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대 국회 후반기 원구성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각 당의 이해관계는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특히 국회의장 및 상임위원장 자리의 배분을 놓고 각 당이 현저한 시각차를 보이고 있어 의장단의 임기가 종료되는 29일까지 원구성을 마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일각에서는 지방선거 이후에나 원구성이 가능하지 않겠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오는 29일 임기가 만료되는 이만섭 국회의장은 25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국회 원구성을 가지고 싸우는 것이 바로 정쟁"이라면서 각 당은 "국회의장 자리를 놓고 정치싸움이나 기싸움을 해서는 안된다"며 국회 정상화를 거듭 촉구했다.
이 의장은 이어 자유투표 방식을 통해 "국회의원들이 나에게 그동안 국회를 잘 끌어줬으니까 앞으로도 공정하게 맡아주시오 하면 봉사할 용의가 있다"고 말해 연임 의사를 강하게 내비쳤다. 그러나 입후보 방식에 의해 국회의장을 선출한다면 나설 뜻은 없다고 밝혔다.
한편 정국 상황과 관련해 이 의장은 "대통령을 자꾸 헐뜯고 일을 못하도록 하는 것은 나라를 위해서도 손해"라면서 "야당 일각에서 한동안 대통령이 물러나야 한다고 얘기도 나왔지만 그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양당의 대통령 후보들이 인신공격을 하고 비방하는 모습이 지나치다"면서 "이 상태로 가면 선거가 끝나고 누가 당선되더라도 만신창이가 돼서 청와대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이 의장은 정계개편 논쟁과 관련, "표를 얻기 위한 정계개편이라면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며 "현재의 구도가 뒤바뀔 정도의 정계개편이 이루어지기는 어렵고, 대선은 어차피 양강구도로 치러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날 이 의장과의 인터뷰는 프레시안 정관용 정치 에디터의 진행으로 국회의장 집무실에서 1시간 동안 계속됐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원구성 문제로 싸우는 것이 정쟁"**
프레시안 : 원 구성 마감 기한이 얼마 안남았는데…
이만섭 : 29일이 마감이다. 29일이 지나면 국회가 마비상태가 된다.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걱정이다. 여야 모두 정쟁은 하지말자 하면서 국회를 마비상태로 만들려 한다. 여야가 정쟁을 중단하자고 한 것은 잘한 일이다. 그러나 말만 정상화하면 뭐하나. 국회 원구성가지고 싸우는 것이 바로 정쟁이다. 국회 공백은 막아야 한다.
프레시안 : 문제는 어디에 있고 어떻게 풀어야 하나.
이만섭 : 여야가 국회 의장자리를 놓고 정치싸움이나 기싸움을 해서는 안된다. 국회의장 자리를 차지한다고 다 되는건가. 내가 자유투표를 도입하자는 것도 여야간의 기싸움, 정쟁을 없애자고 하는 얘기다. 국회의장이 당적이 없는데 왜 각 당에서 후보를 내서 싸움을 하나. 당 대표를 뽑는 것인가. 여야 의원들이 국회를 공정하게 잘 운영하겠다 싶은 사람을 선출하면 되는 것이다.
프레시안 : 그런 제안이 여야에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나.
이만섭 : 원칙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사람들이 없다. 양심에 따라 자유투표를 한다는 것은 국회법 조항에 신설됐다. 법을 지켜야 한다. 내일이라도 모두 모여서 자유투표 하면 된다. 말은 맞으니까 반대는 아무도 안한다. 그래도 '이건 우리 당이 차지해야지' 하는 속셈들이 다 있다. 큰 정치를 할 줄 알아야 한다.
프레시안 : 자유투표제가 받아들여져서 다시 선출되면 연임을 할 의사가 있나.
이만섭 : 국회의원들이 나에게 그동안 국회를 잘 끌어줬으니까 앞으로도 공정하게 맡아주시오 하면 봉사할 용의가 있지만 개인적인 욕심이나 미련은 없다.
프레시안 : 입후보하는 방식의 투표라면 나서지 않겠다는 말인가.
이만섭 : 그렇다. 여야 의원들의 판단에 맡기겠다.
프레시안 : 현행법에 의하면 의장 임기 중에는 당적이 없지만 임기가 끝나면 당에 복귀하도록 돼 있다. 민주당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나. 그러나 의장으로서 중립적으로 2년을 운영하다가 남은 2년을 민주당 소속으로 간다면 모양새가 이상하지 않나.
이만섭 : 국회의장을 그만두면 원래 당으로 가도록 법이 돼 있다. 내가 처음 국회의장 당적 이탈을 법으로 정하자고 했을 때는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당시 여야 총무들이 협상과정에서 이런 조항을 넣었다. 법정신에 맞진 않지만 법은 법이니까 나도 민주당 소속이 된다. 하지만 여당에 있던 야당에 있던 나는 항상 국민의 편에서 일했다. 걱정하지 말라.
프레시안 : 만약 복귀 후 민주당이 선거지원을 요청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만섭 : 여야 의원들이 나를 보고 맡아주시오 할지도 모르는데 미리 걱정할 것 없다.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두고 보자.
***대화와 타협의 정치 아쉬워…**
프레시안 : 국회의장으로서 지난 2년을 돌아볼 때 우리 국회에 점수를 준다면 몇점이나 주겠나?
이만섭 : 국민들이 볼 때는 16대 국회는 싸움도 하고 격돌도 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몇몇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 격돌한 일이 있어서 국민들 머릿속에 안좋게 비치는 면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런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번 임기동안 나는 날치기를 없앴다. 국회의장이 당적을 갖지 못하도록 제도적으로 만들었다. 자유경선도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이번 국회는 안건 처리 면에서도 제일 많았다. TV에서 보면 싸움 하는 것만 나와서 그렇지 16대 전반기 국회의 안건 처리수가 7백1건이다. 국회의원들도 발의를 가장 많이 했다. 민생 법안도 가장 많이 처리했다. 남아 있는 것은 예보채 발행 동의안 정도다. 열심히 했다는 것을 알아달라.
프레시안 : 일 많이 했다고 하시지만 국민적 인식은 싸움만 한 것으로 남아있다.
이만섭 : 처음에 운영위에서 여당이 국회법을 날치기하려 했다. 검찰총장 탄핵안이 나왔을 때도 여야가 옥신각신 했다. 이런 일들이 오점이지만 의장으로서 나는 최대한 공정하게 처리하고 꿋꿋하게 운영하려 했다. 그 탓에 16대 국회가 이만큼이나마 굴러가고 있는 측면도 있다.
프레시안 : 우리 국회가 생산적인 국회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가.
이만섭 : 여야가 국회를 대선 전략으로 이용해서는 안된다. 지나치게 당리당략에 치우쳐서도 안된다. 여야의 국회 사령탑이 강경파가 선출돼서 대립하는 면도 있다. 근본적으로는 대통령 후보나 당 대표들이 좀더 폭넓은 정치를 해야한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를 생각해야 한다. 조금 더 어른스러운 정치를 해야 한다. 젊은 정치인들이 구악이 어떻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옛날 정치보다 못하다. 옛날에는 그래도 여야간 정이라도 있었다. 지금은 양보하고 타협하는 모습이 없다. 양보하면 지는 것으로 생각들을 한다. 그리고 상대편을 이해해야 한다. 야당은 집권당을, 집권당은 야당을 서로 이해해야 한다.
프레시안 : 그런 협상, 타협문화가 왜 줄어들었다고 보나.
이만섭 : 마음가짐이다. 정치 경험이 덜하고 사고의 폭이 좁다보니 그렇다. 경륜 있는 사람들이 지도자가 돼야하는데…
또한 앞으로 대통령을 누가 할지 몰라도 대통령은 국회에 자주 나와야 한다. 여야 의원들하고 차도 마시고 대화를 해야 한다.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이 말은 의회주의자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국회 나온 게 3번뿐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1번뿐이다. 의회주의자가 그렇게 국회 나오기 싫어서 무슨 의회주의자인가. 자주 나와서 대화와 타협을 이끌어야 한다.
***"대통령을 괴롭혀서는 안된다"**
프레시안 : 대통령 임기 말이 되면서 레임덕 현상이 가중되고 있다. 대통령이 남은 임기를 어떻게 마무리 지어야 할지 조언을 한다면?
이만섭 : 남아있는 동안 열심히 일 할 수 있도록 모두 보태드려야 한다. 자꾸 헐뜯고 일을 못하도록 하는 것은 나라를 위해서도 손해다. 대통령이 임기동안에는 국정을 잘 돌보도록 해야 한다. 나라를 위해서. 야당의 강경한 일각에서는 한동안 대통령이 물러나야 한다고 했지만 그건 옳지 않다. 대통령이 막상 물러나면 나라에 일대 혼란이 온다. 여야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를 위해서 대통령이 잘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여당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을 괴롭혀서는 안된다. 대통령도 마음이 복잡하고 어렵더라도 마음을 추스르고 나라를 위해서 끝까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대통령이 몸이 편치 않다고 하니 걱정이다.
프레시안 : 정치 원로로서 현재 대선 국면을 바라보면 과거보다 나아지는 측면이 있는건가?
이만섭 : 지금까지 보면 여야가 양당의 후보를 놓고 지나치게 인신공격을 하고 비방하는 모습이 지나치다. 이 상태로 가면 선거가 끝나고 누가 당선되더라도 청와대 들어가면 만신창이가 돼서 들어갈 수밖에 없다. 갖은 인신공격, 모략을 받고 대통령이 돼서 무슨 리더십이 생기며 국민들이 도덕적으로 존경하겠는가? 어느정도 한계가 있어야지… 이런 모습을 바라보면 걱정이 크다.
여야 의원들이 나에게 혼란스런 대선 정국에서 공정하게 국회를 이끌어달라고 하면 용의가 있다는 것도 그런 뜻이다. 국회의장 자리에 내가 무슨 미련이 있겠는가. 앞으로 선거를 하더라도 서로 인격을 존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프레시안 : 이회창, 노무현 후보에 대해 평가해 달라.
이만섭 : 둘 다 훌륭하다. 다만 정치 선배로서 말하자면 너무 표를 의식해서 행동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행동에 일관성이 없어진다. 지금부터라도 내가 대통령이 됐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대통령 자리는 권력을 휘두르는 자리가 아니라 봉사하는 자리다. 또한 대통령 후보들이나 당 대표들에게 매일 애국심을 가지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하루에 한번만이라도 나라를 생각했으면 바랄 뿐이다.
프레시안 : 최근 정치상황을 볼 때 가장 뚜렷한 현상은 '노풍'이 급속하게 부상했다가 사그러드는 모습이다. 특정 후보와 관련지어서가 아니라 정치 현상으로서 노풍의 부상과 침체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이만섭 : 변화를 바라고 뭔가 바뀌기를 바라는 국민들의 마음이 노 후보쪽으로 몰려서 바람이 일어났는데 계속해서 끌고가지 못했다. 또 국민들이 '이 양반도 변화를 바라는 우리 마음을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들이 생겼기 때문에 사그러지는 것이다. 노 후보로서는 지속적으로 희망을 줄 수 있는가가 관건이 아닌가 생각한다.
프레시안 : 상대적으로 이회창 후보의 지지도는 상승하고 있는데…
이만섭 : 여론조사라는 것을 나는 확실하게 믿지 않는다. 정치지도자쯤 되면 여론조사가지고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자기 페이스대로 가고, 모든 것은 국민 심판에 맡기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프레시안 : 두 후보 가운데 '누가 더 잘 할 것이다' 하는 생각을 해본 적 있나.
이만섭 : 누가 좋다고는 말 할 수 없다. 정치 경험으로 보면 내가 더 낫지 않겠나(웃음). 정치 경륜이나 경험이 부족한 측면을 느낄 때가 많다.
프레시안 : 대통령 한번 해 보고 싶은 생각은 없는가?
이만섭 : 오래전부터 통일된 대통령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많았다. 그러나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하고 싶다고 하는 자리가 아니다. 일단 나는 지금 어려운 상황에서 국회를 맡고 있기 때문에 임기 동안은 맡은 일을 제대로 하겠다는 생각 외에는 없다.
***양김집권 10년의 폐단, '정경유착', '패거리 정치'**
프레시안 : 대통령 선거, 지방선거 열기가 가열되면서 정가에서는 요즘 정계개편 얘기가 끊이지 않는다. 정계개편에 관한 견해는 무엇인가
이만섭 : 원칙적으로 보면 정계개편은 노선과 정책에 따라 이루어진다. 표를 얻기 위한 정계개편이라면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과거 우리나라 헌정사를 돌아보면 정계개편은 흡인력 있는 쪽으로 기울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정계개편이 그렇게 쉽게 되리라고 보지는 않는다. 양자구도가 뒤바뀔 정도로 정계개편이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프레시안 : 양김 집권 시절이 10년이다. 정치사적으로 어떻게 평가하는가?
이만섭 : 이 나라 민주주의에 공헌한 것도 많지만 폐단도 있다. 폐단이라고 한다면 정경유착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정치는 저런가보다' 하는 생각을 한다. 권력형 비리는 그래서 생긴다. 정경유착에 대한 죄의식이 없다보니 그런 일이 생겼다. 또 하나는 실례가 될지 모르겠지만 패거리정치다. 자기 조직을 거느려야 하다 보니까 돈도 필요하고 사람들 자리도 봐줘야 하니까 인사문제, 부조리가 생긴다. 이런 점들은 큰 단점이다. 그러나 옥고를 치르면서까지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노력한 부분은 높게 사야 한다.
프레시안 : 앞으로의 정치에서는 지금까지 3김 정치라고 불려온 정치와 달라질 것이라고 보는가.
이만섭 : 달라져야 한다. 대통령 권한이 지금은 너무 세다. 대통령 권한이 너무 세다보니까 권력 비리가 생긴다. 흔히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하지 않나. 대통령도 신이 아닌 이상 실수를 하게 되고 정치에 일관성이 없어지는 경우도 있다. 대통령 권력을 축소하고 필요할 때는 총리와 업무를 분담하기도 해야 한다.
또한 해마다 선거가 있다. 대선, 지방선거, 보궐선거… 이런 폐단도 고쳐야 한다. 막대한 자금 들어가지, 경상도 전라도 갈라서 치고박고 싸움하지… 이게 무슨 선거인가. 개헌과 관련해서 5년 단임이다, 4년 중임이다 말이 많은데 나는 진지하게 국가 백년대계를 생각해서 5년 단임이냐 4년 중임이냐, 혹은 내각제냐 하는 것들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6대 국회 후반기에는 사심 없이 당리당략을 떠나서 진지하게 개헌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돈 안드는 정치를 해야한다. 대통령 선거, 지방 선거에 들어가는 돈이 1천1백38억이다. 양대 선거를 치르는데 필요한 중앙선관위 운영자금이 약 2천8백억 가량이다. 입후보 하는 사람 개인이 쓸 수 있는 돈이 3백억 이상이다. 각 정당에서 쓰는 자금까지 합치면 조 단위가 된다. 이런 돈이 어디서 나오나. 돈 없는 사람은 입후보도 못한다. 어쩔 수 없이 재벌신세지게 된다. 이렇게 대통령이 되면 재벌 안 봐줄 수 있나. 모두 경제에 마이너스 요인이다. 이런 폐단들을 시정해야 한다.
프레시안 : 오랜시간 인터뷰에 응해줘서 고맙다.
이만섭 : 프레시안의 발전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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