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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비 아깝다면, '재난 예측'의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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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비 아깝다면, '재난 예측'의 세계로!

[프레시안 books] 렌 피셔의 <재난은 몰래 오지 않는다>

특정 대상을 크게 둘로 나누는 것만큼 무모하고 어리석은 일은 없다. 특히 그 대상이 '세상의 모든 책'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물리학자·과학 칼럼니스트인 렌 피셔의 <재난은 몰래 오지 않는다>(김아림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를 소개함에 있어서는 부득이하게도 그처럼 무모한 수단으로 도입부를 열어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책을 어떻게 나누겠다는 얘기인가.

세상의 모든 책을 '답을 주는 책'과 '생각하게 하는 책'으로 나눠보자. 답을 주는 책이란 지식을 전하는 책이다. 생각하는 책이란 지혜의 단서를 던져주는 책이다.

답을 주는 책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교재이다. 그게 수험서이든, 과학사 서적이든 마찬가지이다. 답을 주는 책을 찾는 이들은 그 책을 구입해서 무엇을 얻을지 명백하게 알고 있다. 그에 반해 생각하게 만드는 책을 구입하는 이들은 대략적인 방향성만 가늠할 뿐, 그 다음은 전적으로 저자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다.

굳이 이렇게 구분을 짓는 이유는 오해를 없애기 위해서다. 오프라인 서점과 인터넷 서점에는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그 책을 집어가게 만들려는 홍보용 문구는 산더미의 두 배 이상 쌓여있다. 그런 문구들 가운데 상당수는 앞서 언급한 이분법의 경계를 제 마음대로 변경한다. 그 중에서 가장 흔한 것은 '생각하게 만드는 책'에 답이 들어있다고 말하는 경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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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난은 몰래 오지 않는다>(렌 피셔 지음, 김아림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웅진지식하우스
<재난은 몰래 오지 않는다>는 생각하게 만드는 책에 해당한다. 비록 책 표지에 적힌 여러 문구는 그 사실을 모호하게 덮어버리고 있지만. 허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가상의 세상을 그리는 소설 속이 아닌 한 재난이 올지 안 올지 '확실히' 알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할 턱이 없다. 적어도 아직까지 우리 인간은 그런 지혜와 지식을 터득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인류는 사고와 지능을 통해 환경을 극복하고 살아남았다. 그 기록이 곧 환경에 대한 우리의 역사다. 하지만 생존을 우연에 맡기지 않으려면 외부와 내부를, 다른 말로 하면 외부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온갖 사물의 원리와 우리 자신의 실상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개인적인 관찰과 경험과 학습을 통해 세상을 파악하지만 거기에는 한계가 있다. 우리가 고립된 계에 살지 않기 때문인데, 심지어 학자들은 이 계에 '복잡계'라는 이름까지 붙여두었다. 선형적인 시각으로는 예측이 불가능한 세계라는 뜻이기도 하다. <재난은 몰래 오지 않는다>는 '그러면 어떻게 예측하겠다는 소린가'에 대한 소개서이다.

가장 근본적인 것은 '재난'이 과연 무엇인지 정의하는 데에 있다. 책 속에서 재난은 '임계 전이'라는 용어로 대치되며, 그러한 전이를 야기하는 요소들을 스트레스라고 표현한다. (여기서의 스트레스란 당연히 심적인 것뿐 아니라 건축 설계상의 의미도 포함한다.) 스트레스의 누적은 개인, 집단, 환경(그리고 건축물)의 극단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임계 전이란 극단적인 상태 변화다. 스트레스가 누적되면 임계 전이가 발생하고, 시스템은 안정 상태에 도달한다. 힘든 고갯길의 정상에 올려놓은 공이 굴러 내려가 위치에너지가 작은 저지대에 도달하듯이. 주의할 점은 파국이나 평화상태 양자 모두가 안정 상태에 해당한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이런 세 가지 상태 (임계, 파국, 평온)는 우리의 상식적인 착각과 달리 선형상태로 분포하지 않고 일종의 S 곡선을 그린다. 고갯길의 정상, 즉 임계점에 가까워질수록 중간과정을 따르지 않고 반대편 상태로 순식간에 뒤바뀔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 책은 총 3부로 나뉘어 있다. 그 중 2부까지는 위에서 요약한 결론에 도달하기까지의 사고의 역사를 최대한 쉽게 설명하고 있는데,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보면 전개 방식이 다소 독특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재난은 몰래 오지 않는다>는 책 전체에 걸쳐서 숱한 비유를 이용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재난 (또는 선형적이지 않은 임계 전이)의 징조를 예측할 수 있는 모형이라는 것이 어느 한 분야가 아니라 세계의 전체와 부분을 전부 아우른다고 보기 때문이다.

렌 피셔가 소개하고 있는 모형은 양적/음적 되먹임으로 인해 어느 정도 복원력이 존재하고, 온갖 요소로 인해 스트레스가 복원력을 넘으면 급격한 전이가 일어나는 모형이다. 이 책은 이 모형으로 사람의 감정추이, 생태학 상의 여러 현상, 건축물의 붕괴, 거시적인 경제까지도 설명할 수 있다고 암시한다. 주지하다시피 아무리 공들여 세운 모형이라해도 그 모형을 스위스 군용 칼처럼 마구잡이로 사용하기 전에 상당한 회의와 검증이 필요한데, 이 서적이 입문서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런 부분의 소개가 많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3부에서는 1,2부에서 피력한 '파국이론'에 따라 구체적인 모형화를 진행할 때에 주의할 점들을 강조하고 있다. 재밌는 것은 우리가 파국이론을 받아들임에 있어서도 똑같은 주의사항을 적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3부의 말미에서는 어떤 계가 (즉 기업이나 생태계 등이) 파국에 치닫기 전에 보이는 위험신호 몇 가지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 위험신호란 것이 예비 경영인을 상대로 한 처세서에 나옴직한 것들과 별다르지 않다는 것도 눈여겨 볼만하다.

<재난은 몰래 오지 않는다>는 생태계와 사회 전반을 아우르려는 여러 해석 시도 가운데 한 가지 이론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흥미롭지만 '교양'이라는 말을 앞에서 붙인다 해도 '과학서'라는 꼬리를 달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이 세상에는 합리적으로 세계를 해석하기 위해 다방면의 노력이 행해지고 있으니 그 중 하나를 살짝 들여다본다는 태도로 읽는 게 적당하리라 본다. 저자도 말하고 있듯이 '무리 지능'이 한 가지 모형의 독단을 막을 수 있다면, 이 책을 접하는 우리의 태도도 그와 마찬가지로 열려있고 신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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