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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한국 대선주자 탐색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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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美, 한국 대선주자 탐색 본격화

라플레어 부차관보 盧ㆍ鄭 만나, 昌 면담은 무산

미국이 한국의 유력 대선주자들에 대한 탐색전을 본격화하고 나섰다.

올해 들어 행정부 인사의 공식·비공식 방한은 물론 비정부 인사들의 방문이 부쩍 늘어난 가운데, 최근 방한한 크리스토퍼 라플레어 국무부 동아태담당 부차관보가 이회창, 노무현 대통령후보와 정몽준 의원을 연쇄접촉하고 있어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라플레어 방한목적 "대선주자 입장 타진"**

28일 방한한 라플레어 부차관보는 방한 목적부터 각 대선주자들의 입장 타진에 비중을 두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관계자들도 라플레어 부차관보의 방한과 관련, "한국 대선에 대한 의견 등을 듣기 위한 것으로 밝혀왔다"고 확인했다.

일단 라플레어 부차관보가 행정부의 실무자급이라는 면에서 1차적인 정보수집의 성격이 강하다는 관측이지만 한국 대선에 대한 미국측의 본격적인 탐색전, 더 나아가 위력 행사가 시작된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등장하고 있다.

지난 7월초에는 토마스 허바드 주한 미국대사가 이회창, 노무현 대통령 후보를 만나 서해교전 사태를 중심으로 북미관계, 한미관계에 대한 의견을 교환한 한 바 있다.

라플레어 부차관보는 29일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와 무소속 정몽준 의원을 만난 데 이어 30일에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면담할 계획이었으나 일정상의 이유로 이 후보와의 면담은 무산됐다.

***정몽준, "내가 여론조사 1위" 자신감 전달**

미국측의 주된 관심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던 노무현 후보와 유력 대선주자로 급부상한 정몽준 의원에게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 의원은 29일 라플레어 부차관보에게 "출마선언도 안 하고 무소속인 내가 여론조사에서 상위권의 지지를 받고, 2-3위를 할 때도 서울, 대전, 강원, 충남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우리 정치에서 전에 없던 현상이 생겨나고 있다"며 "여러 지역에서 골고루 지지를 받는다는 것은 지역감정을 해소할 수 있는 만큼 내가 후보가 되는 게 의미가 있다"며 자신감을 표했다.

이날 면담에 앞서 정 의원이 별도의 독자신당을 통한 대선 출마 의사를 강하게 표한 것과 맞물려 미국측에 자신의 대선출마 의지를 분명히 전한 것으로 관측된다.

정 의원은 지난달 말 워싱턴 방문 당시에도 "리처드 홀브룩 전 유엔주재 미국대사를 만났더니 '이번에 출마하지 않으면 역사의 심판을 받는다'고 하더라"며 자신의 대선출마와 관련 미국측과의 입장조율이 있었음을 시사한 바 있다.

정 의원 입장에서는 지난달의 방미와 이번 라플레어 면담을 통해 자신의 대선출마를 국제적으로 공인받고, 지지도 제고에도 활용하겠다는 계산인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되면 수평적 협력관계로의 변화 요구"**

한편 노 후보측은 이날 면담이 노 후보의 대미정책에 대한 입장을 전달하고 미국측의 불필요한 오해를 불식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노 후보는 이날 라플레어 부차관보에게 "나는 변화와 보수 가운데서 약간 변화 쪽에 가 있는 사람으로, 나름대로 자부심이 강하다"면서 "내가 대통령이 되면 미국에 수평적 협력관계로의 변화를 요구하고 우리 젊은 국민들에겐 (미국에 대한 인식을) 천천히 변화하자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라플레어 부차관보는 이에 대해 "(노 후보는) 젊은이들과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미국에서도 전혀 새로운 인물이 대통령이 되는 경향이 있다"고 화답했다고 배석했던 김현미 부대변인이 전했다.

노 후보측은 그동안 비공개로 미국측의 많은 인사들을 만나 남북관계를 비롯해 한·미관계, 북핵문제, 한국정치 등에 대한 의견을 교환해 왔고 그 과정에서 성과도 많았던 것으로 밝혀왔다.

실제로 노 후보는 지난 5월 클린턴 정부에서 핵문제 해결을 위해 핵심적 역할을 했던 로버트 갈루치 전 미 특사를 만난 데 이어, 미 보수파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의 에드윈 풀너 회장을 6월과 8월에 각각 만났으며, 7월에는 94년도 한반도 핵위기를 담은 '두개의 한국' 저자인 돈 오버도프 교수 등을 면담한 바 있다.

***昌-라플레어 면담일정 취소, '미묘한 신경전'**

반면 이회창 후보는 30일 라플레어 부차관보와의 면담 계획을 돌연 취소, 정가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남경필 대변인은 "이 후보에게 갑자기 급한 일정이 생겨 면담일정을 취소했다"고 설명했으나 일각에서는 대선주자들 사이의 미묘한 신경전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회창 후보는 이미 지난 1월 방미 당시 딕 체니 부통령, 콜린 파월 국무장관, 럼스펠드 국방장관 등 미 정부 실세들과 만난 바 있다. 라플레어 부차관보는 리차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과의 만남에 배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 후보가 국무부 실무담당자만을 따로 만나는 모양새가 좋지 않고, 게다가 노 후보나 정 의원과 동급으로 비쳐지는 것이 탐탁치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후보측은 애초 라플레어 부차관보와의 면담 일정조차 공개하지 않으려는 등 예민한 반응을 보여왔다.

***대선 가까워 올수록 바빠지는 미국**

라플레어 부차관보의 대선주자 접촉에 정치권의 촉각이 곤두선 것은 한국 대선에 미치는 미국의 영향력이 적지 않다는 인식이 적어도 정치권 내에서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무리한 정치공작을 추진해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있는 환경은 아니지만 미국의 입장이 대선에서 충분히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특히 안보의 90%, 경제의 20%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에서 미국의 입김은 어떤 식으로건 한국정치에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실제 올해 들어 한국 대선주자들에 대한 미국측의 반응도 민감하게 나타나고 있다.

일례로 지난 3월 이른바 '노풍'이 급부상했을 때 주한 미 대사관측이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이 포착된 바 있으며, 4월 워싱턴 아시아협회에서 있었던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의 강연에서 "미국은 한국의 새 지도자군이 한국에서의 미국의 전통적 역할에 이의를 제기하는 방향으로 한미관계를 재정립하려 할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대목은 노 후보를 직접 겨냥한 반응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현재 미 대사관 정무과, 미 중앙정보국(CIA) 한국지부 등이 한국 대선 후보군의 성향과 여론추이 등을 일상적으로 살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군사적인 맥락에서의 판단은 어느 정도 섰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29일 라플레어 부차관보가 두 명의 대선후보를 만나 주고받은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대선이 가까워올수록 국내 대선주자들의 움직임만큼이나 미국측도 바빠질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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