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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약고 NLL', 노태우는 해결책을 알고있다

[정욱식 칼럼] NLL, 이제는 해결하자(상)

북방한계선(NLL)에는 국내-남북한-국제관계가 얽히고설킨 '코리아 냉전'의 모순이 집약되어 있다. 근원 자체가 불분명하고 역사적 진실은 영토선이 아니라는 데에 있는 반면에, 남북한 무력충돌을 거치면서 '정서적 영토선'으로 간주하는 남한 내의 입장이 갈수록 강해지면서 이러한 모순은 커져 왔다. 여기에 더해 중국의 심장부에서 가장 가까운, 그리고 미국이 남북한 갈등을 이유로 수시로 접근하려는 지정학적 성격까지 가미되어 있다.

국내적으로 NLL은 극우보수세력과 남북화해협력 세력을 가르는 '정치적 대결선'이다. 1999년 6월 1차 서해교전이 발생한 이후 보수세력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을 공격하는 핵심 수단으로 NLL 문제를 악용했고, 급기야 2012년 대선에서는 선거용으로, 국정원의 선거 개입이 드러난 올해 6월에는 국면 전환용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부관참시하면서까지 NLL을 또다시 호출했다.

남북관계 차원에서는 '한반도의 화약고'로 부를 만하다. 사실상의 해상분계선으로 간주하는 남측과 '불법적인 유령선'이라고 주장하는 북측의 입장이 충돌하면서, NLL 인근 수역에서는 세 차례의 서해교전과 천안함 침몰, 그리고 연평도 포격전이 발생했다. 이 사이에 남북 양측의 군비경쟁과 군사적 적대감은 더욱 강해지고 말았다.

▲ 연평도 NLL인근해상에서 조업중인 어선(왼쪽)과 바지선에 정박한 해군 군함 ⓒ연합뉴스

핵의 위력을 앞세운 북한의 호전적인 언행의 불꽃이 언제든 NLL에서 튈 수 있다. '정전체제에서 더 이상 못 살겠다'는 북한은 NLL을 정전체제의 가장 약한 고리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도발시 '선 조치, 후 보고'를 하고, '도발 원점뿐만 아니라 지원세력과 지휘세력까지 응징하라'는 남한의 확전불사론도 매섭다. 이를 두고 미국 정부의 관리들이 "남한의 과잉대응이 진짜 위험"이라고 말할 정도다. 이처럼 작은 불꽃 하나가 큰불로 이어지는 봄철의 산불처럼 NLL은 평화의 기운은 메말라가고 전쟁의 기운이 쌓여가고 있다.

국제관계 차원에서는 'G2의 이중주'를 잘 보여준다. G2는 협력과 경쟁을 동시에 품고 있는 미국과 중국 관계를 표현하는 말이다. NLL 문제는 이러한 미·중 관계의 속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미국과 중국 모두 남북한이 서해에서 또다시 충돌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는 협력적이다.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전 발생 직후 남북한 사이에 열전(熱戰)의 위기가 감돌자 미국은 남한을, 중국은 북한을 자제시키기 위해 외교력을 총동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은 북한의 도발을 억제한다는 이유로 핵 항공모함과 핵잠수함 등 가공할 군사력을 서해에 수시로 보내고 있다. 중국은 자신의 앞마당이라는 서해에서 미국의 이러한 움직임이 결국 자신을 겨냥한 것으로 간주한다. NLL에 품고 있는 미·중 관계의 또 다른 모습이다.

이러한 NLL의 속성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그건 남한 내부의 정치적 냉전, 남북한의 정치군사적 냉전, 미·중 간 신(新)냉전의 기운을 완화하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NLL이라는 숙제를 반드시 풀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국민통합과 초당적 협력은 공허한 정치적 수사로 끝나고 만다. 언제든 죽고 살기 식의 정치 대결의 소재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도 지금 이 순간 똑똑히 목도하고 있다. '남북관계를 국내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공언도 실언으로 끝나면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추진력은 안으로부터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의 냉전이 언제든 열전으로 치닫고 협력과 경쟁을 동시에 품은 미·중 관계의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점은 이미 지적한 바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풀어야 할까? 남남 사이에서, 또한 남북한 사이에서 합의 가능한 대전제가 필요할 것이다. 남남이 합의하면 남북한의 합의 가능성도 높아지고, 미국과 중국도 토를 달지 못할 것이다. 대전제는 뭘까? 나는 NLL을 '잠정적 해상분계선'으로 간주하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고 본다. 이것이 역사적 진실에 가장 부합하고, 또 문제 해결에 가장 근접한 개념 규정이라고 생각한다.

NLL이 공식적인 해상분계선이거나 영토선이 아니라는 것은 이 선을 그은 당사자인 미국의 1970년대 비밀문서를 통해 입증되었다. 이후에도 미국 정부는 NLL을 해상분계선이나 남한의 영토선이라고 표기하지 않는다. 이러한 입장은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주한미국 대사관의 2007년 8월 31일자 외교 전문에서도 거듭 확인된다. 이 문서에는 "현재에 NLL 월선 그 자체만으로는 정전협정을 위반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나와 있다.

그렇다면 NLL은 뭔가? 북한의 주장대로 '불법적인 유령선'에 불과한 것일까? 수긍하기 어렵다. 실마리는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에 담겨 있다. "남과 북의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는 조항은 양측 사이에 합의된 해상분계선이 아직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바로 이어지는 "해상불가침구역은 해상불가침경계선이 획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온 구역으로 한다"는 조항은 NLL을 잠정적 해상분계선으로 규정할 수 있는 유력한 근거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남북기본합의서는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의 전신에 해당하는 노태우 정부 때 나왔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내용은 남북한이 최초로, 그러나 지금까지 유일하게 합의한 것이다. 정상회담 대화록에 잘 나와 있는 것처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평화협력지대 구상도 기본합의서를 토대로 나왔다. 박근혜 정부는 "남북한의 모든 합의를 존중하고 이행하는 것"을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핵심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렇다. 극한 대결로 치닫는 참여정부와 박근혜 정부, 여당과 야당이 NLL 문제에 대한 이견을 좁히고 합의를 도모할 수 있는 지점은 바로 남북기본합의서에 있다. 이를 바탕으로 남한 내부에서, 그리고 남북한 사이에서 NLL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다뤄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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