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썩은 웃음이 나오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이미 북미를 돌아다닌 지 반년이 넘었을 때였다. 온몸이 이들이 먹는 기름진 음식으로 때가 꼈는데, '마늘 냄새'라니…. 게다가 직원 머리 위로 보이는 메뉴판에는 '갈릭 머시룸 샌드위치(마늘 버섯 샌드위치)가 특별히 '엄지손가락' 모양 마크까지 달고 있는 게 아닌가!
이 직원은 샌드위치를 다 포장하고 나서 아주 친절한 웃음을 내보이며 말했다. "겨울이 없는 나라에서 와서 정말 춥겠구나. 겨울은 처음이지? 따뜻한 겉옷은 샀니?" 다시 한 번 "하하하." 정말이지 아무리 참아도 썩은 웃음이 얼굴 근육 여기저기를 비집고 솟아나는 걸 막을 도리가 없었다. "다문화 사회라더니, 별것 없네…" 하는 말을 한국어로 종알거리며 가게를 나섰다.
"마늘 냄새나는 이 더러운 놈!"
1980년대 초 독일, 한 지방 정부의 산하 기관은 지역 이주 노동자에게 '외국인 방문객 행동 준칙'을 만들어 배포했다. 이 중엔 다음과 같은 준칙도 있었다.
"마늘을 먹었을 경우, 여기서 이틀은 다른 사람의 모임에 참석하지 않아야 한다."
당시 이 준칙은 한국인만큼이나 마늘을 좋아하는 터키 이주 노동자를 상대로 만들어졌다.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는 공장에 일하러 갈 때나, 심지어 마늘을 재료로 사용하는 음식점에 갈 때에도 터키인은 '마늘 냄새'를 풍겨서는 안 됐다. 아니, 사실 마늘 냄새가 실제로 몸에서 나지 않아도, 독일인에게 터키인은 언제나 "마늘 냄새나는 더러운 놈"이었다.
30년 전 터키 이주 노동자들이 독일에서 겪은 온갖 수모와 차별을, 기자가 3년 전 겪은 작은 사건과 대등하게 말하려는 건 당연히 아니다. 그들의 억울한 사정을 상상하기 위해 기자가 끌어와 대입해볼 수 있는 경험이란 게 고작해야 3년 전 샌드위치 직원의 우스갯소리였다는 걸 고백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인종 차별의 실상을 제대로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기자를 탓하기 전에, 각자 질문을 던져 보자. '단일 민족 국가'에서 나고 자란 우리의 '인종 차별' 이해도는 얼마나 될까. 혹시 나는 또 당신은 인종 차별의 가해자였던 적은 없는가. 이 문제는 정말로 중요한다.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는 한국에서, 이주 노동자는 갈수록 더욱 필요한 존재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주 노동자들이 한국인의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주 노동자를 쫓아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구직자와 구인자가 때로는 불균형한 노동 시장에서, 아무도 원치 않는 밑바닥 일자리를 채워주는 건 결국 이주 노동자뿐이다. 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우리는 이른바 '다문화 사회'로 밀려가고 있다.
편협하고 냉혹한 현실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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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 것 없이>(귄터 발라프 지음, 서정일 옮김, 알마 펴냄). ⓒ알마 |
"튼튼한 외국인임. 일자리 구함. 힘든 일이건 허드렛일이건 무방함. 보수가 적어도 상관없음. 일자리를 주실 분은 358 458번으로 연락 바람."
이렇게 그는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 분명히 편협하고 냉혹할 게 뻔한 인종 차별의 현실 속으로 자진해서 걸어 들어갔다. 거대 철강 기업 '티센'에서는 산업 폐기물을 처리하는 불법 이주 용역 노동자로 일했다. 고장과 부품 수리가 잦던 한 핵발전소에서는 흡사 실험용 쥐처럼 일하기도 했다.
사방에서 쏟아져 나오는 석면 가루, 유독성 폐기물. 방사선 등은 알리 즉 발라프와 동료들의 건강을 빠른 속도로 망가뜨렸다. 평생 시달릴 병을 얻는 데에는 몇 달이면 충분했다. 사고로 방사선이나 유독 폐기물에 노출되면 이들은 살갗이 벗겨지도록 피부를 문질렀다. 그게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이렇게 '일회용품'처럼 이주 노동자들이 쓰고 버려지는데도, 독일인은 "마늘 냄새나는 더러운 터키 놈"이란 멸시를 멈추지 않았다. 터키인 이주 노동자에 대한 폭행, 폭언, 저임금, 고용 불안 등도 일상이었다. 이주 노동자에게 30년 전의 독일은 산지옥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터키인으로 위장한 독일인 발라프는 그 실상을 보고, 듣고, 경험했다.
그는 자신이 본 산지옥을 상세하게 기록해 1985년 책으로 펴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것없이>는 출간과 동시에 독일 사회를 크게 뒤흔들었다. 아마도 그 충격은 인종 차별을 외면했던, 혹은 자신은 인종 차별과는 거리가 먼 선진국 시민이라고 생각한 독일인에게 자신의 추악한 자화상을 그대로 내보였기 때문일 게다.
한국은 독일과 다른가?
그럼 이쯤에서 한국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지난 2008년 한국에서 일했던 한 몽골 노동자의 얘기다.
그는 인천에 있는 한 가구 공장에서 일했다. 공장에는 유해 먼지가 많았고, 본드와 시너와 같은 약품도 가득했다. 그러나 보호 마스크는 제공되지 않았다. 환풍기 하나 없는 더운 방에 막 칠을 끝낸 가구는 그대로 방치됐다. 건조를 위해 커다란 선풍기가 돌아갔고, 바람은 유해 먼지를 사방에 날렸다. 이런 공간에서 그는 매일 열네 시간씩 일을 했다.
아무 이상이 없던 그 몽골인 이주 노동자의 몸은 한국에 온 지 1년 만에 망가졌다. 가슴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지만 회사는 병원에 보내주지 않았다. 급기야 그는 '폐결핵' 진단을 받고 몽골로 돌아갔다. 망가진 폐가 이미 다른 장기에까지 악영향을 끼치고 있을 때였다. '코리안 드림'은 악몽으로 끝났다.
'인종'이란 배타적 경계선, 그 위에 서자!
다시 책 얘기로 돌아오자.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것없이>가 출간되고, 충격에 빠진 독일은 신속히 움직였다.
책이 출간되는 날 아침 일찍, 검찰과 세무 당국은 발라프가 알리로 위장해 일했던 기업 중 하나인 티센을 압수 수색했다. 당국은 티센의 회계 장부, 근무 기록표, 근로 계약서 등을 압수해, 불법 용역 업자와 공모한 흔적과 이들의 매출 규모를 파악했다. 그리고 얼마 후 티센에 용역 노동자를 '임대'했던 산업 폐기물 회사 렘메르트의 대표에 대한 체포 영장이 발부됐다.
또 독일 연방 정부는 (이주) 노동자 용역에 관한 조건을 강화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당연히 티센 등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발라프는 길고 긴 소송전에 나서야 했다. 하지만 여론은 그의 편이었다. 재판 역시 결국 발라프의 승으로 끝이 났다. 이 모든 일에 감명을 받은 사람은 알리를 '영웅'으로 부르며 수천 통의 러브레터를 보냈다. 그중에는 독일인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을 이끈 '영웅' 알리 즉 발라프는 한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알리를 만들어낸 것은 본래 제 안에 있는, 즉 저의 한 부분입니다. 알리는 문화적으로 원래 터키인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권 사이의 긴장 공간에 있는 인물입니다."
쉽게 말해 알리는 발라프였고, 발라프는 알리였단 얘기다. 그는 독일인도 아니고 터키인도 아니었다. 그를 굳이 규정한다면, '경계'에 섰던 용감한 사람쯤으로 해두면 좋겠다. 인종과 민족이라는 배타적 구분선, 바로 그 경계에 섰기에 알리는 독일을 끔찍한 인종 차별에서 조금이나마 건져 올렸다.
물론 모든 이가 발라프처럼 살 수는 없다. 몽골인이면서도 한국인으로, 폐결핵을 감수하며 가구 공장에서 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책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것없이>를 읽는 건 쉬운 일이다. 이주 노동자와 한데 뒤섞여 살아가야 할 우리가 '인종'이란 배타적 경계선, 바로 그 위에 서기 위해 해야 하는 가장 최소한의 일이기도 하다.
읽을거리 권터 발라프의 또 다른 책 <언더커버 리포트>의 서평이 '프레시안 books' 11호(2010년 10월 15일자)에 실렸습니다. (☞관련 기사 : '암행 기자'의 탄식, "오 마이 갓! 이게 장밋빛 세계화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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