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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 또 학살…이것이 인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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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 또 학살…이것이 인간인가?

[프레시안 books] 사코의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

10년이 지나도 나타나는 이라크의 참상

"지난 7개월 동안 전국의 미군 부대와 감옥을 다 돌았습니다. 그런데 미군은 연행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어요. 제발 아들의 생사만이라도 알려주세요."

2004년 3월 이라크 바그다드 시내 법무부 인근에 위치한 '이라크인권단체연합' 건물에서 만난 60대 여인은 멀리 한국에서 온 나를 붙잡고 아들의 생사 확인을 눈물로 호소했다. 이 여인의 호소는 "한밤중에 장갑차를 앞세우고 중무장한 미군들이 들이닥쳐 두 아들을 테러 용의자로 체포해간 후 7개월째 생사 확인조차 할 수 없다"는 뻔한(!) 사연이었다.

2003년 3월 20일 '충격과 공포'로 명명된 미국의 이라크 침략이 있은 후 1년이 되는 2004년 3월 그 무렵, 나는 이라크 바그다드에 있었다. 한국의 시사 만화가로서는 처음으로 이라크 전쟁의 상흔을 취재하겠다는 포부(돌이켜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는)로 한 번도 가 본적 없고 경험한 적도 없는 중동의 생경한 풍경과 전쟁의 혼란스러움 앞에 서 있었다.

장갑차와 중무장한 미군들로 가득한 거리, 항상 도심 상공을 선회하는 아파치 헬기, 폭격에 무너진 주요 시설과 건물 외벽에 남은 포탄 구멍, 어지러운 탄흔, 표정 없는 사람들의 긴 행렬, 도시 외곽에서 울려 퍼지는 끊임없는 총성과 호텔 하나가 통째로 날아가 버린 차량 폭탄 테러 현장 등….

'피 억압자로서 아랍'을 똑똑히 내 눈으로 직접 보았던 그 해 그 시간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2004년 11월 수백 명의 민간인 희생자를 낸 이라크 '팔루자 사태'가 나기 전까지 이라크 사회가 비교적 안전했던 기간 중 기껏해야 20여 일간의 체류였음에도 그때의 이미지는 지금까지도 오래도록 나를 압도한다. 중동 지역이 달아오르는 국제 뉴스를 본 날이면 종종 꿈에도 등장한다.

이라크에 동행했던 후배 기자와 나는 귀국 후 몇 달 동안 원인을 알 수 없는 우울함과 불면증에 시달렸다. 귀국 후 몇 년이 지나 우연히 보았던 <위험 지역 취재 가이드북>에서는 전쟁이나 대규모 재난 등 위험 지역을 취재하려면 가기 전이나 돌아온 후에 반드시 "정신과 상담을 받을 것"을 권고하고 있었다. 이른바 출발 전 심리 상태와 돌아온 후 '심리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진단하기 위함이다. 물론 <위험지역 취재 가이드북>을 읽은 뒤에도 나는 정신과 근처는 가지도 않았으며 그때의 우울함과 불면증은 결국 적절한(?) 음주가 해결해 주었다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속 편하게 굳게 믿고 있다.

그 우울함과 불면의 정체는 무엇이었나. <타인의 고통>(이재원 옮김, 이후 펴냄)을 쓴 수전 손택의 말대로 전쟁을 한 번도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자가 전쟁조차 뉴스로 서비스되는 "이미지 과잉의 사회"에 살면서 안전한 "타인"으로서 지녀왔던 여러 관념들, 이를테면 "타인의 고통을 스펙터클로 소비"하고 "타인이 겪었던 고통을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도 그 참상에 정통해지고, 진지해질 수 있는 가능성마저 비웃어"왔던 나의 숨겨진 내면을 들키고 만 것으로 기억된다. 한편으론 나 스스로가 나를 불쌍하고 가엽게 여겨서 위로하고 달래주려 했던 게 아니었을까 라고도 생각된다.

자료도 없는 1956년의 학살

▲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조 사코 지음, 정수란 옮김, 글논그림밭 펴냄). ⓒ글논그림밭
만화 저널리즘(Comic Journalism)이라는 새 장르를 연 조 사코의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Footnotes in GAZA)>(정수란 옮김, 글논그림밭 펴냄)은 조 사코 본인이 1991년과 1992년 사이 가자 지구와 팔레스타인 서안 지구 점령지에서 생활하면서 취재한 내용을 르포르타주로 그려낸 <팔레스타인>(함규진 옮김, 글논그림밭 펴냄)에 이어 10여 년의 간격을 두고 팔레스타인 문제를 다룬 그의 두 번째 작품이다.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은 전체적인 구성과 그림체 등이 전작 <팔레스타인>과 거의 동일한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배경과 내용은 다르다. 이 작품은 2002년 11월과 2003년 3월 사이에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머물면서 1956년 가자 지구의 '칸 유니스(Khan Younis)'와 '라파(Rafah)' 지역에서 일어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난민 학살 사건을 취재해나간 기록이다. 사코는 가자 지구에서 머문 그 시기에 공교롭게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경험했고 당시 전쟁을 이라크의 승리로 낙관하는 팔레스타인 사회의 낯설고 허망한 풍경과도 조우한다.

이 책이 만들어진 배경을 보면 서구 사회에서 팔레스타인과 관계된 이스라엘의 치부를 다루는 일은 여전히 민감한 금기(taboo)라는 사실과, 미디어 편집자의 편집권을 제약하는 저널리즘 밖의 또 다른 역학 관계가 작동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책은 원래 사코가 미국의 월간지 <하퍼스>에 가자 지구 르포를 준비하면서 시작되었으나 송고한 기사 중 칸 유니스 학살을 기록한 일부가 삭제된 데서 비롯됐다. 화가 난 조 사코는 독자적으로 이 사건에 대해 따로 조사할 것을 결심한다.

하지만 조사 과정에서 기록이라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고 유엔 보고서조차 몇 문장에 그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가자 지구에 들어가 증언할 수 있는 목격자를 찾기로 한 사코는, 칸 유니스 사건을 조사하던 중 같은 기간 인근 지역 라파에서 일어난 학살 사건도 알게 되어 이를 함께 묶게 된다. 사코는 이제 직간접적으로 20년 가까이 공들인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본인의 구상과 의지대로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게 된 것으로 보인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건국 이래 팔레스타인의 현실은, 어디서 시작해도 "죽음이 휴지처럼 가벼운" 사건의 연속이다. 학살이 학살을 덮고, 그래서 마치 "좌절과 분노"가 단조로운 퇴적층처럼 빠르고 일정하게 쌓여가는 것이다.

학살은 언제나 있었다. 우리가 기억하는 가장 가까운 일은 지난 2008년 12월부터 2009년 1월 사이에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격으로, 이때 1400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이 죽었다. 사코가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의 시작부터 봉착한 질문들을 보자. 그의 팔레스타인 가이드를 맡은 '아베드'의 숙소에서 아베드의 늙은 삼촌과 나누는 대화다. 이들의 대화엔 사코의 취재가 왜 칸 유니스와 라파 학살에만 집중된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일반적 정서가 그대로 드러난다.

"1967년은?"
"그건 다른 얘기죠"
"사브라와 샤틸라 학살은 어떡하고?"
"그건 레바논에서 일어났죠"
"우리가 어떤 상황인지 제대로 쓰려면 바젤 시온주의자 회의부터 시작해."
"바젤? 1897년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 건설을 촉구했던 결의? 아이고…."
"1948년은?"
"좋아요 좋습니다 반영합죠…."

사실 아베드의 삼촌 말에 따르자면 오늘날 팔레스타인 문제를 위해서는 프랑스에서 일어난 '드레퓌스 사건'도 팔레스타인 억압의 역사로 취급돼야 한다.

1897년 스위스 바젤에서 1차 '시온주의자 회의'를 주도했던 유대계 오스트리아 인 기자 테오도르 헤르츨은 드레퓌스 사건을 취재하면서 당시 뿌리 깊은 유럽 사회의 반 유대 정서를 확인하고 '시온주의자 회의'를 열어, "이주를 통해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 독립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결의를 이끌어냈다. 결과적으로 헤르츨의 구상은 50년 뒤 이스라엘로 실현됐으니 아베드 삼촌의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닌 셈이다.

저널리즘, 팔레스타인에서 무엇을 할 수 있나

또 다른 문제는 기억의 혼선이다. 50년 전에 일어난 학살을 증언할 사람은 적고, 그들마저 늙고 병들었으며 그 사람들조차도 엇갈린 기억을 안고 있다.

학살 현장에서 도주해 생존한 자는 다시 돌아와 형제들의 죽음을 목격했고, 그 과정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그러나 다른 이는 그 때 도주한 그를 수 개월간 못 봤다고 주장한다. 철조망이나 기관포 지프의 위치가 어디에 있었는지, 학살이 전개된 과정의 순서도 다르게 기억하거나 그나마 일치하는 경우도 드물다. 증언을 교차 확인해 가며 진실에 접근하려는 과정도 난항을 겪고 심지어는 사건과 사건(사코가 다루려는 학살 사건과 전혀 다른)이 오버랩되어 기억되곤 한다.

저널리즘이 추구하는 가치들이 기술적 한계에 직면할 때, 진실을 포장하고 있는 장막을 걷어내 그 장막도 진실의 곁가지로 진열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목격담에 숨어있는 문제들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모든 것이 중요한 진실(학살)을 덮게 해선 안 된다. 가능성과 개연성으로 서술됨으로서 모호하게 남은 그 짧은 유엔 보고서조차, 결과적으로 매우 단순한 '학살'이라는 진실을 비켜가지 못한다.

보고서는 "비무장 민간인들"이 "저항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백 명(칸 유니스에서 275명, 라파에서는 100여 명으로, 정확한 집계조차 없다)이나 죽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가자 지구로 직접 들어간 사코는 이렇게 정확하지 않은 상태로 사멸해 가는 진실을, 긴장감 넘치는 본인의 취재 과정의 에피소드와 함께 버무려 되살려 낸다.

대량 학살이나 가혹한 인권 유린 행위들은 역사적으로 볼 땐 "권력과 집단의 논리에서 비롯된, 인과 관계가 비교적 단순한 일들"이라면 개인의 영역에서 볼 땐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좀 더 복잡한, 수많은 심리 상태의 부조리가 엉켜있는 일"이다. 사코는 그런 점도 놓치지 않는다. 그는 1956년 칸 유니스에서 병사로 복무했던 이스라엘 언론인 마렉 게펜의 기록과 취재 기간에 만났던 파타(FATAH) 소속의 페다이(팔레스타인의 반 이스라엘 무장 게릴라) 칼레드의 독백도 남겨 놓는다.

"몇몇 골목의 바닥에는 피범벅이 된 채 머리가 산산조각 난 시체들이 즐비했다."
"끔찍했다. 나는 구석에 가서 토했다. 그런 인간 대학살 광경에 적응할 수가 없었다."

"난 유대인을 증오하지만 공존해야해."
"난 죽겠지. 암살당할 거야. 하지만 그때까지 너무 오래 걸려."

하지만 이런 유의 신파(?)는 증오와 분노로 점철된 거대한 현실에서 언제나 설 자리를 잃는다. 이스라엘이 나치로부터 얻은 교훈은 학살과 또 다른 게토인 분리 장벽(이스라엘은 '보안 장벽'이라 부른다)뿐이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은 힘의 열세를 "공포의 균형"으로 맞추기 위해 소년의 몸을 빌려 스스로 폭탄이 되는 길을 선택한다.

유대인 출신의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그의 영화 <뮌헨> 때문에 유대인들로부터, 혹은 팔레스타인인으로부터(사실 이 부분은 주목 받을 수조차 없다) 비난 받았던 각각의 이유는 털끝만큼도 같은 구석이 없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쯤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타인으로서의 우리'는 이른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60년간 지속적으로 앓아 온 팔레스타인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아니 좀 더 솔직하게 말해 보자. 팔레스타인에 대해 단순히 인지하고 그 땅에서 일어난 숱한 사건들의 이미지를 스펙터클로 소비하고 있어왔다는 사실이, 범죄 행위는 아니더라도 스스로 불편해 해야 하지 않을까?

스탠리 코언은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조효제 옮김, 창비 펴냄)을 통해 대중이 왜 인권 침해나 대량 학살 등을 외면하고 부인하는지를 분석하면서, "사실 자체나 일반적 해석을 부인하지 않는 사람"들이 취하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식의 태도 역시 '부인'의 범주에 넣는다. 그렇다면, 진실 앞에서 우리가 갈 수 있는 길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닐까? 적어도 자신이 그 진실의 길을 피하고 싶지 않다면, 그 외길에 멈춰 서서 눈을 감는 것이 아니라 눈을 뜨고 길을 살피며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걷는 것.

친구들과 만나서 어쩌다 중동 문제 이야기가 나오면, 중동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에 다녀왔다는 이유만으로 내게 질문들이 쏟아진다. 팔레스타인 사람 모두가 잠재적 테러리스트인 양 생각하는 녀석도 있다. 그럴 때마다 '이라크에 다녀왔다는 죄' 때문에 "이놈아, '하마스'나 '알카에다'도 구분할 줄 모르는 상식으로 말하지 마!" 이런 말도 꾹 참으며 속 앓이를 한다.

이내 웃는 얼굴로 아는 선에서 찬찬히 설명도 한다. 하마스가 자살 폭탄 테러를 시작한 이유가 무엇인지(2006년 이후로는 하지 않는다고 선언했지만), 혹은 현재 팔레스타인에서 총선으로 집권한 세력이 어디인지, 집권한 그 세력이 아라파트의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PLO)'보다 전부터 병원과 학교를 세우는 일을 했고, 팔레스타인의 빈민 구제를 위한 사업을 착복이나 부패 없이 해왔다는 사실 등….

개인적으로는 조 사코의 만화가 불편하다. 그가 다루는 주제나 내용의 무게감도 불편하고 취재하고도 수년에 걸쳐 그렸을 기교 없이 팍팍한 밀도의 그림 스타일도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국제 법을 기대할 때는 영락없는 '미국 순둥이'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의 만화를 꼼꼼히 보지 않을 수 없다. 진실로 이끄는 힘이 어떤 것인지 몸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같은 만화가이자 저널리스트로서 끊임없이 나를 일깨운다. 보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을, 특유의 솔직함과 겸손한 태도로 끝내 보게 만든다. 특히 마지막 단락, 병들고 기억이 혼란스러운 노인 '아부 주히쉬'와의 인터뷰에서 사코가 깨닫는 부끄러움에 경의를 보낸다.

사족으로 두 가지를 말하자. 첫째, 이 책과 꼭 병독해 볼 책으로 김재명의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프로네시스 펴냄)을 권한다.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으면서도 팔레스타인에 대해 이해를 돕고 이만큼 지평을 넓혀주는 책도 없다. 우리가 얼마나 자랑스러운 저널리스트를 지녔는지 믿어도 좋다.

두 번째, 광고 문구다. 내겐 좋은 책이라 판단되면 디자인이나 편집, 하다못해 날개에 있는 광고도 이러쿵저러쿵 혼자 품평하는 버릇이 있음을 양해해 주길 바란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비망록> 책 뒷면의 광고 문구 "피의 잉크로 그려내는 조 사코의 현장 르포"가 심하게 거슬린다. '피의 잉크'라니…. 원서에도 있는 문구인지 편집자의 안목인지, 한국에서 출판사 책 광고가 그나마 점잖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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