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나를 키운 건 8할이 기다림이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나를 키운 건 8할이 기다림이다!

[親Book] 신경숙의 <자거라, 네 슬픔아>

"사랑이 깨어지는 일은 그치지 않고 발생한다.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더 사랑한 사람이 더 기억하고 그 사랑에 더 몰두한 사람이 그 깨어짐으로부터 멀어지는데 시간이 더 걸릴 뿐. 그를 사랑하는 일에 깊이 빠져들었던 그녀는 사랑이 끝나자 어디론가 사라졌다." (187쪽)

왜 이 구절에 마음을 빼앗겼는지 알 수 없으나, 오래전부터 그녀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사랑이 끝났을 때야 그러려니 하겠지만, 한창 사랑에 빠져 있을 때조차도 문득 그녀를 떠올렸다. 그녀는 어디로 가버린 걸까.

사랑에 관한 구절로 시작했으나, 사랑에 대해 말하려는 건 아니다. 아련한 추억과 기다림을, 작가 신경숙의 언어와 사진작가 구본창의 이미지를 빌려 조금 나누고 싶을 뿐이다. 누군가를 말없이 위로하고 싶거나, 먼 길 떠나는 이의 손에 들려주었던 책. 조금 울고 싶어지는 날 꺼내 보는 <자거라, 네 슬픔아>(신경숙 지음, 구본창 사진, 현대문학 펴냄)를 통해서 말이다.

▲ <자거라, 네 슬픔아>(신경숙 지음, 구본창 사진, 현대문학 펴냄). ⓒ현대문학
"인생은 기다리는 순간이 쌓여서 완성된 것이고, 기다리지 않는 삶이란 존재 할 수 없다"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삶은 기다림의 연속인지도 모르겠다. 조금 과장하자면, 내 삶의 8할은 기다림으로 채워져 있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손가락을 꼽아 가며 날짜를 헤아리는 모습에서 시작한다. 누구를, 무엇을 그토록 기다렸는지 기억나지 않으나, 간절한 바람이었나 보다 싶다.

그 이후 몇 살 때인지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하도 자주 들었던 터라 마치 직접 본 것처럼 생각되는 장면 역시 기다림에 맞닿아 있다. 할아버지와 잠자리를 잡으러 집을 나섰던 때의 일이라고 했다. 그때 할아버지는 무언가를 놓고 왔다며 "잠깐 기다려라" 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셨단다. 누가 불러도 대꾸도 않고, 길 한복판에 서서 고개를 숙인 채 꼼짝도 안 했더란다. 동네 아주머니가 말을 걸어도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있었단다. 멀리서 보기에 귀엽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하여 헐레벌떡 뛰어 오셨다고 했다. 타들어 갈 듯 붉어진 얼굴로 얼음처럼 서 있던 그때 내 모습을 할아버지는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두고두고 말씀하셨다.

아침잠에서 깨면서부터 '오늘은 무슨 장난을 칠까'를 연구하던 초등학교 시절, 말썽은 통제하기 곤란할 정도였다고 했다. 그 때문에 엄마 손에는 늘 파리채가 쥐어져 있었다. 화난 엄마를 피해 지붕 위로 올라가는 건 생존을 위해 습득된 기술인 듯하다. 엄마는 "내려오기만 하면 가만히 안 둔다"라고 협박하며 윽박지르셨다. 지붕 위의 나는 기세등등해져서 "그놈의 파리채를 몽땅 버릴 거야"라고 대응했다. 붉은 기와에 기댄 채 노래도 부르고, 꺾어 간 나뭇가지로 바닥을 두드리며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가끔 내 위치와 존재를 알리기 위해 마당으로 침을 뱉기도 했다. 그래도 두렵지 않았던 건 기다림 때문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면 어김없이 퇴근해 돌아온 아버지. 자식이라면 끔찍하게 여기던 아버지께서는 어머니가 큰소리로 꾸짖는 일은 물론, 파리 잡을 때나 쓰는 걸로 어린 자식의 등을 내려치는 것도 못마땅해 하셨으므로 지붕 위로 쫓겨 올라간 이유 따위는 묻지 않으셨다. 다만 더러워진 손을 닦아주시고, 얼굴을 씻겨주셨을 뿐이다. 아버지와 함께 늦은 저녁을 먹는 것으로 내 기다림은 끝났다. 그러니까, 어릴 적 기다림은 대부분 해피엔딩이었다. 온다 했으면 왔고, 약속하지 않아도 왔으므로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과자 한 봉지와 만화책이면 몇 시간이고 혼자서도 잘 있는 아이였다고 했다. 씩씩하게 기다리라고 하면, 울지 않고 잘도 있었단다. 기다림의 끝은 헛되지 않았으므로 울 필요가 없었다. 두렵지도 않았다. 하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기다리는 일은 많아졌고 버텨야 하는 시간은 길어졌다. 온다 해도 오지 않았고 기다리지 말라 하면 정말 돌아오지 않았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 아무리 애를 써도 가질 수 없는 것을 한 가지씩 가지고 있는 게 인간(22쪽)"이라는 작가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기다리는 일을 멈추지 못했다. 큰 소리로 노래하고, 밤하늘의 별을 헤아리고, 가끔 울기도 해보았지만 의심해야 하는 기다림과 지켜지지 않은 약속은 그저 아픔이었다.

오지 않을 것을 기다리다 그리움이 깊어지면 앓을 만큼 앓다가 길을 나섰다. 어디로든 떠나야 했다. 단호하게 기다리는 고통을 끊을 수는 없었다. 누군가에게는 "도시와 사람들 속에서 짙은 피로를 느꼈기 때문이라고, 얼마간이라도 나를 유폐시키지 않으면 내 속엔 아무것도 고이지 않을 것"(16쪽)같기 때문이라고 작가의 말을 인용하여 떠나는 이유를 말했지만, 사실은 "슬픔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곳이 필요했을 뿐이다. 낯선 곳에서 걷고 또 걷다 보면, 대상조차 불분명한 그리움을 그만두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지켜지지 않을 약속은 하지 않겠다고 부유하는 마음을 다잡을 수도 있었다. 그 사이 떠나고 돌아오는 일은 일상이 되어 버렸다.

습관이 된 기다림으로 쉴 새 없이 마음이 베인다. 여전히 아프다. "사랑하면 몸은 매이고 마음이 아프다"라고 했다. <자거라, 네 슬픔아>는 어찌 보면 사랑에 관한 얘기일 수도 있겠다. 사랑이 깊어야 기다림이 있고, 그리움과 삶은 사랑과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으니 말이다. <자거라, 네 슬픔아>를 읽고 나면, 어김없이 잠자던 내 슬픔을 깨우게 된다. 하여, 오늘처럼 예고 없이 비 내리는 밤이면 지켜지지 않은 약속들과 어디로 가버렸는지 알 수 없는 그녀를 생각하며 조금 울지도 모르겠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