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재가 드디어 개봉관 상영 영화 메가폰을 잡는단다. 제목은<하얀방>. 태아령 얘긴데요…. 태아령? 지워진 아기의 영령말예요…. 그런 게 있었나? 정통 호러와 사이버 바이러스랄까, 심령적 공포와 인터넷의 결합인데…. 그는 워낙 겸손해서 자기 일을 제대로 설명 못하는 편이다. 하지만 설명을 잘했단들 나는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다. 술이 확 깨면서도 정신이 맑아지기는커녕 어안이 벙벙해질 정도로 너무 반가웠던 것.
어마나, 창재야…. 미리 와서 자리를 잡은 그의 '예술친구' 춤꾼 마(혜일)선생도 그 예쁜 얼굴이(그녀는 임창재와 '노동자해방' 투쟁 시절 동기다. 험악한데 돌아다니며 고생께나 했을 텐데, 늙지도 않고, 다만 예술의, 아름다움의 나이를 먹는군. 과연 제대로 된 예술가야…. 제대로 된 투쟁가고.) 완연 경악의 희색으로 빨갛다.
요즘 세상에 '언뜻 혹은 자칫' 소나 개나 싶게, 20대도 채 마치지 않은 '애들'이 우수수 상업영화 메가폰을 잡는 판에, 나이 사십 가까운 그가 개봉영화 만드는 게 뭔 대수? 천만에. 임창재가 누군가. 한마디로, 그는 실험영화(혹은 독립영화)만 만들었고 외국 유학 경험도 충무로 조감독 경험도 해본 적이 없다.
영향받은 한국 영화 감독은 없구요. 외국 감독들은 많지요. 미국의 채플린, 소련의 에이젠슈타인, 프랑스의 고다르와 브레송, 그리고 이탈리아 감독으로 안토니오니라고 있는데…. 그렇게, 느낌표도 전혀 없이 말하는 데도, 그는 시건방진 게 아니라 오히려 더 겸손하게 들린다.
그렇다. 그는 두없음(외국 유학과 충무로 경험)을 합하여 한없음(느낌표)을 자아내듯 바로 그렇게 더욱 자연스럽게, 본질적으로 또 사심 없이, (한국의)실험 영화와 (영화 선진국)의 예술 영화 전통을 접맥해왔다.
'안토니오니'라는 마지막 이름은 그가 좀 (내가 알아들을지) 자신이 없는 듯 했다. 나도 자신이 없다. 그 사람 영화를 봤는가, 아니면 다른 장르(음악이나 미술) 관계자를 착각하는 건가? 아니, 못 봤을 것이다. 나는 , 음악이나 미술과 달리 영화만큼은 갈수록, 다작(多作)감상주의를 피해온 셈이다. 떼돈과 떼인력을 들여 만든 것을 만원 위아래로 주고 대번에 봐버리는 쾌감도 좋지만, 아무래도 볼 것을 다 못 본 것 같아 아쉬우니 명작이란 것을 공부삼아 여러번 보게 되고, 급기야는 한 영화를 수십번 보는 버릇이 들어앉았다. 그리고 어차피 영화가 대중문화의 영역에 속해 있는 것이라면, 여러 번 봐도 지겹지 않은 영화일수록 (대중적인) 고전(고전은 '여러 번 읽는 혹은 보는 작품'이라는 뜻에 제일 가깝다) 이라고 생각하는 고집까지 생겼다. 이 버릇과 고집은 물론 엽기적이지만, 영화를 수십 번 보면 배우와 무대뿐 아니라, 촬영에 열심인 감독과 스태프까지 보게 되고 그건, 감상을 방해할지 몰라도 공부로서는 대단한 횡재다.
노는 게 어리숙한 지 생긴 게 어수룩한 지 하여간 그 비슷하여 내 또래 혹은 위아래 서너살 차이의 '영화계', 특히 '영화 감독계'는 나를 만만하게만 대해왔다. 얼굴이 우락부락 왈짜로 생겼으니 '변강쇠' 역 한번 맡아봐라. 운동권 출신이니까 운동권 선배로 몇 컷 찍지 그래? 형, 아주 좋은 역 있어요. 이번에는 대사도 있어. 비디오 가게 아저씨역인데, '이봐. 정말 근사한 거 하나 있는데?' 그 비슷한 대사. 그것 말고도 몇 개 더 있어요…. 운운.
그렇게 몇 년을 하염없이 당하다가 나는 역습을 가했다. 베드신이라면 찍겠다. 단, 조건이 있다. 감동적이고 눈물겨워야 한다…그 아이디어(?)는 정말 눈깜짝할 사이에 온갖 (성)희롱 섞인 제안들을 진압했다. 그러면 그렇지. 배 나온 아저씨가 배 나온 아줌마하고 질퍽거리거나. 늘씬한 아가씨를 (돈으로 권위로 혹은 조직폭력으로) 겁탈하거나 어쨌거나, 배역 제안자들의 영화적 상상력 속에서는 유들유들한 배둘레햄과 베드신과 감동과 눈물겨움이 일치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게 내내 고소했다. 짜식들. 그것 밖에 안 되는 것들이….
사실 내 아이디어를 실현한 영화는 전 세계에 없다. 너무 '예술' 자를 갖다 붙여서 오히려 예술을 지겹게 만드는 프랑스 영화에도 (있을 것 같지만) 없다. 왜냐면, 섹스신에 대해서는 서구가 미학적 연조가 깊지만 다른 한편 배나온 것에 대해 영화(베드신)적으로 훨씬 덜 너그럽다. 그렇다면 일본은? 스모 선수와 결혼이 불가능해지자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낙담했다는, 몸무게가 스모 선수의 딱 1/5 밖에 안될 것 같은, 인형처럼 깜찍한 여배우 미에자와 리에도 있잖은가? 그러나 일본의 (추醜의) 에로티시즘은 역사적으로 엽기적이고 엽기는 충격적인 바로 그만큼 감동을 훼손한다. 그 섹스=사랑은, 최소한 일본 스모 선수와 여배우를 제외한 관객들한테는, 눈물겨울 겨를이 없다.
그렇게, 그후 '영화감독계'는 한 십년 젊어졌고 십년보다 더 많이, 세월보다 더 빠르게 영화의 발상과 기법 그리고 미학이 달라졌고 대부분 발전했지만, 나는 아직도 해결될 길 없는 그 '난제'를 생각하며 킬킬거리는 버릇이 있는데, 일년에 한두번 만나 내 버릇을 다시 단칼에 싹둑 잘라버리는 영화감독이 바로 딱 한명, 임창재다. (나와 10년 차이인) 1964년생. (나와 같은) 서울출신. (나와 정반대인) 신학과 출신. 나는 그를 근엄한(굵고 검은 뿔테안경과 뭇사내답게 무르익은 피부색에도 불구하고 늘 생글생글 둥글게, 또 천진난만하게 웃지만) 미래주의자(그는 의리파, 즉 과거파지만)라고 명명한다.
허, 근데, 괄호 안의 생리 혹은 생태는 그렇다치고, 이게 또 무슨 소린가, 진보주의자도 '진보'라는 말 때문에 툭하면 대중추수로 천박해지고 더군다나 '미래주의'는 신세대란 말보다 더 경박한 현실파괴주의자의 느낌을 담게된 마당에 '근엄'이라니? '근엄'은 확실히 과거의 무게다. 그리고 '미래주의'는 확실히 미래를 빙자한 날개의 가벼움, 혹은 날라리와 관계가 있다.
요는 '한'이라는 형용사 어미. 그 어미가 이룩하는 근엄과 미래의 변증법에 기대는 것이 이제까지의 그와 그의 영화를 평가하고 또 앞으로를 기대하는 일에 가장 적절할 것 같다는 얘기다. 확실히, 임창재에게도 80년대와 90년대는 현실주의 예술이라는 용어를 영화 창작 안팎에서 매우 심각하게 왜곡시키는 시기였다. 장선우, 박광수, 홍상수의 영화는 물론이고 그 방면으로 장안의 화제였던 이창동의 <박하사탕>, 그리고 해외 상복이 터졌던 이광모의 <아름다운 시절>조차 원래 의미의 현실주의 영화는 아니다. 그리고 '현실주의'라고 이름 붙일법한 작품들은 '영화'라 부르기 민망한 것들이었다. 세계사의 흐름으로 보더라도, '현실주의영화'란 말을 복원시키기는 힘들고, 불필요하다. 그 말을 폐기하거나 20년만큼(세계사의 흐름으로 보자면 거의 100년만큼)의 왜곡을 질적 도약의 공(空, 이것도 없음?)으로 전화시켜야한다.
나는 임창재의 영화 수업 및 제작 20년이 그것을 가능케 하는 아주 중요한 흐름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가 실험 영화만을 계속했더라도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내가 무언가 걱정한다는 뜻일까? 그가 또 내 기우를 벗어난다. 상업영화(어쨌거나, 개봉하고 돈받을 거니까 상업영화죠, 뭐.) 해보니까 참 좋더라고요. 아주 편해요. 전에는 독립작업을 했는데 분업이 잘되어 있어서요….
나는 쓸데없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통솔이 안되면 파탄인데…. 장단점이 다 있지요. 끌어내는 능력이 문제겠지요…. 자신 있나? 예. 예술로 내화하려던 방향을 대중 쪽으로 외화시키는거지요. … 그게 그렇게 쉽겠나? 쉽지야 않겠지만, 우선 연기가 받쳐주니까. …그래. 실험 영화는 무엇보다, 연기가 문제지. 예산 때문에 유명 연기자를 쓸 수가 없으니. 연기력 부족 때문에 대사도 제한을 받고 대체로 시각적인 면에 의존할 밖에 없고….
그런데 이 말은 내 혼잣말이 되고 말았다. 그는 모처럼 일사천리로 나갔다. 규모가 크고 전문 인력이 동원되니까요. 조명에 촬영에 대본에 모든 게 조건이 전보다 더 나아졌으니까요. 물론 감독의 역할이 조금 다르지만. 더 넓어졌지요…근데 이 자가 도대체 뭘 믿고, 분명 들떠 있지만, 여전히 겸손한 채로 자신만만한거지?….
이 말은 스스로 혼잣말로 누르고, 내가 물었다. 영화란 게 무어라고 생각해?…으음…. 그가 약간 끙, 하고나서, 말했다. 영화는 시간과 많이 닮았어요. 항상 현재형이고요. 뭘 드러내지 않고 그 자체로 가는. 앙리 베르그송이 했던 얘기와 비슷하지요…. (공空인) 시간의 색화(色化)라…. 그것보다도, 형이 시를 경주의 무덤으로 비유했던 대목. 그게 영화에도 딱 들어맞는 걸요…. 그래?…. (그건 정말 순정한 고전적 순수예술에 대한 비유였는데? )
아, 이 자는 자기가 하고 싶은 실험영화(들)의 총체로서 장편 영화를 실현하려고 하는 것일까?! 그것을 가능케 하는 면면한 흐름은? 있다. 내게 흐름이 연상시키는 두개의 단어는 물과 음악. 그의 영화에는 그 두 가지가 원래부터 본질적이다. 그에게 물은 우선 '불의 기억'을 다스리는, 혹은 다스린 '눈물'이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첫 작품 <오르그>(Org, '조직운동'의 어감이 강하다, 16mm/흑백/13min/1994년)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상황은 한 남자의 자살. 스토리 텔링은 종래의 관습적인 방식은 가급적으로 피했다. 시각적 이미지들이 주는 느낌과 정서가 입체적으로 전개되면서 어느 정도 스토리를 대신한다…. 이 작품에서 물은 자살의 배경(목욕탕?)이다. 그리고, 음악은? 시각적 이미지들은 음악의 이야기를 지향한다.
이것 외에, 임창재는 생물학적으로도 운이 좋았다. 80년대에 상처가 운명적으로 되기에는 너무 젊었고 90년대에 세태의 경박성을 따라가기에는 경험이 무거웠다는 것. 그것은 그와 동년배 운동권 세대의 행운이겠다. 그리고 그가 뒤늦게 영화에 뛰어든 게 아니라 처음부터 영화를 통한 운동을 지향했다는 게 그의 동년배 영화 예술 세대의 행운이겠다. 영화라는 장르는, 테크놀로지와의 밀접한 연관 때문에라도, 진보를 외치다가 되레 천박해지는 함정에 좀체 빠지지 않는다. 그는, Org에서 보듯 적절하게 전위-실험적일 수 있었다.
두 번째 작품은? 그의 말을 다시 들어보자. <오버 미>(Over me, 무언가에 짓눌리는 '모양새'와 '어감'이다/16mm/18min/흑백/1996년)는 희미한 과거로 묻혀져 가는 80년대 후반 얘기다. 희망의 미래를 꿈꾸며 억압에 저항하다 희생당한 사람들, 특히 노동자에 대한 기억과 회상이 바탕이다. 그것은 현재의 나 혹은 우리에게 슬픔과 절망, 갈등과 변화…. 그렇게 그는 20년 중 절반을 전화시킬 준비를 한다. 물이 '불의기억'에 가까워지면서 눈물의 빛깔을 갖게 되는 이 과정은 줄거리의 관습성에 기대지 않고 오히려 시각적 이미지=음악과 주제의 선명성과의 생생한 거리를 10년의 공(空)으로 감당하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과연, 세 번째 작품은 <눈물>(Lachrimae, 16mm/21min/color/1998년)이지만 이 눈물은 벌써 '사회성 너머'의, 혹은 사회성을 무의식적 예술의 뼈대로 들여 놓은 '영화 그 자체'를 지향하고 다시 과연, 네 번째 작품은 <아쿠아 레퀴엠>(Aqua Requiem, '물의 진혼 미사곡'/16mm/27min 30sec/color/1999년)이다. 물이 '총천연색'을 낳는 것도 장관이지만, 그것보다 lachrimae와 requiem 모두 음악용어다. 그리고 둘다 진혼 미사곡 용어, 즉 죽음의 용어지만, 더 예민한 대목은 lachrimae가 진혼 미사곡의 일부를 이룰 뿐 아니라, 춤과 가사의 음악 속으로의 응축=죽음을 통한 기악=절대 음악(器樂)의 탄생 과정을 예견시킨다. 다울랜드(Dowland, John)의 동명 류트 곡을 연상시키기도 한다는 점이다. 즉, 그의 영화는 물을 매개로한 시각 언어의 음악=시간화 과정을, 놀랍게도 성공적으로 수행해오고 있다. 이것은 탈(脫) 사회화? 노. 예술 속으로의 사회성 심화-응축이다.
<눈물>에 대해 그는 공식적으로 이렇게 써놓았다. 상처의 기억은 변형된다. 소녀는 변형의 중심에서 흔들리고 흔들림은 여인을 투과한다. 여인은 상처에 젖는다. 소녀는 사라지고 여인은 슬픔에 젖는다…. 그러나 그는 후일담으로 또 이렇게 썼다. <눈물>은 소녀가 여인을 만나기까지의 시간과 이후의 죽음, 자살에 대한 추론적 상상이 기반이다. 처음부터 비극으로 치닫고 싶지는 않았지만, 소녀에 대해 접근해 갈수록 최후의 선택은 내가 아니라 소녀가 해야 한다는 판단이 들었다….
더 나아가서, <아쿠아 레퀴엠>은? 예술과 죽음, 그리고 구원의 삼각관계가 삼위일체로 전화된다. 불행하게 성장한 소년이 자신을 억압하는 남자로부터 벗어나려 하는데, 우연히 마주친, 오래 전에 떠나간 어머니를 닮은 소녀를 만나 마음이 이끌리고 소년의 뜻하지 않은 죽음이 오히려 소녀를 돕고 소녀는 슬픔의 지평을 향해 떠난다…. 시각 언어가 더욱 액정-시간화하고, 그는, 그의 영화는? 그는, 그도 '영화의 기악' 속으로 사라지는가? 아니다. 액정-시간화한 시간 언어가 삼위일체 전화의 매개로 되면서, '신의 어린 양'에 달한다. '신의 어린 양'이란 무엇인가? 존재 모순의 인간이 지순극한(至純極限)의 고통을 통해 달하는 예술=죽음=구원의 발성이다.
그 다음, 푸치니 오페라 중 '내 이름은 미미'를 주제곡 삼은 <미미>(Mimi, video/10min/2000)는, 아무리 '단돈 십만원' 예산의 비디오 페스티발 용이라지만 실책. 외부 세계에서 내려온 인형 미미가 어린애들에게 놀림 받고 폭행당하다면서 아름다운 꿈을 거부당한다는 줄거리가 너무 안이한데다, 모든 것이, 음악도 줄거리도 시각 언어도 카메라도 어디론가 시끄럽게 떠나갈 뿐, 흘러가지 않는다.
그는 언뜻 기악의 사라짐이 사라짐의 황혼으로서 오페라를 낳는다. 고무 의식적으로나마 생각했던 것일까? 그런 점이 없지 않겠지만(왜냐면 그는 '독백'에서 밝히고 있듯, '바그너의 위험'을 의식하고 있다), 그것과 상관없이, 그는 (음악과 시간, 그리고 물의 영화=죽음으로서) '흐름'의 다음 단계에 올곧게 가 닿았다.
최근 작의 제목은 쇤베르크(Schoenberg, Arnold)의 음악에 가 닿는 <정화되는 밤> (16mm/ 19min/2001년). 응축이 현대적 엄혹에 달한 음악을 배경으로 이런 줄거리가 진행된다. 작업장에서 알수 없는 치명적인 빛!(이것은, 시간 언어의 음악화의 빛화?)에 노출되어 치유할 수 없는('없는'의 반복) 병에 걸린('작업장병'의 사회적 의미를 어디까지 응축할 수 있지?) 사내가 사랑하는 부인을 남기고 자살하고(또 없음=죽음). 아내는 절망에 빠진 채 사라진다(또 없음). 그녀는 임신한 몸이었다…. 세월이 지나고(또 없음) 천사를 닮은 소녀가 이제는 쇠락한(또 없음) 사내(없음)와 그 아내(없음)의 보금자리를 찾아와 두 사람의 아름답고 비극적인 시간(없음)을 떠올린다….
아, 없음이 이리도 많은데, 영화는 삶의 '아름다운 비극성'으로 눈부시다. 아, 질적 도약의 공(空). 그리고 그것을 위해, 이 자가 도대체 어디까지 예술 장르의 간극(사실, 영화와 음악 사이는 얼마나 먼가)을 더 넓혀가면서 그것을 감당할 뿐 아니라 공(空)의 질로 전화시키려는거지? 그래 그게 가능하다면 장편 영화하는 거, 살판났겠구나. 그게 가능하다면, 그가 왜 20년의 왜곡을 전화시키는 일과 장편 영화를 매개로 실험 영화를 '대중화하면서 더 예술화하는' 일, 사회성의 궁극적인 심화-응축이 바로 예술성임을 영화 예술로 형상화하는 일을 못하겠는가?
그는 분명, 장선우-박광수-홍상수-김기덕 식으로 이어지는 영화 세대의 다음 세대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세대일 것이다. 그런 그의, 더더군다나 장편 영화 작업이, 여느 신인 감독들과 달리 소란과 요란 굉장을 떨지 않는다고 해서, 어찌 반갑고 궁금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나는 안심이 되고 또 제멋대로 신이 나서 술잔에 좀더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다소 사무적으로 물어보았는지, 아니면 배려를 해주는 건지 주변 사람이 좀 딱딱해져 있다가 와르르 술잔을 잡았다. 그 와중에 내가 대뜸 취한테를 내며, 거의 윽박지르듯, 무례하게 물었다.
영화의 본질이 무엇이냐? 예? 글쎄요…. 그는 모처럼 쏠린 좌중의 시선을 의식한 듯, 갑자기 부끄럼을 타기 시작했는지, 겸손하게 자신만만하던 태도를 황급히 거두고 말을 아끼며 '글쎄요'를 남발하기 시작한다. 영화가 종합 예술 장르라는 거 아니냐? 그 종합의 언어가 뭐야? 글쎄요…. 여러 예술장르 장점을 취하고, 활용하고, 또 타협도 해야겠지요…. 아, 그건 단순 합(合)이거나 저열 평준화 혹은 절충 아니냐, 종합의 어의가 뭐냐는 거지….
그러는 통인데 뜻하지 않게 소설가 성석제와 평론가 정홍수가 술집 안으로 들어서는 바람에 대화가 일단 거기서 끝났다. 정홍수는 원래 수줍음이 심하고 성석제는 원래 그렇듯 여자한테 뻘쭘하더니 동창간이라고 임창재와 대번에 죽이 맞아 서로 껴안고 돌아가니 더 이어질 가망도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자리를 파하고 다음날 오전에 임창재가 보낸 자료를 받아 보니 이런 말이 있다. 영화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걸 알면 (그는) 더 이상 영화를 하지 않겠지…. 이런이런 뒤늦게 한방 맞았군. 그렇게 남은 취기가 싹 달아나고 나니 내 질문이 더 한심하게 들린다. 그는 사실 영화(의 종합언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을 줄곧 해 왔던 것이다.
음악 얘기가 많이 나왔지만, 음악의 시각화야 어찌 됐든 칸딘스키 이래 흔한 일이고, 시각의 음악화로 시작되어 없음으로 '정화되는 밤'의 '영화'에 이르는 길이야말로 영화 자체의, 그리고 영화만의 고행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자, 그가 준비하는 영화의 개요는 이렇다. 공포 속에 죽어간 여자들의 징후.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야 해. 아니면 내가 죽는다…. 어느날 악령이 당신에게 메일을 보냈다. 무심코 클릭하지마라. 너도 죽는다…사이트의 기호 속에 숨어 있는 태아령의 저주, 그 수수께끼를 푸는자 만이 살아남는다. 물 얼룩진 천정 속 포르말린 가득한 유리병, 그 속에 사지가 절단된 영혼이 뜬눈으로 누구를 기다린다. 비밀의 방. <하얀방>을 찾아라. 태아령은 260일을 채워 세상의 빛을 보고 싶어하지…. 그리고 풀지 못한 마지막 기호….
언뜻 '엽기적인'(이 단어 밖에 없나?)인 소재지만, 자세히 보면 이 줄거리 안에 그의 영화가 미학적으로 해결해온 대목 혹은 지점들이 아연 의문 부호로 틀어박혀 있지 않은가.
ps. 이글을 쓰면 한 5백만원어치 광고는 되겠지? 될꺼야…. 내가 취중에 그렇게 농반-자랑반을 했던 모양인데 화장실 간 틈을 타서 임창재가 '허. 5백만원이면 요즘 하루 제작 비용이네. ' 그러더란다. 허어, 그렇단 말이지. 그렇다면 전체 제작비가 얼마?…. 그러나 나는 자존심이 다소 상해서 시작했던 그 셈을 금방 다른 바람으로 바꾸었다. 500만원이 뭐냐, 임창재가 모처럼 장편 영화하는데, 최소 천만원은 되야지…. 그나저나 저 마 선생. '예술친구' 만나니깐 아연 활기에 생기까지 도는군. 부러워라…. 그래. 이제는 정말 니들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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