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사이버대학교 교수이자 영상을 통한 심리치료를 진행하는 영화평론가 심영섭이 사회를 맡았고, <철학이 필요한 시간>(사계절 펴냄)을 쓴 철학자 강신주가 패널로 나섰다. 또 2011년 두 번째 시집 <눈앞에 없는 사람>을 선보인 심보선 시인과 '존엄사' 문제를 의과대학 교수로선 이례적으로 공론화하고 있는 윤영호 의사도 패널로 참가했다.
▲ <죽음이란 무엇인가>(셸리 케이건 지음, 박세연 옮김, 엘도라도 펴냄). ⓒ엘도라도 |
<프레시안>은 이 특별 대담의 주요 내용을 테마 별로 재구성해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첫 번째 기사 '"죽음, 꼭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왜?' 의 주제는 책 제목과 같은 '죽음이란 무엇인가'였다. 이 기사에선 참가자들이 느낀 책에 대한 총평과 함께 대담에서 공유된 패널들의 죽음과 관련한 개인사와 죽음이란 화두를 둘러싼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두 번째 기사는 다양한 죽음 가운데서도 '자살'에 초점을 맞춘다. 한국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때 '자살'은 피해갈 수 없는 주제다. 이제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율 1위 국가라는 통계는 식상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국은 자살 문제에 있어 무방비 상태다. 여전히 자살을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대담자들은 '자살'에 관한 어떤 견해와 대안을 내놨을까.
[심영섭-강신주-윤영호-심보선] <죽음이란 무엇인가> 대담 ① "죽음, 꼭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왜? |
ⓒ프레시안(최형락) |
"왜 자살하지 않고 살아 있는가"
자살 이후, 남겨진 사람들은 묻는다. "대체 왜 죽어야 했냐"고. 이런 질문에서 '자살'은 곧 '포기'를 뜻한다. 남겨진 자의 원망 섞인 비난 내지 안타까움의 표현이기도 하다. 반면 혹자는 자살을 포기가 아닌 '선택'이라 말한다. 자신의 생애를 '통제'하고자 하는 인간의 마지막 선택이라는 설명이다.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자살에 관한 이 두 가지 견해는 종종 도덕성과 합리성에 관한 논쟁으로 뻗어나간다.
자살은 도덕적으로 허용 가능한가? 자살은 합리적인 선택인가? 그 전에 그들은 대체 왜 죽어야 했는가. 심리치료를 하는 심영섭 교수에게도 자살은 크나큰 문제다. 그는 "상담을 하는 사람에게 환자의 자살보다 큰 배신은 없다"는 말로 그 일이 만들어내는 슬픔과 타격을 전했다.
▲ 영화평론가 심영섭. ⓒ프레시안(최형락) |
강신주 박사는 "우리는 왜 죽지 않는가"라고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는 "죽지 않는 것은 사랑하는 대상이 있기 때문"이라며 "내가 타자에게 의미 없는 사람이며 동시에 사랑받는 사람이란 느낌을 가지지 못할 때, 즉 자존감이 붕괴될 때 사람은 자살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밀란 쿤데라가 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재룡 옮김, 민음사 펴냄)을 언급했다. 강 박사는 "이 책 주인공들은 사랑의 밀도에 따라 존재가 가벼워지기도, 무거워지기도 한다"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때, 즉 존재가 무거워 질 때 우리는 죽을 수 없다. 자살은 사랑이 없는 상태에서 생기는 절대적 고독감 때문"이라고 말했다.
강 박사는 "한국에서 자살율에 관련한 인구 통계를 보면 의외로 젊은 비정규직 노동자보다 외로운 어르신들이 많다"며 "이는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외로운 사람들, 즉 홀로 남겨져 존재가 가벼워진 사람들이 자살을 택한다는 걸 보여 준다"고 말했다. 이런 강 박사의 설명은 누군가 자살을 선택했을 때, 책임은 그 사람에게 있는 게 아니라 타자에게 있다는 지적으로 이어진다.
윤영호 교수 역시 그간 자신이 만난 환자들을 사례로 들며 '타자'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책 <죽음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공리주의적 접근으로는 자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의사로서 자살을 하는 사람들을 근거리에서 보면, 자살 유혹을 가장 많이 느낄 때는 암 환자의 경우 진단 후 1주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 후에는 자살 충동이 조금씩 떨어져간다"며 "이는 처음 가졌던 막연한 '두려움'이 환자 동호회나 주변 사람들의 지지, 해결책을 알려주는 전문가 등의 도움으로 희석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자살 충동을 느끼는 사람에게 해줘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이들이 느끼는 고통에 대한 '공감'"이라며 "공동체적 공감 노력을 통해 한 사람의 두려움은 새로운 성장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의사·서울대학교 교수 윤영호. ⓒ프레시안(최형락) |
"국가와 자본이 만든 파괴적인 '이기심', 죽음의 행렬 만들었다"
강신주 박사와 윤영호 교수가 '나와 타자'라는 추상적 관계를 통해 자살을 풀어나갔다면, 심보선 시인은 여러 종류의 관계들 가운데서도 특히 국가와 국민, 자본과 노동의 관계에 집중해 이야기를 끌어 나갔다.
그는 한국의 자살률이 두드러지게 증가하기 시작한 시점이 1997년 외환위기 이후라는 점을 지적하며, 최근 들어서는 외환위기 이후 강화된 자본의 노동 통제와 구조 조정이 사람들을 자살로 몰아넣고 있다고 분석했다.
여러 사례들 중 하나로 그는 쌍용자동차 사태를 언급했다. 심 시인은 "쌍용차에서만 2009년 단행된 대규모 정리해고(희망퇴직 1900여 명과 정리해고 159명, 무급휴직 455명) 이후 지금까지 24명이 자살 혹은 스트레스와 관련된 이유로 사망했다"며 "이는 (한 작업장 내에서) 유례없는 자살율이다"라고 지적했다.
심보선 시인은 "이런 죽음의 행렬을 단지 '해고'라는 단어만을 이용해 설명하기는 어렵다"며 "77일 옥쇄파업 당시 경찰이 노동자들을 진압하는 장면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당시 노동자들에게 가해진 잔혹한 폭력이 이들에겐 죽음의 그림자를 떨쳐낼 수 없는 트라우마가 됐을 거란 상상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각에선 여전히 노동자들의 자살 또는 죽음을 내건 투쟁을 운동권들이 하는 극단적 행동이라고 비난한다"며 "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런 죽음들 혹은 죽음을 내건 행동들은 국가와 자본이 가하는 잔혹한 폭력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심보선 시인은 '사회적 타살'이란 표현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적 타살이란 단어는 문제점을 비판하기에는 좋지만, 정작 이들의 죽음을 제대로 체감하는 데는 방해물이 된다"며 "사회적 타살이라고 말하면, 나와는 연결돼 있지 않은 막연한 그 무언가가 사람을 죽였다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깊이 들어가 살펴보면, 외환위기 이후 전개된 한국 사회의 변화, 기업 활동의 변화, 가족의 변화, 인간관계의 변화들이 사람들을 파괴적으로 분리시키고 이기적으로 만들고 있다"며 "이로 인해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해진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심 시인은 "사람들이 자살을 할 때는 '나에게 아무도 없다'는 고립감 때문일 때가 많다"며 "사회적 타살은 이런 개개인의 어두운 풍경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어두운 풍경 속에 우리가 함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며 "관용적으로 사회적 타살이란 표현을 사용하기보다,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극단적 상황들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 시인·사회학자 심보선. ⓒ프레시안(최형락) |
"나의 죽음만을 생각하는 자, 타자의 죽음을 만들어낼 것"
대담은 '관계의 회복'이란 테마로 옮겨 갔다. 패널들이 짚었듯, 자살이 고독과 자존감 붕괴의 결과라면 대안은 관계의 회복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철학자·문사철 기획위원 강신주. ⓒ프레시안(최형락) |
그는 "우리는 함께 살지만 너무나도 이기적"이라며 "나한테만 집중하고 사는 사이 누군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우리에게도 무한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대담) 온 사람 중에 혹시 나의 죽음에 대해서만 고민한 사람이 있다면, 그 역시 자살자를 배출할 가능성이 있다"며 "(자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나와 너의 관계의 회복"이라고 말했다.
강 박사는 "그렇지만 사랑받는 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만큼, 사랑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짝사랑이라도 좋다"면서 "내가 아끼는 것,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존재가 무거워지고 삶에 힘이 생긴다"고 말했다.
심보선 시인은 "죽고 싶은 순간 옆에 단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살고 싶은 마음이 다시 생긴다"며 "많은 경우에 자살은 도와달라는 요청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서울 대한문에서 울산 현대자동차까지 한국 사회 여기저기에 외롭게 싸우는 농성촌이 많이 있다"며 "이 사람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경찰의 진압이 아니라 '잊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심 시인은 "중요한 건, 항상 누군가와 연결돼 있는 일"이라면서 "뒤집어 말해 내가 누군가와 연결되도록 그 곳에 가는 것, 그 누군가와 함께 있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잊혀가고 있는, 다른 의미로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 것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