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번 짐을 꾸릴 때마다 그는 매번 새로운 질문을 갖고 매번 새로운 꿈을 꿨을 것이다. 황사가 맨 먼저 일어나는 곳은 어디인가? 황소를 옆구리에 낀 괴물이 눈 위를 질주한 설인 예티 이야기가 시작된 곳은 어디인가? 달라이 라마의 고향은 어떤 곳인가? 눈을 뜨고 일어났더니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과 사람들이 있었다는, 그러나 한번 떠난 뒤 다시는 찾을 수 없었다는 이상향 샹그릴라는 어디인가? 푸얼 차를 재배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황하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이족, 강족, 나시족, 바이족, 위그르족 이런 이름을 가진 소수 민족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사랑하는 남자에게 수를 놓은 신발을 선물하는 강족 소녀들은 앞으로도 바로 그렇게 사랑을 고백하며 살 수 있는가? 도시로 떠난 소수 민족 젊은이들은 고향에 돌아오긴 할 것인가? 그들은 어른이 되면 어린 시절 보았던 설산을 그리워하긴 할 것인가? 그들이 두고 떠나온 뒤안길이 미래에 펼쳐질 인생길과 이어질 것인가?
이런 질문을 안고 직접 가서 확인해보려는 마음 자체가 이미 하나의 여행이다. 우리가 아무리 애를 써도 삶은 계속 손안에서 빠져 나간다. 그런데 뭔가가 끝없이 빠져 나가도 또 우리는 힘을 내서 뭔가 보고 알려고 한다. 아마 우리가 새로운 인간으로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그럴 가능성이 있다면, 그건 다시 텅 빈 손을 다시 채우는 과정에서일 것이다. 그러니까 무엇으로 나를 다시 채울 것인가, 무엇을 볼 것인가,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주 절실한 문제인 셈이다.
▲ <파미르에서 윈난까지>(이상엽 지음, 현암사 펴냄). ⓒ현암사 |
이상엽은 사막 한가운데 오아시스에서 비치볼을 들고 있는 소녀를 본다. 그녀가 정말로 비치볼을 들고 바닷가에서 놀 수 있으려면 소녀가 살고 있는 오아시스에 무슨 일이 벌어져야 할까? 소녀는 쓸모없는 비치볼을 들고 있는 것인가? 그건 차라리 불가능하지만 아름다운 꿈이지 않을까?
그의 책을 보고나니 마음속이 다시 바빠졌다. 하고 싶은 여행, 보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아졌다. 리장에 사는 나시족들은 만년설이 녹은 물을 옥천수라 부른다. 그 옥천수가 집들 사이를 흐른다. 그 도시의 아침은 거리가 아니라 강물을 청소하는 청소부들의 손길로 시작된다. 나는 그 아침을 보고 싶다. 바이족들은 봄이 오면 집집마다 대문에 매화 그림을 붙여놓는다. 그들은 매화가 만발한 정원에서 관광객들에게 노래를 불러준다. 나는 바이족들의 매화 그림도 보고 싶다. 신앙심 깊은 유목민들은 승려를 초대해 초원에서 텐트를 치고 법회를 연다. 나는 유목민들의 소원이 뭔지도 들어보고 싶다.
이상엽이 찍은 황하의 상류 사진을 보니 강물은 아홉 번을 굽이친다. 사진을 본 내 마음은 마치 열 번째 물결처럼 굽이친다. 티베트인들이 신성시하는 그 땅에 어린 승려가 작은 짐승처럼 앉아 있다. 물이 아닌 소금으로 가득 찬 호수도 보고 싶고 새하얀 모래 산도 보고 싶다. 마오쩌둥에게 길흉화복을 묻고 고해를 하고 복을 비는 소수 민족들도 보고 싶다.
그가 여행을 한 시기는 중국이 급변하는 시기였다. 중국은 세계에 문을 열었고 세계를 알고 싶어 했고 세계에 자신을 알리고 싶어 했다.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고 2004년엔 로켓 창정을 하늘에 날렸다. 흰 옷을 입은 만 명의 군사가 북을 치는 장면을 시작으로 올림픽을 열었고 "better city, better life"란 주제로 상하이 만국 박람회를 열었다. 그러는 사이에 중국 사람들은 주식과 부동산과 미술 작품에 투자할 줄 알게 되었고 이윤과 성공이라는 자본주의적 기쁨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제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 되었고 세계는 중국을 강력한 경쟁자로 두려워하고 있다. 중국은 어떻게 급성장하게 되었을까 그 비결을 궁금해 하게 사람들에게 중국어를 배우게 만들었고 오바마가 중국을 방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사이에 티베트 유혈 사태가 있었다. 경제 개발 과정에서 낙오된 나이든 노동자들은 마오쩌둥 시대의 투쟁가를 부르며 파업을 하고 새로운 만인의 평등을 부르짖었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무장 세력 중에는 60여 명의 위구르족 전사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위구르 족 전사들이 두고 떠난 고향도 아마 이상엽이 본 어떤 풍경 속에 들어 있을 것이다.
이제 점점 더 많은 소수 민족 사람들은 불평등한 대우에 고통 받으면서도 세계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불안한 마음을 품은 채 개발 붐이 한창인 콘크리트의 도시로 떠나가고 있다. 이상엽의 사진 속에는 그들의 조상들이 살던 하얀 집, 울창한 숲, 깊고 푸른 강과 골짜기들이 들어있다.
아마 소수 민족들이 이 사진을 본다면 꿈속에라도 눈물을 흘릴 만큼 반가울 것이다. 물속에 비친 산 그림자를 바라보며 어쩌면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떠올리며 가슴 아파 할 것이다. 그래서 이상엽의 사진들은 단순히 멋진 풍광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사진들은 누군가의 먼 고향, 두고 온 친구와 연인과 친지들, 순진한 꿈들을 담고 있었다. 그의 사진들은 아름다운 것은 왜 슬픈가? 하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을 제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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