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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사 직원의 태업이 낳은 보석 같은 순간!

[한만수의 '백 년 동안의 검열'] 80년 만에 부활한 <소금> ②

☞관련 기사 : 80년 만에 부활한 <소금> ①, 일제가 난도질한 소설, CSI의 눈으로 복원?!)

다 된 밥에 코 빠진 느낌. 억울해서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조선의 언론과 세상>과 <소금>을 놓고 비교해 보았다. 그러니까 다시 가능성이 보였다. <조선의 언론과 세상>에서 붓질은 매우 꼼꼼하게 되어 있었지만 <소금>은 상당히 무성의한 붓질이었다. 붓질된 약 300자 중에서 40자 정도는 붓질 사이로 보일 정도였다. 이렇게 희미하게 붓질되었다면 정확도는 매우 높아질 것이었다. <조선의 언론과 세상>에서도 희미한 붓질 부분에 대해서는 100퍼센트 정확하게 해독하지 않았던가.

고무적인 요인은 또 있었다. <조선의 언론과 세상>에서 삭제된 부분은 거의 모두 한자였는데 한자는 획수가 많은데다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요원들이 한자에 엄청나게 밝은 것도 아니니 해독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소금>은 모두 한글이다. 게다가 <조선의 언론과 세상>에서 붓질된 부분은 주로 사람 이름과 주소였지만 <소금>의 붓질 부분은 소설의 문장이었다. 고유명사는 문맥에 의한 해독이 불가능하지만 소설 문장은 문맥에 의존할 수 있을 것이다. <소금>의 복원은 여러 가지로 유리한 작업이었다. 그래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 <소금>이 실린 <신가정>. ⓒ한만수
<소금>은 <신가정> 1934년 10월호에 실렸는데 현재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원본이 남아 있다. 고려대 최호철 교수에게 S0S를 보냈다. 귀중본이어서 관외 대출은 불가능하지만, 원본을 훼손시키지 않는다면 도서관 내에서 열람은 허용하겠노라고 한다는 답변을 전해 들었다. 양 실장과 함께 고려대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문제의 <신가정>을 보는 순간 양 실장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인쇄된 종이의 질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종이의 질이 좋아야만 압흔 역시 뚜렷하게 남아있게 마련인데,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조선의 언론과 세상>은 총독부에서 낸 책이니 충분한 물자를 동원할 수 있어서 좋은 종이를 썼지만, <신가정>은 영세한 조선 민간 출판사가 냈으니 종이의 질이 나빴던 것이다. 기막힌 노릇이었다. 조선의 물자를 한껏 수탈한 덕분에 총독부는 풍부한 물자를 동원할 수 있었는데, 이제 복원마저도 돈 때문에 불리해지다니.

하는 데까지 해보자면서 양 실장과 머리를 맞대고 책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조선의 언론과 세상>을 해독했던 방식을 그대로를 적용해 보았다. 결과는 예상했던 것과 비슷해서 해독 불능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글자들은 그저 얽히고설킨 덩어리처럼만 판독되었다.

그러나 역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었다. 양 실장은 적외선 자외선 장비는 보조적으로만 사용하고, 특수 조명기구(Nikon Fiber Optic Source)를 활용하여 여러 각도로 빛을 쐬어 가면서 살피는 사광(斜光) 관찰, 텍스트의 뒷장에서 강력한 빛을 쐬면서 앞에서 살피는 역 투사 방식 등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그 강력한 빛 아래서 먹칠로 가려졌던 글자들은 때론 분명하게 떠오르기도 했고, 때론 불분명하지만 대체적인 윤곽만이라도 보이기 시작했다. 압흔이 좋지 않은 상태이니, 이런 방식을 동원하더라도 만일 붓질된 글자들이 한자였으면 그저 불분명한 획들의 뒤엉킴 정도로만 판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한글이어서 훨씬 쉬웠다. 분명히 판독되는 글자들 사이에 한두 글자 불분명한 것이 있을 때는 대부분 문맥에 의해 명확하게 복원할 수 있었다. 과학적 방식과 함께 해당 텍스트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는 문학 전공자로서 필자의 협동 작업이 이뤄졌으며, 이에 따라 해독률을 높일 수 있었다.

▲ <소금> 붓질된 부분 중 일부. (207쪽). ⓒ한만수
이런 곡절 끝에 <소금>은 복원되었다(복원 성공률 85.4-87.2퍼센트). 복원 결과를 토대로 다른 조사들을 거쳐서 이러저런 사실들을 추가로 밝혀냈다. 북한에서도 나름대로 복원본(1946년 노동신문사)을 펴냈지만, 그것은 강경애의 <소금>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 아마도 강경애의 남편으로 노동신문사 부주필이었던 장하일이 적당히 '복원'했던 것일 터라는 점 등이다.

이번 복원의 성공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문서감식실 팀의 능력 덕분이었지만, 가장 커다란 기여를 했던 사람은 오히려 따로 있었다. 70여 년 전에 붓질을 느슨하게 했던 어떤 이름 모를 한 잡지사 직원. 그는 아마도 밤새 붓질을 해야 했을 것이다. 그것도 검열에 의한 삭제 지시라는 동의할 수 없는 노동이었고, 무의미한 단순 반복 노동이었다. 그 분이 느꼈을 저항감이 이런 무성의한 붓질로 나타났을 것이다. 그렇다. 그것은 태업의 흔적이었다.

ⓒ한만수
물론 이런 태업의 결과가 처벌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을 것이며, 그럴 때마다 다시 붓질을 좀 더 충실하게 하기도 했겠지. 때로는 충실하게 때로는 태업으로, 판본마다 붓질의 강도는 달라졌을 것이다. 아마도 운이 좋게도 태업을 감행한 붓질본이 고려대에 남아있었던 것이었을 터이다. 상상은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나중에 저 세상에서 그 이름 모를 직원을 만나면, 강경애를 만나면, 묻고 싶은 말, 하고픈 말이 참 많이 생겼다.

검열 연구의 핵심적 과제 중 하나는, 검열 권력이 무엇을 왜 삭제하고자 했던가에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알기 어렵다. 검열 기준이 일부 남아 있지만 추상적인 표현들이어서 한계가 있고, 삭제 지시를 받은 텍스트들은 지워져 버려 알 길이 없다. 그러니 <소금>의 경우처럼 명확한 증거가 되는 경우는 매우 희귀하며 따라서 매우 중요하다. 식민지 시기 대표 작가의 대표작에 대한 복원이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지만, 비단 개별 작품에 대한 복원이라는 의미만을 지니는 것은 아닌 셈이다.

지금까지는 붓질복자의 복원은 불가능하다고만 생각해왔다. 하지만 필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의 공동 작업을 통해 그게 가능한 일임을 입증했다. 문학 연구가, 그저 텍스트를 그 내부에서 해독해내는 고립된 분과 학문으로 남아있지 않는다면 참으로 많은 일들을 해낼 수 있다. 이번 복원 사례는 그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텍스트란 그저 작가의 정신적 산물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인쇄되고 유포되는 과정에서 숱하게 많은 사람들의 노동과 자본이 투여된다. 검열이란 그 중 하나이다. 텍스트는 정신성뿐만 아니라 육체성까지를 지니는 존재인 것이다. 텍스트가 이렇게 복합적이라면, 텍스트 연구 역시 복합적이어야 한다. 이런 인식은 고식적인 문학 연구의 영역에서는 외면되어온 것이지만, 시급히 극복되어야 한다. 분과 학문 체제를 넘어선 자리에서 '진정한' 문학 연구는 가능하게 될 것이다.

▲ 붓질로 삭제하더라도 <조선 및 조선 민족>은 매우 철저한 반면, <소금>의 경우는 대충 시늉만 하는 식으로 붓질되어 있다. 어떤 이름 없는 인쇄소 직공의 사보타주라고 생각한다. (사진, 붓질된 <조선 및 조선 민족>, 정근식 교수 제공). ⓒ정근식

붓질되어 있는 텍스트들은 <소금> 말고도 숱하게 많다. 식민지 시기 검열 제도는 해방 뒤에도 존속되었으므로, 아마도 1980년대까지는 이런 식의 붓질이 있었으리라. 그렇다면 대대적인 후속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까. 곳곳에 불구 상태로 남아있는 붓질된 텍스트들을 찾아내고 복원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일은 일개 연구자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디에 어떤 붓질된 텍스트가 남아 있는지 조사하고, 귀중 도서로 분류되어 있을 그 텍스트들을 조사할 수 있도록 소장처의 협조를 받고, 또한 그렇지 않아도 격무에 시달리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도 도움을 요청해야 하니까. 이런 작업은 한두 해에 끝날 일이 아니지만 설득을 통해 개인의 호의를 얻는 일은 지속적일 수 없다. 그렇다면 국가나 연구 지원 기관에서 나서야 하지 않을까. 식민지 시기 검열이 인류 양심과 민족에 대한 범죄라면, 그것을 원상 회복하는 일은 우리 공동체의 책임이 아니겠는가.

인터넷이나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를 통한 소통을 전기통신법으로 단속하겠다는 등, '쥐 방귀 뀌는' 이야기만 해대는 게 정부가 할 일은 아니다. 시대착오적으로 검열을 강화하는 국가 아니라, 검열에 의해 훼손된 작품들을 복원하는 국가. 그런 나라에서 살고 싶다. 그런 나라를 함께 만들어나가고 싶다. (<소금> 복원 이야기는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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