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로, 인류학적 연구방법의 전형인 민족지적 연구의 주제와 대상으로서도 현대의 금융 분야와 그 제도를 다룬 연구들은 비교적 최근에 등장하기 시작한 흐름에 속하며, 더구나 국내에서는 금융기관이나 제도라는 주제에 대해 이론과 참여관찰이 결합된 연구나 해외연구들의 소개가 아직 거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본서는 저자 자신의 월스트리트 취업 경험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내부자들의 인터뷰와 대화, 그리고 참여관찰을 풍부하게 담고 있으며, 이런 경험적 지식이 기업과 금융, 그리고 문화에 대한 이론 및 역사적 지식과 잘 결합된 드문 장르의 연구서라고 할 수 있다.
▲ <호모 인베스투스>(캐런 호 지음, 유강은 옮김, 이매진 펴냄). ⓒ이매진 |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굴로 들어가기로 한' 금융 전공도 아닌 인류학 전공자였던 그녀를 월스트리트는 의외로 쉽게 받아들여주었다. 그녀가 바로 '명문' 프린스턴 대학교 출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사실은 '미국과 세계가 인정하는 월스트리트의 권위와 영향력, 정당성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라는 문제의식과 연결되는데, '헤게모니 일대기'로 이름 붙여진 1장에서 그 대답은 '월가 투자은행과 미국의 엘리트 대학 간의 근친관계' 혹은 여기서 비롯된다고 여겨지는 '똑똑함(smartness)의 신화'로 밝혀진다.
고용에 있어서 월가의 유명 투자은행일수록 하버드 대학교와 프린스턴 대학교 등 특정 명문대 출신들에 대한 선호가 노골적이고, 다른 대학 출신들에 대해서는 경제나 경영학 출신으로 입사를 비교적 제한하거나 보다 많은 자격증명을 요구하는 등 차별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내에서도 90년대 말 이후 심심찮게 보이게 된 현상이지만, 이런 금융회사들에서 각종 채용 프리젠테이션이나 정보 설명회 등의 형태로 '먼저 엘리트 캠퍼스로 다가온다'. 그들이 가진 유일한 기술과 자산은 무형의 '인적인' 것들이기 때문이다. 프린스턴 대학교의 경우 2004년과 2005년 졸업생의 40퍼센트가 졸업 후 금융 서비스업계에 '진출'했으며, 이는 졸업생이 정규 일자리로 택한 단일 산업 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이었다! "훌륭한 가정에서는 아들을 월스트리트에 취직시키지 않는다"는 유행어가 존재했던 대공황 직후의 상황과 비교하면 상전벽해의 차이라 할 수 있다.(1941년 하버드 경영대학원 졸업생의 월가 취업률은 1.3 퍼센트에 불과했다)
저자는 이처럼 대학생들을 투자은행으로 밀어붙이는 핵심적인 이유를 채용과 관련하여 학기 초부터 "월스트리트가 대학 생활 전체를 지배한다"는 사실에서 발견했다. 월가에 의한 엘리트 대학생 '헌팅'으로 풍자되는 이런 과정들의 결과, 학생들은 학창시절 초기부터 월가를 상징적인 종착지로서 '출세' 일반과 동일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월가는 채용과정에서 명문대 학생들의 똑똑함에 대한 자부심 혹은 엘리트주의에 바람을 집어넣으며, 명문 대학 입학에서 비롯된 대학생들의 이러한 자아상을 졸업 후 사회생활에서 '부와 권력이 추가된 채로' 연장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 '엘리트 직장'인 투자은행이라는 환상을 주입한다. 이는 또한 월가 내부에서 그리고 사회 전반에 다른 직장이나 직종, 산업은 '덜 똑똑하거나 뒤떨어진다'는 가정을 정당화하거나 수용하도록 하는 효과를 낳는다.
그런데 이와 같은 월가와 미국 엘리트 대학 간 근친관계 현상은 1980년대에 투자은행들이 '주식회사 미국'(본서에서 미국의 제조업체나 비금융업종 기업들을 지칭하는)에 미치는 영향력을 확대하고 엄청난 수익을 올린 뒤에나 생긴 일이었다. 학벌주의의 후광에 의존하는 월가 투자은행들은 따라서 다른 업종과 달리, 보다 안정적인 고용조건을 제공하면서 자체적으로 인력을 육성할 필요를 느끼기보다는 항상 존재하는 명문대학이라는 인력풀 덕분에 감원과 충원을 상시적으로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이러한 인력충원과 감원의 문화는 월가를 넘어 '주식회사 미국'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즉 (자신들의 학벌 덕분에) 일상적인 감원과 재고용 가능성에 노출되고 심지어 그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하는 엘리트주의적 투자은행 종사자들이, 자신들의 거래 중재를 통해 합병되거나 분해되는 다른 기업들에서 감원되는 노동자들에게 정서적으로 공감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자기확신적'(자아도취적?) 똑똑함의 문화는 기업과 산업 전반에 파괴적이거나 유해한 의사결정을 은폐하기도 한다. 똑똑한 사람들이 의사를 결정했는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이는 또한 미국 내에서의 영향력만이 아니라 글로벌한 영향력 확대로도 이어진다.
월스트리트 투자은행에서의 노동, 특히 투자금융, 세일즈와 트레이딩, 자산관리 등을 가리키는 '전면부서'에서의 노동은 게다가 고되기까지 하다.(입사 초기 2년간 일주일에 100시간을 일하기도 한다) 이것이 2장에서 다뤄지는 주제이다. 투자은행의 노동경험은 '화이트칼라 착취공장'에 비유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고된 노동에는 젊은 시기의 체력 및 금전 동기에 기반한 자기착취와 고수입이 연결된다. '똑똑함'과 '고된 노동'은, 정기적인 출퇴근을 하고 느릿느릿하며 비효율적인 '주식회사 미국' 노동자들의 (가정된) 안주하는 모습과 스스로를 차별화하는 월가의 가치를 근거지우며 고수입과 지배력을 정당화한다. 물론 월가 외부자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정당화가 과도하게 지나치거나 근거가 없다고 볼지라도 내부 구성원들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 2011년 뉴욕 월스트리트 인근에서 기업을 상징하는 좀비 복장으로 시위를 벌이고 있는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시위대. ⓒAP=연합뉴스 |
문제는 '주식회사 미국'의 대기업들에서 1990년대 이래 조직내부에서 관리자를 승진시키기보다 금융계 출신을 채용하는 추세가 유행하면서 이러한 과로의 문화가 확산되는 반면, '주식회사 미국' 노동자들의 보수는 '월스트리트' 투자은행직원들의 보수만큼 높거나 노동 시간과 보수가 비례하여 크게 연동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이처럼 미국 산업 고용의 질 악화에도 월가의 노동문화는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 저자는 또한 월스트리트가 선전하는 "돈 능력주의"(money meritocracy)의 허상을 벗겨낸다. 즉 월가는 돈을 향한 큰 열망으로 인해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이 일반 사회보다 적다는 주장인데, 이는 사실과 무척 다르며 이곳에서는 백인남성 중심의 문화가 작동한다.
3장과 4장에서는 각각 '주주 가치 혁명'과 '주주 가치' 개념을 낳은 경제학에서의 신고전파 가정을 다루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데, 본서에서 가장 이론적인 서술에 해당하는 부분들이다. 여기서는 주주 가치 혁명이 1980년대 미국의 기업 인수 운동에서 시작된다고 보고, 이는 뉴딜에서 시작되어 제2차 세계 대전 이래 1980년대까지 미국의 '복지 자본주의 기간' 중 지배적이었던, 피터 드러커로 대표되는 반(反)신고전파적 기업이해가 다시 역전되는 과정으로 파악되고 있다. 오늘날 경영학의 구루로 여겨지는 드러커는 "기업은 영구적이며, 주주는 일시적이다. 기업은 사회적, 정치적으로 선험적인 존재인 반면, 주주의 지위는 파생된 것이며 법률을 고찰할 때만 존재한다"고까지 말했다.
하지만 오늘날 월가에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는 사람은 모두 '주주 가치'를 입에 올린다는 사실을 저자는 발견한다. 그리고 이는 일종의 '세계관'이자 월스트리트의 문화와 미국 기업문화를 연결하는 핵심 실마리이다. 이 세계관에서 주주에게 좋은 것은 기업에게도 좋은 것이며, 외견상 보이는 불일치(가령 기업의 감원과 해당 기업 주가 상승의 병행, 이로 인한 장기적인 경쟁력의 상실 등)은 당연한 듯이 무시되는데, 그 까닭은 이 세계관이 경영대학원 바로 첫 시간부터 교과서에서 주입되는 내용이기 때문임을 월가 구성원과의 대화를 통해 발견한다. 그리고 1980년대의 기업 인수 운동은 바로 이러한 '주주 가치 세계관의 실현 과정'이다.
캐런 호의 분석에서 흥미로운 점은, 그동안 제기된 '주주 가치' 개념이나 운동에 대한 다양한 비판적 분석들(주주 가치 운동은 금융 시장의 분기별 기업실적 평가에 기반하여 단기적 주가부양을 목표로 한 기업 인수나 구조조정에 치중한 나머지, '주식회사 미국'의 고용과 장기적 성장, 기술개발 등에 부정적 효과를 가져 온다는)에 추가하거나 이와 초점을 달리하여, 저자는 주주 가치라는 명목으로 진행된 기업 구조 조정이 이를 내세우는 투자은행 종사자들이 주장하는 목표나 이상과 자주 괴리되는 결과로 나타나는 '자기모순적' 혹은 '자기부정적'인 현상임을 발견하는 점이다.
즉 기업합병과 정리 해고의 물결로 표현된 주주 가치 운동은 현실에서 장기적으로는 주주 가치 파괴(가령 주주가치를 표방하며 인수합병과 투자 철수 등의 대상이 된 회사들의 주가가 장기적으로 하락하는)를 은폐하며, '주식회사 미국'의 부가 월가(여기서는 투자은행만이 아니라 기관투자자들을 포함하는)로 단기간에 이전되는 것을 정당화해주는 세계관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투자 은행들은 여러 딜에서 사실상 주주 가치를 실천하는 데 실패한다."(236쪽)
이러한 1980년대의 운동은 미국에서 자본주의의 가치관을 변화시켰으며, 특히 기업에 대한 관점을 '사회적 기관'에서 주주의 소유물로서 '자산 포트폴리오'로 보게끔 만들었다. 1980년대의 기업사냥꾼들에 이어서 1990년대에는 유명 투자은행들이 기업합병을 부추기는 주역이 되어 "'주식회사 미국'을 보드게임으로 뒤바꾸는 원대한 과정"에 참여한다. 경기와 상관없이 '주식회사 미국'에서 일어나는 많은 인수합병 딜은 월가의 많은 소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최고경영자의 보수는 스톡옵션 등으로 인해 점차 보너스와 주식 시장에 연동되어, 이들은 월가의 하인들이 되어 단기적인 주가 급등을 조성하려는 동기를 갖게 되었다.
이어서 주주 가치 서사의 부흥은 기업을 개인의 소유물로 보는 신고전파 경제사상의 소유권 이론에 대한 복고적 향수와 연결됨을 저자는 지적한다. 현대 법인 대기업시대에 와서 '주주'는 바로 그 이론이 이상화하는 기업의 '소유주'로 지목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월가가 대중 주주들로부터 자본을 창의적으로 이끌어 내어 '주식시장 미국'을 탄생시켰다는 신화에 의존한다고 저자는 반박하며, 역사적으로 철도와 같은 산업 외에 성장하려는 기업은 월가의 자금조달이나 주식공개에 의존하기보다 주로 기업 자체에서 축적하고 보유한 수입과 집안의 재산에 의존하거나 상업대출을 받았음을 지적한다. 특히 호경기였던 1950년에서 1973년 사이 비금융기업 자본 지출의 93퍼센트는 내부 자원에서 조달되었다. 20세기 초에 이미 자신이 신설 기업과 혁신을 위해 자본을 조달했다고 주장한 뉴욕증권 거래소의 자임은 "상상의 경제에서" 그리 했음을 역사가의 지적을 통해 밝힌다. 사실은 현대 법인 기업의 등장과 성장이 주식시장의 탄생을 도운 것인데, "역사적으로 주식시장은 미래의 생산적 투자에 쓸 자본을 조달하기보다 주로 개인 기업 소유주들이 '현금을 빼내는' 일을 도왔다"(268쪽).
추가적으로, 제1차 세계 대전을 경과하며 미국 국가는 미국인에게 자유전쟁 채권을 대대적으로 판매하여 대중투자를 촉진하였고 20세기 초 50만 명에 미치지 못하던 기업 주식소유자는 1929년 1000만 명까지 늘어났다. 이처럼 시간/인과적으로 볼 때 법인기업과 미국 국가에 의한 대중투자 독려의 결과로써 오늘날과 같은 주식시장은 현실화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월가와 기업지도자들은 '주주 민주주의 교의'를 발전시켰는데, 이는 대중의 주식소유가 개인의 경제적 자율성과 재산소유자화로 가는 길이라는 신고전파적 전제와 관련되어 있으며, 불평등한 계급적 적대를 은폐하거나 사회복지 혹은 노동자조직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차원도 존재하였다. 하지만 현실에서 평범한 개인투자자들이 소유하게 된 주식들은 '물탄 주식들'로서 의결권이 없는 주식들이었고 평범한 주주들을 월가가 착취한다는 비판이 일기도 하였다.
오늘날 다수가 믿고 있는 경제적 상식과는 다르게 유동적 소유권의 형성과 지배권의 부재는 주식 소유의 역사적 구성과 구조 안에서 초기에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었지만, 소유자가 자기 자산을 지배한다는 전통적인 소유관념은 주주 가치 혁명으로 부활한 반면, 그 전통의 다른 한 축인 소유자가 자기 자산에 집착하고 헌신한다는 부분은 사라져버렸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또한 신고전파적 관점에서 주식을 소유하지 않는, 혹은 적게 소유하는 전문경영인의 존재는 껄끄럽게 인식되었는데 이들이 기업의 실질적 소유자인 주주의 자산을 강탈하는지 의심쩍기 때문이었다. 본서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사실상 주주 가치 운동의 이론적 구성요소로서 가장 핵심적인 것 중에 하나가 이 문제를 다룬 젠센(Jensen)과 멕클링(Meckling) 등에 의해 정교화된 '대리인 비용 이론'으로서 현대 금융경제학 교과서의 핵심 교의를 구성한다.
이는 경영자가 주주의 대리인으로서 대리인이 주인인 주주의 이해관계와 독립적으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에 기반하여, 스톡옵션의 유인이나 기업통제시장에 의한 경영권 교체 압력 등을 통해 양자의 이해를 수렴시킬 것을 정당화해주는 이론이다. 이 논리는 기업에서 주주의 위상을 특권화하는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하는 것으로 비판받기도 하지만, 오늘날까지 젠센 등은 금융경제학에서 상당한 이론적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이처럼 경영진의 보수 형태가 주식시장의 운동에 연동되면서 미국에서 경영자와 일반노동자의 급여 간 간격은 주주 가치 혁명이 시작된 이후 급격하게 커지기 시작하였고, 경영진의 관심은 '주가부양'이라는 운동의 목표에 귀속되었다. 법인기업에 대한 관점 투쟁, 즉 이를 사회적 조직으로 보느냐 금융자산으로 보느냐 사이의 주도권 경쟁은 1950~60년대의 전자 우위에서 양자가 서로 절충되거나 타협되는 기간을 지나 1980년대 마침내 후자의 완승으로 귀결되었다. 경제학 일반과 금융경제학 분야에서 소유자 중심 신고전파 모델의 부상과 연기금, 사모펀드 등 성장한 기관투자자들에 의한 주주 행동주의, 1929년 대공황을 낳은 월가의 역할에 대한 대중적 망각 등이 아마도 여기에 기여한 원인들일 것이다.
5장은 전술한 대로, "아코디언처럼" 잦은 정리해고와 신규 채용/재고용이 만성화된 월스트리트 고용문화에서 투자은행 종사자들은 자신들의 고용 상황을 시장상황 탓으로 설명하려 하지만, 저자는 사실 이것이 자신을 추상적인 '시장'과 동일시하는 문화적 관행의 산물로 본다. 월가는 보다 '유동적인' 시장행위자이다.(여기서 '유동적이 된'[Liquidated]은 본서의 영문원제이기도 한데, 이는 중의법적으로 사용된다. 즉 월가 행위자들의 문화적 존재양식의 유동성과, 주주들이 갖는 소유양식의 유동성, 그리고 이러한 문화적 영향력과 지배가 낳는 대중들의 유동적인 삶 등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으로 저자는 이 개념을 제목으로 한 듯하다)
▲ 2008년 월스트리트의 금융위기 하루 전날을 담은 영화 <마진 콜>의 한 장면. ⓒ조이앤컨텐츠그룹 |
특히 저자는 주주 가치 개념과 세계관이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거나 하향식으로 '주식회사 미국'에 대해 효과를 지속적으로 가질 수는 없으며 월스트리트 투자은행들의 일상적 조직문화와 협력하여 작동한다고 본다. 여기에서 월가의 만성화된 고용불안은 역시 '주식회사 미국'의 그것으로 (하지만 고수입과 재고용의 낙관적 가능성은 부재하는 형태로) 전이된다.
6장에서 저자는 금융사회학의 최근 연구를 활용하는데, '모델과 시장의 상호구성'이라는 측면에 착안하여 똑똑함, 고된 노동, 불안정한 고용만이 아니라 특히 보수체계에 대한 월스트리트 투자은행 종사자들의 문화적 가치와 모델이 어떻게 시장을 형성하는지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이는 주주 가치만으로 '순수하게' 설명되지 않는 월가의 '주식회사 미국'에 대한 일관된 유동성 전이와 강요를 미시적 문화실천을 통해 들여다보고자 하는, 어찌 보면 본서가 갖는 가장 독창적인 기여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보수관행이야말로 월가 투자은행 문화의 핵심적 결정요인이라고 보고, 실제적인 급여체계와 관행을 상세하게 기술해나간다. 투자은행 종사자들은 급여수준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했다. 이들에게 기본연봉보다 중요한 것은 1년에 한 차례씩 연말에 발표되는 보너스로서, 이는 종종 기본연봉보다 많으며 직급이 올라갈수록 그 차이는 크게 벌어진다.(직급별 구체적 액수와 급여지급 방식은 책에 자세히 기술된다) 또한 1990년대에 20대 초중반의 종사자가 1년에 일반적으로 10만 달러 이상을 벌었다고 하니, 일확천금이나 고소득에 대한 열망은 커지게 된다. 이런 보너스는 딜의 성사여부와 연동되며, 따라서 위험한 딜조차도 고소득 보너스로의 유인 동기는 막지 못하도록 하여, 금융거품에 이어 위기와 불황으로 이어지는 주기를 만들도록 한다는 지적은 매우 흥미롭다. 개인들의 미시적인 집합적 실천이 경기 호황과 불황이하는 거시적인 주기의 형성으로 이어지는 고리를 보여준다고나 할까, 인류학의 특징이자 장점인 '추상적 개념에 의한 설명으로 환원되지 않는 국지적 문화실천의 기술을 통한 설명'이라는 측면을 잘 보여주는 듯하다.
또한 투자은행의 주된 사업전략이 '장기적 전략을 세우지 않는 전략'으로서 시장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흥미롭다.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이 투자은행의 문화적 정체성의 핵심이라니! 직원들은 언제고 해고와 채용이 가능하고, 좋은 보수의 제안은 이를 가능하게 한다. 업계 종사자들은 보수에 따라 언제고 직장을 떠나고 경쟁사로 갈 준비가 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것이 신속성과 유동성을 가능하게 하지만, 또한 저자는 이 편의주의적 이면의 자기파괴적 속성에 주목한다. 그리고 저자는 다음과 같은 월가 리서치애널리스트 출신의 말을 인용한다. "월스트리트는 보수체계에 불과하다…투자은행의 사업은 수입을 창출하는 게임일 뿐이다."
마지막 7장에서 저자는 월가 투자은행들의 세계화 전략을 분석하는데, 핵심은 이들이 주장하는 자신들의 세계화 선도에 대한 주장이 시장에 대한 장악력을 선전하기 위한 허세이자 전략, 승리주의 이데올로기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이는 실질적인 결과를 낳고 메릴린치의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일본 진출의 실패에서 보이듯이 완전하지도 않다. 그리고 2008년 9월 리먼 브러더스의 붕괴 이후의 상황처럼 투자은행에서 개발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을 전세계로 판매하고 구매한 월가의 유명 투자은행들이 파산하거나 인수합병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다.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갔다고나 할까. 그리고 미국 투자은행의 사정에 분석을 제한하는 본서에 더 이상의 언급은 없지만, 이는 마침내 미국을 넘어 유럽 발 재정위기 등으로 전세계 장기불황의 단초가 되었다.
<호모 인베스투스>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점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월가 엘리트 투자은행 구성원들의 문화적 실천과 제도적 양식에서 '주식회사 미국'의 변화를 다소 과도하게 유추하지는 않는지 의문이 없지는 않더라도 그러한 유동적 문화의 전이를 무시할 수는 없으리라는 사실, 당연시 여겨지는 경제사적 신화에 대해 그리고 그러한 신화에 기반한 폭력적 소유권과 지배권 주장에 대해 이를 역사적으로 맥락화하며 민주적 공동체의 이름으로 대안서사를 발견/구성하고 이의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싶다.
미국 월가에서 쌓아놓은 금융적 승리주의의 댐이 2008년 말 붕괴되기 직전까지도 우리의 정책당국자는 미국식 투자은행 모델을 중후장대형 제조업에 이은 차기 성장산업의 최고 유력한 주자로 의심하지 않은 채, 심지어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망하기 직전의 리먼 브러더스를 매입하고자 하는 무모하고 비상식적인 일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만일 이 일이 성사되었더라면, 그리고 1990년대 중후반 이후 국내 정책당국자들과 업계종사자들의 일관된 바람대로 국내 금융기관들이 보다 '선진화'되어 당시 고수익 상품으로 선전되던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채권을 다량 구매라도 하였다면, 우리 경제는 2008년 말 당시 맞았던 위기는 그야말로 위기도 아닐 정도로 회복이 더 어려운 큰 충격에 휩싸였을 것이다.
금융은 거래를 중개하며 수수료를 챙기거나 대출을 통해 이자를 챙긴다. 금융이 자폐적인 공간에서 특권적인 문화적 지위를 누리며 사회 전체에서 자립적으로 이익을 추구하게 되면, 수익원으로서 '필요 이상의 잦은 거래'를 유발하며 거래 당사자들로부터 더 많은 부분의 부를 이전해가거나 '대출'을 키워 사회적 부채의 총량이 커지게 된다.
'특권적으로 자율화된' 금융에는 이익이 되지만 기업에게 비용이 되고 가계에 부채가 되는 이런 부분들이, 엘리트주의적 투자은행 제도와 문화가 월가와 달리 부재한(덜한?) 우리 현실에서는 '주식회사 대한민국'에 대한 압박이 덜 하다고 안도하기엔, 이미 국내 기업의 고용관행은 국내시장과 긴밀히 통합된 글로벌 자본시장의 운동에 실시간으로 반응하고, 재벌/대기업 경영진들조차 가치하락이 예상되는 자기 기업의 주식 보유에 대한 헌신보다 현금에 대한 애착이 강한 듯이 보인다. 금융선진화 10여년의 노력 끝에 누적된 가계의 부채는 이미 천문학적 수준으로, 폭발 시간만 잠시 유예된 듯이 보인다. 금융에 대한 어떠한 우리의 제도적 구성과 문화적 실천이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노동자들에게 이러한 결과를 가져다 주었는지에 대한 미시적 수준과 거시적 수준을 민속지적으로 잇는 분석 역시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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