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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스' vs '체어맨', 그리고 뉴 패러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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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스' vs '체어맨', 그리고 뉴 패러다임

<기자의 눈> 이인제와 노무현의 고급 승용차 공방

민주당 경선이 과열되면서 후보들이 타고 다니는 개인 승용차까지도 때아닌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른바 '승용차 논란'은 최근 이인제 후보가 "서민후보를 자청하는 노무현 후보가 내가 타고 다니는 '에쿠스3000'보다 고급인 '체어맨 600S'를 타고 다닌다"고 비판하면서 비롯됐다. 노후보측은 이에 대해 "대꾸할 가치를 못 느낀다"고 발끈했다.

이인제 후보의 노림수는 이른바 이후보가 즐겨쓰는 표현을 빌면, 노후보가 '서민의 탈을 쓴 귀족'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지지율이 '빌라파동'을 겪으며 여론 악화로 급추락한 대목을 염두에 둔 '회심의 일격'용 카드였던 셈이다.
이에 대해 노후보는 '악의에 찬 인신공격'으로 폄하했다. 지지율에서 크게 밀리니까 선동적 공세를 펴고 있다는 식이다. 그러면서 노후보의 한 측근은 승용차 논란이 부담스러운지 "세일기간중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싸게 샀다는 식이다.

이 논란은 일단 여기서 그쳤다. 그러나 최근 두 후보진영의 극한적 감정대립 상황을 고려하면 유사한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정치인은 1%의 특권층?**

흔히 승용차를 '남성들의 고급 장난감'에 비유한다. 여성들처럼 의상 등에 집착하진 않으나 승용차에 대해선 과시욕이 만만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때문에 일정 신분이 되면 '격'에 맞는 승용차를 구입하는 것을 당연한 일처럼 여긴다.

현대자동차의 '에쿠스'와 쌍용 자동차의 '체어맨'은 국산 차종으로는 최고급임과 동시에 현 국회의원들이 즐겨타는 '애마(愛馬)'에 속한다.
지난해 8월 한 언론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에쿠스는 50여명, 체어맨은 30여명의 의원들이 이용하고 있다.
재적의원 2백71명 중 30% 가량이 국내 최고급차를 타고 다니는 셈이다. 에쿠스보다 구형이기는 하나 역시 고가품인 '다이너스티'를 소유한 50여명의 의원들까지 합하면 절반 가량이 최고급 세단 소유자다.

다소 기계적이지만 수치로 계산해 보면 이렇다. 28일 한국자동차공업협회(KAMA)가 발표한 '자동차 등록현황'에 따르면 지난달 말 현재 전국에 등록된 차량은 1천3백8만8천9백60대이다. 그 가운데 승용차는 9백3만1천9백48대다.

체어맨은 99년에 4천9백대, 2000년에 6천1백대, 2001년에 8천2백80대가 팔려나갔다. 올해는 28일 현재까지 2천2백90대가 팔려 총 2만1천5백70대가 판매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체어맨보다 약간 뒤인 99년 5월에 출시된 에쿠스는 2000년 1만여대, 2001년 1만4천여대로 총 2만4천여대 가량이 판매됐다. 올 들어서는 매달 1천2백대 정도가 팔리고 있다.

두 차종의 등록 대수는 합쳐서 5만여대. 따라서 전체 승용차의 1%도 안되는 최고급 승용차를 현역의원 세명 가운데 한명 꼴로 타고 다닌다는 계산이 나온다.

***대권후보 모두가 에쿠스나 체어맨 보유**

"3김이 모두 탔다."
쌍용자동차의 한 관계자는 체어맨의 자부심을 이렇게 표현했다. 명실공히 '대통령의 차'라는 얘기다.
쌍용차 관계자는 "노무현 후보의 사촌동생이 쌍용차 영업지역본부장이어서, 이런 연으로 이 차를 구입했지 않았겠냐 싶다"고 추정하기도 했다.

체어맨 시리즈의 주종은 '체어맨600'으로 정치인들이 즐겨 찾는다. 한 예로 김대중대통령의 장남인 김홍일의원, 정대철의원 등도 체어맨을 타고 있다.
가격은 4천7백만원선. 3천만원~3천5백만원 선인 '체어맨400'은 이른바 '신흥 졸부'들의 선호 차종이다. 5천3백만원이 넘는 '체어맨 리무진'을 찾는 정치인들도 있다.

현대자동차의 한 관계자는 "선거철이 다가오면서 에쿠스의 월평균 주문량이 크게 늘고 있다"고 밝혔다. 지방자치선거 등에 출마하려는 정치지망생들의 특수가 일고 있다는 얘기다. 에쿠스는 3천8백만원~7천8백만원 선까지 가격이 다양하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 민주당 정동영 고문이 에쿠스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여야의 대권후보로 물망에 오른 인사들은 너나없이 에쿠스나 체어맨을 타고 다니는 셈이다.
이들 차들이야말로 말 그대로 '대권주자들의 차'인 셈이다.

***승용차는 정치인들의 집무실이자 휴식공간**

정치인들이 대형 고급 승용차를 선호하는 이유는 이동 시간이 많은 데다가, 특히 선거철의 후보들에게 승용차는 또다른 집무실이자 휴식공간이기 때문이다.

한 예로 최근 음모론의 배후인물 3명을 실명거론한 것으로 보도돼 파란을 일으켰던 이인제 후보와 대한매일과의 인터뷰 역시 차안에서 이뤄졌다.
과거 대통령선거 전국유세 과정에 김대중 후보는 다음 집회지로 향하는 과정에 체력 보충을 위해 승용차 안에서 푹 고은 백숙 한마리씩을 먹곤 했다.

이처럼 용도가 다양하다보니 정치인에게 실내공간이 넓은 승용차는 필수다. 그렇다고 자칫 눈총 받기 쉽상인 외제차를 탈 수도 없는 노릇이니, 국산 자동차 중 최고를 선호하는 것도 이해가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고급 승용차를 바라보는 서민들의 시선은 일단 곱지 않다. 특히 승용차를 두고 내차가 더 싸다는 식으로 '호화' 공방을 주고받는 모양새는 더욱 보기 안좋다는 게 지배적 여론이다.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 새 패러다임 보여야**

이후보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임을 내세우고 있다. 노후보는 '서민의 대변자'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고급 승용차를 타선 안된다는 법은 없다. 그러나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대를 열겠다며 대선에 도전하고 있는 이들이다.
따라서 한번쯤은 꼭 최고급 승용차를 타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볼 일이다.

이달말 임기가 끝나는 전철환 한국은행총재는 공무시에는 한은에서 제공하는 고급승용차를 이용하나, 집에서는 소형차 프라이드를 직접 몰고 다닌다.

한국의 간판CEO인 김정태 국민은행장 역시 집에서는 구형중형차인 소나타를 타고 다닌다.

서생현 전 광업진흥공사사장은 사장 재직시 고급 관용차를 팔고 봉고를 타고 다녔다.

유럽 민주주의의 모범으로 일컬어지는 네덜란드의 국회의원 가운데 3분의 2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나머지 3분의 1의 의원들도 기사 없이 직접 소형차를 몰고 다닌다. 자신들은 권력층이 아닌 '노동자'라는 이유에서다.

일정 신분이 되면 '격'에 맞는 승용차를 타야 한다는 사고방식 또한 타파해야 할 고정관념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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