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6. 13. 지방선거 결과는, 경악스럽다. 내가 아는 한 야당이건 여당이건 어느 한 쪽이 이렇게 일방적으로 이긴 혹은 진 경우는 없다. 광역단체장 11:4:1.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숫자 비율은 더 심각하다. 완전히 한나라당 판이고 집권당인 민주당은 삽시간에 연고지역 말고는 '희박'해졌다. 제 3당이던 자민련은 멸망의 노래를 불러야 할 판이다. '수구적' 자민련의 몰락과 '진보적' 민주노동당의 선전을 반가워하기도 전에 양당이던 3당이건 그 뒤에 붙어야할 '정치' 자체가 망가져 버린 듯 하다. 뭔가 큰 일이 났는데, 더 놀라운 것은 중계 방송사 어느 쪽도 무덤덤하다는 것이다. 모든 걸 예상했다는 투다. 나는 민주당이 좀 밀린다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까지는 예상치 못했다. 나만 그랬나, 방송도 그랬던 것 같은데? 무덤덤한 이유는 간단하고, 너무 간단해서 끔찍하다. 오늘(14일) 있을 한국과 포르투갈의 축구시합 때문이다. 뉴스는 서둘러 그 얘기로 넘어가고 나는 그게 흡사 월드컵 애국심이 '한나라'만 살리고 '민주'니 '개혁'이니 하는 말을 '희박화'했다는 주장처럼 들린다. 월드컵이 끝나면 도대체 어쩌려고? 지면 어쩌려고, 이기면 정말 어쩌려고? 그것만 먹고 살자는 얘긴가? 월드컵 때문에 투표율이 낮은 게 아니다. (투표 안 한) 젊은 층이 꼭 민주당만 지지한다는 법도 없다. 국민의 일대 심판을 받을 만큼 대한민국 집권정치는 심각하다. 공영 방송은 '이벤트' 혹은 벤처 사업체로 전락했다. 월드컵이 아니라 그런 정치와 방송이 투표율을 떨어뜨린다.
주홍미를 원래 만나려 했던 6. 10항쟁 15주년 날 나는 광화문 거리를 걸었다. 한-미 축구전을 응원하는 붉은 셔츠 물결이 '그날의' 광화문 사거리를 뒤덮었다. 귀가 먹먹할 정도로 노래와 함성이 솟구치고 신세대들이 밝고 명랑했지만 경찰이 처 놓은 줄 속에 너무 온순해서 좀 심심했다. 나는 신세대들이 질서정연한 것이, 좋지 않았다. 아니, '렛즈reds '라는 '말'이 반갑고 신기한 것보다는 서글펐다. '렛즈'는 물론 '빨갱이'라는 뜻. 정말 레드 콤플렉스는 사라진 걸까? 전쟁은 많은 상처를 남긴다. 6. 25는 민간인 피해가 유독 많은 걸로 전사에 기록된 전쟁인데, 그 중 가장 비극적인 사례가 '렛즈'와 연결된 것이다. 미군이 마을로 들어가면 힘께나 쓸 듯한 장정들을 잡아 세우고 총부리를 겨눈 후 동네 아낙이나 촌로에게 묻는다. 렛즈? 렛즈? '이 사람 빨갱이냐? '는 뜻이다. 아낙 혹은 촌로는 영문을 모르지만 자꾸 무언가를 묻는 듯 하므로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미군 총구가 불을 뿜고 장정은 피가 철철 흐르는 가슴을 쥔 채 숨을 거두고, 아낙과 촌로는 어쩔 줄 모르고 바닥에 퍼질러 앉아 운다. 너무 터무니없어 더 비극적인 이 '역사'는 정말 극복된 것일까? '렛즈'들이 그 사실을 알기나 할까? 그렇게 죽은 자들에게 붉은 셔츠는 피칠한 광대옷쯤 되지 않을까? 그래서 술을 먹고 뻗었고 중간에 소낙비가 시원하게 온 듯 했고 술을 깨니 1:1로 비겼다는 소식을 접했고 '이기든지 지든지 할 것이지' 그런 마음으로 술을 더 마셨고 또 뻗었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술을 마신다면야 맞아 죽을 소리지만, 말짱한 정신만 갖고는 사태를 이해할 수도 사태에 도움이 될 수도 없다는 생각을 간간히 말짱한 때를 틈타 하면서. 주홍미를 만난 것은 그 다음 날, 술이 덜 깬 채로다. 그리고 지금, 2002년 6월 14일 아침, 나는 충격적인 패배를 겪은 민주당 대통령 후보 노무현의 '특별담화'를 기다리며 이 글을 쓰고 있다. TV 방송은 '정신차린 경악'의 표정을 보이지만 그보다는 출구 조사 예측이 정확했다는 자랑이 급하고 그보다는 월드컵 드라마를 준비하느라 급하다.
주홍미. 사진으로 보다시피 이름만큼 얼굴이 발그레하고 예쁘지만 87학번이니 '할 말' 시리즈 최연소에 공식 직함이 전 서울시 문화 자문위원 현 서울공연예술전문학교 강사 정도인 그녀를 소개하는데 웬 거창한 '월드'컵과 '지방'선거 '사이'? 그녀는 원래 촉망받는 소프라노였으나 노래운동을 하다 오히려 목을 다쳤다. 당시 노래 운동권, 특히 노동자 노래 운동권은 '대중성'을 이유로 전문 성악 '발성'을 금기시했다. 그때 '목을 다친' 사례는 많다. 그러나 그렇게 되고도 음악에 대한 사랑을 공개음악운동 단체 살림에 쏟은 사례는 많지 않다. 그가 헌신했던 단체 이름은 한국민족음악인협회(민음협). 이건용(한국예술종합학교 학장)은 작곡 뿐 아니라 행정에도 달인이고, 노동은(중앙대 음대 교수)은 이론가일 뿐 아니라 행동거지가 실무적이고, 문호근(작고, 전 예술의 전당 예술감독)은 연출가일 뿐 아니라 정력적인 일꾼이고, 최태현(중앙대 국악과 교수)은 섬세한 예술가일 뿐 아니라 자상하기 짝이 없고, 강준일은 현대적인 작곡가일 뿐 아니라 꼼꼼한 조직가고, 김창남(성공회대학 교수)은 대중문화 평론가일 뿐 아니라 대학생 노래 운동패를 만든 장본인이고, 김보성(다움 연구소 부소장)은 작곡가일 뿐 아니라 노래를 찾는 사람들 대장 경력에 노동운동 경력까지 갖춘 사람이지만, 그리고 김철호(국립국악원 상임지휘자)는 눈매가 유난히 이글거리는 작곡가일 뿐 아니라 대단한 술꾼이지만, 민음협에 관한 한 모두 10년 넘게 주홍미 덕을 봤고 아름다운 그녀 손을 탔다. 내가 보기에, 주홍미 없는 민음협은 홀연, 맥락을 잃는다.
그리고, 공개운동단체 경험을 살려 공연 기획자로 나선 사례는 많지만 그녀처럼 '운동 경험'을 고스란히 전문화한 사례는 없다. 대개 운동권 안에 머물며 '구태'를 반복하거나 구태에 좌절하거나 전혀 다른 스타 가수권으로 이동했던 것. 그녀의 사례는 희귀할 뿐 아니라 매우 소중하다. '운동의 장면'이 그대로 반복-재현된다면 어려웠던 시절의 굶주림을 미래 전망에 강제하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되지만, 운동의 의미-맥락을 현실 속으로 투사한다면 전망의 형식으로서 예술의 진정한 모뉴멘탈리티가 생성되는 까닭이다. 그때 현실주의 예술은 절망의 기괴한 화려함을 희망의 대낮 밝음으로 전화할 수 있다. 미소가 여전히 온화하지만 그의 2002년 월드컵 전야제 및 식전 행사에 대한 비판은 매우 날카롭고 단호하고 간명하다. 맥락이 없다. 전체 콘셉이 없고 동남아에서나 통하는(실제 통하는건지도 잘 모르겠고 옳은 건지도 모르겠지만) 한류(韓流)-물량주의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연예계가 그리 자랑할 만한 것이냐. 그래서 전야제는 보다 중간에 나왔고, 식전 행사는, '한국적'이라는 것에 혈안이 된 모습이 안타까운데다, 사람들만 떼로 등장할 뿐 별 의미가 없어 경제 효과마저 떨어졌다... 나는, 식전 행사 너무 요란하게하지 말라고 FIFA에서 만류까지 했던 모양인데, 결승전도 일본에 빼앗긴데다 일본이 명칭(Korea-Japan) 약속(을 하긴 했는지도 아리송하지만)도 어기니 뭔가 보여 줘야할 필요를 '스스로'강제'당한 것 아니겠느냐면서, 특히 마지막 '분단국'이 치르는 '세계적' 행사라는 점이 완전 무시된 것이 문제라고 한마디 보탰고 그녀는 쉽게 수긍했다. 역사적인 수난을 미래의 아름다운 양식으로 만드는, 역사의 무덤을 전망의 젖가슴으로 전화시키는 남북공동 진혼곡의 장, 세계 정상들의 평화 기원 메시지와 함께 땅의 2인무, 하늘의 청룡 백호 주작 현무 사신무(四神舞)로 전달되는 횃불 점화의 장, 남북한의 국가를 종합-편곡한 음악이 흐르고 음양오행과 역사가 흐르는 대공존의 장, 느린 '두껍아, 두껍아' 노래에 맞추어 진행되는 하비타트(HABITAT) 기금 마련 평화 건설의 장, 그리고 전세계 NGO 지도자들과 어린애들이 함게 부르는 대취타의 장을 주홍미와 나는 최소한으로 기대했었다. 그랬다면 '렛즈'들의 '응원 애국심'과 '투표 애국심'이 분열되는 사태는 크게 줄었을 것이다.
그녀가 가장 보람을 느꼈던 기획 건은 2000년 5월 15-16일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열렸던 한국 포크 30년 기념 공연. 송창식 윤형주의 '트윈폴리오' 결성을 기준으로 잡은 이 30주년 공연은 크게 성공했을 뿐 아니라 포크붐을 다시 불러 일으켰다. 이 공연 이후 열린 포크 공연은 실패한 적이 없을 정도다. 3년전부터 포크붐이 일기 시작했지만 '30주년'은 정작 포크 가수들도 까맣게 잊고 있더라구요... 가장 중요한 연례 야외 락 페스티발로 자리를 굳힌 '자유' 공연 또한 그녀 손을 크게 탔다. 그룹 들국화 헌정음반 기념 콘서트도 마찬가지. 공연이 다가오면 그녀는 누구보다 차분하다. 가수는 물론 가수 매니저까지 챙기고 그날의 연출, 조명, 음향, 무대장치에 매표소까지 오만군데를 틀어쥐면서도 치밀하고 그러면서도 선배 챙기는 일을 남에게 대신시키지 않는다. 그 바쁜 와중에도 직접 자기 손으로 초대권을 쥐어주는 것. 그때 그녀는 언뜻 어김없는 민음혐 총무 같지만, 천만의 말씀. 그녀는 소중할 뿐 아니라 다시 희귀하다. 공개운동단체 총무란 정말 지지부진하고 잡다하고 치사하고 째째해지는 것을 강요하는 자리다. 그러다보면 지지부진에 지치느라 더 지지부진해지고 '잡다'에 지치느라 더 잡다해지고 '치사'에 지치느라 더 치사해지고 '째째'에 지치느라 더 째째해지고 지치는데 이골이 나서 더 지치고 자장면에 소주 까는 일과 운동을 구분하지 못하게 되고 지쳐야만 뭔가 일을 한 듯 한 느낌이 드는, 그런 자리다. 주홍미는 정반대였다.
나는 그녀를 자살한 가수 김광석의 영안실에서 처음 만났다. 김광석은 같은 단체에서 일했던 사이. 민중가요 <녹두꽃>의 고음을 김광석 만큼 탁월하게, 극적으로 처리하는 가수는 아마추어/직업 가수를 막론하고 없었다. 김광석은 목청과 모뉴멘탈리티와 생생한 현장감을 겸비했던 것. 그는 무명 시절 형편없는 수입에도 친구들이 '김광석 카페'(그가 아르바이트 하던)에 들르면 맥주를 박스 채 실어 나르는 의리-순정파였고 유명 가수가 되어서도 전혀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나는 새벽 6시 잠들기 전에 헤드라인 뉴스를 보다 접하고 곧장 달려갔다. 아직 빈소도 차려지지 않았고 한참 지나서야 친구 지인들이 하나 둘씩 멍한 표정으로 나타나고 유명 연예인들도 오니 어수선하고 정신은 하얗게 빛 바래 가는데 갑자기 '피로를 말끔히 씻는' 기운을 느꼈다. 뭐지? 처음엔 알 수 없었다. 기운이 아니라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래. 그게 주홍미였다. 아름다움은 질서의 외형이다, 라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말했다. 그 말을 나는 종교적 잠언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녀는 이 세상에서 슬픔이 가장 깊은 그러나 슬픔의 질서를 아는 표정이었다. 검은 차림은 아니지만 상복이 가장 어울리는, 아니 안 보이는 상복을 육화한 듯한 모습. 애인이라고 생각했느냐, 혹시 내연의 불륜 관계로 의심했냐고?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다. 그건 음악의 미래를 함께 꾸려 나가야할 동지(란 말도 예술가한테는 좀 투박하다. 어쨌거나 남민전 선서 첫 항은 '동지애는 모든 애정에 우선한다'였다. ) 혹은 귀한 선배를 잃고 혼자 남은 쓸쓸함이 가장 순수한 여성으로 빛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빛이, 알게 모르게, 황망한 사람들의 슬픔에 질서를 부여하면서 또한 아름다움으로 빛나게 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주홍미 주위를 몇 번 돌았을 뿐 감히 말 한마디를 건넬 수 없었고, 김광석의 선배이자 나의 후배 이현관(작곡가)과 술을 마시다가 이현관이 통기타 생음악으로 진혼곡 삼아 부른 <거리에서>를 들었는데 노래는 애절하고 이현관 또한 김광석 못지 않은 고음 가창력의 소유자였지만 슬픔의 아름다움이 주홍미만 못했다.
그녀를 다시 만난 것은 그해 겨울 혜화동 민음협 사무실 망년회 때다. 이건용, 앞에도 이름이 나왔지만 이 사람은 종종 술을 먹다가 자신이 얼마나 높은지도 까먹고 전화로 나를 불러, 제발 좀 나와 달라고 애원(? )하는, 그렇게 나를 어리둥절케 하는 착하고 희한한 사람인데, 그때도 그가 그렇게 불렀을 것이다. 그때 주홍미는 시답잖은 안주 챙기랴 기타 등등으로 바빴지만 내가 어렵사리 아는 체를 하니 다행히 그녀도 영안실에서 나를 봤노라 했다. 그리고 그가 총무라는 것을 알고 나는 또 한번 경악했던 것이다. 그렇다. 총무였다. 하지만 놀라운 총무였다... 지지부진한 것, 째째해지는 것, 치사해지는 것, 이 모든 것은 그에게 넘어서야 할 벽이다. 1-2년도 아니고, 장장 10년 동안 습관이 아니라 벽. 그 벽을 벽으로 보고 그것을 넘어서려 할 때 공개단체 실무자는 누구보다 강인한, 위대한 현실주의에 달한다. 그 현실주의는 공연 기획에서 최대한 힘을 발한다. 실무적인 능력 뿐 아니라 진정한 전망력도 발한다. 게다가 그는 단순 실무자가 아니라 예술 실무자 아닌가. 그녀의 미래를 누구보다 기대하고 장담하고 예의주시하는 까닭이다.
마혜일 언니(무용가)한테 전화했더니 다짜고짜 몇날 며칠 나와라, 그러던데요... 자리를 한군데 옮겼고 주홍미가 눈가로 웃음을 잔잔히 펴며 말한다. 그래? 좋겠지. 근데, 마선생이 언니가 되나?... 그럼요. 4살 혹은 5살이 많을 텐데...아이고야. 정말 어리구나... 그런데 왜 주홍미를 만나면 '한 생애'했다는 생각이 드냐. 나이 든 테는커녕 처음 만났을 때 얼굴 그대로인 것 같은데도. 연애 실패담도 한번 들었건만 정말 나이테가 없다. 아마 둘이 한 눈에 서로를 알아보았을 거야...그런 것 같아요...춤꾼들은 정말 제대로 된 공연기획자 만나기가 힘들거든. 그리고 마선생이 예술가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만 정말 특별한 예술가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 전 알지요...나는 특히 무용 공연기획에 힘을 기울여달라고 부탁했고, 그는 흔쾌히 수락한다. 하지만 무용 공연이라,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1년 전에 공연장을 대관 예약해야 하고 늙수구레한 극장 뒷패들 '곤조'를 피하려면 잘 보여야 하고 아양 떨어야 하고 평론가는 물론 관객까지 '섭외'해야 객석이 한산치 않다. 춤을 모르는 관객들을 위한 '볼거리'가 있어야 하니 체조와 구분되지 않는 집단무라도 물량 위주로 보여줘야 하고 그 많은 무용수들 출연료는 커녕 밥값만 해도 엄청나니 학생 동원이 가능한 '교수급'이라야 공연 엄두를 낼 수 있고 그렇게 해도 소규모 공연 한번에 2천만원 손해 나는 건 예사다. 무용평론가들이란게 도무지 레퍼토리 개념이 없으니 자꾸 새로운 작품을 공연하여 '경력'을 늘일 밖에 없다. 그 와중에 가장 낙후한 혹은 사기성 농후한 공연기획자들이 판을 친다. 춤 사진 한 장 찍어주고 100만원을 요구하는 춤 잡지 사진기자도 있다. 정말 불쌍하고 한심한 곳이다. 그런데 웬 강권? 주홍미 말고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단연코 없다. 그리고 기초 예술이 개판이면 종합예술은 어불성설이다.
노무현이 드디어 성명을 발표했다. 당의 부족함 때문에 낙선한 분들께 송구하다. 당원 여러분들의 피와 땀을 좋은 결실로 맺지 못한 것에 대해 대통령 후보로 책임을 느낀다. 부패에 대한 국민들의 질책을 평소 뼈져리게 느꼈다. 결과를 겸허히 수용한다. 재신임 받겠다...좀 싱겁네, 싶더니 그예 내 비위를 건드리는구나. 예상한 대로였다... 예상한 대로? 이 사람 정말 왜 이러나. 아니 이 아비규환의 전멸사태를 그냥 예상만 했단 말인가? 미치겠네, 정말. 믿을 놈 하나 없네...화면은 또 재빨리 월드컵 얘기로 넘어 간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 따로 없다. 150만명이 모일 예정이다. 스포츠 영화를 만들면 히딩크가 주인공 1순위. 기업이 새로운 (박수)응원문화를 창출했다고 SK 고위직 인터뷰까지 한다. 그래. 좋다. 월드컵으로 얘기하자. 비록 16강에 탈락했지만 그래도 프랑스가 부럽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 때문에 극우파가 득세하자 연일 거리로 나와 스스로 반성하고 절규하고 극우파 타도를 호소하던 프랑스 국민이 부럽다. 그것을 연일 격려하고 기획하던 프랑스 방송과 언론이 부럽다. 물론 한나라당이 극우당은 아니다. 민주당을 지지한다는 것도, 이념 차이를 짚자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권력 중앙 집중의 폐해를 풀뿌리 민주주의로 극복하자는, 그게 설령 난립을 지나 난장판에 가닿을 망정 독재보다는 낫다는 취지로 힘겹게 마련한 지방자치 선거에서 독재 보다 더한 비중의 '싹쓸이 사태'가 일어났다. 이게 어떻게 재앙이 아닌가, 이게 어떻게 예상했던 일이란 말인가?
좋다, 씨팔. 월드컵 열기 인정한다. 한 두골 들어가는 거 보려고 2시간 가까이 숨죽여야 하는 상황은 여전히 용납이 안 되지만, 한 두 골에 '국운'을 걸어야하는 '운명'은 여전히 떨쳐내고 싶지만, 나도 정말 우리나라가 이겼으면 좋겠다. '렛즈'들이 그렇게 애국을 배우고 집단을 배우고 질서의식을 배우면 다행이겠다. 그런데 정치건 월드컵이건 그 둘 다건 '공연 기획'은 제발 주홍미 한테 좀 배워라. 한국민의 저력 운운하며 뒷북치지 말고 그 저력을 배워라. 경악에도 경악치 못하니, 이 사태를 어쩌란 말인가. 지면 어쩌란 말인가. 아니 정말, 이기면 어쩌란 말인가. 미치겠네, 정말. 그냥 오락으로 미치면 되는데, 그런 신세대도 아니고...
홍미야 내년에는 나랑 같이 공연을 하나 기획하자. 한국의 우드스탁을 만드는 거야. 대마초 가수들을 모두 모으고 2박 3일 동안 팍스 뮤지카를 외치는 거다. 물론 대마초를 피우자는 게 아니고 그렇다고 대마초 '전과'를 반성하자는 건 더더욱 아니고 왜 락 음악 거목들이 대마초 전과를 공유하는지 노래로 음악'예술'로 음미해봐야 하지 않겠니? 국가의 허락과 격려 하에 합법적으로 축구에 미치는 마당에 예술이 무엇에 미치고 무엇에 열광하고 무엇에 말짱하고 무엇을 넘나들고 무엇을 지향하고, 왜 존재는 슬픈지, 그러면서도 삶의 의미가 환희로운지 따져보고 누리고 그래야지 않겠니?... 좋지요... 정말?... 그럼요...진짜?... 그럼요...하는데, 많이 취했다. 끄윽. 나는 정말 국가와 민족을 위해 술을 먹고 있는 거야, 쓰가발... 그렇게 막 나가니 기분이 썩 괜찮고, 여기가 어디냐? 어흥, 범 같은 아줌마가 명물 초절임 베이컨을 안주로 내고 한때 가수였던 육덕 처녀가 툭하면 술장사 제처 두고 기타 들고 손님들과 노래나 부르는 카페 <소설>이구나. 전홍기혜도 약속있다더니 오랜만이라 반가운지 아직 안 갔고, 고마운 일. 황석영(소설가)이 맡겨놓은 잭 다니엘스도 훔쳐 먹자. 폭탄주로다가. 그러고 보니 주홍미도 홍미가 아니라, 홍알홍알, 대나? 아니다. 어림없지. 더 서늘하다. 이크. 잘 하면 맞겠군. 그러면서 나는 술=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ps. 정승화 전(前) 육군참모총장이 죽었다. 군 복무 시절 1군사령관일 때 잠깐씩 마주친 그는 표정이 매우 온화했다. (나는 전방 소총수로 박박 기다가 졸지에 미군이 떠넘긴'최신식', 아니 50년대식 정보 장비 매뉴얼 번역병으로 차출되었는데, 내가 배치된 곳은 미군이 보초를 서고 한국군은 사령관과 정보 담당 고급 장교 대여섯명만 드나들 수 있는 '특별경계구역'이었다) 박정희가 사망하고 계엄사령관에 오른 그는 민주화운동 세력에게 '군부의 희망'으로 비치다가 전두환의 하극상 신군부에 피체, 보충역 2등병으로 강등되고 실형을 살다가 88년 대장 계급을 회복하고 97년 무죄가 확정된 후 민주당 상임고문 등을 맡았으나 큰 역할은 하지 못했다. '군부의 희망'이 필요하던 시기는 아주 짧았다. 그때 희망이 실현되었다면 5. 16에 의해 '군사적'으로 왜곡된 한국현대사가 어느 정도 교정될 수 있었을까? , 라고 묻는 것은 부질없지만, 어쩔 수도 없다. 나는 질서정연한 응원이 군사문화의 잔재라고 생각하는 것이 물론 아니다. 하지만 군사문화가 왜 나쁜가? 단순성과 획일성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축구는 가장 원초적인 스포츠고 축구를 통해 독재를 유지하는 나라는 지금도 많다. 나는 우리나라의 대통령중심제가 독재가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하지만 독재가 왜 나쁜가? 역시 단순성과 획일성 때문이다. 러시아 혁명은 집단적 획일성과 단순성으로 귀결되면서 망했다. 그러나, 혁명을 거치지 않은 '집단'이란 더 위험하다. 내용과 전망이 없는 '순수한'집단은 단순성과 획일성 그 자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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