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4회 정기국회가 오늘 개회된다. 연말 대선을 겨냥한 정치권의 공방도 국회로 무대를 옮겨 한층 가열될 조짐이다.
대선 일정상 회기를 30일 정도 단축한다는 데 양당이 합의함으로써 이번 정기국회 기간은 70여일에 불과하지만 정치권의 극한정쟁 속에 민생현안이나 주요 입법과제들은 뒷전으로 물러날 분위기다.
특히 새 총리지명자 인사 청문회와 인준안 표결, 공적자금 국정조사와 청문회, 국정감사, 대통령 두 아들 등 권력형 비리 국정조사 및 TV청문회, 병무비리 특검제 채택 여부 등 대선과 직결된 사안은 양당의 사생결단식 정치싸움이 예상된다.
우선 육탄 충돌 일보직전까지 치달았던 김정길 법무장관 해임건의안은 우여곡절 끝에 자동폐기됐지만 한나라당은 정기국회 벽두부터 재차 꺼내들고 나설 분위기다. 한나라당은 또 두 차례의 총리 인준안 부결에도 불구하고 총리서리를 다시 임명할 경우 대통령 탄핵까지 검토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반면 민주당은 '병풍'을 매개로 한나라당과 이회창 후보에 대한 공세의 강도를 바짝 조일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나라당이 수적 우위를 앞세워 김 법무장관 해임과 총리인준 등의 사안을 관철시키려 할 경우 실력저지도 불사한다는 방침이어서 파란이 빚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에따라 9월 16일부터 10월 5일까지로 예정된 국정감사와 10월 7일부터 10일까지 열릴 예정인 공적자금 TV 청문회 등은 양당의 첨예한 대립으로 인해 정상 진행 여부조차 불투명한 상태다.
***한나라당, 권력비리 총공세 방침**
한나라당은 대선을 코앞에 두고 열리는 이번 정기국회를 현 정부의 집권 5년에 대한 총체적인 심판의 장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장대환 총리지명자 임명동의안 처리 과정에서 확인된 거대야당의 힘을 몰아부쳐 공적자금 부실운용, 권력비리 문제에 대한 집중 추궁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은 이미 ▲공적자금 운용의 난맥상 ▲회수불능으로 인한 국민부담 ▲상환계획과 이자부담 ▲공적자금 비리규모 ▲헐값 매각으로 인한 국부유출 ▲특정재벌 봐주기 ▲공적자금 돈잔치의 주체 등 7대 의혹을 제시한 상태다.
한나라당은 또 공적자금 국정조사 증인·참고인 대상과 관련, 진념 전 경제부총리, 이헌재·강봉균 전 재경장관, 이근영 금감위원장, 이기호 청와대 경제특보 등과 함께 대통령 차남 홍업씨와 처조카 이형택씨, 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도 채택해야 한다며 전방위 공세를 예고하고 있다.
홍업, 홍걸씨 비리의혹에 대한 국정조사 및 TV 청문회 등 그동안 수차례 주장해 온 단골메뉴도 이번 정기국회를 통해 대대적으로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 한나라당은 권력 핵심부의 비리의혹을 이번 정기국회에 모두 폭로한다는 방침하에 '대선자금 의혹', '대통령일가의 부정축재 의혹' 등을 집중 제기할 전망이다.
또한 '병풍' 정국과 관련, 김정길 법무장관 해임안과 MBC를 국감대상에 포함시키자는 주장도 빠질 리 없다.
서청원 대표는 1일 한화갑 대표가 제의해 온 대표회담에 대해 그동안의 '병풍' 공세와 박관용 의장 등원 저지에 선(先)사과를 전제조건으로 내세우는 등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였다.
또한 소속의원 1백39명 전원 명의로 MBC를 국정감사에 포함시키는 것을 골자로 하는 감사원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키로 했으며 김 법무장관 해임안이 자동폐기된 31일, 정기국회에 이를 다시 제기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민주당, 이회창 의혹 총공세 방침**
반면 민주당은 병역비리 의혹을 필두로 이회창 후보에 대한 십자포화를 퍼부을 태세다.
민주당은 대정부 질문과 상임위 활동, 국정감사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병역비리 의혹은 물론 세풍, 안기부 자금사건, 호화빌라 문제 등과 관련한 새로운 의혹 발굴에도 주력해 여차하면 이에 대한 국정조사나 특검제 도입도 제기할 방침이다.
배기선 기조위원장은 1일 "병풍의 본질은 국법질서를 어긴 문제에 대해 검찰 수사가 진행중인 사안"이라며 "한나라당이 검찰수사 중단이나 방해를 시도하거나 언론의 기본자유를 훼손할 경우 회피하거나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강경은 강경대로, 온건은 온건대로 대처할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민주당은 또 공적자금 국정조사는 철저하게 경제논리로 접근해야 한다는 방침아래 운용과정의 투명성 점검, 책임자 처벌, 공적자금의 효율적 관리체계 확보 방안에 주력하되 한나라당의 정치공세는 단호하게 차단한다는 방침이다.
이에따라 증인의 경우 조사대상 기관당 1명으로 한정하고 공적자금 운영, 집행과 무관한 정치권 인사는 증인 대상에서 배제한다는 입장이어서 증인 채택을 둘러싼 양당의 마찰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또한 총리지명과 관련한 한나라당의 공세에 대해서는 원내 다수당인 한나라당의 책임을 물어 맞대응 한다는 방침이다.
***뒷전으로 물러난 민생현안, 주요 입법과제**
이처럼 정국 주도권 잡기에 사활을 건 양당의 정치싸움 속에 1백13조원 규모의 새해 예산안과 시급히 해결해야 할 민생현안, 주요 입법과제 등은 정쟁의 파고를 넘지 못할 전망이다.
예산안과 관련, 한나라당은 대폭 삭감을, 민주당은 원안 통과를 고수하고 있어 입장차이가 크다. 또한 예산심의 과정부터 예결위원들이 국무위원들을 상대로 정치공세를 벌일 가능성이 높아 진통이 예상된다.
또한 양당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반부패 입법을 공언하고 있으나 양당간 대치 상황에서는 순조로운 법 제정이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중앙선관위가 연말 대선을 앞두고 완전공영제 추진을 위해 선거법 등 정치관계법 개정안을 제출할 예정이나 이 역시 협상이 순조롭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독립과 부패 추방을 위한 검찰청법과 돈세탁방지법 개정, 이번달 16일로 활동기한이 끝나는 의문사진상규명위의 활동시한 연장 문제도 시급히 국회에서 논의해야 할 중요한 과제들이다.
노동부가 마련한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주5일 근무제 도입방안이 이번 정기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주5일 근무제는 양당이 공히 내세운 대국민 약속이기는 하나 입법과정에 노사의 거센 반발이 예상되는 민감한 사안인 만큼 대선을 앞둔 정치권이 이를 책임있게 논의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일용근로자들을 고용보험 대상에 포함시키는 고용보험법 개정안, 유전자재조합식품에 대해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청의 평가를 거치도록 한 식품위생법 개정안, 일제하 피강제동원자 생활안정지원법, 인터넷을 통한 전자고지를 추가한 국세기본법 개정안, 성희롱 예방 조치를 강화한 남녀차별 금지 및 구제법 개정안, 동성동본 금혼제도 폐지와 친양자제도를 도입하는 민법 개정안 등 주요 민생 현안들도 산적해 있다.
회기는 그 어느 때보다 짧고 싸울 일보다는 당장 처리해야 할 현안들이 이처럼 줄을 섰다. 그러나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극한대립 속에 시급한 입법 과제들은 또다시 뒷전으로 몰릴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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