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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시대·손담비·서태지가 테러를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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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소녀시대·손담비·서태지가 테러를 당했다!?

[소리는 알고 있다] 마크 챈기지의 <자연 모방>

물음 1 : 소녀시대와 손담비의 공통점은?
답 1 : 아름답다.

물음 2 : 소녀시대와 손담비와 서태지의 공통점은?
답 2-1 : 시옷으로 시작한다.
답 2-2 : 테러를 당했다.


답 1과 답 2-1에 동의를 못하시는 분들은 이 페이지를 닫으시라. 말도 하기 싫으니….

답 2-2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하다. 그들은 테러를 당했다. 누가 염산을 뿌리거나 물리적인 폭행을 가하지는 않았지만 기술을 동원한 희한한 테러를 당했다. 그 기술이란 음악을 거꾸로 재생하는 '백워드 매스킹((Backward Masking)'을 말한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 이데아', 소녀시대의 'gee', 손담비의 '미쳤어'를 약 80퍼센트의 빠르기로 거꾸로 재생하면 악마숭배 메시지가 나오거나 음란한 가사가 들린다는 주장이 인터넷과 신성한 교회 강단에서 공공연히 주장되었다. 대개 소리만 들려주지는 않고 화면에 들리는 가사를 XX로 표시해서 보여준다. XX를 유심히, 그리고 주장하는 사람에 동감을 하면서 들으면 그렇게 들리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냥 들으면 사실 아무런 메시지도 안 들린다. 하지만 사람들은 실제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보다는 누가 말했느냐에 따라 믿든지 말든지 하기 때문에 듣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들리나보다. 주로 이런 테러를 저지른 사람들은 내가 속한 특정 종교인들이었다. 내가 대표할 수는 없지만 거기에 속한 한 사람으로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우리에게 그런 메시지가 안 들리는 게 정상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언어를 거꾸로 틀면 그건 언어가 아니라 잡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의 노래에서 정말로 사탄의 음성과 음란한 가사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들은 찬송가도 한번 그렇게 들어보시라. 거기서도 그런 메시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언어는 자연스럽다. bad와 bat를 발음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bad의 a는 길게, bat의 a는 짧게 발음한다. 그 이유는 d는 유성파열음이고 t는 무성파열음이기 때문이다. a가 유성음 앞에서는 길어지고 무성음 앞에서는 짧아지는 이유가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은 한 손은 맨손이고 다른 한 손에는 망치를 든 채로 아기가 곤히 자고 있는 방에 들어섰다가 실수로 천장에서 길게 늘어진 종을 망치로 쳤다. 당장 소리를 멈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 망치로 친다. - 이보다 나쁠 수는 없다.
(2) 손으로 종을 감싼다. - 테러범이 아닌 정상적인 사람은 이렇게 한다.

그런데 왜 그렇지? 손에는 부드러운 살집이 있기 때문이다. 손으로 감싼다는 것은 사실 손으로 종을 때리는 것과 같다. 딱딱하지 않은 때리기는 지연된 울림을 일으키지만 지체 없이 울림을 감소시킨다. 반대로 망치로 하는 딱딱한 때리기는 지체 없이 울림을 일으키지만 울림을 천천히 감소시킨다.

b, d, g가 망치라면 p, k, t는 맨손이다. 뭐로 때리든 때린 다음에는 울림이 있다. 물렁한 것으로 때리면 울릴 때까지의 시차가 크고, 단단한 것으로 때리면 즉각 울린다. 이것은 자연적이다. 우리의 청각 체계는 때림-울림 지연을 감지하도록 진화적으로 선택되었으면, 언어는 이런 능력을 응용한다.

bad는 '망치로 때림 – 울림 – 망치로 때림'으로 이해할 수 있다. b와 d 사이의 울림(a)의 길이가 길다.
bat는 '망치로 때림 – 울림 – 맨손으로 때림'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울림의 길이가 짧다.

이걸 거꾸로 재생하면 어떨까? 당연히 자연스럽지 않다. 자연에서는 그런 소리가 나지 않으며, 우리는 그런 소리를 감지하도록 진화되지 않았다. 당연히 해석도 못한다. 그런데 억지로 우기면서 그것으로 아름다운 가수들에게 악담을 퍼붓는다면 그건 테러일 뿐이다.

▲ <자연 모방>(마크 챈기지 지음, 노승영 옮김, 에이도스 펴냄). ⓒ에이도스
<자연 모방>(노승영 옮김, 에이도스 펴냄)을 쓴 마크 챈기지는 미국의 신경생물학자다. 당연히 그는 서태지와 아이들이나 소녀시대 그리고 손담비를 모를 테고 그들이 당한 테러에 대해서도 들은바가 없을 것이다. 책에도 그런 얘기는 안 나온다. 위의 얘기는 언어학이나 음성학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아는 바가 없는 내가 책을 읽고서 떠오른 생각일 뿐이다.

이 책의 유용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낯설게 보기. 마치 공기처럼 원래 있었던 것 같은 소리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무심히 쓰는 말과 듣는 음악이 어떤 요소로 구성되어 있는지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소리에 둘러싸여 있다. 지금은 금요일 새벽 4시의 거실. 고요할 것 같은 이 시간에도 눈을 감으면 무수한 소리가 들린다. 시계가 째깍 대는 소리, 번갈아 들리는 기침과 한숨 소리에서는 장인어른의 불편한 심기가 보인다. 냉장고와 김치냉장고가 왱하는 소리가 확연히 구분된다. 12층이지만 바로 아래에 있는 도로에 지나가는 차가 버스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라고 하지만 세상을 파악하는데 미치는 귀의 영향력은 상당하다. (이 대목에서 크게 외친다. '수화를 언어로 인정하라!' '수능 외국어에 수화를 추가하라!')

마크 챈기지가 <자연 모방>을 쓴 목적은 청각에 호소하는 도구인 언어와 음악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밝히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스피븐 핑커는 <빈 서판>(김한영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에서 언어는 어디에나 있으며 많은 언어에 서로 통하는 보편성이 있고 또 우리가 별 노력 없이 복잡한 언어를 기막히게 사용하는 것은 우리에게 언어 본능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마크 챈기지의 생각은 다르다. "고양이가 인간과 어우러져 살게 된 것은 고양이가 우리를 위해 진화했기 때문이 아니라 고양이가 자연스레 우리에게 유용하게 행동하도록 우리가 집의 구조를 바꾸었기 때문"이듯이, 우리의 두뇌가 언어와 음악에 맞게 진화한 것이 아니라 언어와 음악이 두뇌에 맞게 진화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문화선택'이라고 표현했다. 원서의 제목은 즉 '응용'이다. 책에서 내내 나오는 이 개념은 '대상을 변화시키지 않고 대상의 본디 성질을 내게 맞춰 활용한다'는 것이다.

물론 문화선택의 기준은 자연이다. 언어는 자연을 흉내 내고, 음악은 인간의 동작처럼 소리 난다. 자연에는 세 가지 1차 음소가 있다. 모든 소리는 세 가지 원리로 난다. 그리고 인간 언어 역시 같은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때리기(파열음 : b p d t g), 비비기 (마찰음 : s sh th f v z), 울리기(공명음 : 모음과 l r y w m n)가 그것이다. 인간은 자연에서 들리는 소리 외에도 자동차 소리, 병 따는 소리 등 온갖 소리를 낼 수 있지만, 이런 소리들은 언어에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연에 없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음소나 단어뿐만 아니라 문장도 자연을 모방한다. 물리 세계에서 내게 다가오는 소리는 음이 높아지고 지나친 소리는 음이 낮아진다. 그래서 아직 끝나지 않은 사건인 의문문은 문장의 끝의 음이 높아지지만, 이미 끝난 사건인 평서문은 문장의 끝이 낮아진다.

마크 챈기지는 음악의 핵심 요소는 모두 인간의 동작을 반영한다고 말한다. 박자는 규칙적인 발걸음, 음의 높낮이는 팔다리의 접촉음, 그리고 리듬은 걸음걸이의 패턴을 따른다는 것이다.

ⓒ프레시안(손문상)

마크 챈기지는 전작인 <우리 눈은 왜 앞을 향해 있을까?>(이은주 옮김, 뜨인돌 펴냄)에서 언어의 시각적인 측면인 글자가 어떻게 자연처럼 보이는지를 설명했고, 이 책에서는 언어와 음악의 청각적인 측면인 소리가 어떻게 자연처럼 보이는지를 설명했다. <자연 모방>의 역자 노승영은 꼭 전작을 먼저 읽기 바란다고 썼다. 하지만 두 번째 책에 전작이 하도 자주 인용되므로 마치 그 책마저 읽은 것 같다.

참, 마크 챈기지는 친절하게도 각 장마다 끝에 요약을 해주었다.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미국식 농담마저 빼주었으면 정말 친절하다고 생각했을 텐데…. 농담은 자연을 모방하지 않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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