'라고만 할 수도 없는 일이어서 고민"이라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는 이어 "만약 이 문제를 우리 당이 먼저 꺼냈다면 한나라당과 보수언론들이 펄쩍 뛰었을 것"이라며 군복무기간 단축을 문제삼지 않음으로써 한나라당에게 호의적 태도를 보인 보수언론들에 대한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사회 각분야 정책대결로 이어지는 계기 돼야**
군복무 단축안은 대선때마다 각 후보들이 대선공약으로 내세운 단골 메뉴였다. 그러나 구체적 대안 부재로 번번이 현실화되지 못했던 정책이라는 점에서 군 당국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또한 갈수록 현역자원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현행복무기간을 2개월 단축할 경우 군전력 약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잖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의 군복무 단축안은 정책 자체보다는 추석 직후 이회창 후보가 밝힌 '친(親)젊은이', '우호세력 확대', '정책비전 제시' 등 포지티브 전략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 보인다. 아울러 당내에서는 이를 통해'병풍' 의혹을 일정 부분 희석시킬 수 있기를 기대하는 눈치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선 이번 군복무기간 단축안 논쟁이 구체적 공약을 놓고 맞붙은 정당간 첫번째 공방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 평가도 나오고 있다. 정책의 허와 실에 대한 치열한 공방 속에서 공약의 실현가능성이 높아지고 각 정치집단의 차별성이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 등 다른 대선 주자들에게도 군복무 단축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 표명이 요구되고 있다.
이미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표는 지난 8일 대선출마 공식 선언을 통해 남북 공동 군축을 위해 징집제도의 모병제 전환과 군복무 기간의 18개월 단축을 대선 공약으로 천명한 바 있다.
정치전문가들은 군복무 단축안을 놓고 모처럼 등장한 공약승부가 그동안 미흡했던 대북정책, 경제정책을 비롯해 주5일 근무제 도입, 평등학군제 존폐, 공무원노조 허용 여부 등 각종 사회 현안에 대한 구체적 정책 대결을 촉발시키는 계기로 작용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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