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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대한민국 최대의 암적 존재는 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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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DJ "대한민국 최대의 암적 존재는 검찰"

[김대중 평전 '새벽'·35] 노벨상 수상 '방해' 공작의 진실은?

김대중은 끊임없이 집권 세력의 공작에 시달렸다. 감옥에 있을 때가 오히려 자유스러울 정도였다. 그 앞잡이가 다름 아닌 검찰과 정보부(중앙정보부, 안전기획부)였다. 그들은 권력이 무엇을 원하는지 귀신같이 알아차렸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요리하여 바쳤다. 그래서 지킨 것이 기득권이었다. 검찰이 역대 정권에 바쳤던, 그래서 사랑받았던 가장 손쉬운 대중 요리는 '김대중'이었다. 오랜 세월에도 부패하지 않았다. 재료는 신선했고, 메뉴는 다양했다.

그런 김대중이 권력을 쥐고 처음으로 검찰과 안기부의 업무 보고를 받았다. 김대중을 사지(死地)로 몰아갔던 당사자들이 어떤 목소리를 낼지, 어떤 요리를 내놓을지 궁금했다. 그러나 검찰과 안기부는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권력을 향해 납작 엎드렸다. '김대중' 같은 요리를 더 이상 만들 수 없었다.

4월 9일 법무부 업무 보고 때 대통령 김대중은 이렇게 당부했다.

"검찰은 대통령의 범죄도 수사하고,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정치인도 순식간에 구속할 수 있습니다. 일본 검찰이 다나카 총리를 구속한 사례를 보십시오. 검찰이 바로 서면 아무도 부정부패를 저지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 검찰은 권력의 지배를 받고 권력의 목적에 따라 표적 수사를 많이 했습니다. 나도 당해봐서 압니다. 1989년 용공 조작 당시, 밀입북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서경원 씨를 사흘간 잠 안 재우고 고문까지 해서 나에게 주지도 않은 1만 달러를 줬다고 허위 자백하게 했습니다.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섭니다. 이것은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입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 정권은 학연, 지연에 구애받지 않고 인사 문제를 깨끗이 할 것이고 권력을 위해 검찰권 행사를 해 달라고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김대중은 검찰이 변할 것이라고 믿었다.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룬 민주사회에서는 검찰이 과거와 같은 음험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검찰은 변하지 않았다. 개혁하는 시늉만 냈다. 대통령이 굳게 믿었던 검찰총장 김태정은 '옷 로비'라는 해괴한 스캔들에 휘말려 전전긍긍했다. '남편의 혐의를 벗기려 고위직 인사 부인들에게 옷 로비를 벌였다'는 사건은 실체 규명을 떠나 국민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고위 관리 부인들이 떼로 몰려다니며 옷을 얻어 입고 키득거렸다'는 상상만으로도 서민들은 분노했다. 적어도 '국민의 정부'라 명명한 정권에서는 일어나지 말아야할 사건이었다. 김태정 총장은 대통령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이어서 1999년 6월 또 하나의 해괴한 사건이 터졌다. 대검찰청 공안부장 진형구는 간부들과 오찬을 하면서 폭탄주를 마셨다. 대낮에 대취해서 집무실로 돌아와 기자들에게 엉뚱한 자랑을 했다. '1998년 11월에 있었던 조폐공사 파업은 실은 검찰이 유도했다'는 것이었다. 이른바 '파업 유도 사건'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김대중의 검찰이었다. 검찰은 그렇게 새 시대를 맞았다고 해서, 또 간곡한 설득이나 호소로 바뀔 무리가 아니었다. 이후에도 검찰은 구설수를 양산해서 청와대를 곤혹스럽게 했다. 대통령 김대중은 결국 검찰 개혁을 끌어내지 못했다.

검찰은 시퍼런 권력 앞에서는 색색의 옷을 입고 칼춤을 추다가, 권력에서 쉰내가 나면 망나니로 돌변하여 권력을 벴다. 대통령 노무현이 퇴임한 후 검찰의 칼끝이 봉하 마을을 향하자 김대중은 우리나라가 검찰 공화국으로 전락하고 있다며 개탄했다. 그리고 끝내 '노 대통령의 자살'이란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김대중은 일기에 이렇게 썼다.

"슬프고 충격적이다. 그간 검찰이 너무도 가혹하게 수사를 했다. 노 대통령, 부인, 아들, 딸, 형, 조카사위 등 마치 소탕 작전을 하듯 공격했다. 그리고 매일같이 수사 기밀 발표(가) 금지된 법을 어겨서 언론 플레이를 했다. 그리고 대통령의 신병을 구속하느니 마느니 등 심리적 압박을 계속했다. 결국 노 대통령의 자살은 이명박 정권에 의해서 강요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검찰은 바뀌지 않고 여전히 권력의 하수인이 되어 권력이 시키는 대로 요리를 해서 바쳤다. 김대중은 탄식했다.

"이 나라의 최대의 암적 존재는 검찰이다. 너무도 보복적이고 정치적이고 영남 지역 중심주의다."

ⓒ프레시안(손문상)

5월 12일 안기부 업무 보고를 받았다. 안기부는 공작 정치의 소굴이었고, 이름만으로도 공포 그 자체였다. 저들은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김대중 파일'을 파쇄하여 불태웠다. 안기부가 있는 세곡동 하늘이 석 달 동안 새카만 연기로 뒤덮였다. 그들이 조작해 만들어 놓은 '불온한 김대중'을 불태워야 했기 때문이었다. 김대중은 안기부 간부들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과거 불행했던 안기부 역사의 표본은 바로 나입니다. 납치, 사형 선고 등 안기부의 용공 조작 때문에 별일을 다 당했습니다. 내가 당했던 일을 안기부가 다시 해서는 안 됩니다. 다시 새 출발을 해야 합니다.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요 행정 수반으로 받드는 것이지 정치적으로 받들 필요가 없습니다.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부당한 어떤 지시를 해도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 정권은 안기부를 정권의 도구로 이용하지 않을 것이며 여러분도 그것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김대중은 실로 불행했던 안기부 역사의 '표본'이었다. 김대중이 있는 곳이라면 세상 끝까지 찾아갔다. 세상에서 유통되고 있는 모든 부정적 이미지는 정보부가 지어낸 것이었다. 선거 때만 되면 김대중을 짓밟았다.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동교동 X파일'을 무차별 살포했다. 후보 김대중을 과격하고, 거짓말쟁이며, 불순한 인물로 매도했다.

그렇다면, 소문으로 굴러다니던 김대중의 노벨평화상 수상 방해 공작이 있었던가. 결론은 '실제로 엄존했음'이다. 북유럽에 사람을 보내 유력 인사나 언론인을 접촉하여 부정적인 여론을 전달했다. 또 노르웨이나 스웨덴 내의 여론 주도층에 허위 사실을 퍼뜨렸다.

"김대중은 공산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노벨평화상을 받으려 하는 것은 이를 집권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려 함이다."

이러한 공작은 김영삼 정부에서 까지 계속되었다. 해마다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으니 '수상 방해'는 해마다 안기부의 주요 공작이었다. 안기부장 이종찬은 내부 감찰을 지시했다. 그리고 조사 결과 안기부가 조직적이고도 치밀하게 공작을 주도했음이 밝혀졌다. 해외 파견관, 현지 공관원, 교수, 언론인, 정치인들을 동원한 사실도 드러났다. 그중에는 유명 인사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이종찬은 고민했다. 평소 신뢰하던 대외협력보좌관 김한정을 불렀다. 그는 김대중 비서를 지낸 인물이었다.

"이들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은가?"

김한정은 이종찬이 건넨 명단을 유심히 살펴보며 입을 뗐다.

"과거 일입니다. 덮어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정치 보복을 하지 않겠다는 김 대통령의 의지도 헤아려야 합니다. 국가적으로도 창피한 일입니다."

이종찬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노벨상 수상 방해 공작은 이렇게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이들이 사건 자체를 불문에 붙인 것은 국제적인 망신이기도 했지만 방해 공작이 만천하에 공개되면 앞으로 김대중의 노벨상 수상도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자국민에게 노벨상을 주지 말라고 공작을 벌이는 나라가 어디에 있겠는가. 또 그런 '미친 권력'이 있었던 나라에 누가 선뜻 상을 주려하겠는가.

안기부장 이종찬은 대통령의 개혁 의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호칭부터 안기부를 국가정보원으로 바꾸겠다고 보고했다. 대통령은 검찰에 이어 국정원에도 간곡하게 당부했다.

"안기부는 국민의 마음에 탄식과 걱정을 끼쳤고, 정치적으로는 부정적인 기관으로 보여 온 게 사실입니다. 이제 안기부는 국가정보원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경제 연구 기관 못지않게 정보 역량을 강화하십시오. 여러분은 경제 전쟁에서 승패를 결정하는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합니다. 북한을 어떻게 개방시킬지 노심초사해야 합니다. 국가정보원이 국내에서 군림해서는 안 됩니다. 국가 기관과 정보를 공유하여 국가 위기 원인을 철저히 관리해야 합니다. 국가정보원은 이제 직언하고 경고해야 합니다. 대통령으로서 마지막으로 부탁합니다. 완전 중립을 지켜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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