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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시대 한복판, 뉴욕·시애틀은 정반대로 갔다…한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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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시대 한복판, 뉴욕·시애틀은 정반대로 갔다…한국은?

[노회찬재단 함께 맞는 비 포럼] 美 뉴욕·시애틀 선거가 6.3 지방선거에 주는 함의

작년 11월, 미국 일부 주와 뉴욕 등의 도시에서 선거가 있었다. 2기 트럼프 정부가 친민주당 성향 주들에 이민관세단속국(ICE) 요원과 군 병력을 투입하며 미국 민주주의를 뿌리째 뒤흔드는 상황이어서 세계인의 이목이 이 선거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전 세계가 관심을 가진 이유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트럼프 정부와는 정반대 지향과 입장을 가지고 있으며 미국 주류 정치에서 한참 벗어난 '민주사회주의자' 조란 맘다니가 민주당 뉴욕시장 후보로 선출돼 본선 이전부터 주목을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11월 선거에서 결국 50% 넘게 득표하며 시장에 당선됐다.

이 뉴스는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1면 기사로 대서특필됐다. 파시즘에 가까운 행보를 보이는 연방정부와 '민주사회주의'를 추구하는 뉴욕시 정부가 공존하는 상황이 도래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런 예외적 상황 자체가 지금이 신자유주의 파산 이후에 좌든 우든 모두 새로운 대안을 찾아 헤매는 시대임을 증명하는 사례라 할 것이다.

한데 뉴욕시만이 아니었다. 태평양 연안의 시애틀에서도 맘다니와 비슷한 비전과 정책을 내세우는 케이티 윌슨 후보가 시장에 당선됐다. 윌슨이 제시한 공약뿐만 아니라 그의 출마와 당선을 이끌어낸 세력도 뉴욕의 맘다니와 상당히 유사했다. 이것은 맘다니 바람이 미국 사회 안에서 결코 예외적이거나 유별나기만 한 현상이 아님을 말해준다. 대서양과 태평양 양쪽에서 대륙을 향해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노회찬재단은 3월 25일 '함께맞는비'포럼 제16차 토론을 통해 '뉴욕과 시애틀 시장선거, 무엇을 했고 무엇을 말했나' 짚었다. 노회찬재단 계간 웹진 <평등과 공정> 3호에 '뉴욕과 시애틀 지방선거에서 무엇을 주목할 것인가?'를 발표한 장석준 노회찬비전포럼 운영위원장이 이 글을 바탕으로 발제를 맡았고, 김정진 변호사(비전포럼 운영위원)이 사회를 보고 문정은 정의당 부대표가 지정토론자로 나섰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기에 더욱더, 머나먼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닌 주제였다.

맘다니, 윌슨 바람에는 뿌리가 있다

장석준 위원장은 맘다니 바람이 결코 뿌리 없이 돌출한 현상이 아니며 그의 당선 역시 이번 선거에서 '기적적인' 전략을 구사했기 때문이 아님을 시종일관 강조했다. 이런 점을 제대로 전제하지 않으면, 맘다니 후보 개인의 역량에만 주목하든가, 그의 공약들이 한국 진보정당 정책에는 전혀 없었던 내용인 것처럼 과장되게 이해하는 잘못에 빠진다는 것이었다.

장 위원장은, 우선 '시간'의 측면에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에서 전개된 심원한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시기 동안 미국 밀레니얼 세대 중 일부가 자본주의에 비판적인 이른바 '밀레니얼 사회주의자'가 되었고, 다시 이들 중 상당수가 버니 샌더스의 2016년, 2020년 대선 도전을 경험하며 정치적으로 결집했다. 이들은 1980년대부터 이미 존재하던 좌파 정치조직 '미국 민주사회주의자들(DSA)'에 둥지를 틀었고, 여기에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을 비롯해 맘다니 등의 젊은 정치가들이 배출됐다.

다음으로 장 위원장은 '공간'의 측면에서 '뉴욕'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욕은 지구자본주의의 화려한 중심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노동계급 밀집 지역이기도 하다. 특히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유럽에서 막 이주한 유대계, 동유럽 출신 등 다양한 민족-인종 배경을 지닌 노동계급 공동체가 형성됐다. 이를 배경으로 20세기 초에 미국 사회당(SPA) 후보(메이어 런던)가 하원의원에 당선됐고, 냉전 시기에도 미국 노동당(ALP) 소속인 비토 마캔토니오가 하원의원으로 활동했다. 또한 맘다니 이전에 이미 데이비드 딘킨스가 DSA 회원으로서 시장에 당선된 바 있다(1990년).

이런 시공간적 배경 덕분에 맘다니 바람이 출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장 위원장은 우리가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요소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 선거법과는 뚜렷이 구별되는 뉴욕 선거제도의 역할이다. 그 중에서도, 맘다니 지지율을 수직 상승시킨 호별 방문 선거운동의 위력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소개가 있었다.

그러나 이것만이 아니라, 민주당 시장후보 예비경선 과정에서 진보파 후보들(맘다니와 브레드 랜더)이 원활히 연대할 수 있게 해준 즉석결선투표제(Instant-runoff voting)의 역할도 있었다. 즉석결선투표제는 결선투표를 따로 치를 필요 없이 한 번의 투표만으로 과반 득표 당선자를 만들어내는 제도다. 장 위원장은 이 제도가 뉴욕시에서 정치개혁의 일환으로 최근 도입됐다고 설명하면서, 정치제도 개혁과 정치활동 쇄신이 선순환을 이룬 좋은 사례라 정리했다.

장 위원장은 시애틀 사례를 소개하면서, 이곳에서는 사회주택 확충과 재정 문제를 둘러싼 대립이 윌슨 바람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주류 성향인 전임 시장 브루스 해럴은 사회주택 공급을 통해 시애틀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시장 취임 이후에는 재정난을 이유로 공약 이행을 미뤘다. 그러다 나름대로 상황을 반전시키려고 꺼낸 카드가 2025년 2월에 실시된 사회주택과 조세 정책에 관한 시민투표였다.

해럴 시장은 세금을 신설하지 않고 기존 예산 규모 안에서 신규 주택을 건설하자는 소극적 방안을 통과시켜달라고 호소했다. 그러자 '대중교통 이용자연합(TRU)'이라는 시민단체를 이끌던 윌슨을 비롯한 사회운동 세력이 반발했다. 이들은 사회주택 확충을 위한 목적세 형태의 법인세를 신설하자는 방안을 지지했고, 이 방안이 시민투표에서 승리했다. 바로 이 승리를 만들어낸 시민운동 세력이 윌슨을 시장 후보로 출마시켰고, 결국 시정부를 바꿔냈다.

▲맘다니 뉴욕시장(왼쪽)과 윌슨 시애틀 시장. ⓒAP=연합뉴스

'하수도 사회주의'가 부활하는가?

장 위원장은 맘다니와 윌슨의 정책적 공통점은 'affordability'를 전면에 내세우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우리말로는 '감당할 수 있음' 정도로 옮길 수 있는데, 주택처럼 고가일 수밖에 없는 재화라 하더라도 그 비용이 뉴욕, 시애틀 보통 시민들의 소득으로 구매하거나 이용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이 처방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공공, 즉 시정부의 적극적 역할이다. 필수 재화와 서비스는 가능한 한 시장에서 상품으로 거래되는 게 아니라 공공에 의해 무상으로 공급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자는 것이다. 무상 공급이 힘들 경우에는 시장 가격을 통제하거나 공공-민간 협력/경쟁 체제를 구축하는 방안을 추진할 수 있다. 이 중 어떤 방식을 취하든, 지방정부의 활발한 개입이 필요하다.

장 위원장은 이것이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서유럽 여러 나라와 미국에서 좌파정당, 노동운동 세력이 처음으로 지방정부 집권당이 됐을 때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한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좌파 지방정부들은 사기업이 운영하면서 이용 요금을 비싸게 받던 상하수도나 가스관, 전차 같은 도시 생활의 기본 인프라를 인수하여 시영기업이 운영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상수도와 가스관의 사회주의'(영국)니 '하수도 사회주의'(미국 밀워키)니 하는 말들이 유행했다. 일반화하면 '지방자치 사회주의(municipal socialism)'다.

맘다니와 윌슨의 공약은 이런 '지방자치 사회주의' 실험의 부활이라 할 수 있다. 장 위원장은 이를 좀 더 현대적인 표현으로는 '보편적 기본 서비스(universal basic services, UBS)'라 할 있다고 정리했다. 기본소득, 일자리보장제 등과 함께 21세기 사회국가의 핵심 정책으로 제안되고 있는 '보편적 기본 서비스' 구상(안나 쿠트, 앤드루 퍼시, <기본소득을 넘어 보편적 기본서비스로!>, 김은경 옮김, 클라우드나인, 2021)의 구현이라는 것이다. 이 구상이 다음 같은 맘다니의 주요 공약들을 꿰뚫고 있다.

① 민간 임대료를 동결한다.

② 사회주택 20만 호를 새로 건설해 공급한다.

③ 무상 보육을 실시한다.

④ 버스 요금을 단계적으로 무료화한다.

⑤ 시영 식료품점을 운영한다.

⑥ '녹색학교'를 기후변화 대응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다음 같은 윌슨의 주요 공약들에서도 마찬가지다.

① 10억 달러 넘는 재정을 확보해 사회주택을 대규모로 공급한다.

② 감당할만한 가격의 보편적 보육 서비스를 제공한다.

③ 4천 호의 비상 쉼터와 주거를 확보한다.

④ 개인 승용차 사용을 최소화하는 '이동양식 전환'을 통해 기후위기, 대기오염 등에 대응한다.

그러나 이런 야심찬 비전과 정책 앞에 커다란 도전 과제가 기다리고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장 위원장은 단서를 달았다. 시민 생활의 필수 재화와 사회서비스를 탈시장화-탈상품화된 형태로 제공하기 위해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는 방안이 여전히 숙제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맘다니와 윌슨의 처방은 부자 증세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시기에 형성된 조세 저항 구조와 심리를 과연 성공적으로 극복할 수 있을지는 더 두고 봐야 한다. 아마도 맘다니나 윌슨이 제시한 개별 공약의 실현 자체보다도, 이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가 구축해 놓은 단단한 재정 도그마(재정 건전성론 등)를 과연 흔들거나 무너뜨릴 수 있을지 여부가 세계사의 전개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라는 게 장 위원장의 결론이었다.

지자체 수준에서부터 정치 개혁을 시도해야 한다

토론에 나선 문정은 부대표는 맘다니 바람이 한국에서는 진보정당운동에도 영향을 끼쳤지만 더불어민주당 내 일부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비록 탈락했지만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출마한 김형남 후보가 내건 '서울은 너무 비싸다'는 슬로건에서 그런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 부대표는 진보정당과 더불어민주당의 정책적 경계가 희미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전하면서, 마치 미국 사회당이나 DSA의 노력이 그랬던 것처럼 현재의 진보정당운동이 미래의 새싹을 위한 '거름'이 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 고민이 된다고 밝혔다.

문 부대표는 시애틀에서 윌슨의 기반이 된 '대중교통 이용자연합(TRU)'에 특히 주목했다. 지금은 '노동계급'을 추상적으로 호명하는 것보다는 노동자들이 현실에서 느끼는 구체적인 요구를 중심으로 호소하고 조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 부대표는 TRU의 경우에 교통 문제를 중심으로 현실의 노동자들에게 접근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면서, 한국에서는 '세입자연합'이 이런 방향에서 의미 있는 시도가 될 수 있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토론을 마무리하면서 장 위원장은 맘다니 당선 등의 사례에서 정치제도 개혁이 일정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미국은 승자독식선거제도의 원산지이지만, 그런 미국에서조차 대통령제나 소선거구제에 대한 불만과 문제제기, 개혁의 시도가 계속 등장하고 있다. 연방 차원에서는 기존 제도를 바꾸기 어려워도, 뉴욕 사례가 보여주듯이 지역 차원에서는 오히려 한국보다 더 활발하게 제도 개혁을 시도하고 있다.

장 위원장은, 한국에서도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기존의 기초지방자치단체-기초의회 구조나 단순다수대표제를 혁파하는 실험들을 펼쳐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의 법 개정만 기다리지 말고 읍면동 자치나 시민 참여의 일상화 등을 먼저 실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광역지방자치단체들의 통합 같은 거대한 제도 변경(가령,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그렇다면 풀뿌리 수준의 자치 실험이야말로 지금 상황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혁신 시도가 아니겠냐고 장 위원장은 주장했다.

이날 '함께맞는비'포럼 토론자들이 뉴욕과 시애틀 사례를 함께 이야기하며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은 지금 우리가 지난 수십 년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대안을 찾아 나서야만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이었다. 몇 달 앞으로 다가온 한국의 지방선거도 의례적인 정치 일정이 아니라 이런 대안 찾기의 한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확인하며 토론회를 끝맺었다.

▲왼쪽부터 김정진 변호사, 문정은 부대표, 장석준 위원장. ⓒ노회찬재단

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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