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전화를 받는 일이 부쩍 많아졌다. 지인들 뿐 아니라 안면 일식도 없는 누군가로부터 "동네에서 에너지 협동조합을 만들고 싶다, 햇빛 발전을 시도하고 싶다. 에너지 효율화 집수리 조합을 만들면 어떻겠냐?" 등 마을 안에서 에너지와 관련한 다양한 고민들을 쏟아내는 전화에 정신이 없다. 이렇게 빠르게 마을 단위로 에너지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것에 고무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서두르다 너무 많은 교육비만을 치르고 실패로 끝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든다.
마을이 에너지 문제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던 데에는 서울시의 마을 공동체 활성화 정책과 핵발전소 1기 줄이기 정책이 맞물려 효과를 내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막상 이 두 정책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여 제대로 마을 단위의 에너지 전환을 이끌어낼 것인지는 의문이 든다.
무엇보다 걱정인 것은 여전히 박원순 시장이 강조해온 마을 공동체 활성화 사업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원순 시장은 후보 시절부터 마을 공동체의 회복에 대해 강조해 왔고, 이에 대한 시민 사회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민·관 모두 준비되지 않은 채 맞이한 마을 공동체 활성화 사업은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애초부터 2011년 10월 보궐 선거를 통해 당선된 박 시장은 인수위원회 없이 시정을 바로 이어가야 했고, 그의 정책 기조를 충분히 담아낼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2012년의 마을 공동체를 위한 예산은 없었고, 관은 관대로 민은 민대로 새로운 시장이 강조한 '마을'에 대해 서로 다른 상을 그렸고, 이 과정에서 관은 민을 무시했고, 민도 관을 신뢰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서울시 마을 공동체 종합지원센터'라는 중간 조직이 만들어졌지만 짧은 시간 민과 관을 아우르겠다는 미션은 너무 버거워 보였다. 마을 만들기라는 단어에 익숙하지 않은 관은 마을 만들기의 모델로 소개된 마포 성미산 마을, 은평 두꺼비하우징, 동작 성대골 마을을 표본 삼아 지역 조사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베끼기 시작했다. 심지어 서울시는 마을 공동체 사업을 잘 진행한 자치구를 선정해 1억 원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했다가 민간 영역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며 마을 공동체 사업이 2013년을 맞이했다. 2012년과 달라진 점은 예산이 편성되었다는 것이다. 2012년 행정비를 제외하고, 0원이나 다름없던 예산이 2013년에는 54억8000만 원가량 늘었다. 대단한 발전이다. 그렇지만 앞서 언급한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한 채 단순히 2012년 대비 2013년의 예산이 책정 되었다고 마을 공동체가 활성화 될지는 의문이다.
마을에서 '관이 돈을 풀면 마을 사업은 망한다'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마을에서 뭔가 잘할만하면, 갑자기 관이 지원을 하겠다고 나서고, 마을 사업이 관의 지원에 집착하게 되고, 외부 지원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면서 잘되던 마을이 망하는 마을이 된다는 것이다. 마을 사업은 본래 지역 주민의 자발성과 자립을 기틀로 자리 잡아야 지속가능한데 관의 지원이 이런 기틀을 흔든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보면 충분한 기초 조사와 명확한 목적, 방향을 모으지 못한 채 예산만 책정하는 것은 마을에 독이 될 수도 있다.
에너지 자립 마을 성공할까?
ⓒ프레시안(최형락) |
사실 '핵발전소 1기 줄이기' 사업은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지만 에너지 자립도는 극히 낮은(2008년 기준 2.45퍼센트) 서울이 어떻게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공급받을 것인가 하는 공급 위주의 정책에서 어떻게 에너지를 줄일 것인가 하는 수요 관리 정책으로 급선회한 참신한 정책이긴 하지만 사실 그 안의 내용은 에너지 줄이기 이상의 참신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에너지 자립 마을을 만들면서 새로운 구상이 가능해진 것이다.
예를 들어 지난해 마을 7개, 그리고 올해 4개 마을을 추가하여 선정한 에너지 자립 마을이 대표적일 것이다. 에너지 자립 마을은 에너지 자립도를 2014년까지 50퍼센트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특히 도심형 에너지 자립 마을 만들기 사업 중 성대골 마을과 십자성 마을의 경우 마을의 에너지 자립 활동을 관광 코스와 연계하는 방안이 나와 흥미롭다.
단순히 마을 주민들을 중심으로 에너지 절약하는 것을 넘어 에너지를 생산하고 여기에 체험과 교육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접목시키고 있다. 그리고 관광 상품으로 개발하여 일자리까지 창출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내공이 쌓인 탄탄한 마을 공동체가 에너지를 만나 시너지를 내고 있다.
마을 공동체+협동조합+핵발전소 1기 줄이기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 더 중요한 주체로 협동조합이 부상하고 있다. 처음 서울시민 햇빛 발전 협동조합이 만들어진 이후 노원구, 성북구와 같이 구 단위의 햇빛 발전 협동조합이 만들어지고 있고, 한살림과 같은 생활협동조합도 한살림 햇빛발전조합을 만들어 물류 센터에 태양광을 설치하고 있다. 지금껏 오롯이 에너지를 쓰기만 했던 서울 시민들이 스스로의 힘을 모아 태양광을 설치하고 발전소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서울시의 마을 공동체 사업 그리고 협동조합, 거기에 핵발전소 1기 줄이기 정책까지, 이 세 조합은 아주 시기적절하고 궁합도 잘 맞아 보인다. 마을 단위로 사람이 모이고, 그들이 에너지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시는 이러한 시민들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결과적으로 서울시 전체의 에너지는 줄이고 재생가능에너지는 늘릴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공동체와 협동조합을 통해 교육과 확산이 이뤄지고, 녹색일자리도 창출될 것이다. 이것이 마을, 협동조합, 핵발전소 1기 줄이기가 만들어내는 최상의 시나리오일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다. 이것이 지속 가능할 것이냐가 더 중요한 문제이다.
에너지 자립 마을이 많아지고 에너지 협동조합이 늘어난다고 해서 그것을 성공으로 자찬할 수는 없다. 서울시의 지원에 힘입어 시작하고 있는 햇빛 발전 조합이나 에너지 자립 마을이 지속 가능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의 협동조합과 마을 공동체 사업을 보면 한때 유행처럼 확산됐던 사회적 기업이 떠오른다.
정부의 사회적 기업 활성화 정책은 사회적 기업들이 자립 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경제 영역의 생태계 조성 없이 오롯이 일자리 창출을 목적으로 도입 되었다. 그러다보니 사회적 기업 지원은 인건비를 지원하는 사업으로 전락했고 결국 지원을 받은 기업들은 정부의 보조 없이는 1년을 버티지 못하는 유약한 구조를 가지게 되었고 사회적 기업 육성 정책의 총체적 실패라는 신랄한 비판을 받아야만 했다.
이미 에너지 협동조합과 에너지 자립 마을도 사회적 기업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지원 없이는 지속가능하기 어렵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제 박원순 시장의 임기는 1년 남짓 남아 있다. 마을, 협동조합 그리고 에너지를 묶어 내어 최상의 효과를 기대하고자 한다면 각각의 정책 지원과 예산 확대 보다는 이들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생태계 조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많은 전문가는 서울형 발전 차액 지원 제도(FIT)의 도입과 확대를 제안하고 있다. 마을과 협동조합에서 재생 가능 에너지를 통해 에너지를 생산하고 이것을 되 팔수 있도록 정책을 설계해야 이를 통해 지속 가능한 경제가 만들어지고 다른 영역으로의 확대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이제 서울시는 이러한 의견을 받아 에너지 자립 마을과 에너지 협동조합이 자립할 수 있는 생태계 조성에 더욱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이런 시도는 이명박 정부의 '녹색 성장'이 아닌 '초록 대안'을 찾으려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활동의 일부분입니다. (☞바로 가기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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