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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선거공영제, '판돈' 키우기인가?

“음성적 정치자금부터 철저하게 차단해라”

정치권이 이번 대통령선거부터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완전선거공영제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김대중 대통령 및 유지담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정부 차원의 적극 지원방침을 밝혀 선거공영제 논의가 급류를 타고 있다.

논의의 요지는 후보자의 TV 연설비용 지원 등 부분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선거공영제의 범위를 전면 확대, 모든 선거자금의 수입·지출을 국가기관이 관리하겠다는 것. 모든 선거자금을 공신력 있는 국가기관이 담당함으로써 부정자금의 유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것이 정부와 선관위가 밝힌 선거공영제의 취지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 및 이 분야 전문가들은 정치자금과 관련한 정치권의 관행과 제도적 결함은 그대로 두고 선거공영제를 주장하는 것은 고비용 정치구조에 선거 ‘판돈’만 키워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 대통령, 선거공영제 확대 강력 시사**

유지담 선관위원장은 지난 8일 제주도에서 열린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주최 세미나에서 “국민적 합의와 정치권의 동의가 이뤄진다면 올해 대통령 선거부터 선거완전공영제 실시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김대중 대통령도 11일 행정자치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선관위에서도 의견을 낸 바 있으므로 정부로서 같이 협력하고 여야 정당과도 협의해 국민의 컨센서스(합의)를 만들고 돈 안드는 선거를 할 수 있는 길을 찾기 바란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이어 “선거는 민주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따라서 어느정도 예산이 드는 것도 불가피하다”며 이근식 행자부 장관에게 “장관은 협의한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김 대통령과 유 위원장의 선거공영제 언급에 대해 한나라당과 자민련은 각각 대변인 논평을 통해 환영의사를 표명했으며, 민주당 정균환 총무도 찬성 입장을 밝힘으로써 여야간 합의에도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치권, 완전선거공영제 논의 급진전**

현행 헌법은 '모든 선거운동은 각급 선거관리위원회의 법률이 정하는 범위 안에서 하되 균등한 기회가 보장돼야 하며 선거에 관한 경비는 법률이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당 또는 후보자에게 부담시킬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현행 선거법에도 대통령, 국회의원, 시·도지사 선거 등에 있어 후보자들이 기탁금 반환요건을 충족할 경우 선관위가 선거 사무관계자의 수당, 선전벽보 작성, 신문 및 방송광고 등의 비용을 보전해 주는 등 부분적으로 선거공영제를 채택하고 있다.

완전선거공영제가 실시될 경우 선거자금이 가장 많이 들어가는 정당연설회나 조직관리 비용 등으로까지 적용범위가 확장된다.

이와관련 민주당은 정당연설회의 폐지를, 자민련은 시·도별 2회와 시·군·구별 2회(총315회)를 할 수 있는 현행 정당연설회를 시·도 1회(총16회)로 대폭 축소하자는 입장인데 반해 한나라당은 정당연설회가 유권자에게 직접 호소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는 이유로 폐지나 축소에 소극적인 입장이다.

그러나 여야간 각론적 입장 차이가 완전선거공영제 도입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은 크지않다. 선거공영제 확대에 가장 적극적인 자민련의 김학원 원내총무는 "지난 주말 민주당 박종우, 한나라당 이강두 정책위의장을 만나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으며 이번주 내에 완전공영제 도입을 위한 선거법 개정안의 공동발의 협의를 마칠 것"이라고 밝혔다.

정치권의 입장조율이 빠른 속도로 진행될 전망인데 반해 중앙선관위는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 선관위 관계자는 "지방선거 등 코앞에 놓인 일들이 산적해 있어 세부적인 방안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며 "지방선거가 끝나고 별도의 팀을 꾸려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유지담 위원장의 발언은 (완전선거공영제에 대한) 결론을 미리 제시한 것"이라며 "그에 맞춰 추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밑빠진 독에 물붓기’ 우려**

그러나 정치권의 선거공영제 논의를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시각은 곱지 않다.

음성적 정치자금이 철저하게 관리감독 된다면 선거공영제가 장기적으로는 정치비용의 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에 큰 이견은 없다.

하지만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유명무실한 가운데 국고지원금만 증액한다면 자칫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 관행대로 법정선거비용 이상의 엄청난 불법자금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그에 덧붙여 합법적 자금지원 액수만 늘려 놓는 결과가 될 것이란 우려다.

따라서 시민단체와 관련 전문가들은 선거공영제 논의에 앞서 불법 자금의 유통을 근원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장치 및 적발시 엄중한 처벌 장치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의 김박태식 간사는 “(정부가) 돈을 많이 대준다고 해서 고비용 정치구조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정치자금법, 돈세탁방지법 등 제도적 개선과 선관위의 조사권 강화 등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희대 김민전(국제관계학과) 교수도 “정치자금의 수입, 지출이 공개되지 않고는 고비용 정치의 악순환이 거듭될 뿐”이라며 “먼저 정치자금과 관련한 법적 장치의 강화가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거공영제가 ‘절대 善’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선거공영제 확대 논의가 제기된 배경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표했다. 전경련의 음성적인 정치자금 제공 거부 등 정치자금 조달 통로가 현실적으로 위축되면서 합법적 방식으로 정치자금의 ‘숨통’을 트려는 정치권의 반응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가 공영제 수준에서는 선진국들에 뒤지지 않는다”며 “선거공영제가 안돼서 정치구조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몰아가는 주장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또 “가뜩이나 국고에서 지원되고 있는 자금 조차도 용도불명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국민의 동의도 얻지 않고 국고보조금을 증대하겠다는 얘기는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밝혔다.

국고보조금의 배분방식에 대해서도 김 교수는 “교섭단체 중심으로 국고보조금이 배분되고 있어 지원금의 95% 이상을 기존 3당이 독식하고 있는 구조”라고 지적하고 국고보조금의 증액은 “기존 정당의 독과점을 강화시킴으로써 신진 정치세력의 진입을 차단하는 정치적 문턱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지난 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유효득표율 10%를 넘긴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 등 세 정당은 기탁금과 함께 선거비용의 상당부분을 보전받았지만 군소정당은 선전벽보 비용만 돌려받았다.

이종훈 국회 정치담당 연구관은 선거공영제 논의가 “기업들이 음성적인 정치자금 지원을 거부하고 나서는 등 정치자금 조성 구조가 변화하니까 정치권이 제기한 움직임”이라며 “선거공영제의 전제조건으로 정치자금 조달과 지출의 완전 투명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선 후보 3명이면 1천8백억원**

재정조달 방법도 완전선거공영제 실시에 부과된 과제다. 지난 15대 대선에서 선관위는 정당보조금을 포함해 국고로 1천억원 정도를 선거공영 비용으로 지출했으며 완전 공영제가 실시되면 액수가 두배 정도 늘 것으로 전망된다.

선관위도 올해 대선에 후보 한 사람당 6백억원 안팎의 비용이 들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97년 대선 당시 후보당 선거비용 제한액이었던 3백10억원의 2배에 달하는 금액이고 후보가 3명만 돼도 1천8백억원이 필요한 셈이다. 과연 이 재원을 어디에서 마련하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박태식 간사는 “법인세 1% 정치자금 할당 방안 등이 제기되고 있지만 어차피 국민의 혈세를 정치자금으로 사용하겠다는 것 아니냐”며 국고보조금 증액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전문가들은 또 정치자금과 관련한 기존의 관행을 깨기 위해서는 국고보조금에 대한 정치권의 인식 전환도 필수적인 과제라고 지적했다.

이종훈 연구관은 선거공영제 확대에 앞서 “정치권에서는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치자금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며 “깨끗한 정치를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정치인들의 사명감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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