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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옳고 그름, 신보다 '뇌'가 더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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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옳고 그름, 신보다 '뇌'가 더 잘 안다?

[프레시안 books] 샘 해리스 <신이 절대로 답할 수 없는 몇 가지>

<신이 절대로 답할 수 없는 몇 가지: 악의 시대, 도덕을 말하다>(샘 해리스 지음, 강명신 옮김, 시공사 펴냄), 책 이름이 다소 도발적이다. 책 제목이나 부제만 보고 저자를 가늠해 보면, 어렵지 않게 몇 사람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음, 저자가 샘 해리스다. 책의 원제목은 <도덕의 풍경(The Moral Landscape)>이다. 이 책은 서론인 '도덕의 풍경', 1장 '도덕적 진리', 2장 '선과 악', 3장 '믿음', 4장 '종교', 5장 '행복의 미래'로 구성되어 있다. 책의 전체적인 내용이나 목차를 고려하면 <도덕의 풍경>이 적절하게 보이지만, 번역본 제목은 고추냉이의 맛을 품고 있다. 출판사 편집자는 원제목이 독자의 시선을 잡기에 다소 밋밋하다고 느꼈나보다. 어쨌든 샘 해리스의 책 이름으로는 그다지 어색하지 않다.

<신이 절대로 답할 수 없는 몇 가지>는 5장의 본문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기조 논지는 책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샘 해리스의 뇌과학 박사학위 논문에 의존해 있다. 이런 까닭에 이 책은 2010년에 출판되었지만 샘 해리스 사상의 원천이자 원본에 해당한다. 2004년 출판되어 샘 해리스를 현대 무신론 진영의 아이콘 중 하나가 되게 한 <종교의 종말(The End of Faith: Religion, Terror, and the Future of Reason)>이나 2006년의 <기독교 국가에 보내는 편지(Letter to a Christian Nation)>는 <신이 절대로 답할 수 없는 몇 가지>의 핵심 주장을 변주한 것이다. 화가가 동일한 주제를 가지고 일련의 연속된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그렇다면 샘 해리스가 일관되게 그리고자 한 '풍경'은 무엇인가?

▲ <신이 절대로 답할 수 없는 몇 가지>(샘 해리스 지음, 강명신 옮김, 시공사 펴냄). ⓒ시공사
책의 구성부터 짚어보자. 서론인 '도덕의 풍경'에 이어, '도덕적 진리', '선과 악', '믿음', '종교'를 다룬 1장에서 4장까지가 핵심적인 내용이며, 마지막 장인 5장 '행복의 미래'는 결론에 해당한다. 하지만 본론의 네 장은 한편의 논문이나 이야기처럼 일관된 기승전결의 이야기 구조를 갖는 것은 아니다. 도덕에 대한 과학적 논의의 정당성을 다룬 1장에서 언뜻 비치기 시작한 종교에 대한 거리두기는 뒤로 갈수록 분명해져서 4장의 '종교'에서 비판의 정점에 이른다. 각장 사이에 논의의 구성이 다소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고, 저자의 입장이 확고하고 각장의 주제마다 반복되기 때문에 꼭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다. 책 한권 전체가 '도덕적 진리', '선과 악', '믿음', '종교'라는 봉우리가 보이는 '풍경'이다.

이 '풍경'을 통해 보여주는 책의 논지는 무엇인가? 샘 해리스는 '도덕의 과학'을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도덕에 관해 과학이 발언할 수 없다는 '사실'과 '가치'의 이분법에 반대하는 그는, 도덕에 관한 기존의 논의들을 비판하면서 도덕 문제에도 옳고 그른 답이 있다고 주장한다. 마치 물리학의 문제에 정답과 오답이 있듯이. 샘 해리스는 이런 철학적 주장의 정당성을 뇌신경과학의 연구결과에서 가져온다. 이 분야의 최근 논의에 따르면, 사실과 가치에 대한 믿음은 뇌의 수준에서 비슷한 과정을 통해 도출되며, 사실과 가치의 양쪽 영역에서 인간의 뇌는 참과 거짓을 판단하는 시스템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뇌의 메커니즘 차원에서 사실과 가치의 경계는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가치 개념은 어떤 것이든지 의식을 가진 존재가 실제이거나 잠재적인 경험과 관계를 갖게 된다. 따라서 의식이 인간의 가치와 도덕의 기반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이렇게 뇌과학이 보여주는 인지 메커니즘을 통해 사실과 가치의 분리의 당위성을 비판하면서, 샘 해리스는 행복과 가치를 연결한다. 그는 가치에 대한 물음은 의미나 도덕, 인생의 장기적 목표에 대한 물음이기 때문에, 이것은 의식을 가진 존재의 행복에 대한 물음이라고 주장한다. 도덕과 가치의 유일한 근거가, 가능한 한 가장 포괄적으로 정의된, 행복에 대한 관심이기에 '반드시' 도덕의 과학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렇게 '도덕의 과학'을 구상하는 샘 해리스는 자신의 작업의 위상을 분명히 설정한다. 그는 이 책에서 의도하는 과제는, '도덕적 진리의 본질에 대해 더 명확히 생각할 수 있고,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어떤 사고와 행동 패턴을 따라야 하는가'에 대한 연구라고 한다. 여기에서 '도덕'은 미래에 행복을 극대화하기 위해 의식을 가진 존재가 따를 수 있는 충동과 행동을 말하며, 이 행복을 극대화하는 방법에서 옳고 그른 해답을 찾는 것이다. 샘 해리스는 자신의 연구를, 진화론이나 심리학이나 신경생물학 관점에서 도덕을 연구하는 것이나, 종교에 함몰된 윤리적 믿음을 변화시켜 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계몽시키는 작업과 구별하고 있다.

이런 '도덕의 과학'을 구성하는 과정은 이렇게 압축된다. 의미와 가치, 도덕과 선한 삶은 의식을 가진 존재의 행복과 관련이 있다. 인간의 행복은 전적으로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인간의 뇌 상태에 법칙적으로 의존한다. 행복이 세상의 사건과 뇌의 상태에 의존한다면, 행복은 과학적 사실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축적되면 삶의 방식에서 좋고 나쁜지, 더 윤리적이거나 덜 윤리적인 것인지 판단할 수 있으며, 이런 통찰을 통해, 즉 '도덕의 과학'을 통해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다. 그런데 합리적이고 정직하게 열려 있는 과학적 탐구만이 이런 과정을 통찰하게 해줄 진정한 방식이다. 신앙이 올바른 답을 내놓는 경우가 있다면 그건 우연일 뿐이다.

이 책에는 철학에서 시작해서, 신경생리학, 진화심리학, 인지종교학, 근본주의나 보수주의 신앙 등을 포함하는 아주 다양한 이야기들이 들어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엮는 것은 철학과 뇌과학이다. 그것도 이성의 기능과 역할을 극대화하는 철학과 인간의 인지과정에 대한 실험 중심의 뇌신경과학이다. 이 책은 샘 해리스가 짠 '도덕의 과학'이라는 양탄자 같다. 철학과 뇌과학을 씨실과 날실로 삼아 '도덕의 과학'이라는 '풍경'을 보여주고자 시도한다. 그 풍경의 전체적인 구도는 과학적이며 배경 색깔은 반종교적이다.

이런 논의는 현재 미국적 상황에 대한 자신의 인식과 관련되어 있다. 샘 해리스는 미국 사회에서 종교로 인한 과학적 무지가 만연한 것에 분노하고 있다. 그는 의미와 도덕 문제를 오직 자신들의 신을 통해 주어진 답을 강요하는 종교적 우파와, 도덕적인 문제에 객관적인 한 가지 정답은 없다고 주장하면서 도덕적 상대주의나 다문화주의를 주장하는 세속적 자유주의자들을 주목한다. 그는 이들 양쪽 모두 틀렸다고 단언한다. 과학과 종교의 양립 불가능성을 확신하는 그는 현재 미국의 과학자 공동체 전체가 종교적 독단에 침묵하고 협조하고 있다는 일갈한다. 샘 해리스는 이러한 맥락에서 철저하게 과학적 관점에서 도덕적 진리를 이해해야만 한다고 이 책을 통해 설득한다.

샘 해리스의 '도덕의 과학'에 설득되는가? '도덕의 풍경'은 멀리서 볼 때와 가까이서 볼 때의 감흥이 다르다. 멀리서 보면 책이 의도하는 '도덕의 과학'의 논지가 들어온다. 하지만 책의 내용을 구성하는 많은 작은 이야기들, 최근의 신경생리학이나 진화심리학, 인지종교학의 논의는 익숙한 내용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오히려 흐릿하다. 카메라를 어깨에 맨 채 촬영한 경우처럼 현란하지만 어지러운 풍경을 운무 속에서 본 듯한 느낌이다. 종종 반복되어 언급되는 행복과 고통의 봉우리와 계곡도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다.

아마도 샘 해리스의 논의에 대한 확고한 실험적 논증이나 합리적 추론이 종교에 대한 비판적인 사례나 태도로 인해 희석된 탓은 아닐까 싶다. 근본주의적 그리스도인이나 유물론적 무신론자의 논의 구조를 보면 이란성 쌍생아를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나 혼자뿐일까? 종교에 대한 가장 극단적인 사례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또 종교에 대한 편향된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세간의 평을 잘 인식하고 있는, 샘 해리스가 그런 사례 없이 그림을 그려나가는 또 다른 '풍경'을 기대해본다. 덧붙이면, 스콧 애트란의 이슬람 폭력성에 대한 해석이 오류라는 지적이나, 프랜시스 콜린스를 '무식'과 '위선'과 '자기기만'의 대표 사례로 보는 듯한 비판은, 그가 기대한 만큼 독자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샘 해리스의 작업은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시도하는 과학혁명 이래의 자연주의적 인간 이해의 연장선에 있다. 샘 해리스가 약간 비판적으로 언급한 흄이 뉴턴의 자연주의적 방법론을 인간의 인지과정 전체에 본격적으로 적용한 최초의 근대인이었다면, 도덕이나 윤리, 종교를 자연주의적으로 접근하는 샘 해리스는 여전히 그의 길을 뒤따르고 있는 것이다. 그는 리처드 도킨스, 대니얼 대닛, 크리스토퍼 히친스와 같은 반열에 올라 현대 무신론의 4대천왕급으로 여겨지고 있는 듯하다. 샘 해리스가 가는 길이 궁금하고, 그가 그린 풍경을 직접 보고 싶으면 이 책을 손에 잡고 하루 쯤 시간을 내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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