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로 활동시한이 종료되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시한연장이 정치권의 무관심 속에 무산됐다.
이로서 '제2의 반민특위'로 불리우며 권위주의시절 발생한 억울한 죽음의 진상규명을 목적으로 2000년 10월 출범한 진상규명위의 활동은 수많은 미해결 사건을 뒤로 한 채 1년 9개월의 법적 활동시한을 마감했다.
그동안 진상규명위는 83건의 조사대상 사건 중 11건은 직간접적인 공권력에 의해 희생된 사건으로, 21건은 민주화운동과 관련성이 없는 것으로, 11건은 진상규명 불능 판정을 내렸다.
절대적인 인력·권한 부족과 관련기관 및 당사자들의 비협조 속에서도 진상규명위는 73년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받는 도중 사망한 서울대 최종길 교수 사건, 97년 숨진 한총련 투쟁국장 김준배씨 사건, 84년 허원근 일병의 사망 조작사건 등의 진상을 파헤치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조사가 완결되지 않은 나머지 40건은 진상규명위의 활동 종료와 함께 또다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물론 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에 따라 활동시한이 끝난다고 해도 내년 3월까지는 보고서 작성 및 각종 권고조치를 할 수 있어 진상규명위의 존속기간은 아직 남아있으나 이 기간동안 개정안이 통과돼 조사활동이 재개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진상규명위 활동에 정부는 '무입장'**
진상규명위 활동기간 연장이 무산된 책임은 일차적으로 정부측에 있다.
4백22일에 걸친 유족들의 천막농성 끝에 '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이 만들어지고 2차례의 법개정을 통해 활동기한이 지금 상태로 연장되기까지 정부는 여론에 떠밀려 왔을 뿐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주지 않았다.
또한 오래전부터 시민사회단체, 유가족들은 조사기간 연장과 조사권한 대폭강화, 반인륜적 범죄자에 대한 공소시효 배제 등을 골자로 하는 3차 법개정을 추진했음에도 정부는 시한종료가 임박한 지난 7일과 10일에서야 각각 의원입법 형태로 국회에 제출하는 늑장대응을 했다.
더욱이 진상규명위가 대통령 직속기구임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측은 애초 진상규명위는 의원입법을 통해 만들어진 기구이기 때문에 해당 법안이 국회에 계류중인만큼 국회 논의를 존중하겠다는 방침만을 되뇌었다. 진상규명위의 존재가치에 대한 '무입장'에 다름아니다.
***법안처리 외면한 국회의 책임방기**
진상규명위 활동연장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기는 한나라당과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시한연장에 반대했다는 주장이고 한나라당은 이에 대해 개정안 지각 제출로 시간상의 한계가 있었다고 반박, 책임 공방에 급급하다. 시한연장의 필요성에 목소리를 높인 양당 대표의 주장도 실제적인 법안처리를 위한 노력으로 이어지지 않아 여론의 비난을 회피하기 위한 면피성 발언이라고 밖에 볼 수가 없다.
특히 법사위 소속 의원에게서 "지금까지 밝혀진 것은 밝혀진대로 처리하고 나머지는 검찰에 넘기면 된다"는 발언이 나올 정도로 특별법 개정과 관련된 문제는 정치권의 관심 밖이다.
이 같은 정치권의 무관심 속에 진상규명위의 시한연장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은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지도 못했다. 게다가 국정감사 때문에 국회는 14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본회의를 휴회할 예정이어서 현행법에 따라 보고서 작성 등을 제외한 진상규명위의 모든 활동은 중단됐다.
설령 진상규명위가 존속하는 동안 법개정이 이뤄진다 해도 올초 2차 법개정 당시 법사위 의원들이 위원회 조사관에게 수사권을 포함한 각종 권한 강화 조항에 반대했던 것을 상기해 볼 때, 유족들과 시민단체들이 요구하는 실질적인 권한강화는 배제된 채 활동 시한만 연장될 가능성이 높다.
***시민사회단체, 지속적인 법개정 투쟁 방침**
한편 특별법 개정이 무산됐음에도 불구하고 유족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은 법개정 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방침이다.
이들은 16일 광화문에서 의문사 조사 중단에 대한 기자회견을 통해 법개정을 촉구하는 한편 17일과 18일 이틀동안 '의문사진상규명 법개정 촉구 1인시위'를 국회앞과 한나라당, 민주당사 앞에서 벌이기로 했다.
또한 관련기관의 비협조와 국가정보원, 기무사령부, 검찰, 경찰 등 조사대상 기관들이 현장조사나 자료제출을 거부하는 등 완강하게 반발한 점도 진상규명위 활동에 발목을 잡은 원인으로 보고 기한 연장과 더불어 실질적인 권한 강화를 함께 촉구할 방침이다.
이들은 일단 다음달에 열릴 국회 법사위에 민주당 이창복 의원, 한나라당 김원웅 의원 등이 발의한 의문사규명위 관련법 개정안이 심사돼 10월 25일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는 방안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그간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정치권의 태도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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