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이 본격화됨에 따라 경선주자 릴레이 인터뷰를 게재한다. 게재 순서는 경선주자들의 일정을 감안해서 인터뷰가 이루어진 순서에 따른다. 편집자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 나선 이회창 후보는 8일 프레시안과 인터뷰를 갖고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이념검증' 필요성을 거듭 주장했다. 이 후보는 "대통령 후보가 되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국민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며 "그 가운데에는 이념 검증도 필요하다"고 노 후보를 겨냥했다.
또한 이 후보는 이 같은 주장을 '색깔론'이라고 공격하는 시각에 대해 "없는 색깔 만들어서 덧붙이기 한다고 보는 시각은 그야말로 과거 이분법적 색깔론의 논리"라며 자신에게 돌아올 역공을 경계했다.
이 후보는 이어 노 후보의 '언론사 국유화' 논쟁과 관련해 "이는 언론의 자유라는 우리의 정체성과 핵심 가치들을 무시하는 얘기"라며 "이런 것들이 본인의 사상과 이념을 말하는 것이라면 국민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여론 조사에 나타난 노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에 대해 이 후보는 "앞으로 지지율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며 현재 상황이 "(본선에서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확실한 기준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법과 원칙'을 다소 강조해 국민감정을 소홀히 한다는 여론의 지적에 대해 이 후보는 "국민을 위해 사회의 올바른 흐름을 확보하는 기준이 법과 원칙"이라며 그러나 "그것이 국민의 의사를 무시하거나 국민 정서를 경시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한편 이 후보는 당내 경선 상대인 최병렬, 이부영 후보 등에 대한 구체적 비판은 삼가고 "보수의 기조 위에서 부단한 자기개혁과 쇄신, 혁신을 지향한다"며 보수와 개혁을 아우르겠다는 통합적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이 후보는 최 후보와의 이른바 '원조보수' 논쟁과 관련해 자신은 "개혁적 보수, 개방적 보수, 따뜻한 보수"를 지향한다며 자신에 대해 "보수 일변도에서 벗어났다"고 비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부영 후보와도 보수/진보 차원의 대립각을 세우지 않았다. 그보다는 의약분업, 교육개혁 등 현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한나라당이 주장한 개혁적 정책 사례를 들어 자신의 개혁 이미지로 연결시켰다.
이날 인터뷰는 이 후보 경선캠프가 위치한 여의도 대한방직빌딩에서 정관용 정치에디터의 진행으로 30분가량 이어졌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지지율은 얼마든지 다시 변할 수 있다"**
프레시안 : 최근 갑작스럽게 상황이 급변했다. 그 원인이 어디 있다고 보는가?
이회창 : 변화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와 바람, 희망이라고 본다. 그러나 국민들이 어떤 식으로 변화해야 하는가 하는 변화의 목표나 그림까지는 명확하게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다만 현재와 같이 정치가 침체되고 구태정치 모양이 지배하고 있는 것을 그대로 둘 수 없다, 바뀌어야 한다는 변화에 대한 기대, 희망이 원인이 됐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변화에 대한 기대가 급변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그 급변의 양상은 항상 가상대결에서 1위를 달리던 이 후보를 2위로 끌어내린 변화다. 그렇다면 변화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이 후보를 선택하지 않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이회창 :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말은 노 후보와 비교해서 한 말 아닌가. 변화의 바람이 불고 민주당 안에서 노무현 후보와 이인제 후보 사이의 경쟁이 아슬아슬한 역전극으로 파노라마를 일으키면서 국민의 흥미를 끈 것이 사실이다. 이런 것들이 현재 지지도의 변화 양상을 이끌어 온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 경선은 끝나고 우리 당의 경선이 시작한다. 나는 국민의 흥미를 촉발하면서 가져온 지지율의 변화는 앞으로 얼마든지 다시 변할 수 있다고 본다. 현재 여론조사 결과가 대선에서 국민들의 선택의 종점과 기준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확실한 기준이 아니다.
프레시안 : 민주당에서는 노 후보가 이길 것으로 보는가?
이회창 : 지금까지는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는 하도 예측 불가능한 점이 있으니까.
프레시안 : 앞서 있다가 뒤집힌 과정을 돌아볼 때, 이 후보 스스로의 대처에서 '이런 점들은 잘못했다'고 자성하는 부분이 있다면?
이회창 : 물론 반성하는 점이 있다. 그러나 변화의 바람이라는 게 예정된 변화의 과정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떻게 보면 예측할 수 없는 변화의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때그때 나는 최선의 대응을 해 왔다고 생각한다.
물론 결과론으로 말한다면 처음부터 이렇게 대응했더라면 지금보다는 나은 결과가 됐을 것이라는 말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정치는 살아 숨쉬는 생물이기 때문에 그 당시 그 시점에서 최선을 다했다. 나는 정치에 있어서 최선은 원칙을 지키면서 그 속에서 국민의 바람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국민이 우선한다는 행동 기준을 가지고 있다. 그런 기준에 따라서 행동해 왔기 때문에 지금 이 시점까지 왔다.
***노무현 '이념검증' 필요하다**
프레시안 : 법과 원칙을 존중해서 상황에 맞게 판단한다는 말로 이해하겠다. 그러나 일부 정치분석가나 언론계의 평가 가운데 이 후보는 법과 원칙 쪽에 너무 강해서 이른바 국민 감정을 소홀히 한 것이 아니냐는 문제제기가 있어왔다.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회창 : 그런 지적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법과 원칙은 국민의 감정을 소외시키거나 경시하는 것이 아니다. 법과 원칙이라는 것 자체가 국민을 위한 시각에서 세운 것이다. 국민을 위해서 사회의 올바른 흐름을 확보하는 기준이 법과 원칙이라고 본다.
나는 사법부에 있을 때도 법과 원칙이란 경직되거나 시대 상황의 변화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 왔다. 물론 과거 내가 한 일에는 미흡한 점이 많고 판단이 능숙하게 되지 못한 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국민의 의사를 무시하거나 국민의 정서나 움직임을 경시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다.
프레시안 : 노무현 후보라고 지칭은 안했지만 경선후보 출마를 선언하면서 '급진세력의 좌파적 정권 연장 기도'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에 대비되는 이 후보의 대선전략으로 읽히는 부분이다. 이런 것을 두고 '색깔공세'나, 보수/진보의 구시대적 양분논리가 아니냐는 비판을 듣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회창 : 그 점에는 동조하지 않는다. 내가 그 말을 한 것은 어차피 대통령 후보가 되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국민의 검증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 눈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매우 신랄하면서도 깊이 있는 검증을 받아야 한다.
물론 그 가운데에는 이념도 있다. 이념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 이념이라는 것은 이 나라의 국가 운명을 이끌고 갈 최고 지도자가 국가 운영의 방향을 이념적으로 어느쪽 좌표를 잡고 있는가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것이다. 잘못 간다든가 의심스러울 때 많은 국민들은 매우 불안해 한다. 그런 면에서 말한 것이다.
이것을 무슨 '색깔론'으로 만들어서 없는 색깔 만들어서 덧붙이기 한다고 보는 시각은 그야말로 과거 이분법적 색깔론의 사고이자 논리라고 본다. 국민을 위해서 뛰고 국민을 위한 국가지도자로 나서고자 한다면 이념의 문제도 국민에게 검증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민주당의 유력한 대권후보인 노무현 후보의 이념과 노선에는 문제가 있다고 평가하는가?
이회창 : 지금까지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나온 얘기를 보면 너무 놀라운 이야기들이 많다. 언론사를 국유화 한다든가 폐간시킨다든가, 대기업의 주식을 빼앗아서 노동자에게 분배해서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을 만들겠다라든가.
이런 얘기들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 하에서의 인권과 기본적 권리, 그 가운데 언론의 자유라는 우리의 정체성과 핵심 가치들을 무시하는 매우 중요한 얘기들이다. 이런 얘기들이 본인의 사상과 이념을 말하는 것이라면 국민에게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보수의 기조 위에 자기개혁과 혁신을 지향한다"**
프레시안 : 4파전으로 시작한 한나라당 경선에서 승리할 자신은 있는가.
이회창 : 글쎄… 어떻게 생각하는가?(웃음)
프레시안 : 최병렬 후보는 자신이 보수세력을 아우를 수 있는 적임자라고 얘기한다. 또 밖에 있는 보수세력이 이회창 후보에 대해서 갈팡질팡하는 시각으로 본다고 얘기한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회창 : 앞으로 그 문제는 실컷 얘기하게 될 것이다. 최병렬 후보는 본인이 표방한 대로 보수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나도 기본적으로는 보수다. 다만 보수의 기조위에서 개혁을 지향하는 '개혁적인 보수'다. 또 보수로서 넓게 개방적 태도를 취한다는 측면에서 '개방적 보수'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면서 사회복지 분야에서는 저소득층이나 못 사는 국민들을 위해서 지속가능한 복지정책을 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 때문에 '따뜻한 보수'라고 말하기도 한다. 개혁적 보수, 개방적 보수, 따뜻한 보수를 말하는데 왜 보수 일변도에서 벗어나는가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얘기가 다른 말이다. 그렇지 않나?
프레시안 : 반면 이부영 후보 측에서는 자신이 개혁과 변화를 통해서 젊은 층을 끌어오겠다고 말한다. 이에 대한 답변 삼아 이 후보가 생각하는 개혁의 주요 내용이나 방향은 무엇으로 책정하고 있는가.
이회창 : 이부영 후보가 개혁을 말하고 최병렬 후보가 보수를 말한다. 나는 우리 당이 넓고 좋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좋은 의미의 개혁은 우리 당이 그동안 많이 흡수해 왔다. 보수라고 해서 정체된 보수는 수구다. 보수의 기조 위에 서있지만 동시에 부단한 자기개혁과 쇄신, 혁신을 지향해야 한다.
여기서 일일이 다 거론하지 않더라도 많은 의미에서 우리 당이 그동안 제기한 정책대안 중에는 개혁적인 것들이 많다. 정책 내용만이 아니라 정책 방법에서도 그렇다. 예를 들면 부실채권을 털고 기업의 구조조정을 진행하기 위해서 우리는 공적자금 조성을 주장했다. 심지어 정부가 오히려 뭉그적거리는 것을 재촉해서 공적자금 조성을 주장했다. 이런 것들은 사실 야당으로서는 상당히 개혁적인 움직임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이런 것은 개혁이다'하고 자랑을 안했을 뿐이다.
오히려 정부가 개혁적이라고 일을 벌여놨지만 실제로 그것은 때로는 너무 급진적인데서 오는 여파로 개혁의 실효를 거두지 못한 것도 있었다. 의약분업이나 교육개혁처럼 오히려 국민을 고통에 빠뜨린 경우도 있었다. 진정한 개혁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사회 쇄신과 국가발전을 위해서 면밀하게 계획돼야 한다. 일정을 정해두고 군사작전 하듯이 몰아 붙여서 결과를 국민에게 보이겠다는 욕심에 사로잡히지 않고 제대로 차근차근히 결과를 국민에게 제시하는 그런 개혁이 돼야 한다.
프레시안 : 큰 쟁점으로 부각되는 것 중의 하나가 FX 사업에서 기종선정과 관련된 문제다. 그 점에 대한 견해는 어떤가?
이회창 : 나는 소위 전력증강 사업에 있어서 전투기든 뭐든 무엇을 채용하는가에 대해서는 이념이나 여러 가지 복잡한 것을 떠나서 간단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무엇이 우리 국가방위에 가장 좋은 것이고 무엇이 우리 국익에 가장 좋은 것인가 하는 기준에서 판단해야 한다.
프레시안 : 어떤 기종이 그런 기준에 부합한다고 보는가?
이회창 : 글쎄… 그것은 내가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프레시안 : 총재직을 그만 둔 느낌이 어떤가?
이회창 : 홀가분하다. 무엇보다 과거의 틀을 넘어서서 새로운 출발을 한다는 상징성과 의미가 있다고 본다. 홀가분해서 좋다.
프레시안 : 아쉽지 않은가?
이회창 : 그런 것은 없다.
프레시안 : 인터뷰에 응해줘서 고맙다.
이회창 : 프레시안의 발전을 기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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