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철이 다가오고 있다. 벌써 휴가 때 무엇을 할지 어디로 여행을 떠날지 계획하느라 다들 바쁘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에게 휴가는 어디로 특별히 떠나는 것을 의미하기 시작했다. 마치 어디로든 떠나지 않으면 쉴 수 없는 사람들처럼, 집이 아닌 낯선 공간에 있을 때 진정한 휴가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산과 강, 바다로 떠나면 그 주변 환경만으로도 평온해지는 느낌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휴가가 잠시 자신의 일상에서 벗어나 스스로 쉬는 시간을 주고 재충전의 기회를 주는 것이라면 지금 우리가 준비하는 휴가와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인다.
휴가를 어디로 어떻게 갈지 가서 어떻게 놀고 어떻게 먹을지 수많은 것들을 생각하면서 머리는 쉴새 없이 바쁘다. 막상 휴가를 떠나게 되면 도로는 차로 피서지는 사람으로 가득 차있다. 혹여 자가용이라도 가지고 간다면 그것은 자신의 쉴 시간을 스트레스로 가득 채우는 꼴이 된다.
특별한 공간에 특별한 시기에 있는 만큼 먹는 것도 더 특별하게 더 많이 먹게 되고 결국 남기게 된다. 여기저기 버려진 쓰레기는 나에게는 편안함이겠지만 그것을 치워야 하는 지역 주민들에게는 또 다른 일이고 피곤함이다. 결국 우리의 휴가도 누군가의 피곤함을 전제로 즐기는 이기적인 정신 노동일 뿐이다. 우리는 그것을 휴식이라고 착각한다.
문제는 이러한 누군가의 피곤함에 대부분이 지구가 감수해야 해야 할 짐으로 남겨진다는 것이다. 남겨진 쓰레기, 오염된 물, 훼손된 자연, 늘어난 에너지 사용과 온실 기체까지 모두 지구의 몫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다시 돌아오지만 그럼에도 어느 누구 하나 이러한 지구에 지워진 짐과 이를 위한 수고를 알려고 하거나 미안해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휴식의 시간이지만 지구에는 고통인 것이다.
소비로는 충전이 되지 않아
요즘 대세는 '아빠'와 '캠핑'이다. 이것을 방증하듯, 휴가철을 앞두고 백화점부터 대형 마트와 온라인 쇼핑몰까지 다양한 캠핑 용품들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그런데 단순히 소비 아이템만 바뀌었을 뿐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늘 휴가 전에 무엇을 사야 하나부터 고민해 왔다.
텔레비전의 효과이기도 하지만 어찌 되었든 올해는 가족과 떠나는 캠핑이 인기이고 캠핑 용품이 올해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나처럼 특별한 여행 계획조차 없는 사람도 어느새 캠핑 한번 갔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게 되니 그 파급 효과가 대단하다 싶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편하지 않다. 분명 일만하는 아빠 엄마와 아이들이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깊게 알아간다는 취지는 너무 좋은데 왠지 모르게 그 안에서 소비를 요구받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휴가를 준비하면서 무언가를 사고, 여행에 대한 기대감은 고조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스트레스는 늘어간다. 더 좋은 것을 사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자신의 경제 사정 혹은 다른 주변 상황(여성들에게는 다이어트도 한몫한다)이 짜증나고, 남들은 쉽게 사는데 나는 그렇지 못함에 스스로 위축된다. 단순히 소비를 통해 자신을 만족하게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 아니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계속 소비하고 물질로 채운 나의 휴가가 끝나고 나면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된다. 허무하게 써버린 돈과 시간 그리고 남은 것 없는 마음과 머리, 다시 돌아온 피곤하고 힘든 일상을 경험하면서, 소비로는 휴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조보영 |
나와 지구를 위한 휴가-에너지 발자국을 찾아가는 여행
앞서 말한 대로 지금의 휴가는 나에게도 지구에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휴가는 나뿐 아니라 지구에도 쉴 수 있는 시간을 주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휴가가 좋을까? 누군가는 '그렇다면 휴가 때 집에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이냐'며 볼멘소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두를 위한 휴가는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이야기한다. 나를 아는 시간 지구를 아는 시간, 그래서 내가 얼마만큼 많은 것을 소비하고 이로 인해 지구를 힘들게 하는지, 나는 얼마나 편리하게 살았는지 알게 되는 시간이다.
그래서 나는 세 가지 휴가를 제안하고 싶다. 우리가 가장 많이 쓰는 에너지 전기를 따라 떠나는 여행이다. 하나는 내가 쓰고 있는 전기의 발자국을 따라 떠나는 여행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쓰는 전기로 힘들어하는 사람, 자연을 위로하는 여행이고 마지막은 끊임없는 삶의 궤도에서 벗어나기 위한 여행이다.
첫 번째, 전기의 발자국을 따라 떠나는 여행을 선택했다면, 먼저 지도를 펴 봐야 한다. 지도를 펴고 어디에 발전소가 있고, 거기서부터 어떻게 우리 집까지 들어오는지 꼼꼼히 점을 찍어보자. 실제로 내가 교육을 나가서 나름 에너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활동가나 학생들을 대상으로 모든 발전소의 위치를 알려줘도 지도에 제대로 체크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니 에너지 지도를 만드는 것부터가 쏠쏠한 재미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정이 되는대로 하나씩 가보는 거다. 손만 까딱하면 쓸 수 있는 전기가 얼마나 먼 곳에서 오는지 그리고 그 발전소들이 들어선 곳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리곤 마음속으로 생각하게 된다. '저것만 없으면 완벽한데….' 그리고 또 한 번 놀라게 될 것이다. 이 많은 핵발전소가 우리가 여름이면 달려가던 백사장 넓은 동해와 바다 자체로도 아름다운 남해에 얼마나 집중되어있는지 말이다.
두 번째 여정은 조금은 아픈 여행이 될지도 모른다. 다시 지도를 펴고 이번에는 발전소뿐 아니라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를 우리 집까지 연결하기 위해 세워지는 송배전망의 선을 그려보자. 자동차 길과 다른 또 다른 길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리고 떠나는 것이다. 그 길에는 무엇이 있을지. 무분별하게 만들어진 자동차 길에 산짐승, 짐승이 로드킬을 당하듯, 오로지 전기를 위해 만들어진 이 전기 길에는 또 다른 로드킬이 있을지 모른다.
혹여 이런 일련의 과정이 어렵다면, 밀양행 버스에 몸을 실어도 좋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오로지 220볼트만이 익숙하겠지만 전깃길은 이보다 훨씬 고압의 전기가 흐른다. 더 높은 전압으로 보내야 중간에 손실이 없기 때문이다. 765킬로볼트의, 상상도 되지 않는 고압의 송전망이 지나는 곳 중 현재 어르신들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높은 곳이 밀양이다. 그곳에서 희망을 찾는 어르신들을 만나 위로의 말을 건넨다면 우리는 스스로 위로받는 경험을 하게 된다.
마지막은 소비의 일상을 벗어나는 일탈의 여행이다. 최근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여러 명의 코미디언이 모여 함께 살면서 전기 없이 살기에 도전하는 내용이 나왔다. 이들은 자전거 발전기를 돌리고, 태양광으로 어렵게 휴대전화를 충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들은 스스로 전기가 얼마나 어렵게 만들어지는지 또 얼마나 많은 것을 소비하며 살았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전기 없는 마을을 방문한다. 전기를 전혀 쓰지 않는 삶 그것이 가능할까? 하겠지만 그것을 실천에 옮기며 무엇이든 소비해야 행복한 도시의 삶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찾아보면 전기를 쓰지 않는 마을뿐 아니라 손수 만들어 쓸 수 있는 소규모 풍력이나 자전거 발전기를 함께 만드는 프로그램도 있다.
누구나 한 번쯤 길을 묻는 사람에게 길을 가르쳐주고 혼자 내심 뿌듯해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별것도 아닌데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은 큰 행복감을 가져다준다. 이번 여름의 휴가가 누군가에게 길을 알려주는 것처럼 별것 아니지만 큰 것을 깨닫고 행복해 질 기회가 되길 바란다. 끊임없는 소비의 고리를 끊고 잠시 나를 뒤돌아보는 순간 커질 대로 커져 버려 채울 수 없는 우리의 욕심의 그릇은 줄어들 것이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바로 가기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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