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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경제' 외치며 대학은 '직업훈련기관' 취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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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경제' 외치며 대학은 '직업훈련기관' 취급?

[시민정치시평] 교육의 상업화를 경계한다

요즘 전국 여러 대학에서 '구조조정'이라는 미명 하에 대학교육의 시장화・상업화가 맹렬히 진행되고 있다. 그 내용은 취업률이 낮은 학문분야를 통폐합하고 대신 취업률이 높은 실용・응용분야를 확대하는 것이다. 속된 표현으로 '돈 되는 학과를 늘리고, 돈 안 되는 학과를 없애는' 구조조정이다. 모두 교육부의 대학평가에 따른 여파인데, 이로 인한 대학가의 회오리바람이 점차 거세지고 있다.

문학・역사학・철학 등 인문학 분야와 물리학・화학・생물학 등 기초학문 분야가 먼저 이 소용돌이에 휩쓸려들었다. 일부에서는 국어국문학조차 퇴출대상이 되고 있다. 예술체육학부도 마찬가지로 피해가 심각한 분야이다. 작년 대학졸업자 전체 평균 취업률은 56.2%이다. 하지만 인문계열 48.4%, 교육계열 49.0%, 자연계열 52.2%로서 모두 평균에 못 미친다. 예체능계열은 더욱 낮아서 44.0%이다. 취업률이 낮다는 이유로 이 분야들은 속속 통폐합되고 있다. 당연히 해당 학과(학부)의 학생들과 교수들이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취업률'과 '학생충원률', 이 두 가지가 대학평가 총점의 40%(작년까지는 50%)를 차지하고 있어 현재의 평가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지표이다. 취업률로 대학의 교육성취도를 판단한다는 것인데, 그 신뢰성에 대해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예컨대, 2012년 서울대의 취업률은 61.0%이다. 이에 비해 충남 논산에 있는 ㄱ대학은 72.7%이고, 강원도 고성에 있는 ㄱ대학도 68.1%로서 전국 최고 수준이다. (실제로 대학이 이렇게 평준화되었으면 정말 좋겠다. 집에서 가까운 대학 아무 데나 진학해도 되니까,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부담도 확 줄어들겠다.)

생각해 보면, 인문학과 기초과학과 예술분야는 인간의 사고를 확장하고 창의적인 시야를 갖게 해줌으로서 모든 학문의 기반이 되는 분야이다. 이 분야들을 없애면서 '창조경제'를 하겠다는 것은 건물의 기초를 축소하면서 층수를 올리겠다는 발상과 비슷하다. 국문학・물리학・생물학・화학 등을 없애면서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겠다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말이 안 된다.

생존을 위해 무한경쟁을 해야 하는 대학들은 제각기 취업지원센터를 만들어 유능한 직원을 배치하고 많은 예산을 배분하고 있다. 상당수 대학의 교수들이 취업률을 올리도록 강요당한다. 교육과 연구는 뒷전이니 교육의 질은 오히려 하락한다. 기업의 대졸자 수요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모든 대학이 동시에 취업률을 높일 수는 없는 제로섬 게임이다. 그래서 대학 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대학운영비는 계속 상승한다.

구조조정과 관련하여 대학을 소란스럽게 하는 또 하나의 문제는 절차의 비민주성이다. 교육부와의 관계에서 '을'의 입장이던 대학본부가, 학생 및 교수와의 관계에서는 '갑'의 입장이 되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대학의 모든 학과(학부)들은 재학생과 동문 및 교수들의 노력과 기여로 존속해왔다. 구조조정에서 이들의 입장이 당연히 반영되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미국의 사립대학처럼 이사회에 학생대표・교수대표・직원대표가 포함되어야 민주적이고 투명한 대학운영이 가능해 질 것이다.

학부모와 학생에게 대학의 정보를 바로 알리는 것은 좋은 일이며, 따라서 대학평가는 분명 긍정적 측면이 있다. 하지만 목표와 수단이 일치해야 한다. 대학교육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라면, 이에 합당한 지표들로서 대학을 평가해야 할 것이다. 외국처럼 '교수의 연구실적', '학생의 교육만족도', '교육비 환원률', '중도탈락률', '저소득층 입학비율' 등이 반영되어야 한다. 입학정원을 줄이는 것이 핵심적 목표라면, 아주 좋은 방법이 있다. 모든 대학과 전공분야가 동일한 비율로 모집정원을 축소하면 된다(고통분담원칙). 전국의 사립대학들이 매년 2~3%씩 줄여나가면 문제가 간단히 해결된다. 비대해진 수도권 사립대학들이 몸집을 줄이면 그만큼 건강해지고 교육의 질도 높아질 것이다.

'취업'은 당연히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취업률로 인해서 기초학문과 인문학 등이 피해를 입지 않게 하려면, 기업과 공공기관들이 신입사원 선발에서 전공별 차별을 하지 않으면 된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애로우 교수는 대학교육 자체가 생산성을 직접 향상시키지는 않는다고 지적한 바 있지만, 인문학을 전공한 학생이든 경영학을 전공한 학생이든 회사의 일반 업무를 처리하는 데는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 인사담당자들의 증언이다. 노동수요자가 여러 전공을 골고루 채용해서, 모든 전공이 균형 있게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대학과 학문발전에 기여하는 방법이 된다.

MB정부는 퇴출되었던 비리사학재단들을 원상 복귀시키고, 천박한 시장화·상업화 구조조정을 시행함으로써 대학을 갈등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취업률이 곧 대학교육의 성취도라는 생각은 대학을 자본축적의 도구로 여기는 것이다. 근대 대학의 역사에서 대학의 자율과 자치를 위협하는 최대의 적은 주로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이었지만, 지금은 대학을 도구화하려는 경제 권력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대학교육을 지원해야 할 교육부마저 채찍과 당근으로 교묘하게 대학의 시장화・상업화를 유도하고 있다.

대학이 과연 취업을 위한 직업훈련기관인가? 취업률과 충원률이 낮은 학과(학문)는 존재가치가 없는가? 대학은 진리탐구를 목적으로 하는 학문공동체이다. 취업이 최고·유일의 교육목표가 되면 대학의 본질은 변색되고 문명의 계승과 발전을 위한 비판기능 또한 대학에서 사라지게 된다. 비판기능을 상실한 대학은 진정한 대학일 수 없다. 상업주의・시장주의의 물결에 우리 교수들이 먼저 몸을 던지지 않았는지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하겠지만, 지금은 대학교육의 붕괴를 막고 새로운 비전을 만들기 위해 범대학 차원의 공동대응기구를 만드는 등 함께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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