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 화재 뉴스와 덩달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것은 이 골목에서 20년째 자리를 지켜 온 '육미'집도 타버렸다는 이야기였다. 백골뱅이, 꼬치구이 같은 맛깔스런 안주에 넉넉한 인심,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사랑했던 주머니 가벼운 단골들이 육미집의 비보를 트위터와 페북으로 전했던 것이다. 사대문 안에서 시민들이 부담 없이 술잔을 맞댈 수 있는 공간이 얼마나 드물었는지, 그래서 육미집이 이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곳이었는지를 알려주고도 남는다.
▲ 지난 2월 17일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초입 골목 화재로 전소된 '육미'. ⓒ김현우 |
오래 전이지만 비슷한 소식이 떠오른다. 공덕역 옛 경의선 철길 아래 후미진 골목에 자리했던 '마포 본점최대포집'은 두툼한 목살과 염통, 곱창 구이를 1만 원대의 가격에 푸짐하게 먹을 수 있어 1980년대부터 서민들에게 인기 있던 고깃집이었다. 그런데 이 집이 2001년 12월 화재로 전소되었고, 이 소식이 기사로 난 것이 오히려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이 집을 드나들던 기자들이 적잖았던 모양이지만, 고기집이 불난 게 기사 거리가 될 정도로 이 집이 유명했던 것이다. 지금 옛 철길은 헐리고 여기 있던 고깃집들도 인근의 이면도로로 자리를 옮겨 장사를 이어가고 있다.
여기서 짚어 볼 것 중 하나는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이러한 공유 공간들이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었느냐 하는 점이다. 공간을 꾸려온 사장님들의 노력이 당연히 컸겠지만, 대중교통이 편리한 곳에 위치해 찾아오기 쉬움에도 임대료와 유지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했던 탓도 있었을 것이다. 주변에 유사한 소줏집, 맥줏집이랑 구멍가게들이 역시 저렴한 운영 경비와 사람들의 동선을 따라 자리를 잡으면서 아케이드 전체의 매력을 키웠을 것이다. 서울에서는 앞서 이야기한 피맛골이 육미집 골목과 YMCA 뒷골목을 지나 <오!수정>이 촬영된 양철 지붕 고갈비집으로 이어지는 길목이 전형적이다. 실은 자생적 먹자 골목 대부분이 이런 내력과 구조를 가지고 있다. 북촌과 서촌, 강남 신사동 가로수길 같은 카페 거리도 마찬가지다. 중앙 정부와 서울시가 특별한 지원을 하기는커녕 대개는 방해를 안 한 결과물이다.
▲ 제인 제이콥스. ⓒwikipedia.org |
화재가 나기 전 육미집 골목을 들여다보더라도 뉴욕의 공무원과 제이콥스는 완전히 반대의 이야기를 했을 것 같다. 격자형 포장 도로를 사이에 낀 멀끔한 건물들이라면 육미집과 최대포집이 높은 임대료를 견디며 입주라도 할 수 있었을까? 얼기설기 덧붙인 계단을 올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테이블의 정취를 인위적으로 재현할 수 있을까? 생선 굽는 냄새를 맡으며 소주 한 잔 걸치러, 인조 대리석 복도와 에스컬레이터를 지나 시민들이 모여들 수 있을까? 하긴 이것이 지금 피맛골 자리를 차고앉은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의 풍경이긴 하다.
육미집의 사장님은 다시 그 곳에서 장사를 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한다. 이 일대가 2010년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된 데에다 건물도 가건물이라 화재 이후 같은 자리에서 장사가 허용될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육미집 골목이 상처를 딛고 우리 곁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사람살이의 다양한 원리와 사정을 이해하고 서울 도시의 매력이 무엇인지를 아는 서울시와 종로구청의 공무원, 소방당국, 언론인, 지방정치인들이 제이콥스의 메시지에 귀를 열어주기를 바랄 따름이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이런 시도는 이명박 정부의 '녹색 성장'이 아닌 '초록 대안'을 찾으려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활동의 일부분입니다. ☞바로 가기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