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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의 '38선'을 걷어치워라!

[프레시안 books] 바이츠제커의 <우리는 이렇게 통일했다>

"하나가 되려면, 나눔을 배워야 한다." 반드시 물질적인 것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 온정을 나눌 준비가 되어 있을 때 비로소 진정 하나가 되는 것이다." 통합은 그런 것이다. 바로 1990년 10월 3일 독일의 통일 기념식에서 바이츠제커는 그렇게 말했다.

그는 누구인가? 1981년부터 4년간 베를린 시장을 지냈고, 1984년부터 1994년까지 독일연방공화국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다. 그가 임기를 마쳤을 때, 독일 언론은 "국민의 관심과 의지를 모아내고 높은 차원의 정치를 구현한 지도자"라고 평가했다. 오랜 경륜에서 우러나오는 말들은 쉬우면서도 울림이 크다.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의 회고록인 이 책 <우리는 이렇게 통일했다>(탁재택 옮김, 창비 펴냄)는 바로 대통령의 신분으로 바이츠제커가 직접 겪었던 통일의 과정을 담담하게 회고하는 책이다. 독일의 역사, 분단 극복 노력, 그리고 통일의 순간, 그 과정에서 제기되었던 다양한 쟁점들에 대한 판단을 담고 있다. 지난 일들에 대한 성찰과 미래를 보는 안목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통일은 완성되는 것

▲ <우리는 이렇게 통일했다 : 바이츠제커 회고록>(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지음, 탁재택 옮김, 창비 펴냄). ⓒ창비
책이란 아무래도 읽는 사람의 관심에 따라 재해석된다. 통일 문제를 공부하는 사람으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바이츠제커의 통일관이다. 그는 "통일이 완성되었다"라는 표현을 쓴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는 1989년과 통일 국가를 선포하는 1990년은 당연히 통일의 순간이다. 그러나 그는 1945년 분단 이후 인고의 세월 동안 수십 년간의 분단을 극복하고자 기울였던 노력을 말한다.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그는 "우리의 통일은 그 누구에게도 강요된 것이 아니며 평화롭게 합의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동방정책을 적극 추진했던 빌리 브란트와 에곤 바르의 노력을 초당파적 입장에서 지지해 왔던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독일 통일의 순간에 취해졌던 선택들에 대해서는 다양한 역사적 평가들이 있다. 역사의 소용돌이 한복판에서 그러한 선택에 참여했던 주역의 소회는 들을 만하다. 통일을 준비하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그중에는 화폐 개혁이 있다. 서독 마르크와 동독 마르크를 일대일로 교환하는 것은 그나마 발전 격차에 처해있던 동독 경제를 순식간에 허물어뜨리는 독이 되었다. 동독 지역의 노동 시장과 고용 환경에 일대 타격을 주면서, 산업 공동화와 지역 격차를 심화시켰다.

이를 피할 수 있었을까? 당시 이에 대한 많은 우려가 있었다고 한다. 바이츠제커는 고백한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통일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고. 1990년 당시 고르바초프 체제의 불안정한 소련의 정치 상황에서 통일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음을 인정한다. 동독 지역의 소유권 처리 문제도 마찬가지다. 아쉬움이 남는 결정들이다. 그러나 대부분 사후적인 평가들이다. 먼 훗날 더 나은 대안들을 제시할 수 있지만, 당시의 상황에서 선택의 구조들을 무시할 수는 없다.

통일 비용 논의에 대한 그의 해명도 귀담아 들을 만하다. 천문학적인 통일 비용이 독일 경제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중이다. 바이츠제커는 통일 이후 상황에서 균등한 조정과 나눔의 철학을 강조하면서도 동독 지역에 투자한 가스관, 통신시설, 도로·철도 등 대부분의 사회간접자본 확충에 들어간 돈은 '독일 내에 머무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1차 세계대전 패전의 결과로 독일이 감당했던 배상금과 다른 종류라는 점을 분명하게 강조한다.

통일 수도를 본에서 베를린으로 옮긴 결정도 중요하다. 1991년 독일 의회는 근소한 표 차이로 베를린을 수도로 결정했다. 당시 바이츠제커는 적극적으로 베를린 수도를 역설했다. 그래서 본의 유명한 식당에는 "바이츠제커 대통령과 그의 가족을 환영하지 않습니다"라는 문장이 출입문에 걸릴 정도였다고 한다. 역사적 배경과 통합의 효과, 그리고 미래를 위해서는 당장의 이해관계를 초월해야 한다는 점을 그는 강조한다. 그도 인정했듯이 통일 이후의 통일 노력, 즉 정치적 통합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지역 격차, 역사 인식, 심리적 장벽을 지속적으로 극복해 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통합의 철학과 평화의 미래

바이츠제커가 오랫동안 독일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이유가 있다. 통일 이전, 그리고 통일과 통일 이후 독일 현대사에서 그는 화해와 화합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기민당 출신이었지만, 사민당의 빌리 브란트가 추진했던 동방정책을 적극 지지했다. 빌리 브란트 정부가 1970년 모스크바 조약과 바르샤바 조약을 체결하면서 동서독 관계를 근본적으로 전환하려고 할 때, 당시 기민당은 브란트 정부에 대해 불신임안을 제출했다. 그때 바이츠제커는 동서독의 긴장 완화를 환영하는 국제 사회의 지지와 분단 극복 노력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고려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국내정치적 대립이 아니라, 국제정치적 안목을 갖고 초당적 협력 정신을 강조한 것이다.

그의 통합의 철학은 동서독 관계를 보는 시각에서도 드러난다. 동독의 비민주적인 체제가 남긴 과제들, 특히 동독 공안의 인권침해 사례에 대해서는 법과 정의의 측면에서 분명하게 기억하고 처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동시에 동서독의 체제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동의 전통도 존재했음을 인정한다.

특히 그는 동독 지역에서 오랫동안 남아 있던 고전문학, 음악, 연극 등을 적극적으로 평가한다. 그가 베를린 시장으로 있을 때, 부인과 함께 동베를린으로 연극을 보러가는 이야기는 인상적이다. 시장 부부가 직접 차를 몰고 연극을 보고 돌아 올 때, 동독 경비대원들이 "우리 독일 연극 좋으셨나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서독 내부에서, 그리고 동서독 관계를 보는 그의 통합의 철학은 국제 정치로도 연장된다. 바로 평화의 비전이다. 그는 1970년대 사민당의 브란트 정부가 폴란드와 외교관계를 개선할 때, 오더-나이세 경계선(Oder-Neisse Line)을 인정한 것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당시 독일에서는 여전히 1937년의 국경선, 즉 폴란드 일부 영토를 포함하는 것에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브란트 정부는 국제사회의 요구와 동방정책의 적극적 추진을 위해 1945년의 국경선을 조약의 형태로 인정했다. 국내적 반발이 심했다. 그러나 바이츠제커는 "국경이 분리의 선으로 인식되지 않게 하는 것이 더 절실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의 이러한 인식은 독일 통일을 유럽의 평화라는 시각으로 보게 했다. 독일 통일 과정에서 벌어졌던 외교를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이츠제커는 통일 기념식에서 "유럽의 통합을 이루어 내느냐, 아니면 고통스러운 과거의 역사처럼 다시 민족 국가 간 대립 구조로 전락하느냐,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독일의 통일을 유럽의 평화로 인식했기에 통일 과정에서 벌어졌던 긴박했던 외교를 슬기롭게 극복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지혜가 있었기에 독일의 통일이 유럽의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와 동력이 될 수 있음을 주변국들에게 설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치 지도자의 책임과 과제

그는 말한다. "독일의 통일은 완벽한 것도 완료된 형태도 아니라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이해한다면 또한 그것을 극복해 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중요한 것은 그가 말하는 정치 지도자의 책임과 과제다. 우리는 여전히 분단의 시대를 살고 있다. 분단이 어디, 38선에만 있는가? 우리 내부를 가르는 장벽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나는 시대가 아닌가? 역사적 과제를 인식하고, 시대의 과제를 해결해야 할 책임 있는 정치는 어디에 있는가? 그의 지혜와 철학을 한 번쯤 읽어 보기를 권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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